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을 생각한다....新냉전 질서와 흔들리는 한미동맹
자주국방을 생각한다....新냉전 질서와 흔들리는 한미동맹
  • 허화평 전 국회의원
  • 승인 2019.03.0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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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 신냉전 질서와 한미상호방위조약
下. 자주국방의 조건, ‘골든 가디언’

자주국방, 자주외교, 그리고 주권국가 간의 관계는 삼위일체(三位一體) 관계다. 자주국방이 없으면 자주외교란 무의미하고 자주국방, 자주외교가 불가능한 국가는 독립주권국가일 수 없다. 이것은 우리에게 역사적 관점과 현실적 관점에서 지극히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다.

이 문제를 두고 남한과 북한, 남한 내 친북좌파세력과 우파세력 간에 심각한 견해 차이를 드러내면서 충돌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북한 공산주의 노동당 정권과 남한의 친북세력에 의한 민족해방, 민족자주통일, 즉 한반도 적화통일전략의 논리적 근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 다수 남한 국민이 자유 대한민국이야말로 한반도의 유일합법국가임을 확신하는 이유는 1948년 유엔 감시 하에 자유 총선거가 치러지고 유엔이 승인하여 탄생한 국가인데 반해, 북한은 민족 염원을 외면하면서 유엔의 결정과 제의를 거부하면서 소련만의 엄호 하에 공산주의 체제를 출범시켰기 때문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유효한 상태에서 미군이 계속 주둔하는한 전시작전권의 일원화는 필수조건이다.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 점령군이 내세운 꼭두각시였으나 남한의 이승만 대통령은 미군정 장관 하지 장군(John Reed Hodge)의 견제를 받고 그와 충돌하면서도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였다.

1945년 일본 패망과 더불어 점령군으로 남한에 진주했던 미군이 1948년 건국과 더불어 군정을 끝내고 철수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자주독립국가가 되었고, 5000년 민족사에서 최초로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공화국 체제가 한반도에 탄생했다. 경찰이 조직되고 국군이 창설되어 치안과 국방을 스스로 책임지는 국가가 되었으나 불행하게도 북한 공산군의 남침이 모든 상황을 바꿔놓았다.

6·25전쟁 성격을 재조명해야 하는 까닭

1950년 6월 25일 공산주의진영의 맹주 소련 스탈린(Stalin)과 중국 공산당 지도자 모택동(毛澤東)의 배후 지원을 받는 북한 공산군이 기습 남침을 감행함으로써 철수했던 미군이 유엔 결의에 의해 다시 돌아와 함께 싸워야 했다.

비행기의 엄호 하에 탱크를 앞세워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남하하는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할 능력이 없었던 이승만 정부는 1950년 7월 14일 한국군의 작전권을 미군에 이양하는 전략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군사작전상 가장 중요한 원칙인 ‘지휘의 일원화(一元化)’를 이뤄 미군을 주축으로 하는 참전 유엔군과 한국군과의 연합작전을 일사불란하게 수행가능토록 해서 적의 공세를 저지하고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당시 작전권 이양은 미군의 강요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독립주권국가의 대통령이 국가 위기에 직면해 국가 수호를 위한 주권적 결정으로 이뤄졌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53년 7월 휴전과 동시에 1953년 10월 한미상호방위조약 협정을 강력히 요청하고 성사시킨 것 역시 작전권 이양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빈곤한 신생 독립국가, 위험한 적대세력의 위협 앞에 놓인 상황에서 맺어진 한미상호방위조약, 즉 한미간 군사동맹은 자유대한민국의 존망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안전장치로 기능해왔으며, 지금은 북으로부터의 위협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 핵이라는 새로운 위협이 현실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중요성은 증대하고 있다.

우리는 다시 한번 6·25전쟁 성격을 재조명해봐야 한다. 6·25전쟁은 표면상 남한에 대한 북한의 기습 공격으로 벌어진 국지전이었으나 그 본질은 동서 냉전, 즉 소련을 맹주로 하는 공산주의집단 대 미국을 맹주로 하는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집단 간에 벌어진 국제전이었다.

따라서 6·25전쟁은 남북간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 문제였다. 휴전이 이뤄지고 냉전 종식으로 국제 환경은 변했으나 한반도에서는 여전히 당시의 연장선상에 있다. 북한 배후에는 러시아와 중국이 있고 남한 배후에는 미국과 일본이 있다. 핵과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한 북한의 위협은 남한 뿐만 아니라 극동, 아시아, 세계에까지 미치고 있기 때문에 우리만의 생각과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근원적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있는 북한과 남한 내 친북 좌파세력들은 주한미군을 점령군으로, 대한민국을 친일친미 국가로, 서구자본주의국가들에게 예속되어 있는 매판자본주의국가로 규정하면서 민족해방, 민족자주통일 투쟁을 역사적 사명인 것처럼 정당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은 독립주권국가이다. 주한미군은 점령군이 아니라 우리의 요청에 의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입각해 주둔하고 있는, 북한의 위협을 막고 한반도 자유 수호를 위한 군사동맹군이며,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 동맹군이자 평화와 번영을 함께 추구하는 평화 동맹군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권을 행사한다고 해서 자주국방을 포기한 국가는 더욱 아니다. 한 지역에서 벌어지는 연합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휘의 일원화’다. 이것은 전략이론에서 강조되고 있는 으뜸가는 고전적 원칙이다.

한국 정부가 2005년 이후 제기한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는 다분히 국내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지만 군사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만큼 비현실적이고 위험한 발상은 없다.

