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영섭 변호사의 국가생각 - 보수우파와 5·18 그리고 호남
원영섭 변호사의 국가생각 - 보수우파와 5·18 그리고 호남
  • 원영섭 변호사
  • 승인 2019.02.2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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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5·18국회공청회가 열렸다. 지만원 박사의 발언과 후속되는 김진태 의원, 이종명 의원, 김순례 의원의 잇단 발언은 한동안 우리나라의 가장 큰 이슈가 됐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4당은 합심하여 자유한국당을 공격하고 있고,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도 이 공격에 참여했다. 언론에서도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한 것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5·18을 바라보는 보수우파의 시각은 여전히 복잡하고 다양하다. 아니 혼란스럽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자유한국당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위 세 명의 국회의원을 윤리위에 징계 회부했고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수차례 사과 발언을 표명했다.

한편 일부 보수지지자들은 지만원 박사의 북한군 600명 침투설을 지지하기도 하고, 다른 일부는 5·18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제 5·18유공자명단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은 보수우파진영에서는 완전한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보이고 그 외연을 중도까지 확장하려 한다.

불행히도 이 보수우파의 ‘혼란’은 좌파진영에 완전한 먹잇감이다. 5·18을 숭상하면, 희생자들에 대한 우파 정권인 전두환 정권의 악행이 부각된다. 5·18을 배척하면, 역사에 대한 배신이 되고, 유족을 분노케 하며, 호남의 민심을 반(反)보수로 결집시키게 된다. 좌파 측이 5·18을 정쟁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을 리가 있을까. 보수우파는 5·18에 대한 관점을 제대로 정의하지 않고는 가치와 이념을 향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5·18은 보수우파의 발전에서 반드시 넘어야 할 큰 산이다.
 

보수, 5·18에 대한 관점 확립해야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해결할 수 없다. 알렉산더 대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지 않고 칼로 자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강대한 권력자였기 때문이다. 민주공화국의 정치가는 위대한 정복자가 아니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해결하려는 대부분의 시도는 실패한다. 보수우파에게는 5·18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게 풀어야 하는 일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 가장 먼저 5·18에 주어진 관점은 총론으로서 역사적 의의다. 즉, 5·18을 폭동으로 볼 것이냐 민주화운동으로 볼 것이냐이다.

이것은 5·18이라는 광주시민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농민들의 민란 등,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은 역사 이래 수없이 존재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에 이르러 비로소 일반 국민들이 왕을 죽이고 공화정을 만드는 체제 변혁으로서 국민 저항이 존재하게 되었다. 이를 이른바 ‘저항권’이라고 하는데, 민주공화국의 국민에게는 정당하지 않은 권력에 저항할 권리가 부여되어 있다. 사실 ‘저항권’이 그렇게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과거 혈통으로 권력이 이어지던 조선시대, 왕이 적장자가 아니거나 후궁의 자식이면, 그가 가진 권력의 정당성이 도전 받았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끌던 신군부는 12·12사태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쿠데타 정권이었다. 무력으로 정권을 차지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7년간 우리나라를 통치했다. 민주공화국에서 적법한 선거를 통하지 않은 권력은 정당성의 도전을 받게 된다. 신군부가 우리나라에 기여한 경제 발전 등의 성과와 별도로 전두환 정권의 권력 정당성은 도전받아도 두 말 할 수 없을 만큼 불의했다.

5·18을 폭동이냐 민주화운동이냐를 가르는 선은 바로 5·18이 저항한 당시의 권력이 얼마나 정당한지에 달려 있다. 12·12사태라는 쿠데타에 의해 획득한 신군부의 권력에 대해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었다’고 합리화할 수 있을지언정 ‘정당했다’고 말할 수 있는 보수우파 국민들이 있을까. 신군부의 권력은 정당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5·18은 폭동이 아니라 민주화운동이다.

나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보수우파를 불리하게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자유는 선택이고, 선택은 판단이다. 판단하기 위해서는 판단의 전제 사실이 진리여야 한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보수우파를 더 진정한 보수우파로 만들 수 있다. 총론으로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해야만, 오히려 일부 보수지지자들의 의혹을 정당하게 문제 제기할 수 있고, 과도하고 무비판적인 5·18의 성역화를 막을 수 있다.

총론으로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인정한다고 해서, 세부 사항에 대한 의혹을 덮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아니 그 의혹을 해명하거나 확인된 사항에 대한 평가를 바르게 하는 것이야말로 순수하게 참여한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기리는 일이다. 예를 들어 교도소 습격 사건, 무기고 탈취 사건, 시민군만이 사용한 카빈 소총에 의한 사망자들에 대한 의혹은 풀리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 도대체 왜 순수한 5·18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이 그 미스터리의 주체로 오해받으며 잠들어 있어야 하나.

