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공정거래법 개정안...규제가 아닌 경쟁 촉진이 목적 되어야
빗나간 공정거래법 개정안...규제가 아닌 경쟁 촉진이 목적 되어야
  •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19.02.11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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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전 세계에서 100여 개가 넘는 국가가 경쟁법(competition law)을 집행하고 있다. 경쟁법은 사업자가 시장경쟁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범인데, 이는 자유시장경제의 헌법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하다.

이 때문에 선진국들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 러시아, 베트남처럼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인 사회주의 국가들도 경쟁법을 만들어 집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공정거래법으로 불려지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바로 경쟁법에 해당된다.

그런데 한국 공정거래법에는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규제가 있는데, 경제력집중 억제라는 명목으로 대기업집단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 유럽 등 자유주의 선진국들은 물론이고 중국, 베트남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조차 경제력집중 억제를 이유로 대기업집단을 억제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어떤 기업집단의 규모가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경쟁제한행위를 하지 않으면 이를 경쟁법으로 규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급진 사회주의자들이 자유시장경제 제도를 정경유착 자본주의라며 정부와 대기업 모두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구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에서는 북한과 쿠바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시장경제를 도입했고 경제성장 전략으로 경제력집중을 택하고 있다.

최근 중국 공산당은 대한민국 1년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200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로 했다. 중국 정부가 집중 육성한 대기업은 한국 대기업을 무서운 속도로 따라 잡고 있거나 이미 추월한 경우도 있다. 베트남 역시 경제력집중 정책으로 무려 7%의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공정경제라는 이름하에 대기업집단을 공정거래법으로 강력하게 억제하려고 하는데, 이는 글로벌 경제 현실을 도외시한 것이다.

대기업 경제력집중이 아닌 정경유착이 문제

경제력집중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즉 경제력집중도가 높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고, 반대로 낮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다. 통신, 자동차, 조선, 항공, 정유, 철강 산업처럼 경제력집중이 필연적인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력집중 그 자체를 나쁘게 보고 대기업집단을 경쟁법으로 억제하는 선진국이 없는 것이다.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등 국제경제기구의 총합 데이터베이스인 세계통합무역정보(World Integrated Trade Solution)에 나타난 시장집중도 지수를 보면 2016년 기준으로 우간다(0.04), 파기스탄(0.04)의 시장집중도는 한국의 시장집중도(0.16)에 비해 월등히 낮다. 그렇다고 해서 우간다와 파키스탄의 경제가 한국보다 과연 좋은가? 한국의 시장집중도가 우간다나 파키스탄처럼 낮아지면 경제가 더 과연 좋아지겠는가?

한편 대기업집단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영향력을 의미하는 일반집중은 객관적 측정지수가 없기 때문에 각 나라의 일반집중도를 비교한 데이터 자료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다. 일반집중에서 정치력 영향력 문제는 결국 부당한 정경유착 문제인데, 이 차원에서 보면 대기업집단보다 오히려 정치권력이 훨씬 더 위험하다. 경제력이 아무리 큰 기업집단이라고 해도 정치권력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일반집중 문제는 대기업집단 억제가 아니라 부당한 정경유착 단절로 해결해야 한다.

정경유착 문제는 기업에 대한 정치권력의 부당한 간섭부터 엄격히 금지되어야 해결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은 패전국인 일본과 독일에 침략전쟁을 일으킨 전체주의 정권과 결탁해 막대한 이익을 챙긴 대기업집단과 카르텔을 해체하고 미국과 유사한 경쟁법을 만들도록 했는데 이것이 경제민주화의 원래 의미이다. 즉 경제민주화는 전체주의 정부와 대기업집단의 결탁을 단절시키고 자유시장경쟁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지 대기업집단을 무조건 억제하라는 것이 아니다.
 

한편 1932년 미국에서 벌(Adolf Berle)과 민즈(Gadiner Means)는 ‘현대기업과 사적재산’(The Modern Corporation and Private Property)이라는 저서에서 기업의 소유·지배 괴리 현상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로 언급한 바 있다. 그 이후로 소유·지배 문제에 대한 연구문헌들이 전 세계에서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지만, 오늘날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소유·지배 괴리를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고 있다. 예컨대 소유·지배의 괴리를 초래하는 순환출자의 경우 경영권 방어와 리스크 분산이라는 장점이 있고, 선진국에서도 순환출자는 적법한 지배구조로 인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순환출자가 소유·지배를 괴리시킨다는 이유로 그 자체가 마치 폐해인 것처럼 잘못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제네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그룹은 전 세계 2100개 글로벌 기업 중에서 최고의 지배구조를 가진 집단으로 평가받은 바 있으나(10점 만점에 10점), 최근 경영실적 악화로 다우(Dow) 지수에서 퇴출되었다. 한국에서는 이른바 진보세력으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아온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자타공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금과 같이 잘못된 대기업집단 억제책이 강화되면 작금의 경제위기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도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도 모른다.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경제력집중이나 대기업집단은 그 자체로서 나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 억제책을 강화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폐지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물론 대기업집단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하여 사회에 해악을 끼치면 그러한 행위는 마땅히 규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단지 기업집단의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이를 억제하는 정책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선진국들은 물론이고 시장경제를 도입한 사회주의 국가들조차도 우리나라와 같은 대기업집단 억제책을 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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