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2) 기독교 청년들이 쓴 신한청년당의 독립청원서
새롭게 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2) 기독교 청년들이 쓴 신한청년당의 독립청원서
  • 박명수 미래한국 편집위원·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연구소장
  • 승인 2019.03.22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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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1918년 11월 말 상해에서 만들어진 신한청년당이 주목을 받고 있다. 신한청년당은 다음 몇 가지 점에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에 기여했다. 신한청년당은 첫째, 파리에 김규식을 보내 우리 민족을 대신하여 독립을 청원하게 했고, 둘째, 국내와 만주, 러시아, 그리고 일본 지역에 청년들을 보내 3·1운동을 일으키게 했고, 셋째, 3·1운동 이후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만들 때 행동대원들로서 실질적으로 활동했다. 이런 점에서 신한청년당이 주목을 받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신한청년당의 주역은 여운형, 장덕수, 선우혁, 김철, 한진혁, 조동호 등이며, 이들이 기독교인들이라는 것도 잘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 배후에 상해한인교회가 있고, 이들이 기독교적인 정신으로 독립운동을 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여운형, 선우혁, 장덕수는 이곳에서 전도인으로 활동했고, 한진혁은 교회 회계를 담당했다.

신한청년당은 1919년 3월 파리에 김규식을 보내 우리민족 독립을 청원하게 했다. 파리에서 독립운동을 한 김규식 선생(원안)
신한청년당은 1919년 3월 파리에 김규식을 보내 우리민족 독립을 청원하게 했다. 파리에서 독립운동을 한 김규식 선생(원안)

상해는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처음으로 개항한 도시이며, 이 도시를 통하여 서구문물이 대륙으로 들어왔다. 특별히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1917년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면서 미국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아시아에 알리기 위하여 1918년 여름부터 상해에 홍보사무실을 만들어 각종 문서들을 번역해 중국 사회에 알렸다. 또한 상해는 한국인들이 세계로 나가는 통로였다. 한국인들은 선교사들의 추천을 받아 상해에 왔고, 이곳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 갔다. 이런 연유로 해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상해에 오게 되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상해한인교회가 설립되었던 것이다.

상해 한인교회는 주로 청년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한편으로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독립운동을 했다. 이들은 1918년 여름부터 매주 토요일 모여 국제 정세를 논의했다. 이들은 1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고 끝나고 있으며, 윌슨 대통령은 전후(戰後) 세계 평화를 위해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한다는 것을 알았다.

상해한인교회 청년들은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1918년 11월 11일 독일이 항복하고,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구체화될 시기가 왔다. 같은 11월 말 윌슨의 특사 크레인이 상해를 방문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여운형을 비롯한 상해한인교회 청년들은 이 소식을 듣고, 미국의 윌슨 대통령에게 독립청원서를 작성했다. 이 청원서는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한 장덕수가 쓰고, 중국 금릉대학에서 영어를 공부했던 여운형이 이것을 번역했으며, 이곳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던 피치 선교사가 교정을 봐줬다. 청원서를 제출하면서 비로소 자신들의 모임의 명칭을 신한청년당이라고 붙였다.

이 청원서에서 이 당시 기독교청년들, 다시 말하면 신한청년당원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잘 알 수 있다. 이 청원서는 1차 세계대전이 미국의 참전으로 끝나고, 이제 윌슨이 주도하는 파리강화회의와 그가 구상하고 있는 국제연맹 체제가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이것이 조선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를 쓰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은 신(神)의 뜻으로 세워진 나라”

다음으로 이 기독청년들은 한국이 아시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먼저 이들은 일본이 근본적으로 무(武)를 숭상하고, 전쟁을 좋아하는 나라이므로 아시아의 평화에 해로운 존재라는 것을 밝혔다. 당시 일본이 북쪽으로는 조선에 이어 만주와 중국 대륙을 정복하려 하고, 남쪽으로는 대만을 거점으로 남양군도까지 장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비해서 한국은 근본적으로 문(文)을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므로 한국이 독립하면 이런 일본의 야욕을 막고, 아시아의 평화를 가져 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과 손을 잡고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기독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청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 국가의 기초가 그 시민의 정신에 있다는 것을 아는 일본은 백방으로 조선인의 정신적 발전을 방해했다. 조선에서 기독교는 민족종교로서 인정받고 있으며, 우리는 기독교로부터 민주주의의 의미와 자유의 가치를 배웠다.

박명수 미래한국 편집위원·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연구소장

미국 선교사들이 우리 백성을 온 세상의 구주께로 인도한 이래, 기독교인의 숫자는 견고하고, 빨리 증가하였으며, 지금 5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명의 빛 아래 살고 있다. 이리하여 기독교는 우리의 정신적인 발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조선에서 기독교는 불교와 신도를 믿는 통치자들로 인해 박해를 받고 있다.

여기에서 신한청년당 멤버들이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이들은 국가의 기초는 정신적인 데 있고, 기독교는 이 기초를 다지는 민족종교로 인정되고, 민주주의는 기독교로 들어왔으며, 일본은 이것을 경계하여 기독교를 박해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예수를 온 세상의 구주로 믿고 있고, 기독교가 들어와서 사람들은 생명의 빛 아래 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들이 복음주의적인 신앙과 민족주의적인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들은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이 청원서는 현재 일본의 폭정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은 절대적으로 독립을 원하고 있으며, “국가는 피통치자의 동의 아래 통치해야 한다”는 윌슨의 이상에 근거하여 일본에서 독립되어야 하며, 일본은 아시아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려고 하지만 한국인은 반드시 독립과 더불어 민주국가를 세워 아시아에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도록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해한인교회 청년들의 꿈은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장에 잘 나타나 있다. 임시헌장 전문은 신(神)의 이름으로 시작되고 있으며,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말했고, 제7조는 ‘대한민국은 신(神)의 뜻으로 세워진 나라’라고 말하며, 선포문에는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국제연맹과 더불어 일본의 야욕을 막고, 국제 평화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상해 기독교청년들의 꿈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장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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