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PC 조작설’ 한마디에 품격 던져버린 중앙일보
‘태블릿PC 조작설’ 한마디에 품격 던져버린 중앙일보
  • 박한명 미디어비평가
  • 승인 2019.02.28 15: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실규명은 과거회귀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것
박한명 미디어비평가·미디어연대정책위원장
박한명 미디어비평가·미디어연대정책위원장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당 대표 후보로 나선 황교안 전 총리가 소위 최순실 태블릿PC 조작가능성이 있다고 발언한 이후 보인 언론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특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정색하는 중앙일보의 태도를 보고 있자니 과거 보광그룹 탈세 사건으로 홍석현 씨가 검찰조사를 받을 때 검찰 청사 앞에 대열해 “홍 사장님 힘내세요”를 외쳤던 중앙일보 기자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중앙일보 기자들이 사주에 대해 과잉 충성심을 발휘했던 예는 여러 차례 있었다. 홍석현이 소위 안기부 X파일 등 여러 사건에 휘말려 검찰청에 등장할 때 국민들의 시선을 자주 잡아끈 것은 보디가드를 자처한 중앙일보 기자들의 과한 행태들이었다. 일반 국민들의 눈에 그들은 언론인이라기보다는 보스를 옹위하는 조폭집단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게 보였다.

모두에게 썩 유쾌하지 않은 과거 기억을 소환한 이유는 태블릿PC 조작가능성 언급에 대한 과잉반응이 중앙일보의 독특한 관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이다.

필자가 말하는 독특한 관성이란 사주가 연관된 일에는 언론의 품격과 냉정함을 잃고 ‘조폭식 의리’부터 과감히 표출하는 중앙일보만의 병적 행태를 말한다. 전당대회에서 태블릿PC 발언 이후 중앙일보는 황교안을 공격하는 기사를 무차별적으로 쏟아 부었다. 네이버에서 검색한 관련 기사만 23개(27일 정오 기준)였는데, 제목만 봐도 다음과 같이 비난 일색이다. ([팩트체크]국과수·법원 다 아니라는데···황교안 “태블릿PC 조작 가능성”,

“대통령 권한대행 했던 황교안의 법치주의 부인은 난센스”, 태블릿PC 조작설 꺼낸 황교안···여야 “태극기부대 대표 뽑나”, 5·18 망언, 태블릿PC 조작설…소수극단에 휘둘리는 한국당, 이원종 “황교안 발언 실망”…윤여준 “이게 보수당 맞나”, “태블릿, 재판서 증거능력 인정 받아…황교안 주장은 현행법 위반일 수도”, [이하경 칼럼] 황교안은 보수의 품격을 내팽개쳤다, 한국당의 퇴행···개혁보수 설 곳이 없다, [사설] 한국당, ‘수구회귀’ 아니라 ‘건전한 보수’만이 살 길이다, [김진국 칼럼] 거꾸로 가는 자유한국당 등)

지면 사유화한 중앙일보의 불안의 근원은

태블릿 PC가 조작됐는지 의심스럽다는 말 한마디에 ‘태극기부대’, ‘수구’, ‘현행법 위반’이라는 말까지 나올 필요가 있을까. 필자는 이런 거친 기사들에 배어있는 중앙일보의 불안을 느낀다. 기사는 물론 주필의 칼럼, 사설까지 총동원해 황교안과 제1야당을 비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앙일보 주장대로 검찰, 국과수 법원 모두가 태블릿PC 조작설은 가짜뉴스라고 인정했는데, 이렇게까지 민감한 반응을 보일 필요가 있을까.

혹시 중앙일보조차 검찰, 국과수, 법원 판단을 확신하지 못해서는 아닐까. 그래서 그 불안감에 위력을 과시하는 것은 아닐까. 중앙은 태블릿PC에 대한 모든 의혹이 풀린 것처럼 주장하지만 필자가 알기로는 그렇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과 형사재판 변호를 맡았던 채명성 변호사에 의하면 박 대통령 형사재판에서 다룬 47개의 문건 중 태블릿PC에서 나온 문건 3개 정도에 대해서만 조작 여부나 최서원 것이 맞는지 정도만 판단했다고 한다. 태블릿PC 소유주, 입수경위 등 핵심적인 의혹들에 대해서는 사실상 전혀 다루지 않은 것이다.

