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회담 결렬, 문 대통령에게 남은 길
하노이 회담 결렬, 문 대통령에게 남은 길
  • 박한명 미디어비평가
  • 승인 2019.03.04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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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북한을 오판한 문 대통령, 정직한 중재자가 되길
박한명 미디어비평가·미디어연대정책위원장
박한명 미디어비평가·미디어연대정책위원장

미북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면서 가장 큰 곤경에 빠진 사람은 단연코 문재인 대통령이다. 이 회담으로 인해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범위가 구체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인데, 사전에 이 사실을 알았든 몰랐든 문 대통령이 북한을 가장 열심히 도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북한 외무성 부상 최선희가 ‘우리가 제시한 영변 핵시설이라는 게 만만찮은 것’ ‘아직까지 핵시설 전체를 폐기 대상으로 내놔본 역사가 없다’고 한국 기자들에 한 고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 대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결렬 후 재확인한 것처럼 영변 핵 시설 외에 북한이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는 우라늄 농축시설 강선 발전소와 같이 숨겨진 핵시설 전체를 포함하는 것이다. 또 미사일 핵탄두 무기체계 및 핵 관련 리스트 제출도 비핵화 대상에 포함돼 있다.

이에 반해 북한 김정은은 자기들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영변 핵시설만을 비핵화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미 세상에 다 드러나 있고, 낡아빠지고 쓸모없는 영변 핵시설 폐기란 재탕, 삼탕의 기만전술로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얻으려 했으니, 자타칭 협상의 대가인 트럼프 대통령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 회담은 애초 성공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회담은 결렬됐지만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최선희의 입을 통해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가 무엇인지 명확히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영변 핵시설이 만만찮든 아니든 이건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핵을 다 포기해야 한다”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나 친정부 인사들과 언론은 이번 회담에서 확인한 극심한 간극에도 "파혼이 아니다. 조건을 따지다가 결혼식 날짜를 다시 잡아보자는 것이다. 여전히 사랑하는 사이”라고 우기는데, 어이가 없다.

무책임한 보증인 자처하면 대한민국을 나락으로

미국이 북한과 전쟁하는 대신 선택한 협상은 비핵화를 위한 방법일 뿐 목적이 아니다. 결합 자체가 목적인 결혼에 비유하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비유이자 착각에 불과하고 미북 비핵화 협상의 근본적인 목적에 대해 오해를 일으키게 할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사이가 좋다거나, 좋은 친구라는 식의 표현을 쓰는 것은 김정은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려 달래는 수사에 불과할 뿐,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부터 북한을 향해 경고한 것은 ‘분노와 화염’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문제는 비핵화를 두고 미국과 북한 사이에 이렇게 큰 간격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불가능한 협상을 마치 가능한 것처럼 양측을 설득한 주인공이 문 대통령이라는 사실이다. 한반도 운전자를 자처한 문 대통령은 기회가 될 때마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하늘과 땅 사이만큼이나 벌어져 있는 미북 간 비핵화 개념 간극을 알고도 그런 것일까.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추가로 발견한 미공개 핵시설을 얘기하자 북한이 놀랐다고 했다. 자신들이 숨겨놓은 핵시설을 미국은 전혀 모를 것이라고 북한 스스로 오판한 것일까 아니면 문 대통령이 중재자 역할을 잘못한 것일까. 필자의 심증은 후자이다. 김정은의 기분을 맞춰주고 띄워주어 김정은이 영변 핵시설만 내놓아도 미국이 넙죽 받아들일 것처럼 북한 허파에 바람을 집어넣은 것은 아닌가.

이제 미북 간 비핵화 협상이 이뤄지려면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 주장을 굽히거나 북한 김정은이 영변 외에 숨겨둔 핵시설과 핵 리스트 등을 다 꺼내놓거나 둘 중 하나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귀국 중에 문 대통령에게 전화해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당부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이 의미를 오해하면 안 된다. 북한 김정은의 속임수는 더 이상 안 통한다는 것, 낡은 영변 핵시설 하나 내놓고 전면적인 제재 해제란 과실을 따 먹겠다는 욕심은 자신에게는 안 통한다는 점을 김정은에게 정확히 전달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맞다.

요컨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까지 해온 것에서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북한의 의도와 진위는 따져보지 않고 무조건 북한 편에 서서 묻지마 비핵화 보증인을 자처하고 제재 완화를 외쳐선 곤란하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문 대통령이 미북 회담이 결렬된 후에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미국과 다시 협의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볼 때 도무지 상황 파악이 안 돼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북한 비핵화 협상은 ‘못 먹어도 고’가 아니다. 보증을 잘못 서면 패가망신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하노이 회담에서 김정은은 “1분이라도 귀중하다”고 고백했다. 시간은 미국편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를 위해 미국과 함께 최대 압박에 동참해야 한다. 좌파 일각에서 미국 조야를 설득하고 공공외교를 강화하라는 조언을 듣고 다시 엉뚱한 일을 벌인다면 세계의 조롱거리는 물론 미국으로부터 직접 제재를 받을지 모른다.

회담이 깨진 뒤 펜스 미 부통령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까지 미국은 단호한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재차 확인했다. 쇼를 통해 현실을 가리는 건 한계에 다다랐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선 정직이 최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박한명 미디어비평가·미디어연대정책위원장(전 미디어펜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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