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이코노크러시...경제를 전문가에게만 맡겨놓는 것의 위험성
[서평] 이코노크러시...경제를 전문가에게만 맡겨놓는 것의 위험성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2.1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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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민주주의보다 경제학의 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 

이 책의 저자들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성장한 세대이다. 이들은 소위 ‘경제전문가들’의 경제정책 탓으로 가장은 실직되고, 집안 자산은 반 토막나면서 고통을 받은 아픈 경험이 있다. 경제 정책 하나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세계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역할을 찾으려면 경제학을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에서 마주한 경제학은 기대와 너무 달랐다. 대학에서 배운 경제학만으로는 세상을 이해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런 현상을 배태한 가장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이들은 신고전학파 경제학으로 불리는 주류 경제학파에 의한 경제학의 독점과 학문적 오만을 지목한다. 
 

결과적으로 볼 때, 금융 위기 이전까지 주류 경제학자들의 현실 진단이 오만했던 것은 사실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는 낮은 인플레이션과 고성장의 ‘대 안정기’가 도래했다고 진단했고, 당시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올리비에 블랑샤르는 금융 위기의 징후가 보이고 있었음에도 ‘거시경제의 상황은 좋다’고 공표했다. 이런 자아도취적 집단 사고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들 저명한 전문가들의 머릿속을 신고전학파의 사고방식이 온통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란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물론 저자들이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대학의 경제학 교육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결함을 지적할 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랜드 비전이 대개 그렇듯이, 신고전학파 경제학에도 경제학자의 능력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단점과 사각 지대가 있으며, 경제 전문가들이 다른 경제학파의 사고방식을 접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경제를 예측하고 미세 조정하는 능력을 조금 더 키울 수 있으리라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현대 사회는 환경이나 불평등 문제처럼 신고전학파의 이론 틀만 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는 다양한 난제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는 신고전학파의 관점을 고수하는 것만으로는 혁신적이고 지속가능하며 공정하고 안정적인 사회를 구축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복잡해졌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복잡하고 도전적이며 긴급한 정치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과제에 수시로 직면하고 있다. 다양한 경제학파들의 이론과 시각을 수용하고, 공론의 장을 더욱 활성화하는 것만으로도 경제학은 지금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사회 분석과 해법의 도구가 될 수 있으리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데모크러시가 아니라 이코노크러시! 

이 책 제목 이코노크러시(Econocracy)가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저자들의 메시지를 얼추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어느 사전을 찾아봐도 이코노크러시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들이 만든 말이기 때문이다. 앞쪽의 ‘Econo-’는 이코노믹스(Economics, 경제학)에서 가져왔다. 뒤쪽의 ‘-cracy’는 권력이나 통치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따왔다. 흔히 Democracy를 민주주의로 옮기지만 이를 풀어보면 권력이 시민에게 있다, 다시 말해 시민이 통치하는 사회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코노크러시는 ‘경제학이 통치하는 사회’를 뜻하는 조어라고 할 수 있다.

이게 저자들이 주목하는 현대 사회의 정체성이다. 데모크러시가 아닌 이코노크러시! 저자들은 이코노크러시의 의미를 이렇게 적어 놓았다. 
“정치적 목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정해지며, 전문가의 관리를 요하는 별도의 논리 체계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회.” 

저자들은 현대 사회를 이코노크러시로 규정한 다양한 근거를 제시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정책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정당이 영국 선거에서 승리한 전례는 거의 없었다. 그 결과 1950년 이전까지 모든 선거 구호에서 단 두 차례만 찾을 수 있었던 ‘경제’라는 단어가 2015년 총선 때는 보수당 선거 공약 속에서만 59차례나 등장했다. 정부 기구 안에는 다수의 경제학자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정책 결정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경제가 국가 운영의 중심 잣대가 되면서 삶의 다양한 영역들이 경제에 얼마나 기여하느냐는 관점을 가지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등등. 

문제는 소수의 엘리트를 제외하면 경제학의 언어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시민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어려운 경제 언어를 습득한 사람만 발언권을 누린다. 경제 토론과 의사 결정에 시민의 낄 여지는 거의 없다. 현실이 이렇기 때문에 이코노크러시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정치 전통인 자유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문제는 경제학이 아닌 경제학 교육 

2012년 12월, 저자들을 필두로 맨체스터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새로운 대안 경제학과 경제학 교육의 개혁을 주장하며 학내 동아리 포스트 크래시 경제학회(Post-Crash Economics Society)를 창립했다. ‘크래시’(crash)는 2008년 금융 위기에 전혀 대처하지 못하고 무력했던 주류 경제학의 와해를 뜻한다. 이제는 와해 이후의 대안 경제학을 준비하자는 게 학회 창립의 이유였다. 

이들은 자체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교과 과정 개혁을 위한 캠페인을 꾸려나갔다. 이들의 첫 번째 행동 목표는 대학의 경제학 커리큘럼 개혁이었다. 이를 위해 이들은 맨체스터 대학과 캐임브리지 대학, 런던정경대학을 비롯해 러셀 그룹(영국 명문 대학 리그)에 속한 7대 대학 174개 전공과목의 수업 안내서와 시험문제를 전수 조사했다. 대부분의 경제학 수업이 주류 신고전학파 경제학 과목들로 채워져 있었고, 시험문제 또한 추상적이고 수학적인 경제 모형 다루기에 할애되고 있었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견제하고 보완하기 위한 비판적인 사고나 다원주의 이론은 설 자리조차 위태롭게 보였다. 저자들은 이렇게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영국 대학 경제학과의 커리큘럼을 분석하고 비평했다. 

현대사회 분석과 신고전학파 경제학 비판, 대학의 경제학 교육과정 분석, 대안 경제학 소개 등을 두루 담고 있는 <이코노크라시>는 저자들이 전 세계 경제학도들을 향해 외치는 ‘매니페스토’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저자들의 주장을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정책 결정을 정치인들에게 맡긴다든지, 국민투표 등을 통해 대중에게 위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경제학은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명실상부하게 모두를 위한 학문이며, 전문가에게만 맡겨놓기에는 너무나 중요하다는 저자들의 주장을 현재의 경제학계가 겸허히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미래는 한층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들이 <이코노크라시>를 출간한 2016년 말, 이들과 뜻을 같이한 학회는 맨체스터 대학의 포스트크래시 경제학회, 케임브리지 대학의 경제다원주의학회 등 14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2년여가 지난 현재 영국 내 19개 대학을 비롯해 전 세계 60여 개 대학의 경제학과 학생들이 리싱킹 경제학 네트워크에 동참하고 있을 정도로 영국과 유럽에서는 경제학 개혁 학생운동이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아직 한국의 경제학도들에게 이런 움직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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