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최후에 웃을 자는 따로 있다....연동형비례제를 둘러싼 계산법
[심층분석] 최후에 웃을 자는 따로 있다....연동형비례제를 둘러싼 계산법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9.03.26 13: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톰 행크스와 헷갈린다는 할리우드의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 빌 머레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뱉는 농담으로 유명하다. 그는 정치에 멋진 한 방을 이렇게 날렸다. “우리가 의회를 속이면 중죄가 되지만, 의회가 우리를 속이면 정치가 된다.” 빌 머레이의 이 농담은 여야4당이 합의한 한국형 연동형비례대표제를 평가할 때 딱 들어맞는다.

지역구 당선 의석수에 권역별 정당 비례를 연동하고 여기에 석패율제를 적용해서 300석이라는 국회의원 수를 맞추는 연동형비례제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었고, 현재도 없으며, 미래에도 등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치적 사기(Political Scam)’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사기는 현재 ‘정치’라는 이름으로 진행 중이다. 그러니 이를 무시할 수만도 없다.
 

3월 21일 국회에서 자유한국당은 ‘연동형비례대표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3월 21일 국회에서 자유한국당은 ‘연동형비례대표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소수 정당의 착각과 헛물켜기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다. 정당 득표율로 총 의석수가 정해지고, 지역구에서 몇 명이 당선됐느냐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수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지역구 후보에게 한 표, 정당에게 한 표를 던지는 ‘1인 2투표 방식’의 연동형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확고한 지역적 기반은 없지만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는 정당이 혜택을 본다.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4당이 합의한 개편안의 핵심은 의석수 300석을 고정하되 비례대표 75석을 전국단위 정당득표율 50%에 따라 권역별로 배분하는 ‘권역별 연동형비례대표제’다.

처음에 여야가 합의한 선거제 개편안은 현재보다 의석수가 약 100석 정도 늘어나는 독일식 연동형비례제였다. 그러나 국민의 60%가 국회의원 증원에 반대하는 현실 속에서 민주당은 ‘의석수 300 고정’이라는 꼼수와 함께 자신들에게 유리한 ‘권역별 비례’를 조건으로 제시했고, 여기에 소수 정당들은 거대 양당으로부터 빼앗아 얻을 수 있는 의석 계산만으로 소위 ‘김칫국’을 서둘러 들이켰다. 문제는 현재 300석의 의석을 맞추는 연동비례를 하려면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구 획정 기준에 따라 지역구를 225석으로 줄일 경우 지역구 평균 인구수는 23만명, 하한인구수는 15만 3000명, 상한 인구수는 30만 7000명으로 크게 늘어난다. 이때 하한 기준에 미달해 통폐합 또는 재조정돼야 할 지역구는 경기 7곳, 전북 3곳, 경북 3곳, 전남 2곳 등 전국에 걸쳐 무려 26개에 달한다.

그 결과 농촌 인구가 많은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평화민주당은 낮은 정당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전북에서 3석, 전남에서 2석, 총 5석 가량의 지역 의석이 줄어들고, 바른당 역시 그나마 비빌 언덕이라는 수도권에서 7석이 적어진 상태에서 낮은 정당 지지율을 끌어 올려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 정당들이 환상을 갖는 이유가 있다.지난 3월 18일 기준으로 리얼미터는 여야4당이 합의한 권역별 연동형비례제의 의석수를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때 적용된 각 정당의 지지율은 각각 민주당 36.6%, 한국당 31.7%, 바른미래당 5.9%, 평화당 2.1%, 정의당 6.9%였다. 조사한 결과를 기존 연동형비례제에 대입하면 민주당은 20대 총선 결과보다 소폭 증가한 128석을 차지하게 된다. 한국당은 20대 총선보다 줄어든 117석을, 정의당은 20대 총선에서 거둔 6석보다 2배 이상 늘어난 15석을 얻게 된다. 바른미래당의 경우 21석을 얻어 간신히 원내 교섭단체를 유지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고 평화당은 15석을 얻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한국일보가 지난 지방선거 득표율을 기준으로 한 시뮬레이션한 결과는 크게 달랐다.한국일보가 정치권의 자문을 받아 여야4당의 합의안인 권역별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시뮬레이션 한 결과 내년 총선 결과는 민주당 133석, 한국당 109석, 바른미래당 33석, 정의당 18석으로 예측됐던 것. 민주평화당은 단 한 석도 얻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때 적용한 정당득표율은 가장 최근의 전국단위 선거인 작년 6월 지방선거 당시 광역의원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을 대입했다. 득표율은 민주당(51.42%), 한국당(27.76%), 정의당(8.97%), 바른미래당(7.81%), 평화당(1.52%) 순이었다.