청와대 대변인 김의겸은 한겨레 기자 시절 오마이뉴스 TV에 출연했을 때 태블릿 PC는 JTBC 측이 주운 게 아니라 국내에서 누군가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태블릿PC 의혹을 푸는데 매진하고 있는 우종창 전 월간조선 편집위원이 “취재 결과 홍석현 회장이 중앙일보 간부들에게 ‘내가 손석희 사장에게 태블릿을 건넸다’고 한 증언을 확인했다”고 한 뉴데일리 보도도 있었다.

중앙일보나 JTBC가 이런 발언들에 일일이 법적 대응을 했는지 필자로선 알 수 없지만, 이런 정황들을 모아보면 한국당 전대에서 후보들 사이 토론에서 나온 태블릿 PC 발언에 왜 중앙일보가 발작에 가까워 보이는 오버를 하는지 알듯하다. 태블릿 PC 논란에서 핵심은 JTBC가 태블릿을 검찰에 넘긴 후 검찰이 보관한 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포렌식(2016년 10월 25일) 결과와 2017년 최서원 재판에서 있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포렌식 결과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 대다수가 몰랐던 이 사실은 2월 초 국회에서 열렸던 ‘JTBC 태블릿PC 특검의 필요성과 과제 국회 토론회’에서 나왔는데, 경악할만한 내용들이었다. 이 토론회에서 나온 핵심 사실은 검찰이 포렌식을 한 후에도 태블릿을 보관하는 기간 동안 껐다 켜는 수준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루트 폴더에 누군가가 접속한 흔적이 있었다는 것, 검찰 포렌식 결과 보고서에서는 카카오톡 채팅방 목록이 445개였는데, 국과수 포렌식 보고서에는 채팅방 목록이 30개로 나와 무려 415개의 채팅방 목록이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삭제되었다는 사실이다.

채팅방 목록은 태블릿PC를 누가 사용했는지, 실소유자가 누구인지 판단하는데 중요한 증거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런 채팅방 목록 대부분이 검찰 보관 기간 동안 삭제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누군가가 루트폴더에 접근해 위치정보라든가 이메일 기록, 연락처 데이터베이스와 같은 것들이 수정한 흔적이 있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진실규명에 동참해 명예회복 하라

중앙일보나 JTBC는 태블릿PC에 대한 의혹을 풀자는 것을 마치 탄핵을 무효로 하자는 것으로 들리는 모양이다. 일부 극소수 그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태블릿PC 진실을 밝힌다고 지난 탄핵을 무효로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태블릿PC 의혹은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이고, 여러 조사 결과 검찰과 JTBC 사이의 유착의혹이 있다거나 검찰 조사에서 석연치 않은 점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는 과정이다.

상식적인 민주국가에서는 이런 의혹을 밝히는 것이 맞는 것이지 그냥 덮지 않는다. 바로 그 일을 중앙일보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진실을 밝히자는 것이 어떻게 과거회귀가 되고 수구가 된다는 것인가. 중앙일보는 기자 폭행과 배임 의혹을 받는 JTBC 손석희 사장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보도를 하지 않았다.

태블릿 PC 한마디에 자유한국당과 당 대표 후보자들에 퍼붓는 반의 반 정도의 의지가 있었다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중앙일보를 과연 정의와 공의를 위해 일하는 언론이라고 볼 수 있나. 중앙일보야말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사주를 위해, 우리 편을 위해 지면을 동원하고 보디가드를 자임하는 저급한 과거 행태와는 이제 그만 결별해야 한다. 태블릿PC 조작의혹은 대통령 탄핵과는 별개로 민주사회라면 당연히 밝혀야 할 진실규명의 영역에 있다.

중앙일보가 그걸 부정한다면 언론의 자격까지 의심받을 수 있다. 태블릿PC 특검은 황교안이 아닌 그 누구라도 제1야당 자유한국당이 당을 재정비한 후 추진해야 할 사안이다.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중앙일보가 말 한 마디에 부들부들 할 필요가 없다. 중앙이 진실규명에 동참해 언론의 품격을 찾기 바란다.

박한명 미디어비평가·미디어연대정책위원장(전 미디어펜 논설주간)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