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지배하면 나라를 지배한다(?)”
“TV를 지배하면 나라를 지배한다(?)”
  • 미래한국
  • 승인 2006.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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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희 前 KBS영상사업단 사장
▲ 이민희 전 KBS영상사업단 사장
盧정부 이후에도 公營방송 ‘독립’은 요원방송위원과 理事 임명 時 국회동의 필요매일 밤 9시 ‘땡’ 하는 시보(時報)와 함께 전두환(全斗煥) 前 대통령 관련 뉴스가 보도된다 하여 TV 9시 뉴스가 ‘땡전(全)뉴스’로 불린 적이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003년 3월 4일 KBS 창립기념식에 참석해 “방송이 없었다면 나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면서 “KBS는 이제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KBS가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게 하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오늘날 ‘땡노(盧)뉴스’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영방송이 ‘독립’을 이뤘다고 믿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공중파 방송의 친여적(親與的) 편향성은 군사정권 시절이나 ‘참여정부’를 내건 노정권 하에서나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일반 시민들도 ‘KBS나 MBC가 과연 공영(公營)방송인가 관영(官營)방송인가’ 하는 우문(愚問)을 던지게 됐고, KBS의 편파보도가 문제가 돼 최근에도 ‘시청료거부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공영방송 편파보도 나아지지 않아” 32년 방송기자 경력의 이민희(李民熙) 교수(홍익대 언론학)는 “세월이 지나고 제도가 발전했어도 우리 언론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각 언론사에 정보부, 보안사령부, 경찰 직원이 상주하면서 직접적인 보도관제(報道管制)를 하던 시절은 박정희·전두환 군사정부이후 사라졌지만, 지금은 간접적으로 관제가 이뤄지고 있다고 봐야죠. 요직 임명이나 회유, 잦은 접촉과 협조요청 등이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교수는 “보도국 데스크의 통제가 과거와 같이 먹히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KBS의 경우 현 정연주 사장 체제 하에서 팀장제도가 도입됐고 국장급 간부도 ‘팀장’으로 일선 기자들을 관리하게 되면서 데스크의 권위와 통제력이 급격히 약화됐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운이 좋은 것은 젊은 PD와 기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들 PD나 기자들이 정론을 펴겠다는 의지나 ‘기계적 중립’적 입장에서 객관적 사실을 보도하겠다는 확고한 윤리체계가 없다는 것이지요.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치권력이 ‘TV를 지배하는 자가 나라를 지배한다’는 말에 현혹되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마찬가지입니다.” 공중파방송은 역사적으로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노변정담(爐邊?談)이나 히틀러 나치정권의 라디오선전, 구 동유럽 국가들의 사회주의체제 구축 등의 예에서와 같이 유용한 정치수단으로 사용돼 왔다. KBS 방송위원 과반수 여당 차지 이민희 교수는 정치권의 방송개입을 막기위한 방안으로 일본의 예를 소개했다. 일본방송법은 NHK의 의결기관인 경영위원회 위원을 총리가 임면(任免)하도록 하면서 동시에 중·참의원 양원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함으로써 정부가 국회의 규제를 받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경영위원회는 8개 일본지역과 4개 전문분야를 대표하고 이들이 회장을 선출함으로써 인사와 운영권의 독립을 보장 받고 있다.“한편 우리는 KBS 방송위원회 위원 9명 중 과반수를 여당이 임명하도록 하고 있어요. 제도적으로 여권의 개입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죠. KBS의 신뢰성과 공정성의 회복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KBS 방송위원과 이사를 임명할 때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이민희 교수는 1968년 동양방송(TBC)에서 방송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1979년 8월에는 그가 보도한 ‘YH무역회사’ 농성사건을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문제 삼으면서 해직 위기에 몰렸으나 능력을 인정 받아 이듬해 1980년 언론통폐합 때에도 ‘구제’될 수 있었다. 이 기자는 KBS에서 동경특파원, 심의실장, 해설위원, 정책연구실장, 문화사업단 사장, 영상사업단 사장 등을 맡으며 승승 장구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요인으로 신앙을 언급했다. “방송기자들은 방탕한 생활에 빠지기 쉬워요. 아침저녁으로 방송에 출연하면 여성들로부터 팬레터도 많이 오지요. 하지만 10년간 고생하던 고질병이 교회에서 하루 만에 기도로 치유되는 은혜를 체험한 이후 새로운 생활을 결심했고 회사와 가정에 더욱 충실하게 됐어요. 특파원 발령은 4년 7개월 동안 매일 드린 새벽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영상사업단 사장으로 최대 흑자 남겨 그는 귀국 후인 1986년 5월 편집회의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동정이 매일 톱뉴스로 보도되는 데에 따른 문제점을 처음으로 제기했고 KBS 뉴스가 이날 처음 동정보도 대신 체르노빌원전사고소식을 톱기사로 보도함으로써 ‘땡전’뉴스가 마감되는 데 기여했다. 이 기자는 1998년 문화사업단 사장으로, 이듬해인 1999년에는 KBS영상사업단의 사장으로 임명돼 사상 최대의 매출과 흑자를 이끌어냄으로써 경영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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