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진의 리더십 명상편지 - 한국 정신은 무엇인가?
이용진의 리더십 명상편지 - 한국 정신은 무엇인가?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4.02 0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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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10월 21일 일본 후쿠오카(福岡)현 무나카타(宗像)시 일대에서 열린 전 일본 여자실업 역전 마라톤 예선대회. 42.195㎞를 6개 구간으로 나눠서 이어 달리는 경기에 모두 27개 팀이 출전했다. 상위 14개 팀만 본선에 진출하는 중요한 경기였다. 이와타니(岩谷)산업 소속 이이다 레이(飯田怜·19) 선수가 3.6㎞ 거리의 제2구간을 달리다가 갑자 기 쓰러졌다. 구간 종점 약 300m를 남기고 넘어지면서 오른쪽 발에 골절상을 입었다. 큰 충격으로 걷는 것조차 불 가능했다. 

그러자 이이다 선수는 두 손과 맨 무릎으로 아스팔트 도로 가장자리의 흰색 교통 선을 따라서 기어가기 시작했다. 무릎은 금세 피로 물들었다. TV 카메라에 잡힌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래도 왼손은 다음 주자에게 넘겨 줄 빨간색 어깨띠(배턴)를 꽉 쥐고 있었다. 그가 기어갈 때마다 하얀색 선 위에 두 개의 핏줄기가 그 어졌다.이 상황을 TV로 지켜보던 이와타니 산업의 히로세 히사카즈 감독은 대회 본부에 "그만 달리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권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한국경영인력연구원(BMC) 이용진 원장
한국경영인력연구원(BMC) 이용진 원장

이를 전달받은 현장의 심판이 이이다를 말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반드시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경기를 지켜보던 이들이 "힘내라"고 응원하기 시작했 다.'이이다의 '경기 속행' 의지를 전달받은 심판이 본부에 이 상황을 보고했다. 그러자 히로세 감독이 재차 기권하겠다 는 의사를 다시 본부에 전했다. 감독의 뜻이 본부를 거쳐서 현장에 다시 전달됐을 때는 구간 종점에 불과 15m밖에 남지 않았다. 이와타니 산업 소속의 다음 주자는 눈물을 흘리며 이이다의 분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이다는 기어이 무릎으로 300m를 기어서 완주한 후, 어깨띠를 넘겨줬다. 이와타니 산업은 이날 27개 팀 중 21위의 성적으로 결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병원으로 실려간 이이다는 최소한 3~4개월 치료가 필요한 중상을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무릎에도 후유증이 있었 다. 그럼에도 이이다는 병원을 찾은 히로세 감독에게 연방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이이다의 투혼은 대회를 중계 중이던 TV를 통해서 일본 전역에 알려졌다. 당장 큰 논란을 낳았다. "이것이야말로 대 화혼 (집단을 중시하는 일본 정신)이다!" "그녀의 근성(根性)에 경의를 표한다." 그녀가 무릎으로 기어서라도 책임을 완수한 데 대한 칭송이 나왔다. 

하지만 이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는 이도 적지 않다. "감동했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과로사가 없어지지 않는다" "상처보다도 감동을 중시하는 풍조"라며 반발하기도 한다. 이 사건의 함의가 역전 경기에만 한정된 것이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무릎으로라도 기어서 완주하도록 하는 일본 사회의 '문화’와 분위기가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개인보다는 집단을 중시하고, 실패의 책임을 지는 데에 민감한 일본 사회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사건은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10월25일 조선 일보 기사 중에서)

이러한 기사를 보면서 부정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좀은 조심스럽지만 느끼는 점들이 새롭다. 만약에 한국에서 19살의 이이다같은 일이 벌어졌을 경우에 끝까지 무릎으로  기어서 300m를 완주할까? 필자의 생각은 ‘아니다’다. 그들을 무조건 미화해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겐 그러한 근성이나 정신이 없어진 지 오래다. 군대 간 아들이 평소 운동화 끈을 잘 못 맨다고 군 아들이 있는 부대 간부한테 문자 하는 한국의 정신, 그 엄마, 그 아들의 정신은 무엇인가? 19살 여자 아이다한테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일본인들의 생활에서 발휘되고 묻어나는 정신이라고 한다면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굉장히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다.(이는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개인적인 성향이다.) 둘째는 책임감이다. 자신이 맡은 책무는 완전히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다. 이것이 공장에서 불량품을 만들어 다음 공정에 전달하지 않는 것이 몸에 베여 있다. 셋째는 진지함이다. 이들은 노래방에서 설사 가사가 좀 틀려도 끝까지 부른다. 노는 것도 철저히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꼽을 수 있다면 학습하는 자세다. 학습에서 배우는 노력과 의욕이 하늘을 찌른다. 미국을 배워서 미국을 이기고 있다.

도자기는 한국에서 건너갔지만 한국 도자기는 일본 도자기에 명함을 못 내민다. 오늘날 일본이 누리는 번영은 학습의 결과다. 그들은 16세기에 유럽을 연구하는 견학단을 파견했고 명치 유신 직전에는 젊은 천왕도 유럽을 배우는 학습 단에 참여해서 오늘의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무지와 자만에 빠져 쇄국을 해서 망했다.

그렇다면 한국 정신은 무엇인가? 특별히 내세울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는 결코 우리를 자학 한다거나 폄하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있다고 한다면 선비정신일까? 선비 정신의 기본은 충(忠)과 서(恕)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에 혼을 바쳐서 일한다고 보이는가? 서는 배려와 존중인데 그것이 우리 사회 에서 충분히 발휘된다고 생각하는가?

필자는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기본 정신은 이렇다 하는 것을 배양하고 국민들의 의식에 스며들도록 하면 어떨까? 일류의 나라는 정신과 문화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유독 대한민국만 일본을 우습게 보고 경멸하지만 전 세계 다른 나라들은 일본을 세계 1등의 나라라고 평가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우리들은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일제 강점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때문인가? 

이제 우리의 한국정신을 생각해 보자. 분명히 말하지만 필자는 친일파는 아니다. 구태여 말한다면 지일파라고 할까? 일본을 배워서 일본을 뛰어넘는 방안을 고민하는 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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