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리쉬 빵집 ‘W Style’ 대표 우경수... ‘연아 베이글’ 빵맛 기억하시나요?
스타일리쉬 빵집 ‘W Style’ 대표 우경수... ‘연아 베이글’ 빵맛 기억하시나요?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2.15 14: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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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 소상공인연합회 지역회장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카페거리. 유럽의 어느 작은 마을에 온 것처럼 아기자기하고 이색적인 상점들이 모여 있다. 이 거리의 터줏대감 북카페 ‘에코의 서재’를 비롯해 수제 맥주전문점, 주얼리숍, 카페와 레스토랑, 옷가게, 액세서리류 상점 등 130개가 넘는 다양한 상점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이 거리 안쪽에 보정동 카페거리 상가번영회 우경수 회장(48) 이 운영하는 스타일리쉬 빵집 ‘W Style’이 있다.

유럽풍의 제조기술로 구운 치즈케이크와 바삭하면서도 쫀득한 식감의 크루아상 등 한번 맛보면 단골이 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종류와 빵맛으로 정평이 나 있다. 편안한 분위기로 가족단위의 손님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우 회장은 프랑스에서 제과를 전공하고 현대백화점 베이커리 부문을 총괄한 28년 경력의 빵 전문가다. 그는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동안 자신만의 빵집을 운영하는 것이 꿈이었다. “나만의 빵집을 연다는 게 이쪽 업계에 있는 사람들의 로망이죠. 현대백화점에서 관리, 개발, 인사 등 베이커리를 총괄했지만 늘 뭔가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회사에 말도 안 하고 점포 계약을 덜컥 해버렸어요. 사장님과 부사장님이 만류하는 바람에 회사에 적을 두고 퇴근 후나 휴가를 활용하면서 가게를 오픈하긴 했는데, 스무 명 정도 되는 제 식구들 먹여 살리기 위해 가게에 온통 신경이 가 있으니 회사엔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건 아니다 싶어 대기업 생활을 접고 제 점포에만 집중하게 됐습니다.”
 

스타일리쉬 빵집 ‘W Style’ 대표 우경수

보정동 카페거리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상점을 찾아보기 힘든 소상공인들의 공간이다. 그의 빵집이 위치한 곳은 이 곳에서도 구석진 안쪽에 위치한다. 그가 이 곳을 선택한 이유는 그만의 빵집 스타일과 규모, 임대료 등 여러 조건이 맞아서이지만 특유의 도전정신 탓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의욕과 달리 처음엔 참담한 결과였다. 두 달여간의 준비 기간을 걸쳐 오픈한 시기가 하필이면 메르스 사태로 나라가 한창 몸살을 앓던 때였다. 성대한 개업식, 오픈을 축하하는 화환들이 가게를 둘러쌌지만 거리는 적막했다.

“가게 오픈일이 하필이면 메르스가 빵 터진 시기였어요. 뉴스에서는 누가 사망했다고 하지, 외출하지 말라고 하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죠. 오픈 하루 전날까지 우리 직원들이 ‘사장님 빵 이렇게 많이 만드시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지금 뉴스에서...’ 그래도 전 ‘만들어’ 했죠. 제가 누구보다 가게 오픈을 많이 해봤는데 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자신감이 넘쳤죠. 지금 생각해보면 오만했어요. 글쎄 오픈 하고 손님이 들어오는데 마스크 쓰고, 소독약부터 찾더라고요. 그러니 빵들을 사 먹겠냐고요. 가게 오픈하면서 수억 원의 빚도 졌는데, 첫 달 적자가 1200만 원이었어요. 두 달째 되니 1000만 원, 세 달째 800만 원… 차츰 줄긴 했지만 진짜 그때 기억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아요. 약을 세 개씩 먹고 생명보험까지 들었다니까요.”

전문성과 도전 정신으로 성공시킨 ‘연아 베이글’

보정동 카페거리 상점들 가운데 매출 1위를 기록하는 데 기여한 건 무엇보다 그만의 제법이 만들어내는 빵맛을 빼놓을 수 없다. 우 회장은 ‘W Style’ 점포를 내기 전 미국에서 셰프 경력을 쌓을 당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미국 갔을 때 제가 창업을 도운 베이커리는 새로운 가게가 아니라 유태인 전통빵(Jewish bread)을 만드는 50년 된 유태인 베이커리였어요. 그걸 한국계 미국인이 인수한 것이죠. 그런 일은 쉽지 않은데 가게를 오픈한 분이 미국인이고, 유태인과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어서 가능했어요. 어쨌든 유태인이 믿고 한국 사람한테 가게를 준 셈이죠. 제가 그 가게에 들어가 오픈을 해줬습니다. 그 가게는 50년 된 빵집이라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까지 그 빵집과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유태인 전통빵은 모르잖아요. 그런 빵은 종교적인 측면도 있어서 일반 빵 제조와는 완전히 다르거든요.

