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빗나간 국민연금의 경영간섭
[심층분석] 빗나간 국민연금의 경영간섭
  •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 승인 2019.04.1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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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은 유가증권시장 171개사, 코스닥시장 361개사 등 총 532개사의 주총이 열린 ‘슈퍼 주총데이’였다. 이날 열린 남양유업 정기 주주총회에서 ‘배당 관련 위원회를 설치하자’는 국민연금의 주주제안이 부결됐다. 주주들이 국민연금의 배당 확대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배당보다는 사내유보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장기적으로 제고시키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국민연금은 남양유업 주주제안 외에도 이날 10개 상장사 안건에 반대했으나 모두 가결됐다. 즉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전혀 힘을 못 쓴 것이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예외다. 국민연금은 11.56%의 대한항공 지분으로 조양호 회장의 이사 연임을 저지시켰다. 사내이사 연임을 위해서는 출석 주주 ‘3분의 2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정관이 걸림돌로 작용한 측면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일부 소액주주 등이 국민연금 지지로 돌아서 국민연금은 소기의 목적을 거둘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국민연금의 의결권행사가 대한항공에서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3가지 사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월 23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공정경제 추진전략 회의에서 “공정경제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책임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앞으로 정부는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를 적극 행사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하게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기업의 탈법과 위법이 있으면 ‘법의 잣대’를 대야 한다. 이것이 ‘법치’이다. 따라서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다하겠다’는 언명은 위험한 발상이다. 국민은 국민연금에게 기업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해 달라고 위임한 적이 없다. 더욱이 대통령이 사실상 특정 기업을 지목하면서 ‘국민연금의 주주권을 적극 행사 하겠다’는 것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숨은 목적’이 지배주주 견제라는 것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두 번째, 2019년 2월 1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한진칼(KAL)에는 ‘최소한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대한항공에 대해서는 ‘비(非)경영 참여적‘ 주주권 행사를 의결했다. ‘땅콩 회항, 물컵 갑질, 횡령·배임 등 경영진 일가의 일탈 행위로 주주가치가 크게 훼손됐기에’ 주주권 행사를 통해 ‘오너 리스크를 해소하고 주주가치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기금운용위원회의 판단인 것이다.

그보다 앞서 2019년 1월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항공 정상화를 위한 국민연금의 역할’ 토론회에서 민변 소속 김남근 변호사는 “대한항공 이미지뿐 아니라 기업가치를 추락시킨 조 회장 일가와 그들을 견제·감독하지 않은 대한항공·한진칼 이사들에 대해 재선임 반대 및 해임 등으로 경영상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의 3가지 사건을 연결해 보면, 대통령이 공정경제추진 전략회의에서 운을 띠고 이를 받아 좌파 참여연대가 세미나를 통해 분위기를 조성한 뒤, 국민연금운용위원회가 의결권행사라는 의사결정을 내린 것이다. 3각 편대가 입체작전을 편 것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라는 반대 질문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아래에서 설명한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0.92% 기금운용수익률을 실현해 금액으로는 5조 9000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미국 발(發)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이후 10년 만에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누구도 책임은커녕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국민연금의 빈번한 경영권 개입은 연금사회주의정책으로 기업가치를 하락시킬 수도 있다.
국민연금의 빈번한 경영권 개입은 연금사회주의정책으로 기업가치를 하락시킬 수도 있다.

2018년 국민연금 자산운용수익률 마이너스 0.92% 기록

오히려 국민연금은 최근 납부자들을 대상으로 “제도 시행 이후 2018년 12월 말까지 연평균 수익률은 5.24%로 세계 주요 연기금 중에서도 양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홍보했다. 5.24% 수익률은 1988년부터 계산한 것으로, 최근 5년 혹은 10년간의 저조한 수익률을 가린 것이다.

최근 10년간 장기 운용 수익률을 기준으로 국민연금은 세계 7대 주요 글로벌 연기금 중 최하위 수준인 6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수익률 8.89%을 기록한 네덜란드 공적연금(ABP)을 위시해, 캐나다공적연기금(CPPIB) 8.73%, 노르웨이 공적연기금 8.69%,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 8.6%, 스웨덴 공적연금 8.19% 등 모두 연 8%대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평균 수익률은 5.51%로 자본시장이 장기침체에 빠진 일본 공적연금인 GPIF 4.23%에만 유일하게 앞서고 있다.

