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기획 리포트] 작은 정부의 뿌리...최소 정부가 최선의 정부다
[미래기획 리포트] 작은 정부의 뿌리...최소 정부가 최선의 정부다
  • 허화평 전 국회의원
  • 승인 2019.04.3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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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작은 정부의 뿌리
Ⅱ 신자유주의자들의 경고
Ⅲ 자유의 길, 번영의 길

“최소 정부가 최선의 정부다.”

이것은 지구상에 국가가 출현한 이래 이성적 인간이 추구해왔던 염원(念願)이다. 국가란 국민 개개인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간섭하면서 군림하는 존재이자 영원한 갑(甲)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국민의 삶에 개입하고 간섭하는 장치가 정부다. 정부란 생겨난 순간부터 없어지지 않는 한 작아지기보다 커지는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것은 인간의 바람과는 정반대되는 현상이다.

정부가 작을수록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자율성은 그만큼 신장되지만 정부가 커지게 되면 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자율성은 그만큼 위축되고 개인과 기업의 조세부담은 증가한다. 따라서 정부의 크고 작은 문제는 개인과 기업의 이익문제와 더불어 자유의 문제, 시장의 자율성 문제, 즉 자유주의 체제의 본질적 문제로 귀착되기 때문에 자유주의 체제 국가의 지도자들, 국가운영 주체는 정부의 작고 큰 문제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구미 선진 자유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작은 정부, 큰 정부에 대한 논의를 학계에서나 정계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해본 적이 없다. 1980년대 영미 국가들의 영향을 받아 정부 차원에서 논의되고 시도된 적이 있었으나 한때의 유행과도 같은 현상으로 끝났을 뿐 지속적이고 가시적인 결과는 거두지 못했다.

1980년대 영미 국가가 준 영향이란 작은 정부 바람을 의미한다. 당시 영미 국가를 중심으로 일어난 작은 정부 바람이란, 1930년대 이래 구미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학문적 노력에 의해 정립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가 글로벌화(globalization)를 가속화시키는 가운데 생겨난 큰 정부 실패에 대한 반동 추세를 뜻한다.

주의 사상이 미국을 작은 정부로 이끌었다.
자유주의 사상이 미국을 작은 정부로 이끌었다.

작은 정부(small government)와 큰 정부(big government)를 가름하는 결정적 기준의 하나는 국가 경제 체제다. 경제자유가 없는 사회에서 정치자유란 무의미하고, 정치자유의 종착점이 경제자유이기 때문이다. 18~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를 풍미했던 자유방임(laissez-faire)주의에 근거한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를 반대하고 시장의 자생적(spontaneous)이고 자율적인 기능과 개인의 자유를 전제로 하되 법치주의에 입각한 공정한 경쟁을 중시하고, 사유재산권을 절대시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큰 정부 운영체제를 공통점으로 하는 공산주의 소련, 나치즘 독일, 케인주주의적 영미 국가에 의한 국가 계획 및 통제 경제와 정부주도 시장경제를 반대하면서 작은 정부론을 내세웠고, 국제적으로는 상호존중, 상호의존 정신에 바탕을 둔 교역이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에서 자유교역(free-trade)을 역설했다.

공산주의 소련은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고 사회정의를 구현한다는 대원칙 아래 경제를 계획하고 통제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개인의 자유를 박탈했고 자유시장은 허용하지 않았다. 정부가 인민에게 일자리를 지정해주고 빵을 배급해주는 극단적 큰 정부 체제였기 때문에 개인과 시장은 없고 공산당과 정부만 존재하는 동물농장을 방불케 하는 사회로 추락했다. 유럽 패권을 노리면서 국가 총동원 체제에 의존했던 나치스 독일은 국가가 개인과 시장을 통제하고 국민은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한 큰 정부 체제였다.