전 영어도 서툴지 제품도 어떻게 만드는지 혼란스럽지 그때 베이커리 기술자들과도 트러블도 있어서 머리가 빠질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유태인 어르신이 가게에 와서 이러는 거예요. ‘당신이 만드는 빵은 내가 그동안 먹던 빵이 아니다, 왜 당신은 나의 공간에 와서 그런 빵을 만드느냐’ 그러면서 빵을 주방에 던지고 가버리더군요. 모욕적이었죠. 그런데 희한한 게 다음에 그분이 또 가게에 와서 똑같은 빵을 사는 거예요. 그러곤 또 저를 혼내는 거예요.

그 다음날 또 와서 똑같이 그래요. 저도 장사하는 사람이지만 보통 사람들은 상품이 마음에 안 들면 그 가게에 다시 안 가잖아요. 그런데 그 분은 ‘이 가게는 내 아버지가 단골이고 나도 계속 다녀야 한다. 다른 가게에는 가고 싶지 않은데 당신 때문에 내가 힘들다’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원하는 빵을 위해 다른 가게를 찾는 게 아니라 빵 만드는 사람을 뜯어고치겠다는 자세 아니에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어쨌든 그 덕분에 제가 주이시 베이글에 관해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1월 31일 서울 여의동 국회회의실에서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주재의 비상대책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책상에 놓은 자료를 내려다보고 있는 우경수 비대위원  ( 오른쪽에서 세번째 )
1월 31일 서울 여의동 국회회의실에서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주재의 비상대책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책상에 놓은 자료를 내려다보고 있는 우경수 비대위원 ( 오른쪽에서 세번째 )

미국에서 제대로 배우고 한국에 들어와 제대로 히트 쳤죠. 베이커리 업체 뚜레주르 ‘연아 베이글’이 제 작품이에요. 그 당시만 해도 플레인, 시나몬, 블루베리 정도의 베이글 밖에 없었는데, 미국에서 함께 했던 사장님이 베이글 공장을 차리고 저는 치즈베이글, 잡곡 베이글 등 버라이어티한 베이글을 개발하면서 ODM 방식으로 CJ에 납품하면서 한국의 베이글 시장이 많이 열렸다고 자부합니다.”

2004년 개발된 죽전택지개발지구 내 점포병용주택지로 작은 규모의 테마 카페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면서 유명해졌지만 위기도 있었다. 한때 드라마 촬영 장소로 소문이 나 많은 사람들이 찾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방문객 수가 줄고 문을 닫는 가게들도 늘기 시작했던 것. 우 회장은 사람이 찾는 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카페거리 상인들과 힘을 모았다고 한다.

용인시청, 용인문화재단 등을 찾아다니며 거리 환경개선을 지원해줄 것을 설득한 끝에 2015년 10월부터 거리 환경개선 사업을 시작했다. 낡은 아스팔트를 모두 걷어내고 도로와 인도를 구분하는 공사를 했다. 각 점포 앞에는 나무를 심고 녹지를 조성했으며, 카페거리 내 4개 라인을 모두 일방통행으로 바꿨다. 인적이 드물고 온갖 쓰레기가 쌓여 있던 장소에는 포토존을 설치하고 쉴 공간도 마련했다. 버스킹 공연과 꽃 콘서트, 거리 그림전시, 벼룩시장 등 각종 문화행사를 열었고, 미술을 전공한 우 회장의 아내를 주축으로 거리 시설물들을 꾸미는 작업도 진행했다. 거리에 다시 활기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2016년 10월말 카페거리에서 진행한 할로윈 데이 축제에는 약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방문했다고 한다.

“가게는 오픈했는데 죽은 쑤고 있고, 마침 시에서 환경개선사업, 재생사업을 한다고 공청회를 열었어요. 오라고 해서 가서 듣고 있는데, 짜증이 나더라고요. 장사는 안 되는데 3개월을 공사한다니 기분이 좋지 않았죠. 듣다못해 ‘보도블록 뒤집고 아스팔트 깐다고 이 거리가 좋아질 것 같진 않다’ ‘도면을 보니 계획대로 잘 될 것 같지 않다. 예산낭비 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상인들이 이 어려운 시기에 3개월 장사를 제대로 못 하고 매출 반 토막 나면 그것 보상해줄 수 있냐’고 따졌어요. 아무 소리도 못하더라고요. 제 옆에서 듣던 다른 사람들도 동조하더군요.

