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 원류를 찾아서....미국 보수주의운동 현장에서 배우다
보수주의 원류를 찾아서....미국 보수주의운동 현장에서 배우다
  • 조평세 트루스포럼 연구위원
  • 승인 2019.04.0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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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7일부터 3월 2일까지 미국 워싱턴DC 인근 내셔널하버에서는 Conservative Political Action Conference(CPAC, 보수주의 정치행동 컨퍼런스)가 열렸다. 필자는 트루스포럼 연구위원 자격으로 이곳에 참가해 다양한 보수활동가들을 만나 교류하며 한국 보수주의 청년운동이 배울 점들을 고민해봤다.

CPAC은 1964년 설립된 보수주의 로비단체인 American Conservative Union(ACU, 미국보수연합)이 1974년부터 매년 주최하는 세계 최대의 보수주의 행사다. 3박 4일 동안 워싱턴DC 인근의 호텔에 1만여 명의 보수주의 활동가들이 모여 촘촘히 짜인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교육을 받고 전략을 공유한다. 연단에는 공화당 대통령과 부통령을 포함한 전, 현직 정치인들과 보수단체 대표 등 약 100명의 연사들이 섭외되고, 수백여 개의 단체와 기업이 홍보와 로비활동을 하기도 한다. 차기 공화당 대선주자들도 종종 여기서 발굴된다.

올해 CPAC의 주제는 What Makes America Great(미국을 위대하게 하는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캠페인 슬로건인 Make America Great Again(MAGA,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을 차용한 것이었다. 보수진영에서도 2년 전 ‘트럼프 만은 절대 안 돼’를 주장했던 “Never Trumper” 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테마였다.

놀라운 것은 미국 전역에서 모인 1만 명 이상의 참가자 중 절반 이상이 25세 미만이라는 것이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 행사 관계자에게 직접 확인했는데 사실이었다. ‘보수’ 라면 고리타분한 기성세대로 인식되는 한국과는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수 천 명의 대학생 및 청년들은 대부분 캠퍼스 내 보수동아리나 단체 소속으로, 일반 세션 외에도 자기들만의 부트캠프 프로그램을 만들어 각 대학에서의 보수주의 운동 사례들을 공유하고 공동전략을 수립하며 서로를 응원했다.

2019년 미 보수주의 정치행동단체 CPAC의 행사 모습. 매년 1만여 명의 보수주의 활동가들이 모여 프로그램과 전략을 공유한다.
2019년 미 보수주의 정치행동단체 CPAC의 행사 모습. 매년 1만여 명의 보수주의 활동가들이 모여 프로그램과 전략을 공유한다.

CPAC에서 언급된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세션 주제들은 ‘심심하지 않은 보수동아리 운영하기’ ‘메일링 리스트 관리하기’ ‘유튜브 활용하기’ ‘효과적인 글쓰기 및 캠퍼스잡지에 기고하기’ ‘좌파들과 분노하지 않고 대화하기’ 등 매우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으로 짜여 있었다. 밤이 늦으면 청년단체가 돌아가며 주관하는 파티도 열어 서로 친목을 도모했다.

'한국 청년 보수단체 소속으로 미국의 보수주의 청년운동을 배우러 왔다고 하니 모두들 반가워하며 질문에 적극적으로 응대해줬다. 한국에서 CPAC 현장까지 온 것에 대해 의아해하며 북한 핵문제와 인권 문제 등 한반도 상황에 대해 궁금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 북한 문제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한국의 좌경화 문제에는 역시 무지했다. 한국 문재인 정부의 종북적 좌경화 경향에 대해 설명을 해주니 크게 놀라며 어떻게 사회주의의 폐해를 그렇게 가까이서 목격하고 있는데 그럴 수 있느냐고 놀라워했다.

한국 좌경화 문제는 Seouled Out: Preserving South Korea’s Freedom(서울아웃: 한국의 자유 수호하기)라는 별도세션으로 다뤄지기도 했지만 내가 만나본 청년들은 그런 세션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기존 한국에 특별히 관심 있었던 사람들 밖에서는 사실 큰 화제가 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 미국 보수청년들 사이에서도 꽤 인지도가 높은 고든 창(Gordon Chang) 변호사가 이번 CPAC에서 처음 공개한 신간 <Losing South Korea>(한국 상실)를 통해 문재인 친북정부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고든 창 변호사는 이 책에서 미국이 큰 희생을 치러 수호해 낸 자유민주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이 현재 북한 김정은에 우호적인 문재인 정부에 의해 심각한 존재적 위기에 놓여 있음을 지적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마지막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 CPAC에서 가장 두드러진 화두들은 대내적으로는 불법난민문제(남부국경 장벽설치)와 낙태반대운동(Pro-Life Movement), 대외적으론 중국, 베네수엘라 등 사회주의의 위협과 이스라엘 및 중동 문제였다. 국내 이슈에 있어서는 보수청년들 사이에서 큰 의견 갈림이 없었던 반면 대외 문제에 있어서는 역시 개입주의(neocon부류)와 고립주의(paleo-con, libertarian부류)로 두드러지게 나뉘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올해 CPAC에서 가장 두드러진 화두들은 불법난민문제와 낙태반대운동, 대외적으로는 사회주의 위협과 이스라엘 및 중동 문제였다.
올해 CPAC에서 가장 두드러진 화두들은 불법난민문제와 낙태반대운동, 대외적으로는 사회주의 위협과 이스라엘 및 중동 문제였다.

