투기자본에 문 열어준 상법개정안
투기자본에 문 열어준 상법개정안
  •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19.02.1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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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은 경제민주화법률로서 상법개정안의 여러 건 국회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이번 상법개정안들은 기업에는 세상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법안들이다.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폐기되어야 할 법안들이다. 그 내용을 보기로 한다.

집중투표제도 의무화

집중투표제는 매우 그럴듯한 제도이다. 1주당 선임해야 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면 주주가 그 의결권을 1명의 이사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7명의 이사를 선임한다면 1주당 7개의 의결권이 주어진다. 소액주주들이 뭉쳐서 자신이 가진 모든 의결권을 1인에게 투표하면 그 1인이 이사로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대표 한 사람쯤은 이사회에 진입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사회라는 것은 군대의 ‘작전참모회의’나 같은 것이어서 고도의 전략전술 전문가가 모여 작전회의를 하는 것이지, 무슨 지역구 대표들 모임이 아니다. 각 이해집단을 대표하는 자들이 이사회에 모이면 회사의 목표 달성을 위한 일사불란한 행동이 불가능하고 각자의 이익만 앞세우게 된다. 이사 선임을 위한 주주총회는 정치판이 되고, 이사회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자신이 대리하는 집단의 입장에서 엉뚱한 얘기만 늘어놓으면 이사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사인 이상 회사만 생각한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자신을 이사회에 보낸 집단을 대변하지 않을 거라면 굳이 이사회에 진입할 이유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민주적 조직체가 아니다. CEO의 지휘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오케스트라이다.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등이 집중투표제도를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은 1980년 19개주 회사법이 이 제도를 채택했으나, 2016년에 이르러 조사해 보니 Arizona, Nebraska, North Dakota, South Dakota, West Virginia 등 5개 주만 의무화 하고 있고, California와 Hawaii는 비상장사만 의무로 되어 있다. 알다시피 경제력이 별로 없는 주들이다. 일본은 과거에는 의무화했으나 1974년에 의무화를 폐지했다.

한국은 현재 기본적으로 집중투표제도를 도입하게 되어 있고 정관에서 이를 배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집중투표를 배제하는 것으로 정관을 변경할 때에는 대주주의 의결권은 3%까지로 제한된다. 이것을 고쳐 완전의무화하자고 하는 것이 개정안의 태도이다. 현재의 규정만으로도 충분하다. 굳이 이를 의무화할 것까지는 없다.

이중대표소송제도

이중대표소송은 모회사(자회사 주식 50% 이상을 초과 보유한 회사)의 주주가 자회사 임원을 상대로 자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소송의 종류다. 모회사와 자회사는 엄연히 다른 회사인데, 모회사의 주주가 무슨 근거로 자회사의 경영자에 대해 소송을 해야 한다는 것인가. 이것은 ‘법인격 독립의 원칙’에 어긋난다. 모회사 주주에게만 이와 같은 과도한 프리미엄을 줘야 할 법적 근거도 없다. 소송할 필요가 있으면 그 자회사의 주주가 하면 된다.

일본은 2014년 회사법의 개정을 통해 최상위에 있는 최종모회사의 주주에게만, 또 자회사에 모회사 외에 다른 주주가 없는 경우(완전자회사)에만 인정한다. 또 자회사의 자산 규모가 모회사 총자산의 5분의 1 이상인 중요한 자회사인 경우에만 인정되며, 외국 자회사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 판례도 자회사의 법인격이 없는 정도로 형식화되어 있는 경우에만 인정한다.
 

감사위원 분리 선임

감사위원이 될 이사를 일반 이사와 분리선임해야 한다는 것도 해괴하다. 감사위원도 이사이므로 이사를 선임한 후 그 중에서 감사위원을 임명하면 된다. 그런데 이사 선임과 분리해 감사(위원)위원만을 별도로 선임할 때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3%를 초과하는 의결권은 행사할 수 없다)하고 소액주주들이 집중투표를 하게 되면 거의 틀림없이 1명 이상의 감사(위원)를 이사회에 진출시킬 수 있다. 감사는 대표이사를 포함한 모든 이사들을 감독할 수 있고 회사의 모든 자료에 접근할 수 있다.

헤지펀드나 적대적 세력들도 회사에 그들의 대표를 감사(위원)로 진출시켜 회사의 모든 고급정보를 받아볼 수 있다. 배당률 상향조정, 자산매각, 자회사 기업공개 등 온갖 무리한 요구를 하다가 회사가 어느 정도 망가지면 손 털고 철수한다. 한국은 2016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으니, 펀드들의 경영권 공격이 가능하도록 이미 멋진 고속도로를 개통시켰다. 소액주주 보호는 가짜 구호이고 결국 이익을 보는 자는 소액주주들이 아니라 금융자본가(펀드)들이 된다. 회사로서는 그야말로 악몽이다. 세상에 이렇게 하는 나라는 아무 데도 없다.

특히 금융위원회는 금년 중에 자본시장법을 개정하여 사모펀드제도를 개편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김병욱 의원 대표발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종래의 ‘전문투자형’과 ‘경영참여형’이라는 두 종류의 사모펀드 분류법을 폐지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종래 경영참여형의 경우 10% 이상 취득해 6개월 이상 보유하라는 요건, 전문투자형의 경우 10% 초과분에 대한 의결권행사 제한 요건을 모두 없애는 방향으로 전환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현재 외국계 펀드에 대하여는 일절 제한이 없었고, 국내펀드들만 외국계펀드에 대하여 위와 같은 요건에 부과되어 역차별을 받아왔던 것인데, 이제 국내 사모헤지펀드들도 외국계 펀드와 똑같이 무제한의 주식취득과 무제한의 의결권 행사가 보장된다. 지금까지는 외국계 헤지펀드만 방어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토종 헤지펀드들의 이리떼(wolf pack) 같은 공격에도 완전히 노출되게 된다. 이번 대한항공과 한진칼이 겪고 있는 일을 앞으로는 흔히 보게 될 것이다.

전자투표제도 의무화

전자투표는 투표 방식 문제인데 법률이 이런 것까지 세세하게 간섭할 필요는 없다. 전자투표가 논의되는 이유는 주주총회에 적어도 발행주식총수의 1/4에 해당하는 의결권을 가진 주주가 출석해야 하는데, 그만큼의 주주들이 모이지 않아 총회 자체가 성립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섀도보팅제도가 도입되었으나 2017년 섀도보팅제도는 폐지되었다. 전자투표제도를 이용하는 주주가 늘어나면 이 문제가 조금은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제도는 회사가 필요하면 지금도 바로 시행할 수 있다. 성원 미달로 총회가 성립되지 않을 조짐이 보이면 회사가 전자투표를 하든 위임장을 발송하든 알아서 하게 벼려두면 된다. 국가가 이런 것까지 간섭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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