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다에 길을 만들었던 한진그룹
하늘과 바다에 길을 만들었던 한진그룹
  •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 승인 2019.04.1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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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 창업자 조중훈 회장

한진그룹은 한국에서 드문 전문 대기업집단이다. 육지(육)와 바다(해)와 하늘(공)의 운송에 집중했다. 그리고 종합 수송망을 갖춘 운송 그룹으로 성장했다. 누구도 권하거나 강제하지 않았다. 스스로 전문화했고 집중화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에 전문화한 기업집단이 없다고 주장하는 경영학자나 언론인들의 생각은 잘못되었다.

특히 전문화는 좋고, 다각화는 나쁘다는 단순화된 이분론은 옳지 않다. 다각화하지 못한 코닥(Kodak)과 소니(Sony)의 추락 그리고 전자(電子)에서 다각화하여 성공한 제너럴 일렉트릭(GE)이 좋은 예이다. 또 관련 다각화는 좋고 비관련 다각화는 나쁘다는 견해도 현실을 무시한 사고(思考)이다. 기업은 기업 환경의 변화에 생존을 위해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고, 그것이 전문화이든 다각화이든 그것은 기업의 경영 판단에 의한 것이지 외부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사안은 아니다. 한국의 많은 경영학자나 언론인들이 한국에는 전문화된 기업이 없고 그래서 한국의 재벌은 문제라는 식의 주장이 있는데 한진그룹과 같은 수송 전문 기업집단이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이 설립하거나 인수한 기업들은 거의 수송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거나 사업 보조에 필요한 기업들이었다. 컨설팅 업체인 베인 & 컴페니의 크리스 주크(Chris Zook)의 <핵심에 집중하라(Profit from the Core)>(2002)의 격언처럼 조중훈의 한진그룹은 핵심 사업에 집중하면서 관련 다각화하였다.

글로벌 스탠더드 경험으로 만든 경쟁력

2002년 조중훈 회장 사후(死後) 한진그룹은 중공업 사업인 한진중공업을 한진그룹에서 분할하여 한진중공업 그룹으로 출범했다. 금융업 계열사인 한진투자증권과 동양화재도 있었으나, 2000년 메리츠증권 및 메리츠화재로 사명을 변경했고 2005년에 한진그룹에서 분할하여 메리츠금융 그룹으로 출범했다. 고속버스 운송업인 한진고속도 있었으나, 물류운송과 항공업에 집중하기 위해 2006년 동양고속에 매각했다. 조중훈 회장 사후 형제간 재산 분할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계열사 정리로 수송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6·25전쟁 직후와 월남전에서 번 돈으로 기업을 키웠지만 전쟁 덕분에 부자가 된 것이 아니다. 조중훈은 남들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피하고자 했던 전쟁 속에서도 기회를 잡은 것이고, 전쟁을 극복하고 기업을 키운 것이다.

6·25전쟁과 월남전 속에서 한진은 미군과의 계약을 체결했고, 미군과의 까다로운 계약과 계약이행 과정을 통해 시장경제에서의 계약의 중요성과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를 배웠다. 미군과의 계약 체결과 이행은 세계 시장에서 통용되는 국제적인 경영 규범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세운 현대건설의 경우도 동일했다. 6·25전쟁과 월남전에서 미군과의 계약체결과 계약 이행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능력을 키우고 기회를 가지게 된 셈이다. 이렇게 기업의 세계화는 이미 1950년 6·25전쟁으로 시작된 것이며 정부를 포함하여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닌 기업의 발전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조중훈 회장은 기업의 이익과 국익을 일치시키려 노력한 전형적인 대한민국 1세대 기업인이다. 그래서 국가가 도와달라는 일에는 거절하지 못하고 정성을 다했다. “우정은 우정이고, 사업은 사업이다”라는 본인의 원칙에 국가는 예외였다.
 

조양호 회장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기업 이익과 국익을 일치시키려 노력했던 조중훈 회장

국가는 곧 ‘내 나라’였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경제의 ‘내 나라’는 자신의 사업의 토대였기 때문이었다. 삼성에게 국가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의 대상이듯이, 한진에게 국가는 '운송보국’(運送報國)의 대상이었다. 한진그룹이 집중해온 항공운수산업이 어떻게 국가에 기여하는지 조중훈 본인의 글을 통해 보면 다음과 같다.

“수송은 국가 기간사업의 하나로서, 국가경제 및 사회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업종이다. 경제적 이익을 도모함으로써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하려는 것은 모든 산업의 공통된 사항이라 할 수 있으나, 국토 방위와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국가적 과제로 안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항공운송업은 국가경제와 사회 및 안보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여타 업종과는 다른 많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조중훈은 하늘과 바다와 땅에 없는 길을 만들며 나아간 창조적 기업인이었다. 하늘길이든 바닷길이든 항상 지도에 없는 새로운 길이었다. 이는 북한으로 막혀 대륙으로 뻗을 수 없는 섬나라와 같은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요인 때문이었다. 당시 대륙으로의 길은 전체주의 공산체제와 교통하는 ‘빈곤’으로의 길이었고, 바다로 진출하고 항공으로 나아가는 길은 미국, 일본, 유럽 등 자유민주 시장체제로의 길로 ‘번영’의 길이었다.

길이 열린 곳에 산업(産業)이 있었고, 산업이 있는 곳에 번영(繁榮)이 있었다. 조중훈 회장은 물류 운송으로 번영의 길을 연 것이었다. 이렇게 번영의 길로 먼저 들어선 것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기업인들이었다. 부정적인 국제정치 환경을 긍정적으로 만드는 일은 기업인이 담당해야 할 몫이자 고유의 역할이고,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

6·25전쟁이 대한민국에 많은 부정적인 영향을 남겼지만 그러한 부정(否定)을 긍정(肯定)으로 만든 이들은 기업가였다. 기업가는 미군이 쓰다가 버린 ‘도라꾸’를 수리하여 화물 운송을 담당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역할을 기업가가 해낸 것이고 또 기업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또 국내 교역과 국제 무역을 허용하는 시장경제가 존재했기에 한진과 같은 종합 수송기업이 가능했던 것임을 생각한다면,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자유로운 교환이 없었더라면 물자의 수송도 없었을 것임을 생각한다면,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택한 이승만 대통령의 탁견과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주도 경제성장으로의 매진이 기업 경영 환경에 중요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조중훈이 천직으로 여긴 운송사업은 제조된 물품을 회사든 개인이든 소비자에게 전달한다는 의미에서 시장경제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분명하다. 한마디로 한진그룹은 교역의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시장경제 안에서 성장하였고, 교역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시장경제를 활성화시킨 것이고 한국 경제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예를 들어 한진그룹의 일원으로 1968년 8월에 설립된 한일개발주식회사는 1978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군 막사를 건설하였고, 이란의 코람샤항에서 화물하역과 부두작업을 맡아 실적을 쌓았다. 대한항공은 물론 건설 노동자의 수송을 담당했다.

대한민국의 수출주도 경제성장으로 많은 수입물자가 들어오고 수출품이 대규모로 증가하였고, 그리고 건설기업들의 중동 건설 진출 역시 한진해운과 대한항공이 기업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자 배경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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