이들은 부시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 이후 개입주의(interventionism)와 고립주의(isolationism) 외교노선의 대립으로 보수진영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인식해서인지 이 논쟁 자체를 아예 깊이 끌고 가지 않으려 했다. 이 두 노선 사이의 긴장선을 절묘하게 타야 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민이 엿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 등에서의 철군과 “America First”를 외치며 ‘세계경찰’ 노릇에 피로를 느낀 고립주의 보수주의자들의 입맛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실제로는 강경 네오콘 출신인 존 볼턴(John Bolton)을 국가안전보좌관으로 두고 베네수엘라에 군사 개입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등 매파적 본능도 숨기지 않고 있다.

보수진영의 양분된 대외문제 시각을 의식해서인지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중 가장 길었던 2시간 이상의 CPAC 연설에서 9할 이상을 국내 문제에 할애했다. 그리고 하노이에서의 미북 협상 결렬 이후 첫 공식 연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문제에 대한 언급을 마지막에 4분 미만으로 그쳤다. 반면 펜스 부통령의 연설에서는 북한 문제 언급의 비중이 비교적 컸다. 특히 하노이의 협상 결렬에 대해서 트럼프 행정부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책을 강구할 것이지만 분명하고 완전한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는 결코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해 관중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여기서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의 비핵화’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를 분명히 명시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지난 싱가포르 미북 합의 당시 불분명한 용어 사용으로 초래됐던 우려를 불식시킨 것이다. 북한 문제 언급에 이어 곧바로 펜스 부통령은 자유세계의 리더로서 미국은 건국 당시에도 그랬듯이 언제나 자유를 수호하는 나라가 될 것임을 천명했다. 특히 사회주의의 위협은 국외 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정치와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경고하며, 미국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언제나 ‘자유와 사회주의’(Freedom vs. Socialism)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자유를 선택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북한 문제를 ‘자유와 반자유’라는 큰 프레임에서 인식하게 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언제나 보수주의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미국의 청년들

사실 미국의 현대 보수주의 운동사를 들여다보면 처음부터 청년대학층이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만여 명의 CPAC 참석자 반 이상이 청년이라는 사실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현대보수주의운동의 대부라고 불리는 윌리엄 버클리 주니어(William Buckley Jr.)가 1955년 전통주의(traditionalism)와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그리고 반공주의(anti-communism)라는 3가지 흐름을 보수주의라는 정치철학적 전통에 융합해 담아낸 격주간지 ‘내셔널리뷰’를 창간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때문에 1955년을 미 현대보수주의의 원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버클리는 내셔널리뷰를 창간하기 전에 사실 더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바로 2년 전인 1953년 최초의 대학 기반 보수주의 조직으로 창립된 Inter collegiate Studies Institute(ISI, 창립 당시에는 Intercollegiate Society of Individualists) 초대 회장직을 맡은 것이다. ISI는 버클리가 1951년 예일대학의 세속화와 좌경화를 고발한 첫 저작 <God and Man at Yale>(예일에서의 하나님과 사람)에 이은 ‘청년 보수주의 혁명’의 시초였다.

대학 캠퍼스의 좌경화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 학생들에게 보수주의 및 자유주의 관련 유인물을 보급하는 것으로 시작한 ISI는 각 대학에서 학생들의 자발적인 보수주의 공부 모임의 조직화를 성공적으로 유도해 냈다.

지금도 여전히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출판업을 운영하며 각 전공에서의 보수우파 대안교재를 만들거나 각 캠퍼스 보수잡지 출간을 지원해 젊은 보수주의의 지적흐름을 정립하고 있다. 대표적인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Heritage Foundation)의 창립자 에드윈 퓰너(Edwin Feulner)와 보수운동가 양성기관인 리더십인스티튜트(Leadership Institute)의 창립자 모튼 블랙웰(Morton Blackwell) 등이 모두 ISI 출신이다.