시에서 난리가 났고, 그 뒤로 우리 얘기를 듣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판을 엎고 새로운 도면으로 밀어붙였습니다. 그해 12월 얼떨결에 번영회 회장이 된 뒤로 조직을 더 키워 대기업 자본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우리만의 소소한 아이디어로 거리를 가꿔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갑자기 블로그나 카페에 우리 카페거리 사진이 올라오면서 발길 끊었던 단국대 학생들도 다시 오기 시작했고요. 학생들이 보기에 거리그림이나 만화 같은 것들이 어떤 면에선 유치하고 촌스럽지만 와서 사진 찍고 가거든요. 그런 유치함이나 아기자기함 대문에 드라마 촬영도 더 오고요.

그렇게 알려지면서 중기청(중소벤처기업청)에서 사전조사도 나오고 급기야 이 거리를 대한민국 소상공인 롤모델로 선정해 통째로 카피해서 인도네시아로 진출하는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그 덕분에 언론 보도도 엄청 쏟아졌죠. 중기청장이 이 거리에서 간담회를 열었고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도 다 보고 갔어요. 그 덕에 제가 전국 지자체에서 강연도 많이 다녔습니다.”

소상공인 권익 위해 일하며 바른 정치의 중요성 깨달아

소상공인의 애로 해결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발 벗고 뛰었던 우 회장은 2016년 12월 당시 정세균 국회의장으로부터 공로장을 받기도 했다. 더 나아가 2017년에는 용인시 소상공인연합회 지역회장으로 취임해 두 개의 회장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자영업이 살기 위해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영업이 어렵잖아요. 제가 보기에 자영업이 살길은 기본에 충실한 겁니다. 잘 되는 가게를 보면 기본적으로 주인이 성실하죠. 그래서 저는 제 아들한테도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함부로 하지 말라고 말해줍니다. 검소함과 자기희생도 필요하고요.”

W Style은 카페거리에서도 ‘핫’한 가게로 매출액도 상위권을 달린다. 하지만 우 회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오늘 가게 혹은 이 거리에 손님이 찾아왔다면, 내일 또 그 이후에도 찾고 다른 고객과 함께 올 수 있어야 오래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바꾸겠다는 투지와 성실함을 지닌 우 회장을 정치권이 눈여겨보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우 회장은 2018년 8월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으로 임명됐다.

“원래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했어요. 지난 대선 때는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상공인 부위원장 임명장을 받기도 했죠. 그런데 현 정부 들어서고 4대 보험료가 두 배로 오르고 세금도 갑자기 많이 나오고, 또 최저임금도 오르면서 경제가 이상하게 돌아가더군요. 나는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정치와 이념을 떠나서 이런 현실이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현 정부를 세게 비판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주변 추천을 받아 한국당 비대위원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동안 간담회에서 아무리 현실에 입각해 비판해도 정치인 법안에 반영이 안 되더군요. 그래서 ‘그렇다면 내가 직접 들어가서 국회의원들 멱살을 잡든 설득을 하던 직접 이야기하자’는 결심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고요. 한국당 들어가 의원들이나 지도부에 저와 같은 자영업자들, 소상공인 현실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전달했습니다.

이들을 정치적 파트너로 봐달라는 게 아니라 같이 상생해야 할 집단, 함께 가야 할 국민으로 봐달라는 것까지 인식시키는 데 제 몫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민노총, 한노총 등 거대 노동자단체보다 저희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현실을 반영한 법안이 발의될 수 있도록 함께 가는 데 그 시초에 있어서 제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만족합니다.”한국당이 거대 노총이 아닌 소상공인 자영업자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우경수 회장. 그래서 직접 한국당 안으로 들어간 그에게 비친 웰빙 정당의 모습은 어떨까?

“저는 한국당과 이념적으로 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가 현실과 부딪히면서 바뀐 케이스인데 아무래도 새롭게 느껴지죠. 한국당 의원들 하면 많이 배우고 고위공무원 출신의 흔히 얘기하는 금수저, 다이아몬드수저 출신의 브레인들이 많잖아요? 그러다보니 전투력 면에서는 점잖죠. 험하고 거친 말을 잘 안합니다.

그분들은 그런 말을 안해보신 거예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의원 한 분 한 분 만나보면 존경스러운 면이 있고, 나름대로 아닌 건 아니라고 말들 합니다. 하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시원한 말들을 잘 못하죠. 또 언론이 왜곡된 이미지를 만드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웰빙 정당이란 이미지는 그렇게 구축된 게 아닌가 싶어요.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시원한 말들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제가 소상공인 대표로 들어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어쨌든 한국당도 대내외적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국민이 원하는 그런 분위기로 점차 바뀌고는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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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수우맘 2019-02-22 14:56:09
훌륭하신분이네요
꼭 자영업자를 대변해서 훌륭한 일을 많이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