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로봇 창세기...1920~1938 일본에서의 로봇의 수용과 발전
[서평] 로봇 창세기...1920~1938 일본에서의 로봇의 수용과 발전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3.11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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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이면 로봇이라는 용어가 세상에 태어난 지 100년이 된다. 

인류는 이미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로봇과 공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오늘날 로봇은 가까운 곳에서 직접 눈으로 볼 수도 있고,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는 존재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정부 차원에서 ‘로봇윤리헌장’이 논의되고, 지난 2017년에는 로봇도 인간처럼 권리와 의무를 가진 인격체로 보아야 한다는 내용의 ‘로봇기본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인간이 아니면서도 인간을 너무나 닮은 로봇.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의 행위 관계에서 야기되는 다양한 충돌을 문제 삼는 윤리의 문제로까지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로봇은 과연 무엇 때문에 태어났고, 가깝거나 먼 미래에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게 될까? 

“이것을 로봇이라 부르노라!” 

로봇은 카렐 차페크의 희곡소설 《R · U · R》(1920년)에 처음 등장했다. 지금 읽어보면 좀 유치하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지만, 이 작품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 대단히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인간을 힘든 노동에서 해방시켜주는 고마운 존재로 창조된 로봇 때문에, 생산성이 저하된 인간의 존재 자체가 의문시되어 마침내 절멸의 위기에 직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로봇이 탄생한 지 100년이 된 오늘날 《R · U · R》에서 제기한 문제는 당시보다 훨씬 더 실감나게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극도의 생산성을 자랑하는 로봇은 인간들의 일자리를 엄청난 속도로 빼앗아가고 있고, 빛의 속도로 발달해가는 인공지능(AI)은 인간을 넘어선 존재가 돼버릴 것이라는 공포감을 안겨주고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로봇 자체에 관해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 이노우에는 로봇의 미래를 알기 위해서는 로봇의 과거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봇의 탄생기를 주의 깊게 살펴봄으로써 로봇과의 공존방법을 새로이 모색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책 속에서 저자는 100년 전 로봇이 처음 일본에 소개될 무렵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로봇의 문화를 읽어내고 있다. 일본이 애니메이션, 소설, 만화, 영화 등등 수많은 문화적 양상들을 분석했다. 특히 이 분석을 실제로 제작된 로봇들과 일일이 견주어가며, 그 문화적 계기를 연결 지은 것은 대단히 이채롭다. 

아울러,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내용들은 서양 로봇들과의 관련 속에서 언급된다. 그럼으로써 이 책은 ‘일본 로봇의 창세기’를 벗어나 ‘세계의 로봇 창세기’로까지 말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은 로봇 연구자들 사이에서 가장 빈도 높게 인용되는 아시아의 연구서로 손꼽힌다. 

이 책에서 다루는 로봇 태동 초기 시대는 대략 세 가지 흐름으로 정리된다. 

먼저, 《R · U · R》에 등장하는 로봇은 피와 살을 지닌 인공적 유기체였다. 최초의 상상체가 후대의 모든 로봇보다 완성도가 높은 ‘거의 완벽한 휴머노이드’였다. 그런 까닭에 로봇을 로봇이라 하지 않고, 오히려 ‘인조인간’이나 ‘기계인간’ 등으로 번역하며, 현대의 낯선 문화적 감수성을 투영했다. 가령 《R · U · R》의 연극 작품은 <인조인간>이란 이름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이것이 대략 1920년대 중반까지의 흐름이었다. 

한편 유럽과 미국에서는 <에릭>이나 <텔레복스>처럼 전설적인 기계로봇들이 만들어지고, 대중 미디어는 실물은 아니지만 그 소식을 일본에 전하게 된다. 그러면서 인조인간이란 말은 본격적으로 ‘로봇’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일본에서도 <가쿠텐소쿠>나 <레마르크> 같은 기계로봇이 등장한다. 그러면서 로봇이란 ‘모터로 작동하고, 금속 부속품으로 구성된 기계’라는 사회적 합의가 뿌리내린다. 즉 로봇은 시키는 대로 명령을 따라 하는 ‘영혼 없는 존재’라는 의미가 따라 붙고, 일본 내 정치적 사건을 풍자하며 생겨난 ‘로봇 정치가’ 같은 제2의적 의미를 획득한다. 그런 과정에서 일본에선 초기의 로봇 붐이 일어난다. 1930년 전후의 시기이다. 