수정자본주의 이론으로 알려진 케인즈주의(Keynesianism) 노선을 채택했던 영국과 미국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 재정으로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보편복지 정책을 위해 증세와 적자재정에 의존하는 큰 정부 체제를 유지했다. 공산주의 소련제국의 실험은 철저히 실패했고 나치스 독일은 패망했으며 영국은 ‘영국병’을 앓아야 했고 미국은 뉴딜 정책이 남긴 긴 침체의 터널을 통과해야만 했다.

공산주의 소련제국, 나치스 독일, 케인즈주의 영국과 미국의 경우 체제의 차이는 컸으나 모두가 큰 정부 체제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탄생한 소련제국이 1991년 붕괴하기까지 74년간은 위에서 언급한 국가들이 국제무대의 주역으로 활동한 큰 정부 전성시대였고 1991년 동서 냉전 종식은 큰 정부 전성시대의 퇴조를 초래했다.

역사 전개를 도전과 응전의 반복 현상이라고 했던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의 이론을 증명이나 하듯이 큰 정부 시대에 대한 반동 현상으로서 작은 정부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1980년대 접어들면서 글로벌화에 편승한 신자유주의 사상과 이론에 입각한 작은 정부 시대를 주창한 선두주자는 영국과 미국이다.

이들 국가들이 선두주자 역할을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개인주의 사상을 본질로 삼는 자유주의 체제의 모국과 챔피언 국가라는 역사적 배경이 작용한 결과다. 2차 세계대전, 동서 냉전을 치르면서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정부 역할을 축소함으로써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개인과 시장의 역할을 최대화 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 된 상황에서 전개된 현상이 작은 정부 바람이다. 큰 정부 시대는 정치 엘리트, 관료 엘리트들의 전성시대였고 개인은 국가에 우유를 제공해야 하는 젖소 같은 존재로 살아가야 했으며, 시장은 정부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춰야만 하는 시대였다. 나치스 히틀러 시대를 살았고 전후 라인강 기적의 사상과 이론을 제공한 바 있는 독일의 대표적 신자유주의 사상가였던 오이켄(Eucken)은 큰 정부 체제에 의한 수혜적 복지정책과 통제경제를 반대하면서 개인의 책임을 강조했다.

신자유주의 사상이나 작은 정부 이론이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었던 한국 사회에서 어느 날 갑자기 이에 대한 비판의 돌풍이 불어 닥친 것은 2008년 미국 월가에서 비롯된 국제금융위기 직후였다. 좌파 지식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시장만능주의 정책으로 인해 1% 대 99%, 양극화 사회가 되었다”라고 비판하기 시작하자 좌파 정치인들과 언론은 부화뇌동하면서 경제민주화를 주장했고, 우파 지식인들과 언론은 침묵하거나 소극적 동의를 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을 뿐 어떠한 이론적 반박도, 비판도 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실체가 없는 중도실용주의 운운하면서 기회주의 태도를 보였으며, 박근혜는 2012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함으로써 한국의 정치·사회의 지적 풍토가 얼마나 빈약하고 천박한가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일제 식민시대 국가운영 방식에 익숙할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은 건국한 날부터 정치인과 관료가 국정을 좌우하는 큰 정부 체제였으며 관치시장경제 체제로 일관해왔을 뿐 아니라 지금은 그 강도가 더 강해지면서 더 큰 정부체제의 길로 폭주하고 있다. 한국은 외국 경제전문가들이나 우파 지식인들의 주장과는 달리 규제과잉 국가가 아니라 규제결핍 국가이고 가장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사람이 살기 어려운 ‘시장만능주의’와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체제’ 국가임을 강조하면서 경제를 시장에만 맡겨둘 수 없다고 주장한 대표적 좌파 교수 출신 인사는 최근 청와대 정책기획 책임직을 떠나 주중대사로 영전(?)한 장하성 박사다. 그의 주장에 동조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것은 부끄러운 선동이다.