결국 정당 지지율이 총선에 즈음하여 어떻게 형성되는지가 연동형비례제의 승자를 결정하게 되는데, 지역구 의석이 줄고 비례의석이 늘어난 만큼, 민주당과 한국당과 같은 거대 정당의 지지율이 올라가면 소수정당들은 현재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2020년 4월 총선에서 각 당의 지지율이 어떤 상태를 유지하느냐는 것이 관건이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참석자들이 3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향해 여·야 5당 선거제 합의문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참석자들이 3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향해 여·야 5당 선거제 합의문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연동형비례제 최후 승자의 조건

다가올 총선은 민주당과 한국당 간에 건곤일척의 대결일 수 밖에 없다. 민주당으로서는 문재인 정권이 집권 아젠다로 제시한 ‘적폐청산’, ‘촛불혁명’을 레짐 체인지라는 차원에서 총선으로 완수해 개헌선을 돌파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반면 한국당은 탄핵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현 정권에 대한 심판으로 전선을 치려할 것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보수우파와 진보좌파 간에 체제 질서를 놓고 벌이는 이념적 대결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 질 수 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평화당과 바른당은 보수와 진보의 진영으로 집결하는 유권자들에 의해 원심력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된다.

평화당과 바른당의 존재감은 총선이 다가올수록 희박해질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들 소수 정당으로서는 각자의 권역별 근거지인 호남과 수도권에서 줄어든 의석을 두고 민주당-한국당 거대 양당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뿐만 아니라, 당 지지율도 원심 분리되는 상황에서 불투명한 각자의 생존 조건은 현재의 선거제에서보다 더 열악해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결국 정계 개편의 회오리 속에 평화당과 바른당은 양당 흡수라는 압박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독일식 연동형비례제를 권역별 준연동비례제라는 변태적 선거제로 만든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얻고자 하는 목적을 분석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민주당으로서는 문재인 체제를 다음 총선에서 남북평화체제로 진전시켜야 하는 과제가 숙명으로 남아 있다.

남북관계를 남북경제공동체로 만들고 ‘남북연합’, 또는 ‘낮은단계연방제’로 가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레짐체인지를 개헌으로 완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30년 집권을 모색한다는 기획은 이미 여권 내부에서는 암묵적 합의에 속한다. 그러한 민주당으로서는 ‘통일대의원회의’와 같이 국회보다 상위기구로서 남북연합을 추진할 범정치연합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정치연합은 정의당, 평화민주당으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으며 바른당내 중도마저 끌어안을 수 있는 모멘텀일 수 있다.

이러한 구심력을 갖춘 민주당은 자유한국당내 분열을 이용해서 ‘통일세력 對 반통일세력’이라는 새로운 구도로 총선을 치르겠다는 전략도 가능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남북관계를 돌파하려는 이유도 결국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을 ‘통일세력과 반통일세력’의 대결 아젠다로 세팅하고 이 과정에서 개헌선을 돌파하는 정치연합을 구축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해석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런 구도 하에서 이번 권역별 연동형비례제로 민주당의 의석의 줄어든다고 해도 그것은 현재의 민주당 지지율을 대입한 계산일 뿐, 최후의 승자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며 통일 아젠다를 이끄는 민주당이라는 계산도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동시에 연동형비례제와 함께 공수처와 검경수사조정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얹을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연동형비례제로 평화당과 정의당의 정치세가 확대되더라도 사법권을 장악한 문재인 행정부의 對국회 주도권이 강화됨을 의미하기에 잃을 것이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결국 내년 총선에서 최후의 승자는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라는 치밀한 계산이 민주당의 현재 지지율을 감안한 의석수 감소에도 불구하고 연동형비례제를 민주당과 청와대가 밀어붙이는 동기가 되었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그러한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한국당 보수세력 통합 능력이 관건

