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진의 리더십 명상편지 - 우린 정신에서 졌다?
이용진의 리더십 명상편지 - 우린 정신에서 졌다?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4.23 13: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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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은 정말 가깝고도 먼 나라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물고 물리는 지독한 영욕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장 가까운 나라지만 참으로 먼 나라가 일본이다. 한국은 많은 사람들이 입만 열면 극일(克日)을 외쳤다. 우리가 극일을 외치는 큰 이유는 아마 가장 대표적인 동기가 임진왜란이고 36년간의 일제강점의 역사 때문일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겠지만 필자는 이 두 사례, 즉 전쟁과 침략의 아픔이 한국 사람들의 가슴 속에 뿌리깊게 박혀 있어서 무려 427년이 지났지만 임진왜란은 모든 한국 사람들의 원한이 돼 있고 일본의 강점으로부터 벗어 난지 7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강점의 치욕의 뿌리는 강하게 남아서 한국인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일본을 존중하고 부러워하며 일류 국가로 인정하지만 한국만이 일본을 우습게 보고 ‘왜놈’ 또는 ‘쪽바리’라는 말로 무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일본의 조상들이 백제에서 건너갔다거나 도자기는 한국이 전해줬다던가 하는 일에서 우월감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고 보면 우리가 독립을 했다면 일본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했는가? 진정 극일을 하고 있는가? 극일을 외친 것만큼 극일이 되었는가?

일전 어느 지자체 의원들이 일본제품에 대해서 친일의 딱지를 붙이라는 조례를 제정하여 발표하는 바람에 약간의 소란이 있었다. 참으로 코메디의 한 장면이다. 정말 무식한 짓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해서 한국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딱지 붙인다고 극일이 될까? 한국이 일본에서 구입하는 기계, 장치류, 원료 등등이 어느 정도 인지를 알고 하는 짓인가 싶다. 일본이 교역을 중단하면 한국은 국가나 경제가 정지가 된다. 이런  이성을 잃은 행동으로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국경영인력연구원(BMC) 이용진 원장
한국경영인력연구원(BMC) 이용진 원장

우리가 일본을 이긴다고 하기 전에 우리는 진정 그러한 정신은 가지고 있는가 의심스럽다. 필자는 우리는 일본에 이미 정신에 졌다고 말하고 싶다. 난 친일파가 아니다. 극일파다.  일본과 한국의 역사에서 정말 전환점이 되고 두 나라의 차이를 크게 벌리게 한 역사적 분기점이 1543년이라고 생각한다. 1543년은 한국과 일본에 정말 의미 있는 해다. 

1543년, 일본에서는 포르투갈 상선이 해풍에 표류하다 일본 다네가시마에 상륙했다. 포르투갈 상인들이 소총 두 자루를 성주에게 내밀고 사라고 했다. 당시 15세의 성주 도카다카는 “보기 드문 보물이다”라고 하며 소총 두 자루를 샀다. 그리고 그것을 제조하게 했다. 대장장이는 격발이 잘 안 되자 그 기술을 배우려고 자신의 고명 딸을 포르투갈 상인에게 시집을 보냈다. 자기 딸을 팔아 총기술을 개발하고 총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총을 더 개조하여 임진 왜란에서 사용했다. 임진왜란은 철포를 가진 대포와 철포가 없는 무대포의 전쟁이었다. 그 결과 조선 산천이 피바다로 변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면 1543년에 조선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성리학이 번창하면서 서원이 최초로 개원된 해가 그 해다. 유교가 온 나라를 경영하는 잣대가 되었다. 오늘 날 말하자면 지방의 유지나 서생을 양성하는 교육 기관이 설립된 것이다. 유교는 결국 조선 양반들의 정신을 병들게 했다. 시작은 그런 뜻이 아니었겠지만  자연적으로 파벌, 파당, 패거리, 눈치, 험담, 비난, 조작, 누명 씌우기, 심지어는 음모 등의 권모술수가 횡 횡하고 줄 세우기, 실용이 아니라 대부분 체면, 명분에 집착하는 사유가 형성된 것이고 이것이 47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 정치판의 토양의 뿌리다.