CPAC 행사장에서 판매되는 보수주의 서적들. 고든 창 변호사가 최근 출간한 '한국 상실'이 눈에 띈다. 고든 창 변호사는 남한의 친북 정권 실체를 이 책을 통해 폭로했다.
CPAC 행사장에서 판매되는 보수주의 서적들. 고든 창 변호사가 최근 출간한 '한국 상실'이 눈에 띈다. 고든 창 변호사는 남한의 친북 정권 실체를 이 책을 통해 폭로했다.

또한 1964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가 나오게 된 배경에도 Young Americans for Freedom(YAF) 이라는 청년보수운동이 있었다. 1960년 윌리엄 버클리의 사택에 44개 대학에서 모인 90명의 대학생들이 창립한 YAF는 골드워터의 패배 이후로도 계속 보수주의 정치운동을 이어갔다.

1974년 열렸던 첫 CPAC도 ACU와 YAF가 공동으로 주최한 것이었다. 이 해 YAF의 명예 의장이었던 로널드 레이건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개회사에서 미국이 “지구상 인류의 마지막 남은 최상의 희망”이라는 미국의 건국 운명에 충실한 “언덕 위의 도성”이 되어야 한다고 호소하며 사실상 대선 후보로서의 캠페인을 시작했다. YAF의 창립선언문인 샤론선언(Sharon Statement)은 지금까지도 현대 미국 보수주의를 가장 핵심적으로 간결하게 표현한 기념비적 문헌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이 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한 스탠턴 에반스(M. Stanton Evans)는 ACU의 오랫동안 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ISI와 YAF 모두 이번 CPAC에서 여전한 존재감을 자랑했지만 역시 큰 주목을 받은 단체로는 불과 6년 전에 창립되어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Turning Point USA가 있었다. 93년생 찰리 커크(Charlie Kirk)가 시작해 이끌고 있는 이 단체는 ‘좌파교수인명사전’ 등을 배포하거나 캠퍼스 내 좌파 동아리들을 찾아가 도발하는 등 약간은 ‘과격한’ 방법으로 성장해 이제는 미국에서 가장 활발한 청년조직이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 중 여러 차례 찰리 커크와 이 단체를 지목하며 격려할 정도였다. 몇 주 전 좌파 행인에게 심각한 폭행을 당한 이 단체 청년회원을 불러내 연단에 세우기도 했다. Turning Point USA는 영국과 이스라엘, 캐나다 등에 자매단체들도 설립하고 있다.

대부분 미국 대학의 교수들과 교과구성 등은 심각하게 좌경화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학생운동에 있어서는 이제 위와 같은 보수주의 운동이 좌파운동보다 더 조직적이고 영향력이 크다고 한다.

조평세  트루스포럼 연구위원
조평세 트루스포럼 연구위원

보수주의 청년대학운동은 1950년 윌리엄 버클리의 반격 이후 디네쉬 데수자 (Dinesh D’Souza), 벤 샤피로(Ben Shapiro), 찰리 커크(Charlie Kirk) 등을 거치며 지속되어 이제는 대학 풍토와 사회정치지형 마저 뒤집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좌익세력에 의해 심각한 역사 왜곡과 정체성 혼란을 겪기도 하지만 대학가에 이런 젊은 보수주의 기반을 든든히 닦아 놓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다.

초창기부터 미국 현대 보수주의 운동에 깊이 몸담았던 저명한 보수주의 역사학자 리 에드워즈 (Lee Edwards)는 미국 보수주의의 부활이 있기까지는 그 배경에 다섯 ‘P’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Philosophers(철학자), Popularizers(대중운동가), Politicians(정치인), Philanthropists(후원자), 그리고 Poets(시인/예술인)이다. 윌리엄 버클리와 같은 대중운동가와 골드워터, 레이건 같은 정치인이 나오기까지는 알버트 제이 녹(Albert Jay Nock), 리처드 위버(Richard Weaver), 휘태커 챔버스(Whittaker Chambers), 러셀 커크(Russell Kirk)와 같은 철학적 선구자들과 헨리 살바토리(Henry Salvatori), 하워드 퓨(J. Howard Pew)와 같은 재정적 후원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대중에게 직관적 감각으로 보수주의적 메시지를 전달한 예술가(T. S. 엘리엇)들도 있었다. 한국 보수진영에는 과연 이 다섯 P가 있을까. 바로 떠오르는 철학적 선구자들은 몇몇 있다. 그런데 나머지 ‘P’들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보수주의 청년들이 가졌던 환경들과 여건들을 부러워하고 한국 상황을 탓하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주어진 현실과 관계없이 해야 할 일들은 이미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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