우리의 정당정치, 시장경제 현상은 겉보기엔 자유민주정치와 자유시장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악성 권력정치, 악성 관치경제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더 심화되고 있다. 36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 영국 언론인 출신 마이클 브린(Michael Breen)은 2019년 1월 출간한 <한국, 한국인>에서 한국은 “표면적으로 보면 자본주의 국가이나 현실적으로는 중앙정부 통제를 수용하고 있는 면에서 사회주의 국가였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최근 고인이 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푸념을 연상케 한다. 조양호 회장은 고인이 되기 얼마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인데도 반자본가 정서가 심한 사회다.”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적으로 생겨났다기보다 반자본주의적 좌파 지식인들, 노동세력, 시민단체들이 의도적으로 조장한 면이 크다. 현 정부의 공정거래위원장인 김상조는 대기업을 적대시하는 대표적 인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가 작을수록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자율성은 향상된다.
정부가 작을수록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자율성은 향상된다.

국가는 필요악이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국가적 과제는 큰 정부 틀을 벗어나 작은 정부 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큰 정부 틀을 유지하는 한 G-7 국가 수준에 도달하고 국제무대에서 선진 문명국가 반열에 오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국가와 정부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크고 작은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인간이 지구상에 처음 출현했을 때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 세계가 개인 단위, 가족 단위, 씨족 단위, 부족 단위, 민족 단위로 성장하면서 생겨난 것이 국가다. 인간이 공동체, 즉 국가를 위해 왕을 필요로 했을 때 왕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가를 경고한 이야기가 구약성서에 흥미롭게 기록되어 있다. 이 경우 왕(王)이란 국가 공동체와 정부, 그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유대민족이 자신들이 믿는 창조주 야훼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간청했을 때 허락해주면서도 왕을 세우게 되면 지극히 어려운 일이 닥치게 될 것이라는 심각한 경고를 남겼다.

“그런 왕이 너희 가축 1/10을 가져가고 너희들은 그의 노예가 될 것이다. 그날 너희는 너희들을 위해 너희 스스로 택한 왕 때문에 울부짖게 될 것이다.”

먼 훗날 나치스 독일과 공산주의 소련제국의 인민들이 겪어야 했던 경험이 이를 웅변으로 증언해주고 있다. 야훼가 유대민족에게 왕을 세우도록 해준 것은 왕으로 인한 위험성보다 필요성이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가 없는 인간 사회는 만인(萬人)에 대한 만인(萬人)의 투쟁 현상으로 인해 어떤 개인도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 존재가 국가다. 위험하지만 필요한 존재, 즉 필요악의 존재가 국가다.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국가를 바다의 괴수(怪獸)인 레비아탄(Leviathan)에 비유했다. 그는 국가를 괴력을 지닌 괴수, 맹수와 같은 존재로 규정하면서 통치자들과 인민들로 하여금 그러한 속성을 지닌 국가를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안전한 방법인가를 고안해 내고자 고심했다. 따라서 국가 통치, 국가 관리란 괴수를 순치하고 괴력을 억제함으로써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므로 괴수의 괴력을 최대한 약화시키고 최소화시키는 것이 필요악의 요소를 최소화하는 최선의 방책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최소 정부, 작은 정부 논리를 의미한다. 인류 역사가 국가와 정부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죄악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님을 고려할 때 홉스의 레비아탄 이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큰 정부, 작은 정부의 판단 기준

큰 정부, 작은 정부란 자칫 추상적이자 상대적 개념으로 인식하기 쉽지만 산술적 기준과 비산술적 기준으로 비교·판단할 수 있다. ‘산술적 판단 기준’이란 정부 행정 관리체계를 중심으로 판단하게 되는 기준이고 ‘비산술적 판단기준’이란 정부 권력 관리 체계를 중심으로 판단하게 되는 기준이다. 산술적 판단 기준이 되는 정부 행정 관리 체계에서 판단 원칙은 최소의 낭비성과 최대의 효율성이다. 이 원칙을 따르는 것이 작은 정부의 길로서 최소한의 행정 및 공공조직과 최소한의 공공요원, 최소한의 간섭과 규제, 최소한의 비용과 최대한의 생산성과 효율성 추구를 의미한다. 이것과 반대되는 것이 큰 정부 길이다.

