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인조혈관 사태와 관료에 의한 살인
[이슈분석] 인조혈관 사태와 관료에 의한 살인
  • 노환규 미래한국 편집위원·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 승인 2019.04.15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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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일방적인 가격 후려치기와 갑질 정책에 고어사는 한국 철수를 결정했다.
정부의 일방적인 가격 후려치기와 갑질 정책에 고어사는 한국 철수를 결정했다.

수도관이 노후되어 더 이상 사용을 못할 상황이 되면 수도관을 교체하게 된다. 인체의 혈관도 마찬가지다. 자기 혈관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심장이나 혈관기형 등의 문제가 있을 때에는 혈관을 대체할 인조혈관이 필요하다. 이때 인조혈관은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그 조건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첫째, 혈액은 이물질을 만나면 굳어버리는 성질이 있는데 인조혈관에 피가 닿자마자 피가 굳는다면 절대 안 될 일이다. 그래서 인조혈관은 혈액과 접촉해도 피가 굳지 않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둘째, 압력을 견딜 수 있는 내구성이 있어야 한다. 동맥혈관의 경우 높은 압력이 가해지는데, 오래 사용해도 변함없이 이 압력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세균이 달라붙지 않아야 한다. 혈액 내에는 수시로 세균이 들어올 수 있다.

특히 치과 치료를 받는 경우 일시적으로 혈액 내에 세균이 돌아다닌다. 세균은 이물질에 잘 달라붙는다. 인조혈관에 세균이 달라붙지 않도록 처리되지 않는다면 환자는 쉽게 패혈증에 빠질 수 있다. 그리고 넷째, 인조혈관은 찌그러지지 않고 제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잘 늘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수술이 용이하다.

이상의 조건들을 맞추지 못한 인조혈관을 사용한다면 환자의 생명은 즉각 위험에 처한다. 이런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인조혈관을 만드는 것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일일까? 그렇다. 매우 높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에는 인조혈관을 생산해 내는 업체가 단 한 곳도 없고, 세계적으로도 인조혈관을 생산하는 회사가 몇 개 없다. 의류 소재로 유명한 고어텍스를 생산하는 미국 회사 W.L 고어 앤드 어소시에이츠(이하 ‘고어사’)는 그 회사 중 하나이고 이 분야 세계 최고의 회사다.

1958년 듀퐁에서 일하던 화학기술자 윌버트 고어가 그의 아내와 함께 창업한 이 회사는 1969년 그의 아들인 로버트 고어가 확장형 PTFE를 발견한 이후 고어텍스를 다양한 제품의 소재로 발전시켰다.

1제곱인치당 90억개가 남는 미세한 구멍을 만들어 내는 기술력과 특허를 이용해서 고어사는 섬유분야뿐 아니라 케이블, 반도체 등의 전기전자분야와 항공우주분야, 국방분야로 제품 활용 대상을 넓혔고 인조혈관, 성형보형물 등 의료분야에도 일찌감치 진출해 시장을 석권해왔다.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진 고어사는 인조혈관 분야에서 의료진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으며 제품을 공급해왔다. 그랬던 고어사가 2년 전인 2017년 더 이상 대한민국에 인조혈관을 공급하지 않겠다며 전격적인 철수를 선언했다. 그리고 모든 계약을 해지하고 식약처 허가사항도 자진 철회해버렸다. 시장 철수를 말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실제 실행한 것이다.

고어사는 왜 대한민국에 더 이상 인조혈관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철수를 강행한 것일까. 거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정부의 일방적인 가격 후려치기 정책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치료재에 대한 가격결정권은 오로지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정부기관에 있다. 제품 공급자와 협상하는 절차가 없이 정부기관이 일방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정부는 2012년에 제품가격을 22% 낮춘 데 이어 2016년에 추가로 19%를 낮췄다.
 

인조혈관 부족사태에 식약처는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인조혈관 부족사태에 식약처는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갑질’과 고어사의 철수, 피해는 환자의 몫

이를 통해 STRETCH TYPE(30cm이상 40cm미만/PTFE재질 코드G0433004)의 경우 제품가격은 46만 2890원이 되었다. 문제는 같은 제품이 미국에서는 82만 1825원에, 중국에서는 147만 4616원에 공급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10cm이상 20cm미만/PTFE재질 코드G0431004의 판매가격은 15만 7180원) 위 제품들의 한 해 사용량은 50~300건으로 알려졌는데 제품 하나의 평균가격을 대략 30만 원이라고 계산하면 고어사 인조혈관의 한 해 국내 매출은 1억 원 미만에 불과하다.

이 매출은 판매조직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매출로 보기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는 미국 판매가의 절반, 중국 판매가의 1/3을 일방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고어사가 대한민국에서 철수를 선언한 두 번째 이유는 식약처의 갑질 때문으로 알려졌다. 해외에서 의료제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기업들은 해당 제품이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라는 수준에 적합한지 여부를 인증 받는 절차를 거쳐야 제품을 수입해 판매할 수 있다. 그런데 3년마다 돌아오는 GMP인증 절차 과정에서 인가권을 갖고 있는 식약처의 갑질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많다.

