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당신의 머리 밖 세상...몰입을 방해하는 시대에 대한 보고서
[리뷰] 당신의 머리 밖 세상...몰입을 방해하는 시대에 대한 보고서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3.14 0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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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가 겪고 있는 집중력 위기 현상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인문학적 탐사의 기록이다. 자본주의의 저돌적인 상업성과 첨단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결합하면서, 현대인의 정신은 각종 정보와 광고로 과부하가 걸려 있다. 디지털 시대는 우리의 정신을 분산시키는 데 아주 능숙하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도, 산책을 할 때도 좀처럼 손에서 스마트폰을 떼어놓지 못한다. 거꾸로 휴식을 위한 ASMR을 찾는 것이 유행이 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가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라는 질문조차 제대로 던지고 있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우리의 주의력을 앗아가는 온갖 메시지와 이미지로 둘러싸여 내가 무엇에 온전히 집중할 것인지 선택하는 일조차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는 곧 ‘무엇에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다. 이 질문을 던지려면 자아의 성찰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주의력 위기는 결국 우리가 개인으로서의 자율과 주체성을 잃어버릴 위기에 빠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율과 독립을 강조하는 서구의 가치 아래 외려 ‘빛을 잃어버린 개인성’은 현대의 인간상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다. 매슈 크로퍼드는 칸트 철학에서 도박 중독자들의 사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를 버무려 분열된 자아들로 가득한 현재의 인류학을 보여준다. 

『당신의 머리 밖 세상』은 매슈 크로퍼드의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가게에서 식료품을 사고 계산대를 바라보던 저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광고에 노출되었음을 깨닫는다. 카드를 긁고 금액을 확인하고 사인을 하는 절차 중간중간에 시간이 걸리는 건 단순히 기술적 문제 때문이 아니라 또다른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일부러 주의를 흩뜨릴 광고를 삽입했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정보경제는 사실상 ‘주의경제attentional economy’다. 커피를 주문하고 받아드는 진동벨 한쪽 면에는 광고가 지나가고, 엘리베이터 벽면 상단의 스크린에도 뉴스나 광고가 뜬다. 저자는 광고로 포화된 대한민국 서울의 풍경을 상세히 묘사한다. 

우리는 상업광고에서 벗어나려고 이어폰을 끼거나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는다. 하지만, 광고의 첨단을 달리는 대한민국 서울의 버스는 광고를 코앞에 들이민다. 버스가 던킨도너츠 매장 앞에 정차하기 직전 버스의 음향 시스템에서 던킨도너츠 광고가 흘러나오고 이와 동시에 통풍구에서 방향제가 커피 향을 뿜는다. 승객이 메시지를 못 들었을까봐 “이번 정류장은 던킨도너츠 앞입니다”라는 안내방송이 울려퍼진다. 이런 종류의 광고는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무차별적이지만, 아침 출근길에 광고를 접하고 정류장 옆에서 매장을 발견하는 순간 사람들은 커피를 원하게 된다!

저자는 ‘주의력 공공재’ 개념을 들어 주의력에 공공재적 속성이 있다고 말한다. 주의집중하는 능력은 물과 공기처럼 손쉽게 얻을 수 있지만, 그만큼 훼손되기도 쉽다. 깨끗한 공기가 있어야 숨을 쉴 수 있듯 우리에게는 고요히 집중할 자유가 필요하지만, 공적 공간에서는 무작위로 침투하는 각종 광고, 메시지, 알림 등 기계화된 수단에 들볶인다. 저자는 공항, 대중교통, 극장 등 공적 공간에서 우리가 어디에 집중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며, “제발 한가로운 대학 야구 경기의 이닝 사이사이마다 눈요깃거리를 집어넣지 말라. 제발 택시 뒷좌석의 모니터를 끌 수 있게 해달라. 술집 구석에 버드라이트 맥주 광고를 안 볼 수 있는 곳을 마련해달라”고 말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점점 더 ‘고도로 조율된’ 허상들에 현혹되며, 점차 직접적 행위자의 자리에서 밀려난다. 광고와 상업적 미끼로 우리의 주의력을 앗아가는 초감미 자극에만 관심을 보이게 된다. 기계화된 수단이 자율성을 쉽게 앗아가는 사회에서 주의력은 대가를 지불해야 확보할 수 있는 사적 자원이 되어버렸다. 

샤를드골 공항 비즈니스석 라운지에서는 이따금 스푼이 찻잔에 부딪히는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벽에는 광고가 없으며 텔레비전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이 공간이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보다 이 고요함 때문이다. (…) 라운지 바깥은 여느 때처럼 소란하다. 우리가 주의력의 상업화를 허용했으므로, 주의력을 회복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공공재가 전유되었을 때,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한 가지 해법은 공적 공간을 떠나 비즈니스석 라운지 같은 사적 클럽에 틀어박히는 것이다. 이코노미석 라운지의 성격을 비즈니스석 라운지에 있는 사람들이 좌우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정치적 관점에서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주의력 회복은 가능한 걸까? 저자는 즉석요리 전문 요리사, 오토바이 경주 선수, 파이프오르간 제작자 등 다양한 숙련기술 분야 종사자들을 찾아 자율성과 집중력 회복 방안을 모색한다. 숙련기술 노동자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사물을 완전히 장악하고 기술을 연마하는 완전한 몰입 행위를 통해 세상과 직접적 관계를 맺는다. 오르간 공방 테일러앤드부디의 직원들은 오르간 제작 작업을 할 때, 자신의 일이 거대한 역사의 작은 가지에 위치한다는 걸 인식하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의지와 독립적 판단에 따라 최선의 결과물을 낳으려 노력한다.

저자가 촉망받는 워싱턴 싱크탱크 연구소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모터사이클 정비사가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오르간 공방 사례는 무언가에 몰입하는 행위가 우리를 머리 밖 세상과 연결하는 닻이자 개인성의 궁극적 발현을 가능하게 해주는 일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선택의 안개에 둘러싸여 고립되는 걸 두려워한다. 불안감을 가라앉히기 위해 끊임없이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한곳에 집중하지 못한다. 주의집중의 회복을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가 성취하게 되는 건 진정한 개인성이다.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으로 무장하고 머리 밖의 ‘진짜’ 세상에 뿌리내리는 일, 그 무엇에도 몰입하기 어려운 세계에서 ‘온전한 나’로 서는 일은 무분별한 세상에 맞서는, 우리 시대에 새로기입되어야 할 천부인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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