비산술적 기준이 되는 권력 관리 체계에서 판단 원칙은 권력 분립 및 권력간 견제와 균형 작동 여부와 이를 뒷받침하는 법치주의 확립 여부다. 권력 분립과 견제 및 균형 원리에 입각하여 어떤 경우에도 권력이 일방적으로 행사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으며, 정치 엘리트와 관료 엘리트가 필요 이상의 권력과 권한 행사를 하지 않고 주권자인 국민에게 봉사할 때 작은 정부 체제가 된다.

이것과 반대되는 것이 큰 정부다. 정부의 크고 작은 것을 결과적으로 판가름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 재산권, 시장의 자유와 자율성에 대한 보장 및 보호 수준 여부다. 작은 정부 체제는 이들 요소들을 최대한 보장·보호하고 신장시키지만 큰 정부 체제는 이들 요소들을 제한하거나 축소시킨다. 극단적 큰 정부 체제는 공산주의 국가 정부 체제이고 극단적 작은 정부 사상은 무정부주의자들의 무정부주의(anarchism) 사상이다. 오늘날 사회주의 국가들은 큰 정부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 국가가 중국이다. 극단적 큰 정부 체제 국가는 북한과 베네수엘라이고 신정 국가인 이란과 아랍제국도 큰 정부 체제 국가다.
 

역사상 최소 정부 선구자는 미국이고, 오늘날 작은 정부 챔피언도 미국이다.
역사상 최소 정부 선구자는 미국이고, 오늘날 작은 정부 챔피언도 미국이다.

작은 정부 챔피언, 미국

‘국가란 필요악’이라는 표현은 최소 정부, 작은 정부의 당위성을 함축하고 있다. 악은 없는 것이 최선이고 존재할 경우에도 최소 상태가 가장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국가란 필요악’이라는 사상은 오늘날에도 실존하고 있는 무정부주의자(anarchist)들의 사상적 바탕이다. 역사상 최소 정부 선구자는 미국이고 오늘날 작은 정부 챔피언도 미국이다. 미국 건국 역사는 인류 역사상 예외적이라고 할 만큼 특이하다.

계몽주의 사상의 세례를 받고 고대 그리스 이래 존재했던 모든 공화국 체제, 입헌민주체제를 연구했던 건국 지도자들은 혁명 전사들이면서도 사상가와 철학자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기에 아메리카 신대륙에 인류의 대의(大義)를 실현할 수 있는 이상적 입헌 민주공화국을 건설코자 했다. 그들의 건국 이상과 인류를 향한 염원은 미국 독립선언서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미국 독립혁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고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날을 신세계 탄생일(New World Birthday)이라고 찬양했던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은 혁명 촉구를 위한 자신의 팸플릿 <상식 Common Sense>에서 어떤 국가 체제를 건설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국가는 우리의 사악함 때문에 만들어진다. 국가는 최선의 상태에서도 필요악에 불과하고, 최악의 상태에서는 견딜 수 없는 악이다.… 최소의 비용과 최대의 편의로 우리에게 안전을 가장 잘 보장하는 국가 형태야말로 다른 어떤 국가 형태보다 바람직하다.”

그야말로 군더더기 하나 없는 명쾌한 작은 정부 개념이다. 미국 건국 지도자들은 역사적 교훈과 인간 지혜의 안내를 받아 어떤 경우에도 폭군(Tyrant, 개인 또는 집단)과 폭정(Tyranny)이 출현할 수 없는 권력 체계를 갖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삼권분립 권력구조 하에서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을 유지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고안해냈으며,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국민에 대한 편의 제공을 최대화할 수 있는 ‘제한된 정부(limited government),’ 즉 작은 정부(small government) 원칙을 세웠으며 이 원칙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미국 헌법에는 행정부에 어떤 부처를 설치하라는 조항이 없다.