5·18 민주화를 인정해야 5·18 성역화 막을 수 있어

다음으로 5·18민주화유공자 명단 공개 문제다.

세간에 퍼져 있는 5·18유공자에 대한 특혜 규모는 오해가 많다. 5·18민주화유공자와 다른 국가유공자들의 혜택은 거의 동일하다. 특히 오해가 많은 취업지원 즉, 공무원시험 가점도 다른 국가유공자들과 동일하다. 다만, 5·18유공자를 포함한 전체 국가유공자의 명단과 그 사유가 공개되어야 한다. 이는 국가유공자로서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는 논리에 더해 변화된 시대상이 반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국가유공자에 대한 혜택이 커졌다. 혜택이 커졌다는 것이 돈을 많이 받거나 공무원시험 가점을 더 많이 받는 것이 아니다. 정년과 연금이 보장되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가치가 커졌다. 과거의 양반이 공무원계층을 일컫는 호칭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현재의 공무원이나 공기업직원은 신 양반계층이다. 하버드 입학보다 공무원시험 합격이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이를 취업지원이라고 하는데, 이 취업지원은 자녀 1대에 한정된다. 과거 독립유공자나 6·25 참전용사,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자녀들은 공무원이 매력 없던 시대를 살았지만, 5·18유공자의 자녀들은 공무원이 신양반계층인 현재를 살고 있다. 게다가 5·18유공자는 단일 사건으로 근래 가장 많은 유공자를 배출했다.

보통 공무원시험의 커트라인 2-3점 간격에 대부분의 지원자가 몰려 있는 것을 감안하면 5~10점의 가점은 사실상 공무원을 보장하는 것이었고, 이 혜택을 단일 사건으로 역대 유공자 중에서 5·18유공자가 가장 많이 누리게 된 것이다. 국가유공자지원의 취지는 명문으로 ‘생활의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인데, 이제 생활의 유지를 넘어 상류층으로의 편입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5·18유공자 공개가 부당하다는 주장은 법원의 정보공개거부 판결이 있다는 것을 내세우는데, 이는 판결의 취지를 오독한 것이다.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에 따라 모든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는 모두 공개 대상이다. 다만, 개인 정보에 해당하는 것은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반드시 비공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 여부를 보훈처의 재량에 맡겨둔 것이다. 즉, 예외적인 비공개 사유라고 하더라도 원칙을 적용하여 공개할 수 있다. 판결은 보훈처의 예외 적용에 따른 재량권 행사가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만약 보훈처가 원칙에 따라 공개하는 경우, 원칙에 따른 행정행위가 위법이 될 리는 만무하다. 애초에 기존 판결은 공개행위를 위법성 판단의 대상으로 삼은 적이 없다.

원칙적으로 취업지원을 받는 국가유공자는 공의 크기보다 일정 장해 등급 이상의 상해 조건을 요구한다. 아무리 국가에 대한 공이 크더라도 사지 멀쩡한 유공자는 아무런 취업지원이 없고, 명예직이나 다름없다. 국민이 애국하는 것에 보상을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 탈락한 사람에게 국가유공자 명단과 사유도 밝히지 않고, 국가가 ‘으레 잘 알아서 유공자 인정했겠냐’라고 말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단순히 5·18유공자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이제 모든 국가유공자에게 자녀의 공무원 신분을 보장하고 명단과 사유를 비공개처리하는 방식은 그 명분을 잃고 있다.

마지막으로 보수우파와 호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필자가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관악구는 호남이 원적지인 분들이 굉장히 많다. 필자는 정당에 입당하기 전 지역 호남분들과도 많은 친분을 쌓았었다. 대학 시절부터 친한 호남 출신 친구, 선후배들도 많다. 의아한 것은 이 분들의 이념 정체성이 굉장히 ‘보수’적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안보와 북한에 대해서도 강경한 편이었다. ‘호남이 정말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든 적이 많았다. 자유한국당 서울시당에 속해 있는 당협위원장 중에서도 호남 출신들이 많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대통령 선거 득표율도 영남보다 호남이 더 높았다.

대의제에 따른 정당정치에서 정당의 이념에 따른 정당 투표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당구조는 이념지형이 지역주의지형으로 다시 한번 왜곡되어 있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정당투표보다 인물투표가 바람직한 투표로 여겨진다. 바로 5·18이 그 정치지형 왜곡의 길목에 있다.

사실을 인정하고 진리를 발견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다. 보수우파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5·18민주화운동이 보수우파가 넘어야 할 큰 산이라면, 그 큰 산을 넘고 지역주의를 벗어난 후 마주할 새로운 보수우파의 지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하고 비옥한 평야일 것이다.

원영섭 변호사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자유한국당 서울 관악구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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