로봇은 등장 초기부터 전쟁에서 기막히게 쓰일 것 같아 전쟁광들을 매혹시켰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로 말미암아 로봇과학은 심각한 침체기를 겪게 된다. 전쟁에 쓰이기엔 무기가 정교하지 못했으므로, 전쟁을 향해 치달아가던 1936년 이후로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만다. 
로봇의 도약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이뤄지게 된다. 

일본의 로봇발명 수준은 독보적이다. 

아울러 로봇문화 또한 그 어떤 나라와도 다른 독특성을 발한다. 일본의 안드로이드나 휴머노이드는 고도로 발달되어 있다. 다른 여러 분야도 그렇지만, 특히 로봇에 관한 한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나라가 아닌가. 우리는 일본의 이런 로봇문화를 통해 로봇과학기술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이 점에 관해 이 책의 번역자(최경국 · 이재준)는 이렇게 말한다. 

“수많은 과학기술들은 전문적인 학술 언어로부터 출발해서 신문, 소설, 만화, 영화 등의 또 다른 언어들로 옮겨지고, 나아가 우리가 사용하는 자동차, 컴퓨터, 휴대폰, TV, 접착제, 자전거, 예술작품 등의 다양한 매개(medium)를 거쳐 변형된다. 

이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매개들과 변형들을 연결하면 과학기술은 일상세계의 언어로 바뀌고 공공의 목소리로 번역되어 하나의 독특한 문화로 구성된다. 그리고 마침내 이 문화는 전문적인 로봇과학기술로 다시 귀환하여 새로운 과학기술 지식을 낳는다. 전문 연구자와 개발자의 손에 있던 지식들이 사회적인 것이 되고 정치적인 것이 되며 또 경제적인 것이 되고 미적인 것이 된다.” 

이 책에는 1920년~1938년 사이에 일본에 등장한 수많은 로봇 관련 사례들이 마치 연대기처럼 펼쳐진다. 
아울러 낡았지만, 저마다 로봇 관련하여 역사적 의미가 깊은 관련 자료들을 하나하나 수록해 놓았다. 그 도판들만 일별해도 초기 로봇 도입과정이 이해될 만하다. 이름난 출판사와 잡지사의 편집자 생활을 한 저자는 어렸을 적에 <철완 로봇> 같은 로봇을 보고 자라며 서서히 빠져들었다 한다. 그래서 이 책 속에선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내가 유난히 로봇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중략) 아톰 같은 친구를 갖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다만 1920년대와 30년대 로봇에 관한 연구논문이나 설계도면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는 사라진 수십 년 전의 로봇들을 때론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때론 그 시절의 신문과, 잡지, 만화책을 찾아 헤매어야 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끈질기게 신문사나 도서관을 일일이 찾아가 관련 사료를 뒤져서 만들어낸, 오랜 세월에 걸친 고뇌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로봇은 ‘과학기술’이자 새로운 인간과 연루된 ‘문화’이다. 그렇다면 차갑고 투명한 인공지능으로 향하는 로봇 과학기술만이 아니라 다채로운 이야기와 느낌들로 풍성한 로봇의 문화를 발굴하고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본격적으로 다루진 않았지만, 이 책에는 우리 한국과 관련된 이야기도 스치듯 다루고 있다. 1923년 4월 1일에 발행한 잡지 <동명(東明)>에는 <서양명가 단편소설> 특집을 실었는데, 여기에 이광수는 <인조인(人造人)>이라는 제목으로 《R · U · R》을 요약한 작품을 게재했다. 그 뒤 1925년에는 박영희가 《R · U · R》을 <인조 노동자>라는 제목으로 <개벽>이란 잡지에 한글로 번역해 실었으며, 이 글을 <동아일보>에도 전재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점들을 놓쳤다고 아쉬워하며, 한국의 로봇 수용은 대단히 빨랐음을 인정하고 있다. 아울러 한국에서도 ‘한국에서의 로봇의 수용과 발전’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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