그렇다면 제1야당인 한국당은 연동형비례제가 국회를 통과할 경우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까.일단 한국당은 여야4당이 합의한 연동형비례제를 거부하는 상황이다. 거부의 사유는 첫째, 제1야당을 제외한 정당간의 선거제 합의는 수용할 수 없다는 것. 둘째, 한국당을 포함해 여야가 모두 합의한 정치개혁 6개조항에는 선거제 개편법안 논의와 동시에 통치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를 한다는 조항이 있음에도 민주당이 이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 셋째, 연동형비례제는 내각제와 같은 의회중심의 통치구조에 맞는 다당제 기반의 선거제이므로 지금같이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연동형비례제는 오히려 소수 정당의 난립으로 의회권력이 약화되고 대통령 권력에 의회가 종속되는 상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에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3월 10일 “현재 대통령제하에서는 오히려 의원정수를 10% 줄여서 270석으로 하자는 게 한국당의 안”이라며 비례대표를 아예 폐지하는 한국당 안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내각제 개헌 없이는 연동형비례대표제에 동의할 수 없다”며 “내각제 개헌과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말 합의문 발표 이후 별다른 당론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가 나온 나름 ‘파격적인 안’이었다.

하지만 한국당이 대통령제를 버리고 내각제로 가야 한다는 주장은 그 진정성보다 전략적 측면이 강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 여야4당이 합의하려는 연동형비례제가 한국당의 입장에서는 전적으로 불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과거 한국당의 본거지였던 대구·경북(TK)권과 부산·영남(PK)권에서 민주당이 그 세력을 크게 넓혔기 때문이다.

특히 탄핵심판 이후 영남권은 한국당의 안전지대로서 그 위상을 잃었다. 반면 호남에서 한국당 의원이 당선될 가능성은 여전히 없다. 따라서 한국당의 입장에서는 연동형비례제를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절박함에 놓여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국당 단독으로는 이 선거제 개편법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바른당이 현실을 깨닫고 연동형비례제에 의원들이 반란표를 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문제는 황교안 대표를 비롯해 한국당 지도부가 얼마나 정치력을 발휘하느냐에 있다. 특히 한국당을 탈당해 바른당에 있는 의원들을 어떻게 한국당이 포섭해서 통합세력으로 수용하느냐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한국당으로서는 바른당과 평화당내에서 지역구 감소로 불만을 가진 이탈 세력에 의존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연동형비례제가 패스트트랙을 타고 결의에 이를 경우에 대비한 전략도 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30%에 이른 한국당 지지율이 민주당을 추월해야만 연동형비례제에서 희망을 볼 수 있다. 특히 영남권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충청권을 한국당이 지지 기반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수도권도 한국당으로서는 싸워볼 만한 세를 형성할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될 조건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여야4당은 석패율제 도입에 합의했다. 석패율제는 한 후보가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동시에 출마하는 것을 허용하고, 이들 중복 출마자들 가운데 가장 높은 득표율로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선출하는 것을 말한다. 여야4당은 권역별로 2명씩을 중복 후보로 낼 수 있도록 합의했다.

당의 유력한 실세 정치인들은 이러한 석패율제를 이용해 정치 생명을 연장하려 들 것이다. 이는 민주당보다 한국당으로서는 대단히 우려스러운 문제가 된다. 청산되어야 할 한국당의 인사들이 석패율제를 이용해 살아남으려 들면 한국당은 가망이 없어질 것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4·재보선에서 한국당이 승리하고 그러한 승기를 당의 혁신으로 이어간다면 연동형비례제로 최후에 웃는 자는 한국당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