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전에서 찾은 보수주의 가치관
미국 동전에서 찾은 보수주의 가치관
  • 조평세 트루스포럼 연구위원
  • 승인 2019.03.12 14: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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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멸’의 위기를 스스로 초래한 한국의 보수세력이 이제라도 정치철학적 가치관으로서의 보수주의와 이를 최초이자 유일하게 국가체제로 체현한 미국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보수주의는 그 용어가 풍기는 수구적 뉘앙스를 이유로 버릴 수 있는 가치관이 아니다. 보수주의는 인류를 이해하는 매우 유용한 가치 틀이자 창조질서에 입각한 진리에 가장 근접한 관점이기 때문이다.

페니(1센트), 니켈(5센트), 다임(10센트), 쿼터(25센트), 하프달러(50센트), 달러 등 총 6개 단위로 구성된 모든 美 주화(鑄貨)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3가지 주요 가치관이 담겨 있다. 앞면에는 미국 대통령 등 주요 인물 초상화 및 발행연도와 함께 ‘Liberty(자유)’ 그리고 ‘In God We Trust(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리고 뒷면에는 독수리나 횃불 등의 상징적 디자인과 함께 ‘E Pluribus Unum’이라는 라틴어 문구가 빼곡히 적혀 있다.

한국에서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이 문구는 ‘Out of Many, One’(‘여럿에서 하나로’)을 뜻하는 라틴어로, 미국 국장이나 국회의사당 돔 꼭대기에 적혀 있기도 한 미국의 대표적인 문구이다. 보수주의 온라인 교육채널로 유명한 프래거유(PragerU)의 데니스 프래거(Dennis Prager) 대표는 이 3가지 가치관을 American Trinity(미국 삼위일체)라고 부른다. 이 3대 가치관의 조합은 미국의 독립혁명과 건국정신, 그리고 국가 정체성을 가장 잘 담고 있으며 이 3가지 가치관 중 하나도 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 독특한 가치체계(value-system)로 건국된 미국은 바로 보수주의(Conservatism) 정치철학과 전통이 하나의 국가체계로 구현된 첫 사례였으며 그러한 국가는 여전히 미국이 유일하다고 설명한다.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의 진정한 의미도 사실 이 독특한 미국의 가치체계에서 찾을 수 있다.

보수주의가 결핍된 한국의 보수

소위 ‘촛불혁명’으로 초래된 현재 대한민국 절체절명의 위기는 결코 지난 수 십 년간 한국 사회에 침투한 종북좌파세력의 공작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수세력의 취약한 정치철학적 바탕과 이념 부재로 인한 것이었다. 한국 보수는 여전히 ‘전통과 관습을 보전하여 지킨다’는 사전적 의미에서의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촛불정부’가 불과 20개월 만에 이뤄낸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안보파괴와 경제파괴, 그리고 이제 적나라하게 드러난 거짓말과 위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어서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분열되고 있는 보수진영의 모습이 이 가치관 부재의 결과를 처절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궤멸’의 위기를 스스로 초래한 한국의 보수세력이 이제라도 정치철학적 가치관으로서의 보수주의와 이를 최초이자 유일하게 국가체제로 체현한 미국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보수주의는 그 용어가 풍기는 수구적 뉘앙스를 이유로 버릴 수 있는 가치관이 아니다. 보수주의는 인류를 이해하는 매우 유용한 가치 틀이자 창조질서에 입각한 진리에 가장 근접한 관점이기 때문이다.

매우 늦은 감이 있지만 최근 보수주의의 철학적 계보와 미국의 보수주의적 국가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보수주의 명저 – 러셀 커크의 <보수의 정신>이나 배리 골드워터의 <보수주의자의 양심> 등이 한국에 번역되어 출간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데니스 프래거가 미국 동전에서 찾은 American Trinity도 보수주의의 가치관을 비교적 쉽게 설명할 수 있는 프레임이다.

