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선에 드루킹의 댓글 여론 조작이 문재인 후보의 캠프에 있던 김경수 경남지사와 거래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재판에서 밝혀져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한마디로 부정선거를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여당인 민주당과 친여권 단체들은 이를 ‘부당한 재판’이라며 김경수 지사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판사를 탄핵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은 재판에서 구속된 김경수 지사를 ‘즉각 석방하라’거나 ‘2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초법적인, 그래서 3권 분립마저 뒤흔드는 주장을 하고 있다.
민주당과 여권이 드루킹과 김경수 지사 간에 얽힌 부당한 거래와 불법행위에 대한 유죄 증거 재판을 부정하고 2심에서 무죄를 선고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현대판 예수 재판을 보는 것 같다. 다만 예수에게 죄가 없는 것을 두고 처형하라고 군중들이 외쳤다면, 지금은 죄의 증거들이 차고 넘치는데도 석방하라고 외치는 상황이 정 반대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판을 흥미 있게 생각한다. 특히 유명 인사나 역사의 꽃과 같은 인물이 재판을 받을 때는 더 그러하다. 아덴의 지도자들 앞에 섰던 소크라테스, 영국 의회 앞에 섰던 찰스1세, 뉘덴베르크에서 나치전범 재판 등이 그런 것들이었다.
그러나 AD 29년 또는 30년 4월 5일 밤 팔레스틴에서 체포되어 유대인 재판 3번, 로마 집권자에 의한 재판 3번, 총 6번의 재판을 받은 나사렛 예수의 재판처럼 인류에 대한 도전과 우리의 감정을 자극한 재판은 역사상 없었다.
예로부터 종교는 유대인, 문자는 헬라인, 법은 로마가 줬다고 전해지고 있다. 예수 재판에서 로마법은 이해하기 쉽고 동시에 난해하다. 유대인 재판은 종교지도자들의 미움을 산 예수는 신성모독죄로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로마 총독인 빌라도는 예수를 미워하기보다 존경하여 ‘무죄’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빌라도는 자신의 음모의 함정에 빠졌다.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를 내가 어찌하랴’ 그는 법리론적 판단보다 백성의 민심을 사려고 백성의 판단을 요구했다.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군중의 외침에 민란이 날까 두려워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했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 소리친 지도자들은 빌라도를 가이사 황제에게 고발할 자세로 ‘네가 그를 풀어주면 당신은 가이사의 친구가 아니라’ 그에게 반역한 자로 주장했다.
그는 종교 지도자들과 군중을 더 무서워했고 가장 무서워했던 가이사에게 충성을 보이려고 예수와 바라바를 내세워 마침내 군중의 외침에 따라 강도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내줬다. 고발, 증거, 방어, 판결이 로마법이다. 그러나 빌라도는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라는 말을 요한복음에서는 3번이나 했다.
빌라도는 예수를 방면하든가 적어도 보호해야 했다. 그는 판결 없이 형벌에 처했다. 여기서 바라바는 우리 자신이다. 하나님의 섭리로 바라바를 살리고 예수는 대신 죽으셨다. 군중의 잘못된 선택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인터넷 포털과 커뮤니티에서 조직적인 여론 조작을 해온 것을 증거로 확보했다면 선거 브로커의 댓글조작 사건은 국정에 큰 파문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현대판 불법 예수 재판이 아닌, 나라 위한 공의가 세워지도록 성도들은 기도를 끊임없이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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