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 원류를 찾아서....한국 보수 위기 원인은 리더십 실패
보수주의 원류를 찾아서....한국 보수 위기 원인은 리더십 실패
  • 김주성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4.0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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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보수는 하나의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는 누구이며, 또 누구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따라잡기 근대화’에만 열중했던 한국의 보수는 지금 그 정당성의 상실로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 김주성 교수의 분석이다. 한국 보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무엇인가. 한반도선진화재단이 국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있었던 정치철학의 석학 김주성 교수의 발제문을 요약 소개한다(편집자 주)

한국의 보수는 정치적 위기를 끊임없이 겪어왔다. 두 번의 ‘성공의 위기’로 민주주의를 완성했지만 2008년 이후 ‘실패의 위기’를 맞닥뜨렸다. 오늘날 정통보수가 마주한 정치적 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보수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서구의 모델을 도입한 ‘따라잡기 근대화’로 만들어졌다. 건국세력이 1948년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이념으로 지정해 근대국가를 수립했다. 이후 1962년 자본주의경제가 확립되면서 중산층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중산층은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간극을 좁히면서 민주주의의 기반을 마련해줬다. 국민총소득이 3000달러 이상이 되면 민주화 후퇴 가능성이 줄어들고 6000달러 이상이 되면 민주화가 후퇴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한국은 2000년에 국민연소득 6000달러 이상을 기록하면서 민주정치를 완성했다.

국민 모두가 투표에 참여해 정책을 결정하는 선거 민주주의가 실행되었다. 한국의 보수는 근대국가 수립, 자본주의경제 확립, 민주정치 완성이라는 ‘따라잡기 근대화’의 3대 목표를 실현했다. 하지만 ‘따라잡기 근대화’였기 때문에 한국의 보수는 정당성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한국 보수의 정치적 행위는 ‘정형(定型) 따라잡기’였다. 건국-자본요소의 성장-민주화라는 단계별 정치행위의 평가기준이 존재했다. 이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채 ‘따라잡기 근대화’를 이뤘기 때문에 단계별 정치행위가 보수의 정치 목표로 견인되고 평가되어 버렸다.

정치행위에 대한 평가가 이중적이었으므로 성공·실패가 공존하는 정치적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건국 보수의 성공과 위기는 어떻게 전개되었던가.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공천파동을 일으키며 결국 제1당의 지위를 잃었다. 사진은 4·13 공천 결과를 발표하는 이한구 공심위원장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공천파동을 일으키며 결국 제1당의 지위를 잃었다. 사진은 4·13 공천 결과를 발표하는 이한구 공심위원장

한국의 보수는 ‘건국보수’

근대국가가 수립되었던 1948년 건국보수는 국민국가의 체제 수호를 위해 반공이념을 도입했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가장 중시했던 민주이념은 국가 통제를 기반으로 한 반공이념과 끊임없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근대국가 유지를 위해 한국의 보수는 국가를 통제해야만 했다. 그러나 진보세력은 이러한 한국의 보수가 지닌 반공이념을 ‘정치적 악(惡)’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건국 시기에 보수 정당성의 위기를 가져온 이 모순 관계는 국가보안법, 부산정치파동, 사사오입 개헌에서 드러난다.

건국보수는 국가안보를 확보하고 교육체제를 완성하는 데 큰 성공을 거뒀다. 농지개혁으로 농민들에게 희망을 줬다. 6·25 한국전쟁을 경험하고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국방체제를 확고히 다졌다. 초등의무교육 체제도 완성되면서 영국과 비슷한 규모의 대학생들을 양성했다. 1960년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4·19혁명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 민주주의 발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1961년 국내총생산(GDP)이 82달러였으나 이후 상승하면서 1969년 재정 자립의 기반을 마련했다.

자본주의경제를 확립한 산업보수는 ‘집중적 투자로 비교적 우위를 점령한다’는 ‘동태적 비교우위론’을 창안했다. 아담 스미스의 정태적 비교우위론에 착안해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단계를 벗어나려는 노력이었다. 자본과 기술을 빌려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거래해 자본주의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했다. 국가동원체제의 개발권위주의에 기반한 경제발전 전략으로 시장경제가 활성화되고 중산층이 형성되었다.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상반되지만 경제성장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고조되면서 민주정치가 확립되기 시작한다. ‘자본주의경제 발전’과 ‘민주정치 확립’이라는 산업보수 정치 목표의 모순은 민주정치의 핵심기제를 훼손하기도 했다.

한일회담 개최, 광부와 간호사 독일파견, 월남파병, 중동건설 등으로 초기자본을 확보했다. 1960~70년대에 해외원조를 더 이상 받지 않았음에도 수출주도형 경공업으로 1970년대 당시 북한 GDP를 추월하는 놀라운 경제성장을 거뒀다. 1977년 수출주도형 중공업으로 수출규모가 100억 달러에 육박했고 국민소득은 1000달러로 상승했다. 국가주도형 경제성장과 함께 입지를 굳힌 중산층과 산업노동자들은 6.10 민주항쟁을 통해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표출했다. 1987년 당시 GDP는 3509달러로 민주화의 후퇴 가능성이 낮아지는 시점에 접어들었다.