기금 운용수익률은 물론 세계 경기에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간과해서 안 될 것은 문재인 정권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오랫동안 공석으로 방치했다. 이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를 통해 경영에 간섭할 것이 아니라 운용수익률을 높이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출생 비밀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는 기관투자자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원칙을 의미한다. 기관투자자 책임에 관한 스튜어드십 코드의 원조는 영국 재무보고위원회(FRC: Financial Reporting Council)가 2010년 7월 발표한 ‘영국 SC(The UK Stewardship Code)’이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제정된 2010년은 2008년 미국 발(發) 금융위기가 발발한 직후이다. OECD 기업지배구조위원회는 글로벌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내재된 문제점들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단초가 되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고 영국도 OECD와 인식을 공유했다. 영국 금융회사에 부실이 누적된 것은 기관투자가들이 주주로서의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상장회사들은 ‘주인 없는 회사’처럼 경영했고 기관투자가들은 단기 이익에 집중함으로써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방관했다는 것이다.

이에 영국 정부는 자율규제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대책반 책임자로 모건 스탠리 회장을 역임했던 데이비드 워커가 선임되었다. 워커 보고서는 영국 회사들의 소유권 공백과 단기주의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기관투자가들이 ‘수수방관(hands-off approach)’적인 태도를 버리고 기관투자자가 경영에 관여하는 ‘개입주의(hands-on approach)’ 태도로 전환할 것을 권고했다. 2010년 7월 재무보고위원회는 워커의 권고를 수용해 ‘영국 스튜어드십 코드’를 확정·발표했다. 이것이 스튜어드십 도입 경위이다.

영국의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은 금융위기 발발을 막지 못하고 일조(一助)한 데 대한 기관투자자의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리고 민간 기관투자자들이 자율규범을 만든 것은 정부의 제재를 피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의 성격이 짙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영국에서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결코 공적 연기금을 1차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탐욕스러운 우리나라의 정치권은 이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공적연기금의 행동규율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오인(誤認)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한진그룹에 대한 의결권 행사의 뿌리는 조현아의 ‘땅콩회항’ 사건이다. 재벌 3세의 신중하지도 사려 깊지도 않은 행동에 대한 징벌은 도덕적 비난과 대한항공의 이미지 실추일 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는 층위(層位)가 다른 문제이다. 도덕적 비난과 법적 처벌은 ‘공적 영역’이지만 주주총회는 이해관계자의 ‘사적자치’ 영역이다. 이해관계자인 주주 이외의 ‘제3자 관여’는 범주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오너 갑질이 기업가치를 떨어뜨렸다는 주장의 논거는?

좌파들은 ‘오너 갑질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추락시켰다’고 입을 모은다. 그 같은 주장을 하려면 ‘오너 갑질이 기업가치를 떨어뜨렸다’는 것을 특정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하지만 그들은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겐 주장은 있되 논거는 없다.

오너 갑질이 기업가치를 떨어뜨렸는가?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조현아 땅콩회항은 2014년 12월 5일에 발생했다.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주가는 어떠한가. 오너 리스크가 작동했다면 한진칼의 주가는 폭락했어야 맞다. 하지만 한진칼의 주가는 2015년 5월까지 오히려 상승했다. 주가 또는 시가총액을 주주가치의 대리변수로 본다면 좌파 주장은 너무 거칠다. 주가를 결정하는 수없이 많은 변수를 차치하고 ‘오너의 갑질이 주주가치를 떨어뜨렸다’는 주장은 너무나 무딘 칼(刀)이 아닐 수 없다.

2018년 4월 15일 소위 조현민의 물컵 사건이 일어났다. 물컵 투척을 사건일로 하고 그 후 주가 흐름을 살펴보면 역시 기업가치 하락의 증거를 찾을 수 없다. 경쟁사인 아시아나 항공이 반사이익을 봤다는 증거도 발견할 수 없다. ‘오너 일가의 갑질이 기업가치를 떨어뜨렸다’는 주장은 논거를 갖추지 못한 그렇게 믿고 싶은 ‘값싼 예단’(cheap talk)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연금의 반대로 조양호 회장이 연임에 실패한 날이 3월 27일이었다. 당일 및 그 다음날 대한항공의 주가 흐름을 살필 필요가 있다. 좌파 참여연대 주장대로 ‘오너 갑질로 대한항공의 기업가치가 크게 하락했다면’ 조양호 회장의 낙마는 대한항공에 큰 호재로 작용했을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3월 27일 당일 대한항공 주가는 전일 대비 800원, 2.74% 올랐다. 하지만 그 다음날인 28일, 대한항공 주가는 크게 떨어졌다. 전일 대비 -5.27% 하락한 31,450원을 기록했다. 전일 상승분 800원의 2배에 해당하는 1,750원이 28일 빠졌다. 조양호 회장 낙마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참여연대의 기대와는 정반대였다.

