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정신 위에 지은 공간, 한국의 서원
[리뷰] 정신 위에 지은 공간, 한국의 서원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5.02 0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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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희곤은 마흔넷 생일에 스페인으로 떠났다. 마흔다섯에는 스페인 마드리드건축대학교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도전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는 믿음으로 유럽의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건축물을 돌아보았다. 스페인 마드리드건축대학교에서 복원과 재생건축을 전공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명하며 성균관대학교, 홍익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했다. 문화부 장관상을 받았으며, 대한민국건축대전 심사위원, FIKA 국제위원회 자문위원, 2017 UIA 서울 유치위원으로 활동했다. 그중에서도 10년 동안 (사)한국건축가협회 문화아카데미위원장으로서 건축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건축문화를 즐긴 시간이 가장 뜻깊었다. 

건축은 미래로 열린 창이자 창조의 근원이라는 믿음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세계의 문화유적과 도시 답사를 계속하며 글쓰기와 강연에 매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스페인은 건축이다』, 『스페인은 가우디다』, 『스페인, 바람의 시간』, 『아버지는 매일 가출하고 싶다』, 『스페인 문화순례』, 『스페인은 순례길이다』가 있다.

2018년, 한국의 서원이 다시 한번 유네스코의 문을 두드렸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전파를 이끌고 건축의 정형성을 갖추었다는 점이 서원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로 제시되었다. 한국의 서원은 국가문화재를 넘어 세계인의 유산으로 거듭나고자 한다. 

서원은 선현의 사상을 받들어 유생들을 가르쳤던 사립 교육 기관으로, 삶의 방식을 가르쳤다는 점에서 과거 급제나 관료 양성을 목표로 하던 향교나 성균관과는 구분된다. 한국의 서원은 유생들에게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삶을 가르치고자 했다. 그리고 제향자의 정신을 건축으로 구현해 유생들이 공간 속에서 그의 삶과 사상을 체험하게 했다. 한국의 서원이 세계인의 유산으로 인정받는 것은 이 ‘정신 위에 지은 공간’의 가치를 얼마나 잘 인정받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신청한 아홉 곳의 서원은 전국에 분포된 600여 개의 서원 중에서도 제향자의 정신이 가장 잘 구현된 곳으로, 본서에서도 이 아홉 곳의 서원에 대해 다룬다. 

시중의 건축, 원칙과 변칙의 미학 

선현의 삶을 공간에 녹여낸 아홉 곳의 서원은 모두 다른 건축 구조와 공간 배치를 보인다. 주자와 퇴계 이황이 서원의 배치 규정을 정립했으나, 한국의 서원은 이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제향자의 삶과 지형 조건에 따라 변화를 주었다. 원칙에 따르면 사당은 강당 동쪽에 위치해야 하지만, 도동서원에서 사당은 강당 바로 뒤에 위치한다. 의리의 유학자였던 김굉필 선생의 사상을 직선축으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사당은 강당보다 높은 곳에 지어야 한다는 전저후고前低後高의 원칙 또한 항상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필암서원의 경우 평지에 위치해 사당을 높은 곳에 지을 수 없었다. 대신 사당을 따르는 모든 건물을 사당 쪽으로 개방하고 반대편은 판벽으로 막아 예를 표했다. 옥산서원은 마당을 일부러 건물로 틀어막은 뒤 강당의 대청마루에서 경관을 열어 극적인 효과를 노렸고, 병산서원은 뻥 뚫린 누각으로 병산을 품음으로써 산의 살기를 극복했다. "

한국의 서원은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했던 조선시대 건축의 정수를 보여준다. 상황에 맞추어 공간을 설계한 시중時中의 건축은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자기 자신을 찾는 위기지학의 공간 

한국의 서원은 제향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공간이다. 제향자의 정신을 바탕으로 건축물을 설계하고 배치했으며, 이를 구심점으로 하여 유생들을 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한국의 서원은 모든 개인을 위한 공간이다. 제향자를 받들어 그의 사상을 따르고자 했던 건 훌륭한 개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었다. 한 시대를 밝힌 선현의 삶과 죽음이 응축된 공간에서 유생들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되물었을 것이다. 

한국에 서원을 정착시킨 퇴계 이황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을 강조했다. 아홉 곳의 서원은 배치와 공간 구성의 원칙을 지키되, 이를 지형 조건과 제향자의 사상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했다. 한국의 서원은 세상의 기준에 스스로를 억지로 맞추지 않고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법을 건축 공간으로 말해준다. 실제로 서원에 머물며 공부하던 유생들 역시 제향자의 정신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 이를 발판으로 삼아 더 나은 자신으로 거듭나고자 했다. 

『정신 위에 지은 공간, 한국의 서원』이 조선 건축의 매력을 발견하고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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