‘미국 삼위일체’ 중 첫째 가치관은 우리에게 이미 가장 친숙한 Liberty(자유)다. 사실 ‘자유’를 국가의 체제 정체성으로 채택한 나라는 매우 많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로 100년전 일제로부터의 자유(독립)를 갈망했던 3.1운동에서 잉태되어 1948년 자유민주공화국으로 건국되었다.

또한 곧바로 그 자유를 파괴하려는 공산주의의 침략을 미국의 도움으로 막아냈고 지난 70년 동안 자유와 번영을 누렸을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자유와는 완전히 대립되는 북녘의 전체주의 체제를 현재까지 목격하고 있다. 이 자유는 개인의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를 의미한다.

따라서 최소한의 국가간섭, 즉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이 고전적 의미의 ‘자유주의’는 현재 문재인 촛불정부에 의해 사회주의 실험 대상이 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시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가치관이다. 보수우파진영에서 그나마 경제학적 대응논리와 사례가 뚜렷하기 때문에 비교적 가장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둘째로, E Pluribus Unum, 즉 ‘여럿에서 하나로’ 라는 가치는 오해의 소지가 많은 가치관이다. 특히 ‘다문화주의’로 잘못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E Pluribus Unum은 유럽식의 다문화주의와는 차원이 다르다. 사실 이 용어는 영국으로부터 미국의 독립 당시 13개 식민지(Original Thirteen Colonies) 대표들이 하나의 독립국가로 연합할 것을 선언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여러 종족이나 민족의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며 산다는 피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미국인’이라는 하나의 시민국가정체성(civic national identity)으로 융합된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로 불릴 정도로 가장 많은 다양한 민족국가 출신들이 모였지만 놀라울 정도로 뚜렷한 하나의 시민국가의식을 이루고 있다. 모든 시민의 소속감이 다른 종족적 뿌리보다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에 가장 강하고 뚜렷하게 정박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말로 ‘민족주의’로 번역되는 ‘nationalism’도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종족적 의미의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보다는 시민적 의미의 민족주의(civic nationalism)를 의미한다. 최근 후쿠야마(Fukuyama) 같은 학자는 이러한 시민민족주의를 같은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뜻의 ‘creedal’(신념적) 민족주의로 구분하기도 한다.

스스로 ‘단일민족’임을 자부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에는 ‘민족주의’가 거의 종족적 의미로 국한되어 있는 것이 매우 큰 문제이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민족을 뛰어넘어 서로 공유할 만한 상위의 가치관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는 것도 큰 함정이다. 특히 가치체계가 전혀 다를 뿐 아니라 반(反)하는 북한과 ‘한민족’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자유민주적 가치체계보다 민족을 우선하는 통일담론은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의 통일담론은 7.4남북공동선언에서 김일성이 전략적으로 제안한 ‘자주’와 ‘민족적 대단결’이라는 원칙을 섣불리 받아들인 것에서부터 잘못되었다. 이렇게 첫 단추부터 잘못 꿰인 통일담론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어느 동맹보다 민족이 우선”이라는 취임사로 발전되었고 결국 돌이키기 어려운 6.15와 10.4선언, 그리고 대한민국의 항복선언이나 다름없는 작년의 판문점선언을 낳고 말았다.

In God We Trust, 초월성의 상위가치가 보수주의 핵심

미국 동전에 새겨진 세 번째 보수주의 가치관은 In God We Trust, 즉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신념이다. 인간 상위의 어떤 도덕적 원천을 믿는 이 신념은 사실 보수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관이다. 러셀 커크가 <보수의 정신>에서 이야기했던 human imperfectability도 인간 상위의 도덕적 원천을 믿는 신념에서 비롯된다.(이 용어는 ‘인간 불완전성’으로 잘못 번역되는 경우가 많으나 단순히 ‘불완전하다’는 imperfect가 아니라 ‘완전해질 수 없다’는 imperfect-ibility이다. 단순히 인간이 불완전하다고 번역하는 것은 완전해질 수 있음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본래의 보수주의는 그 ‘어떤 인간 상위의 존재’라는 불분명하고 비인격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를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 동전뿐 아니라 모든 지폐에도 새겨져 있는 이 ‘신에 대한 믿음’은 분명 유대-기독교(Judeo-Christian) 전통의 인격적 야훼 하나님을 의미한다.