소총을 보더라도 일본 사람들은 “칼보다 빠르다”는 생각에 전쟁에 사용하는 것으로 시작했다면 조선에 전해진 소총은 “나는 새도 잡을 수 있네”라고 해서 조선에서는 새 잡는 총, 조총(鳥銃)으로 이름 지어졌던 것이다. 일본은 전쟁에 쓰는 총으로, 조선은 새 잡는데 사용하는 조총으로 프레임을 정한 것이다. 얼마나 무지하고 지력이 파탄 난 나라인가? 그러한 역사적 사건들 이후에 각종 역사적 사건들을 해석하는 바탕이 근본적으로 다르게 반영되었다.

예를 들면 영국과 청나라가 벌인 1840년 아편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하고 패한 청나라는 홍콩을 영국에게 넘겼다. 이런 사건을 두고 조선의 관리들은 “무사의(無事矣), 즉 중국은 무사하다”라고 보고했으나 일본은 다방면으로 정보를 수집해서 보고한 내용을 보면 “다른 나라 일이라도 우리 경계가 될 일이다.” “그 옛날 십만 몽골 강병을 물리쳤듯 포대를 쌓고 실탄을 터뜨려야 한다”라고 조정에 보고했다.

조선과 일본의 차이는 무사안일과 위기의식으로 경계하는 갈림길. 1543년 철포(鐵砲)를 선택한 일본과 성리학을 선택한 조선 두 나라가 300년이 지나서 또 상이한 선택을 하고 만 것이고 그때부터 일제 강점의 비극적 역사가 서서히 잉태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2019년, 지금은 어떤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우리는 조롱하면서 우리가 잘 살고 있다고 우쭐했고 삼성전자의 경이적 실적에 자부심을 느끼고 일본의 소니, 파나소닉, 샨요, 캐논 등을 우습게 보았다. 그리고 모든 부분에서 일본을 앞선다고 착각했다. 참으로 착각이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실업자가 130만을 넘어섰고 기업들은 아수라장에 갇혀있다.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은 하층민으로 내려앉고 매물로 나온 공장들이 수두룩 하지만 팔리지도 않고 공단은 비어가고 수출도 모두 하향세다.  

그러나 일본의 아베노믹스는 최고 번창이다. 도쿄 시내엔 각종 공사가 한창이고, 일자리는 완전 고용에 가깝고 일자리가 넘쳐나도 연봉 1억 2천만 원 이하 계층에게는 시간외 초과근로를 허용했다. 탄력근로제다. 특정 취미·사물에 깊은 관심만을 가지고 다른 분야의 지식이 부족하고 사교성이 결여된 인물을 말하는 오타쿠를 제외하곤 모든 청년이 취업한다. 일본은 희망출산율을 1.8로 올려 잡았고, 100세 시대를 대비해 의료천국을 구축 중이다. 예전의 일본이 아니다. 곳곳에 활력과 희망이 넘친다. 

어느 경제 고위관료가 "우리가 5만 달러 수준만 된다면 누구도 한국을 무시못할 것인데..."라고 한 말이 귀전에 맴돈다. 그러나 한국의 시계는 전부 과거로 돌아갔다. 과거에만 집착하고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 누구도 미래를 이야기 하지 못한다. 미래를 말하지 않고 희망을 주지 못하는 사람은 리더가 아니다. 리더 될 자격이 없다. 리더나 지도자들이 세상과 사물을 보는 관점들의 차이가 나라의 차이를 만들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도 역시 중요한 것은 리더가 리더다워야 하는 것이다. 그건 자세와 정신에서 나온다. 이미 우리는 정신에서 일본에 졌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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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19-04-25 02:13:24
세계사로 볼때,한나라때 동아시아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은 이미 세계종교 유교가 자리잡았음.

베트남의 팜 띠엔 번 전(前) 주한(駐韓)대사가 보는 견해. 한국과 베트남은 아직도 여전히 유교국가.

http://blog.daum.net/macmaca/2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