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로 배제 심의사건으로 정체성 드러낸 방심위
이상로 배제 심의사건으로 정체성 드러낸 방심위
  • 박한명 미디어비평가
  • 승인 2019.04.01 14: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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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세력에 영향 받는 방심위 독립성이 위태롭다
박한명 미디어비평가·미디어연대정책위원장
박한명 미디어비평가·미디어연대정책위원장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민언련 등의 단체와 여권추천 다수 심의위원이 자진사퇴를 강요하던 이상로 심의위원을 배제하고 진행한 29일 심의에서 ‘5·18 광주사태 북한군 개입설’을 주제로 한 30건의 유튜브 영상 접속 차단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들이 심의에서 이 위원을 배제한 이유는 자기들이 요구하는 자진사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심의에 참여하려했기 때문이다.

이상로 위원은 5·18 북한군 개입설을 다룬 유튜버들이 방심위 심의대상에 올랐다는 사실과 민원인 정보를 심의회의를 하기 며칠 전 당사자들에 알렸다가 사퇴압박을 받고 있었다. 딱히 이상로 위원의 옷을 벗길 방법이 마뜩하지 않자 5·18 관련 특정단체가 심의기피 신청을 방심위에 넣고, 친정부 인사들이 장악한 방심위가 이를 수용해 이상로 위원을 한마디로 ‘왕따’시키고 자기들끼리 심의를 강행해버린 것으로 보인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14조에는 방심위 위원에게 심의·의결의 공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 민원 당사자는 기피신청을 할 수 있고, 위원회는 의결로 기피 여부를 결정하도록 돼 있다. 이상로 위원이 참여하건 말건 친정부 인사들로 가득찬 방심위가 5·18 관련 영상을 삭제 조치하는데 큰 문제는 없겠지만 굳이 법률을 근거로 배제시켜버린 것은 망신주기 위한 목적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어찌됐든 필자는 방심위의 이번 결정에 크게 두 가지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방심위가 법률적 근거도 없이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해치는 위헌적 조치를 결정했다는 점이다. 방심위는 아무리 무늬만 민간이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표면상 엄연히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기구다. 정부기구도 아닌 민간기구라면 인터넷 통신 상 유해 콘텐츠를 규제하더라도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굳이 규정에 적어놓지 않아도 불문가지이다.

‘5·18 북한군 개입설’은 현재 문재인 정권에서 여야가 합의한 ‘5·18진상규명법’에 따라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조사해야 할 목록에 올라 있다. 이 주장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자유민주주의 법치국가라면 법적 근거도 없이 정부가 국민의 주장과 생각, 사상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하물며 방심위는 말할 것도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 소위 진보좌파 단체와 언론들은 대통령을 욕하고 촛불시위를 비판한 게시물들을 차단했다고 방심위를 비난하면서 표현의 자유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그때 그들은 포털이 방심위 차단 결정을 98% 이상 따랐다며 방심위 정체성이 행정기관이냐고 따졌다. 그러면서 아래의 유엔 특별보고관 보고서를 근거로 들기도 했다. “특별보고관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정부에 비판적인 정보를 정보통신망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불투명한 절차를 통해 삭제하는 사실상의 사후 검열기구로서 기능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미흡하다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현재 기능을 어떠한 정치적·상업적 그리고 다른 부당한 영향력으로부터 독립적인 기구로 이관할 것을 권고한다.”

‘표현의 자유 침해’ ‘부당한 외압 의심’, 방심위는 국가 파괴 기관인가

방심위는 특정 단체들의 영향력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우선해야 한다는 심의위원을 다수의 힘으로 짓누르고 배제한 채 영상물 삭제 결정을 내렸다. 지금 방심위가 과거에 그토록 표현의 자유를 앞세웠던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채워졌다는 사실로 볼 때 낯 뜨거운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 문제는 방심위가 이번 일로 심의위의 독립성에 의심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5·18 북한군 개입설’은 여야가 합의한 특별법에 의해 진상조사위에서 앞으로 다루어야 이슈 중 하나다.

그 점을 무시하고 방심위가 일방적으로 조치한 결정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해치는 결정일 뿐 아니라 방심위가 특정단체와 정당에 끌려 다니는 조직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방심위가 독립적인 민간 자율기구라는 자기 정체성을 의식했다면 특정 단체와 여당으로부터 사퇴압박을 받는 이상로 위원을 배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여시켜 심의했어야 했다.

방심위는 이 위원 자진사퇴를 강요한 근거로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제 7조’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7조’ 위반을 들었다. 이상로 위원이 5·18 영상물을 게시한 당사자들에 심의대상에 올랐다는 사실과 민원인이 공적인 활동을 하는 특정 언론단체라는 사실을 알린 것이 ‘직무상 알게 된 기밀정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회의공개 등에 관한 규칙’에 의하면 회의는 특별한 비공개 사유가 없는 한 사전 공개가 원칙이다.

그렇다면 영상물 심의 대상자들이 심의 회의가 있기 전 방심위로부터 통보를 받는 것이 정상적인 절차라 할 것이다. 이상로 위원이 한 일은 방심위가 할 일을 대신 해준 셈에 불과하다. 굳이 문제가 될 일이라면 이 위원이 아니라 방심위가 여태 이런 상식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 비판의 대상이 됐어야 했다. 심의정보 사전유출이 아닌 방심위의 직무유기가 준엄한 비판의 대상이 됐었어야 한다는 얘기다.

방심위나 언론은 이런 규칙이 버젓이 있는데도 간과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7조’를 끌어와 마치 직무상 알게 된 기밀정보를 누설한 것처럼 취급한 것은 심의대상인 국민을 우선하지 않은 행정편의주의이자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민간 규제기관의 지독한 이기주의의 발상일 뿐이다.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제 7조’도 맞지 않는 법적용이다. 이 법은 “행정기관의 장은 민원 처리와 관련하여 알게 된 민원의 내용과 민원인 및 민원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는 특정인의 개인정보 등이 누설되지 아니하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하며, 수집된 정보가 민원 처리의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되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행정기관이 아닌 민간 자율기구에 불과하다는 방심위에 이런 법을 엄격하게 갖다 대는 것도 맞지 않다. 방심위가 이런 온갖 법들을 끌어들여 무리하게 적용하면서 이상로 위원에 사퇴압박을 넣고 심의에서 제외한 일은, 스스로 특정 세력과 단체에 복종한다는 자기 정체성 폭로에 다름 아니다. 요컨대 방심위가 전혀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자기고백이 바로 이번 이상로 왕따 심의사건의 본질이다.

박한명 미디어비평가·미디어연대정책위원장(전 미디어펜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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ㅗㅗㅗ 2019-04-09 00: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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