러셀 커크도 인류사적 관점에서 보수주의의 뿌리를 연구한 <The Roots of American Order>(미국질서의 뿌리)에서, 보수주의의 질서가 펜실베니아에서 미국의 독립과 건국으로 체제적 열매를 맺기까지 영국의 자연법 전통을 넘어, 로마제국의 정치행정적 실험과 헬라 문명의 정치철학적 고찰, 그리고 히브리 문명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피조물로서의 자의식이 전제되어 있었다고 설명한다. 즉 보수주의 질서는 예루살렘, 아테네, 로마, 그리고 런던이라는 4대 도시(문명)를 거쳐 펜실베니아에서 체현되었다는 것이다.

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념은 첫째 가치인 ‘자유’ 혹은 그 권리의 원천이 인간 스스로가 아닌 창조질서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미국 독립선언문에 적힌 ‘창조주로부터 부여된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라는 권리’도 이 신념과 맥을 같이한다. 그리고 자연법상의 ‘천부인권’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이다. 두번째 가치인 E Pluribus Unum도 모든 개개인을 다른 인격 주체이지만 동등하게 ‘그 형상대로’ 창조하신 창조주의 섭리를 배제한다면 온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 결국 보수주의는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피조물 인간의 타락함, 그리고 인류사에 인격적으로 개입하시고 주관하시는 그 섭리를 인정(acknowledge)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보수주의적 가치체계를 바탕으로 세워진 미국도, 거의 모든 미국인들의 호주머니와 집안 구석구석에 이 3대 가치관이 새겨진 동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본래의 가치관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동전과 지폐에 새겨진 In God We Trust 문구는 이미 수차례 무신론자들에 의해 삭제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다른 모든 정체성보다 우위에서 질서를 잡았던 E Pluribus Unum이라는 정치시민의식은 이제 인종적 정체성(racial identity) 뿐만 아니라 수 십 가지 성정체성(gender identity) 혼란에 잠식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자유라는 기본적 체제 가치조차도 이미 정치권에 깊이 스며들어온 각종 변종 사회주의 이념에 매일 위협당하고 있다. 오죽하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국정 연설에서 미국은 결코 사회주의국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물며 한 세기 전까지 유대-기독교 신념과 서구문명의 흐름 밖에 있었던 한국인들이 이 보수주의적 가치관을 담아낼 수 있을까?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경이로운 사실은 우리의 건국대통령 이승만은 심지어 미국을 처음 방문하기도 전 한성감옥에서 1904년에 쓴 <독립정신>에서, 인간 개인의 ‘본래 자유’와 책임의식을 이야기하며 개개인이 인간 상위의 도덕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의 행동 양식을 통제할 양심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 본질, 즉 인간조건에 대한 보수주의적 이해를 확실히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창조주를 인정하는 태도가 바탕이 되어야 “두려운 마음으로 죄를 짓지 못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착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진리를 오로지 서양 선교사들이 전해준 성경과 시사잡지들을 읽고 통달한 것이다. 우리 개개인 모두는 미국인이든 유대인이든 한국인이든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동등하게 창조되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보수주의적 가치관은 성경의 말씀과 각자에게 부여된 양심만으로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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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철 2019-03-13 12:46:02
눈을 틔워주고 감명을 주는 글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이 기초하고 있는 그 세 기둥도 사실 내용에서는 American Trinity와 방불하지요. (기독교 신앙, 자유와 천부인권, 공화제) 하나님의 종 이승만 건국대통령이 기도하고 꿈꾸었던 그 이상과 체계와 모습이 대한민국에 진정코 실현되길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