현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이 문제 해결을 서두르고 있다. 전시작전권만 환수 받게 되면 자주국방은 완벽해지고 대한민국은 비로소 독립주권국가가 되는 것일까? ‘자주국방’ 개념은 주권국가 출현과 더불어 생겨난 것으로 시대 진전에 따라 변해온 개념이다. ‘주권국가’란 30년 종교전쟁 결과 1648년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Peace of Westfalen)에 근거해 영토적 주권과 통치권을 바탕으로 하는 독립국가가 생겨나면서 형성된 개념이며, 이때부터 국가 단위의 자위 태세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제국주의시대로 특징짓는 18~20세기 초반에서 1차 세계대전까지는 부국강병(富國强兵) 정책에 입각한 일국주의(一國주의) 자주국방이 대세를 이뤘으나 2차 세계대전, 냉전, 글로벌화가 종전의 개념을 일변시킴으로써 일국주의 자주국방시대는 끝났고 집단주의안보시대가 보편화되었다.

이제 어떤 국가도 혼자만의 힘으로 자신의 안전과 세계 평화를 지킬 수 없게 되었고, 극단주의자들의 테러(terror) 공격과 사이버 공격(cyber attack)과 같은 새로운 현상들이 지구 차원의 집단안보체제 필요성을 가중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 같은 비자유주의국가들의 위협이 새로운 형태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NATO와 미·일안보조약,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것들은 더 안전한 세계,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고 전 인류로 하여금 자유와 번영을 함께 누리고자 하는 경험적 지혜의 산물이자 안전장치들이다.
 

허화평 전 국회의원
허화평 전 국회의원

전시작전권의 딜레마

자유 대한민국의 자주국방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한 한미동맹이라는 집단안보체제 틀 안에서 유지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NATO의 근거가 되는 북대서양조약(The North Atlantic Treaty) 모델에 가깝다. 1949년 4월 4일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 베네룩스,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포르투갈 간에 조인되고 1949년 8월 24일 발효된 것이 북대서양조약이고, 이 조약에 근거해 생겨난 것이 북대서양조약기구(The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로서 현재 29개국이 가입하고 있다.

창설 목적은 유엔 헌장의 목적과 원칙에 따라 모든 정부, 모든 국민과 평화적으로 공생 공존하는 희망을 내걸면서 개인의 자유,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 법의 지배(the rule of law) 위에 구축된 서구 문명(western civilization)을 지키고 북대서양 지역의 안전과 복지를 증진하는 데 있음을 전제로 한 집단안보체제 유지에 두고 있다. 집단안보체제의 골간은 집단자위권(collective self-defense)이다. 이른바 one-for-all, all-for-one으로 불리는 북대서양조약 5조는 회원국 간에 한 개 나라라도 외부의 공격을 받을 경우 집단자위권을 발동해 가맹국 전체가 피해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2001년 미국이 9·11테러 공격을 당했을 때, NATO는 이를 동맹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 집단자위권을 발동해 미국이 요청한 군사지원을 승인한 바 있었다. NATO 연합군사령부는 벨기에 브뤼셀에 두고 있고 미군 장성이 최고 사령관직을 맡고 있으며 전시에는 미군 최고사령관이 유럽지역의 육·해·공군에 대한 작전권을 행사토록 함으로써 지휘의 일원화를 도모하고 있다.

이 경우 주권국가를 전제로 한 자주국방 문제는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주권국가간 동의와 합의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NATO는 기본적으로 집단안보를 위한 군사동맹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가치 동맹이자 정치적 동맹이기도 하다. NATO는 기본 임무인 집단방어, 위기관리, 협력(partnership)을 통하여 불완전하고 가변성이 많은 국제 환경 속에서 항구적인 자유와 평화를 위한 국제 질서를 구축,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 최고사령관에 의한 전시작전권 행사를 NATO와 유럽 최고사령관인 미군 장성에 의한 작전권 행사와 같은 차원으로 이해하면 어떠한 오해도 생겨날 수가 없다.

“각 당사국은 상대 당사국에 대한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절차에 따라 행동한다. 미국은 자국의 육·해·공군을 대한민국 영토와 그 부근에 배치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대한민국은 이를 허락한다.”

이것이 조약의 핵심 조항이며, ‘협의 의사록’에서 작전지휘권은 종전과 같이 유엔군사령관, 즉 미8군사령관이 행사토록 명시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미군에 의한 전시작전권 행사는 외부로부터 위협과 북한으로부터 위협이 상존하는 한 국가 존망,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며, 한반도 평화와 자유 수호를 위한 최선의 안전장치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전시작전권 환수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주권국가 위상 회복’이라는 명분과 비현실적 단견에 근거한 요구다. 좌파 정부인 노무현 정부는 2005년 ‘한미 안보정책 구상(SPI)’에서 미국 정부에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 논의를 공식적으로 제의해 2012년 4월 17일자로 환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우파 정부인 이명박 정부와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2015년 12월로 연기했고 박근혜 정부 하에서 2020년대 중반에 전환 여부를 검토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그러나 전시작전통제권이 전환된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해군과 공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은 계속 미군이 행사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지상작전권 환수란 무의미하게 된다.

더욱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유효한 상태에서 미군이 계속 주둔하는 한 전시작전권의 일원화는 필수조건이다. 지상에서 작전권 일원화 원칙이 무시되어 이원화(二元化)되고 해·공군의 작전권이 미군에 있게 되면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연합작전 지휘는 불가능하게 된다. 전시작전권이 환수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주한미군이 한국군과의 합의와 협의에 구애받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융통성을 갖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긴급 시 효율적 대응을 어렵게 할 수 있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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