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참회록을 써야하는 시대
언론이 참회록을 써야하는 시대
  • 박한명 미디어비평가
  • 승인 2019.04.25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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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TV, MBN, KBS가 보여주는 대한민국의 현주소
박한명 미디어비평가·미디어연대정책위원장
박한명 미디어비평가·미디어연대정책위원장

말 그대로 점입가경이다. 대한민국 언론현실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실수를 지나치게 크게 벌하고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할 일에 대해선 아무 일도 아닌 양 무시한다. 인간사에서도 사회에서도 신상필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모든 관계가 엉망이 되고 체계가 망가지지만 언론도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회의적인 시각이 부쩍 증가하고 있지만 어찌됐든 ‘사회적 공기(公器)’의 구실을 하는 이상 언론이 병들면 사회와 국가가 병들게 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최근에 연합뉴스(TV)와 MBN, KBS에서 벌어지는 심상찮은 일들은 그래서 간과하기 어렵다. 연합뉴스TV가 얼마 전 보도국장과 뉴스총괄부장을 보직해임하고 보도본부장의 직위도 해제했다.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 방미 소식을 전하다가 문 대통령 사진 아래 북한의 인공기를 넣었던 것이 보도 책임자들이 줄줄이 옷을 벗게 된 원인이라고 한다.

자막 실수로 방송사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 등 간부들이 한꺼번에 이런 식의 징계를 당한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연합뉴스TV의 실수는 엄밀히 말해 실수도 아니었다. 문 대통령이 워낙 미국과 북한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열심히 하다 보니 방송사 간부들이 ‘알아서’ 그 심중을 파악하고 따르다 도가 지나쳐 나온 ‘의도적인’ 실수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김정숙 여사를 김정은 여사로 잘못 표기했다가 보도국장이 정직3개월 징계를 받은 MBN 사례도 말이 안 되긴 마찬가지다. 또 다른 뉴스프로그램 방송 중 화면 하단에 “CNN ‘북 대통령, 김정은에 전달할 트럼프 메시지 갖고 있어’”라고 문 대통령을 북 대통령으로 잘못 쓴 자막 실수도 영향을 주었을 것 같긴 하다. 방송사가 방송에 완벽을 기하도록 노력해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런 종류의 실수가 과거부터 늘 있어왔던 것도 또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보도국장이 그런 일로 정직을 당했다거나 보직해임을 당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연합뉴스TV나 MBN의 징계는 상식을 넘어 과도한 것이다. 강원도 산불 특보 대신 정권을 옹호하는 몰상식한 ‘오늘밤 김제동’을 방송한다거나 어제의 일기예보를 오늘 재방송하는 그런 실수를 하고도 보도책임자들이 징계를 받지 않는 국가재난 주관방송이자 공영방송인 KBS와 비교해보면 명확해진다. KBS를 비난하는 민심이 들끓으니 통합뉴스룸 국장이 자진 사의 형식으로 물러나며 책임을 지는 모습을 취하긴 했지만, 이건 징계와는 엄밀히 다른 이야기다.

이승만 건국대통령에 대한 허위 매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달린 대형 산불 재난에도 늑장부리기, 일기예보 재방송 등 누가 봐도 명백한 기강해이로 빚어진 참사 수준의 방송사고를 냈음에도 KBS는 아직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보도책임자들 목을 날린 연합뉴스TV와 MBN의 징계수준과 동일한 잣대를 적용한다면 당연히 양승동 사장, 정필모 부사장 등 경영진 모두 사표를 써야할 사고였다.

언론이 권력의 뜻을 능동적으로 보도하는 시대의 참혹함

더 코미디 같은 일은 이런 KBS가 자사 프로그램을 통해 연합뉴스 오보 건을 핑계 삼아 정부지원금폐지 국민청원 건 운운하며 연합뉴스TV를 비판했다는 사실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 아닌가. 수신료을 내지 못하겠다는 국민 청원이 아직 20만이 안 되니 KBS는 괜찮다는 이야기인가. KBS는 모 교수를 패널로 출연시켜 “연합뉴스와 자회사인 연합뉴스TV가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데 대한 국민들의 비판적 시각이 응집된 것”이라며 국민청원의 의미를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연합뉴스가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그럼 한 번 묻자. 방송 프로그램에 정권 홍위병들이 출연해 날뛰고 날마다 편파보도를 일삼아 도저히 KBS를 못 보겠으니 수신료를 납부할 수 없다고 몇 만 명에 이르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시민단체에 명단을 주어 KBS에 수신료 거부의사를 밝힌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국민들의 비판적 시각이 응집된 것이 아닌가. 그 사건이야말로 KBS가 자초한 일이 아닌가. KBS는 남의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주제파악 못하는 KBS의 천둥벌거숭이 짓은 조선일보에 칼럼을 기고한 전 외신기자를 공격한 낯부끄러운 사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KBS 기자가 전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을 지낸 외국인 기자에게 광화문 세월호 추모 시설을 반대하는 칼럼을 조선일보가 요구해서 썼느냐는 질문을 건넸다고 한다.

1982년부터 한국에서 일해 온 전 외신기자, 당사자에게서 경위를 설명 듣고도 “한국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에게 특정 내용의 칼럼을 쓰도록 시켰거나 의도적으로 다르게 번역했을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영어 원문까지 요구했다니 황당할 따름이다. 자칭 언론자유의 투사들이 장악했다는 KBS에서 언론 자유가 넘치지 않고 언론 탄압을 자행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지금은 문재인 정권의 충실한 대리인처럼 놀랍게 변신했지만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과거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시절(1996년) 올곧은 말도 곧잘 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말을 빌리면 다음과 같다. “언론이 정치권력의 의중을 파악해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보도 태도는 정말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이 위원장이 넋 놓고 쳐다만 보고 있는 KBS의 오만함과 일련의 사건들, 그리고 연합뉴스TV와 MBN 컴퓨터그래픽, 자막 오기와 같은 해프닝들은 결국 모두 청와대 권력의 의중을 파악하다 벌어진 일들이다. 공기(公器)인 이들 언론사들이 안팎에서 벌이는 웃지 못한 촌극은 지금의 대한민국이 병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음을 알리는 위험한 신호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지금은 언론이 참회록을 써야하는 저항의 시대다.

박한명 미디어비평가·미디어연대정책위원장(전 미디어펜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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