초대 조지 워싱턴 행정부 시대에는 국무성, 재무성, 전쟁성(국방성)만 있었고, 시대 변화와 국내외 정치 환경 변화에 따라 필요한 부처가 늘어났을 뿐이다. 어떤 개인도, 어떤 집단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는 법치(the rule of law)주의를 절대시함으로써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고 만인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법이 지배하는 자유주의 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행정 체계 면에서 그들은 냉철한 기업가적, 자본가적 정신을 발휘해 상비군을 두지 않았으며, 연방 소득세도 거두지 않았고 중앙은행조차도 설립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연방정부는 주정부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자 했다.

작은 정부 원칙에 입각해 출범한 미국은 남북전쟁, 산업혁명을 거치고 1차 세계대전에 참여하면서 점차 큰 정부 체제로 변모해갔으며,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동서냉전을 치르면서 서방 진영의 지도국이 되고 초강대국이 되면서 비대한 큰 정부 체제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고 큰 정부 추세가 절정에 오른 것은 1960년대 월남전을 치르던 존슨 민주당 행정부가 뉴딜 정신에 입각한 ‘위대한 사회(the great society)’ 건설을 내걸었을 때였으나 1960년대 말에 접어들면서 침체 국면이 가속화되고 월남전 패전으로 큰 정부 체제가 한계에 부딪치자 건국 정신인 작은 정부 사상이 대중의 공감을 받으면서 부활하게 된다.

1980년대 레이건 공화당 행정부가 이러한 추세를 역전시키고 작은 정부 시대를 연 이래 현재에 이르고 있으나, 연방정부 역할과 보편복지 확대를 내세우는 민주당은 뉴딜 시대 큰 정부 체제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 국민은 제한된 정부, 작은 정부 사상과 원칙을 포기한 적이 없고 의회 내 큰 정부 요인을 점검하고 사전에 차단하는 영구적 기구가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하원 내 정부 ‘감시 및 개혁 위원회(Oversight and Reform Committee)’는 1927년 출범해 변화를 거치면서도 여전히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이 시기는 1차 세계대전을 치른 미국의 정부 역할이 점점 늘어나고 러시아 혁명 성공으로 공산주의에 편승한 큰 정부 바람이 거세게 불던 때이자 대공황 직전이다. 언제나 건국 정신을 잊지 않고 존중하는 미국의 지도자들은 앞으로 정부의 비대화를 최대한 억제하지 않으면 정부와 국민의 부담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공감하면서 입법을 통해 ‘감시 및 개혁 위원회’를 하원 내에 설치했다. 현재 7개 소위원회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모든 정부 활동의 경제성과 효율성에 대해 감시할 뿐만 아니라 필요시 관련 공직자를 소환,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지금도 미국에는 건설부, 해양수산부, 여성부 같은 부처가 없다. 우리나라처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같은 옥상옥도 없다. 정부의 돈, 즉 세금을 낭비하는 대통령과 각 부처 직속 한시적 위원회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설치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각 부처 직속 위원회가 수 백 개를 넘는 나라다. 이러한 위원회들은 국회 통제도 받지 않고 정부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예산편성 및 승인, 회계감사권한은 의회가 행사한다. 국정원을 비롯해 각 부처에 통치용 목적으로 위장해놓은 돈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한국 대통령과는 달리 미국 대통령은 미 의회 승인 없이 공개되지 않고서는 한 푼의 정부 돈도 사용하지 못한다.

미국은 여전히 건국정신, 작은 정부 정신을 구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미국이 가장 강력하고 가장 풍요로운 국가가 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위와 같은 정신과 사상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건국 조상들, 서구의 선구적 자유주의 사상가들이 국가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최소 정부, 작은 정부를 주장한 근본 이유는 큰 개인, 큰 시장만이 인간 본성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케 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 안전과 번영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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