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 원류를 찾아서....신자유주의 개념의 허와 실
보수주의 원류를 찾아서....신자유주의 개념의 허와 실
  • 민경국 강원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4.0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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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방임을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은 실업과 빈곤 그리고 위기, 범죄 등 사회악을 야기하는 장본인이라는 뜻에서 좌파 진영은 신자유주의를 ‘사회적인 악의 화신’이라고 비판한다.

신자유주의는 정말 그런 의미인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란 무엇인가? 이 문제를 취급한 문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즉, 그 이념은 서구사회에서 전후부터 시작해 오랜 기간 동안 벌여온 자유주의의 지적인 운동의 결과라고 한다.

이것은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와 영국의 대처 총리의 경제정책에 극적으로 구현되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역사적 드라마가 있기까지는 영국과 미국, 독일, 프랑스 등 각 나라에서 활동하던 신자유주의 동조자들, 대학, 그리고 싱크탱크, 미디어들이 그 이념을 확립하고 확산하려는 각별한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복지국가의 환상을 없애기 위해 등장한 이념 또는 서구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집단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형성된 이념이라고도 한다.

일각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제3세계 국가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시행해야 할 정책들(정부 예산 삭감, 자본시장 자유화, 외환시장 개방, 관세 인하 등)을 담고 있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신자유주의라고 말한다. 또는 신자유주의의 기원을 몽펠린 소사이어티에서 찾기도 한다. 혹은 신자유주의를 하이에크, 프리드먼 그리고 뷰캐넌의 사상을 표현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신자유주의 이념에 대한 이 같은 이해가 온당한가? 그 이념의 실체적 내용이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을 위해서는 그 기원(origin)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이렇다. 즉, 정치적 이념은 역사적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질된다. 심지어 하이에크가 말한 대로 이념의 진의가 더럽혀지고 그 결과, 이념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에 장애가 된다.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

신자유주의는 1930~1940년대 자유의 수호자들은 당시 서구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집단주의를 비판하면서 자유주의가 쇠락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가를 놓고 치열한 논쟁 끝에 형성된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 논쟁의 핵심은 자유주의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자유주의가 몰락하고 대신에 집단주의가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것인가, 아니면 자유주의 그 자체는 문제가 없음에도 외적인 요인 때문에 자유주의가 몰락한 것인가의 문제였다.

이 논쟁과 그리고 이 논쟁을 통해서 신자유주의 개념의 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1938년 파리에서 개최한 ‘월터 리프만 국제 콜로키움(Walter Lippmann Colloqium)’과 1947년 스위스의 몽 펠린에서 개최한 ‘몽 펠린 소사이어티’의 창립학술회의이다.

두 학술회의는 자유주의 이념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는데 학술회의에서 참석자들(소수파를 제외하고)이 확인한 것은 전통적인 자유주의(고전적 자유주의 또는 19세기 역사적 자유주의)가 몰락하고 집단주의가 헤게모니를 장악한 이유는 자유주의 이념의 외적인 요인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원인으로서 전통적인 자유주의 이념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었다.
 

민경국 강원대 명예교수
민경국 강원대 명예교수

복지와 국가의 개입을 인정했던 신자유주의

이념전쟁에서 자유주의가 다시 이념적 고지를 탈환해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의 새로운 버전(a new version of liberalism)’ 또는 ‘자유주의의 갱신(le renovation du liberalisme)’이 필요하다는 믿음에서 신자유주의의 개념이 등장했다. 말하자면 그 학술회의에서 자유주의가 새로이 탄생했던 것이다.

자유에 대한 위협은 페이비언 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 그리고 뉴딜의 ‘진보주의’와 같은 주로 전체주의적 집단주의였다. 당시 자유주의의 주적(主敵)은 하이에크가 <노예의 길>에서 말하고 있듯이 ‘뜨거운 사회주의(hot socialism)’였다.

자유주의의 미래에 대해 참으로 암울했던 시기에 개최한 이 학술회의에서 참혹한 집단주의를 비판하면서 전통적인 자유주의가 패한 원인을 찾고 자유주의의 진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가 등장한 것이다. 이 학술회의에 참석한 자유의 수호자들은 미제스, 하이에크를 비롯해 몇몇 예외는 있었지만 자유주의가 몰락한 근본 원인은 단순히 외적인 요인만이 아니라 애덤 스미스를 중심으로 한 고전적 자유주의 그리고 맨체스터리버럴이즘으로 알려진 19세기 역사적 자유주의 자체에 내재한 요인 때문이라고 믿었다.

내적 원인으로서 첫째가 적극적인 경쟁정책과 사회정책(복지정책)을 경시 또는 무시한 점인데, 이것이 시민들로 하여금 자유주의를 멀리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둘째가 자유의 수호자들에게 ‘이념전쟁(idea wars)’을 위한 효과적인 전략이 부족했던 것, 그래서 자유주의가 이념의 수요자들에게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 관점에서 보면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 또는 19세기 역사적 자유주의와는 색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념전쟁에서 이념적 고지를 재탈환하기 위한 전략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것도 고전적 자유주의와는 색다른 차원이다.

이념의 실체를 보면 신자유주의는 자유방임주의도 아니고 워싱턴 컨센서스와도 관련이 없다. 복지국가의 축소를 요구하는 이념도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요구하는 이념이다.

1980년대 자유주의의 역사적 헤게모니를 신자유주의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가도 의문이다. 더구나 1950년대 이후에는 ‘자생적 질서 이론’의 재발견과 그리고 독점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등장은 그 같은 의문을 정당화한다. 오스트리아학파와 후기 시카고학파에 속한 자유의 수호자들은 원래의 신자유주의와는 상이한 자유주의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고전적 자유주의로 접근하기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에 반해 적극적인 경쟁정책을 강조하는 프라이브르크학파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대비되는 신자유주의에 충실한 정책적 이론적 프로그램을 전개했다. 신자유주의를 독일적 또는 유럽적 자유주의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마지막으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좌파가 탈규제, 민영화, 복지축소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는 신자유주의 개념은 역사적 뿌리가 없는 개념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신자유주의 개념은 엄밀히 따지면 고전적 자유주의에 해당된다. 그래서 그들이 사용하는 신자유주의 개념은 불필요한 개념일 뿐이다. 오로지 자유주의를 감정적으로 폄훼하기 위한 ‘욕지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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