스튜어드십 코드(SC) 이론에 의하면 기관투자자는 보유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함으로써 당해 기업의 경영이나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기관투자자들은 과연 ‘기업의 지배구조를 조언할 능력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더 중요한 질문은 기관투자자 입장에서 그럴만한 ‘유인’이 있는가이다.

기관투자가가 SC 지침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기업과 협의 채널을 확보해야 하며 주총 아젠다의 타당성을 분석하는 등 많은 시간 비용을 들여야 한다. 설령 그런 의사와 능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기회비용이 편익보다 클 수 있다. 그렇다면 기관투자자는 기업분석을 ‘자체생산(self make)’하기보다 ‘의결권 자문사’의 의결권 서비스를 구매함으로써 자체 분석 대신 ‘시장구매(market buy)’하려 할 것이다. 기관투자자의 해당기업에 대한 주식보유기간이 길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기관투자자의 포트폴리오에 담긴 기업의 주식 수가 많을수록 기관투자자는 의결권자문 서비스에 의존할 것이다.
 

집사는 전지한가

SC의 도입과 실행은 뜻하지 않게 외국계 의결권자문사의 배만 불릴 수 있다. 그러면 과연 해외 의결권 자문자들에게 전문성, 공정성은 충분히 있을까. 해외 자문사들의 경우 한국 사정을 제대로 모른 채 외국인 투자가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우려가 있다. 의결권 행사에 영향력을 미치는 자문 서비스가 부실할 경우 주주가치의 훼손은 물론이고 기업의 장기적 발전도 저해될 것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당해 기업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을까. 국민연금의 ‘한진칼에 대한 적극적 주주권행사’ 결정이 내려지자 한진그룹은 대응 차원에서 주주친화정책을 내놓는다. <그림-2>는 주주친화정책이 공개되고 나서의 대한항공의 주가 흐름을 표시한 것이다. 한진그룹은 ‘장래사업·경영계획공시’를 통해 앞으로 영업이익을 매년 17%씩 늘리고 2023년에는 배당성향을 50%까지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초미의 관심 대상인 대한항공 소유의 송현동 부지 매각의사를 밝혔다. 대한항공 주가는 2.14일 현재 3.7만 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기업가치 높일 수 있을까

증권시장은 ‘주가상승’ 형태로 한진그룹의 경영개선방안에 화답했다. 주주친화정책이 주주가치를 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기업가치’를 올렸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배당을 늘리고 유휴자산을 매각해 현금흐름을 개선시키면 주가는 당연히 오른다. 그 혜택은 ‘현재의 주주’에게 돌아간다. 미래의 자원을 미리 끌어다 주가를 올렸다면 미래주주에게 돌아갈 몫은 없다. 한진칼을 압박해 대한항공 주가를 끌어올렸다면, 국민연금은 ‘주주행동주의’자가 된 것이다. ‘주주행동주의’의 존재를 부정해서는 안 되지만 국민연금이 주주행동주의 선봉에 서서는 안 된다. 지난 2월 24일 대한항공 주가 36,900원과 조양호 회장 이사 선임 실패 후 그 다음날(3. 28) 주가 31,450원을 비교하면 의결권 행사를 통한 기업가치 제고가 얼마나 공허한 주장인가를 알 수 있다.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행사가 해당기업의 기업가치를 제고시키는 충분조건인가. 아니다. 충분조건은 고사하고 필요조건도 아닐 수 있다. 국민연금의 적극적 경영권 개입과 투자대상 기업의 기업가치 제고 간에 체계적인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믿었다면 순진한 발상이거나 정책오만일 것이다. 국민연금의 빈번한 경영권 개입은 오히려 투자기업의 불확실성을 증폭시켜 기업가치를 하락시킬 수도 있다. 국민연금은 집사라는 완장을 차고, 기업경영에 간섭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쌈지 돈을 관리하는 선한 집사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대한항공을 잡으려고 이렇게 정치적 먼지를 피웠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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