외국 현지 생산시설에 대한 GMP 인증을 받으려면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식약처 공무원과 심사기관 소속 직원의 해외 체류비(왕복 항공료·숙박비·식사비·통역비 등)를 모두 부담해야 하는데, 비용의 부담 뿐 아니라 인증이 수개월씩 지체되는 경우도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현지 심사과정에서 기업의 내부 비밀자료까지 공개를 요구하는 등의 지나친 요구를 하는 것이다. 이를 음식점으로 비유하면 위생시설을 점검하면서 영업비밀에 속하는 요리법(레시피)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수입제품을 판매하는 회사들이 GMP인증으로 인해 겪는 고통과 업계의 불만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고어사는 국내 시장이 작아 이익도 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강압적으로 가격을 추가로 낮추고 식약처의 갑질이 계속되자 전격적으로 철수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고어사가 철수 결정을 내리게 된 직접적 원인은 정부에 있다. 그렇다면 고어사의 한국 시장 철수로 인해 누가 피해를 보게 되었을까. 정부였을까? 아니다. 환자들이다. 특히 소아환자들이다. 성인들이 사용하는 인조혈관은 대체품목이 있었지만 소아환자들에게 사용되는 인조혈관은 고어사가 단독 제조 공급하는 제품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2017년 2월 27일 고어사가 철수를 선언하자 심장수술을 담당하는 의사들이 중재를 위해 나섰다.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와 대한중재혈관외과학회가 2017년 4월 25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연간 수백명에 달하는 선천성 복합심장기형 소아환자가 수술을 받지 못해 사망할 처지에 놓였다”라고 발표한 것이다. 의사들이 나선 이유는, 고어사의 철수 사태로 인해 심장병 수술을 받아야 할 환아들의 생명이 위태롭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당시 의사들은 정부의 잘못된 가격인하조치 등을 지적하며 향후 벌어질 인조혈관 부족 사태가 환아들의 생명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이다. 정부가 뒤늦게라도 고어사를 붙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배경에는 “설마 돈이 되는 시장을 놓고 기업이 철수를 하겠어?”라는 짧은 생각과 “돈벌이 눈 먼 기업이 심장병 환아를 죽음으로 내몬다”는 일부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고어사는 철수 선언 7개월만인 2017년 9월 30일 예고했던 대로 한국의료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정부의 예상을 벗어난 일이었다.

노환규 미래한국 편집위원·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노환규 미래한국 편집위원·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고어사를 돈밖에 모르는 기업이라 할 수 있나

그로부터 1년 반의 시간이 흐른 2019년 3월 고어사가 철수하기 전 병원들이 긴급히 그들로부터 미리 사다놓은 인조혈관들이 소진되었다. 그리고 그 소식이 언론에 보도됐다.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또 다시 “돈밖에 모르는 기업이 윤리의식을 저버리고 생명을 포기했다”라며 고어사를 강력히 비난했다.

그러나 정부가 책임을 모면하기는 어려웠다. 여론이 들끓었다. 그 동안 정부는 무엇하고 있었느냐는 질타가 잇따르자 보건복지부는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고어사가 자진 취소한 식약처 허가사항에 대해 취소 철회 조치를 해놓았고 고어사가 원하는 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도 해놓았는데 고어사가 국내 시장에 대한 복귀의지가 없어 제품수입이 안 되고 있는 것이라고 책임을 고어사에 돌렸다. 그리고 GMP 인증과 관련해 식약처와 갈등이 있었다는 소문도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얼마 후 고어사는 국내 시장 철수 이후에 정부로부터 어떤 요청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힘으로써 파문이 일었다. GMP 인증 관련해 식약처의 지나친 갑질 때문에 고어사가 철수를 결정하게 되었다는 사실 역시 이미 업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어서 정부의 변명은 더 큰 비난으로 돌아왔다.

다급해진 정부는 고어사를 직접 방문해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뒤늦게 “고어사가 다른 나라에서 받는 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GMP 인증절차를 면제해 주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고어사는 최근 일단 급한 대로 인조혈관 20개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20개 혈관을 자신들이 깎아놓았던 금액의 3배인 개당 137만 2000원에 매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조치는 단 몇 개월의 시간만을 벌어놓은 것일 뿐, 아직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요원한 상태다. 고어사가 다시 한국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 없다고 입장을 밝힌 후 아직까지 그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몇 종류의 제품은 앞으로도 공급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상태다.

사태가 극적 전환을 맞지 않는다면 조만간 인조혈관 부족으로 인해 수술을 받지 못해 사망하는 환아가 발생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 환아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는 누구라고 해야 할 것인가? 돈 문제로 시장에서 철수한 악덕기업인가? 아니면 그들을 이 땅에서 내쫓은 정부인가? 그리고 그 동안 소아에게 필요한 인조혈관을 개발해서 만들어 공급해 옴으로써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데 기여해 온 기업은, 악마인가 천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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