정통보수의 정당성 위기와 정체성

오늘날 한국의 보수는 정통보수다. 시장경제체제를 수립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완성했지만 정당성의 위기를 마주했다. 건국보수와 산업보수가 강제수단을 동원해 이념이 상충되면서 정권 내 위기와 대립이 발생했다면 이제는 보수와 진보 간의 대립이 나타나고 있다. 보수 진영은 현대정치제도를 자유주의, 공화주의 및 민주주의의 혼합으로 이해하여 자유주의적 가치와 공화주의적 가치를 신장하고자 한다. 반면 진보 진영은 민중의 이익을 확대하고자 참여 및 광장민주주의를 이끌어가려 한다.

오늘날 한국의 보수가 지키고자 했던 자유주의적 가치와 공화주의적 가치는 실패의 위기를 겪고 있다. 경제적 자유는 공공의 이익을 보장한다. 건국세력과 산업세력이 공공의 이익을 신장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민중이익을 확대하려는 진보 진영과 정치 목표가 대립되고 있다. 공공의 이익 신장에 관해 한국의 보수가 철저하지 못한 점이 있었는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보수가 지키고자 했던 자유적 가치와 공화적 가치는 보수 리더십이 실패하면서부터 위기에 처했다. 1960~70년대 정경유착의 정치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시장개입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정부의 시장개입은 경제주체의 자율권을 침해하면서 자유주의적 가치와 공화주의적 가치를 동시에 해친다.

박근혜 정부의 소통부재와 권위주의적 태도로 인해 보수 리더십이 현실감을 상실했다. 현실을 체감하지 못한 상태로 이명박 정부의 정치유산을 모두 거부하면서 정책과 인물 승계마저 실패했다. 교육정책이 뒤바뀌면서 산업정책도 혼잡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공천파동을 일으키며 ‘자기 편’을 기준으로 상대방을 배제하려는 뺄셈정치 행태를 보이기까지 했다. 결정적으로 기업의 재산권 및 기업경영자율권 침해와 헌정수호의지를 의심 받아 2017년 3월 10일 대통령이 탄핵 선고를 받았다. 한국의 보수 정체성을 보수정권 스스로 파괴한 ‘실패의 위기’로 볼 수 있다.

이 ‘실패의 위기’는 헌정사상 보수 진영의 최대 위기로 보인다. 언론권력의 광폭 행진은 통제가 불가능하며 대통령 담화도 역효과를 낳았다. 정계의 정치력 부재로 촛불민심이 폭발해버렸다. 집권정당의 분열이 탄핵정국을 야기했다. 태극기 집회가 일어나고 보수가 결집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수 진영의 지지율이 2013년 40%에서 2016년 26%로 하락했다. 보수 진영은 구심점을 상실했고 정치 위기 돌파의 마지막 문턱에 서 있다.

한국의 보수는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한다. 보수(保守)는 미래를 개척해나가는 개혁정치를 추구한다. 즉 과거와 싸우는 회고적 현실(Retrospective Reality)보다는 미래지향적 현실(Prospective Reality)을 지키려고 해야 한다.

한국 보수는 미래를 재창조하기 위해 여섯 가지 정치적 과제를 이행해야 한다. 양심적 판단은 보수가 갖는 가장 큰 힘이다. 도덕을 재무장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기부와 봉사를 실천해야 한다. 미래지향적 현실을 지키기 위해 미래의 주역인 4차 산업혁명 담론을 장악해야 한다. 건국·산업·정통세력이 협력해 현대사를 통합하고 역사프레임을 다시 세워야 한다. 베트남을 벤치마킹해 미중 대결 구도 속에 놓인 한반도 안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타국의 간섭을 더 이상 받지 않고 한국의 국방력을 과시하는 자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적어도 보수 정권간의 정책과 인물이 계승되어 연속성을 잃지 않도록 전 정권의 성과를 잘 살펴볼 필요도 있다. ‘편 가르기’식의 뺄셈정치도 지양되어야 하며 보수와 중도가 통합될 수 있도록 덧셈정치를 지향하도록 한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보수는 자유민주주와 시장경제 이념에 충실한 보수정당을 정립하고 7080정치의식에서 벗어난 참신한 인물들을 찾아야 한다.

김주성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김주성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질의응답

- 보수 정권 내에서 정책과 인물 승계가 거부된 예가 있다면?

이명박 정부 시절 스마트 교육 정책 시행에 예산 5조 원 투자가 계획되어 있었다. 학생들의 집중력과 장악력 향상에 도움이 됐다. 3년 단위로 총 9년 간 시행되기로 했던 이 정책이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면서 철폐되었다. 국가 발전에 도모할 수 있는 정책과 인물들은 일부 유지가 되어야 결실을 거둘 수 있다.

- 한국 진보 진영은 대중 동원력이 뛰어나다. 보수 진영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한국 보수 진영의 대중 동원력은 확실히 진보 진영보다 뒤처진다. 보수 진영은 친화력 있고 인기 있는 리더십을 선보여야 한다. 유연한 판단력과 설득력을 가진 인물이 보수 진영을 이끌어가야 한다.

- 오늘날 진보 진영이 주장하는 민주주의 구체적 방안의 한계점은 무엇인가? 보수 진영은 어떻게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가?

진보 진영은 과거 아테네 공론장과 국가를 동일시한다. 하지만 촛불집회와 연대하여 정권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 직접민주주의는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한계점을 갖고 있다. 제도적·공식적 공론장인 의회에서 국민들이 선출한 국회의원들의 의견을 기반으로 정책을 시행하고 국가를 이끌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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