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친구가 친구가 아니었음을 깨달은 당신을 위한 관계심리학
[신간]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친구가 친구가 아니었음을 깨달은 당신을 위한 관계심리학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5.0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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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성유미는 광화문 연세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이다. 한국 정신분석학회 정회원으로 현재 국제 정신분석가 과정 중에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이대 의대 부속 의료원에서 수련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다. 진료실에서 환자와 함께하는 순간에 머무르지 않고 전시회라는 공간을 통해,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사람과 사람’에 대해 연구하고 소통하는 중이다. 

설치미술가 박혜수 작가의 작품 <보통의 정의>의 기반이 된 설문 ‘보통검사’에 참여했고, 그 결과로 ‘나는 보통은 아니지만 정상이다. 나는 정상은 아니지만 보통이다.’ ‘당신은 당신을 이해하나요?’의 텍스트를 담은 개념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2019년에는 첫 책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를 통해 활동 반경을 또 한 단계 넓혔다. 진료실을 찾는 이들의 주 관심사가 결국 관계임에 주목, 진료실을 찾지 못하는 더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에서의 주체성을 되찾기를 응원한다.

“사람은 무조건 인맥이야. 절대 사람 끊으면 안 돼.” “20년 친구인데 어떻게 거절해? 이번에도 내가 참아야지.” “이상하네. 이 모임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늘 기분이 더러워.” 우리는 갖가지 불편한 관계들에 발목이 잡혀있다. 인맥은 넓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그저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혹시나 내가 나쁜 사람이 될까봐, 수년 수십 년간 지긋지긋한 관계에 갇혀 있다. 

정신분석 전문의 성유미 저자는 인간관계 문제로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세상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관계는 없다. 관계도 택할 수 있다. 그 사실을 자각만 한다면, 더불어 가짜 관계를 정리하고 진짜 관계를 새로이 정립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 책은 그런 인간관계에 대한 해법과 처방을 담은 책이다. 너무 사소해 보여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너무 오래돼서 익숙해져버린 관계의 상처를 깨닫고, 그리고 인정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10대부터 50대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공통 관심사 중 하나는 ‘인간관계’다. 인간관계에 대한 책이 차고 넘친 지는 오래. 이제는 유튜브에 자기계발 전문가는 물론, 소설가에서부터 변호사, 스님에 이르기까지 인간관계에 대해 조언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대인관계 어떻게 하며 잘 맺나요?” 식의 질문은 “어떻게 하면 잘 정리할 수 있나요?”로 바뀌었고, ‘믿고 거르는 인간 유형 베스트’ ‘진짜 친구 가려내는 방법’ 등의 ‘답정너’ 메시지들이 ‘좋아요’와 공감 댓글을 지배한다. 

여기서 더 주목할 건 30~40대다. 그간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돈 걱정, 퇴사 걱정, 노후 걱정이었다. 또한 “한국사회는 의리지.” “오래된 친구가 몇 명 있느냐가 그 사람 인성 아니야?” 식의 이데올로기 아래에 있었다. 그런 이들이 언젠가부터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친구에 대한 회의, 인간관계 정리에 대해 노골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작가 김어준, 철학자 강신주가 ‘대부분은 진짜 친구가 아니다’는 주제로 진행한 유튜브 토크쇼 댓글에는 ‘나도 나도 나도’ 식의 공감과 간증 사례가 넘쳐났다. 

“제가 안 풀릴 때도 친구가 떨어져 나가고, 제가 잘될 때도 친구가 떨어져 나가더라고요.” 

중년 남성으로 추정되는 어떤 이의 댓글이 유다르게 기억에 남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와 절망이 만만해 보이지 않는 대화법, 적당히 거리 두는 법 등의 단순 처방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구에게나 친구에 웃고 울던 10대 시절이 있었다. 20대 30대 40대가 되면서 생각이 변하고 상황이 바뀌는 가운데 친구의 개념, 역할 또한 바뀐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관계의 ‘생로병사(生老病死)’ 그 한가운데, 즉 ‘로’와 ‘병’과 ‘사’에 대해 논할 때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 때문에 울고 사람 때문에 죽을 것 같은 우리가 술과 책과 지인 상담으로도 답을 찾지 못하면 ‘마음의 전문가’를 찾기에 이른다. 환자 상당수가 직장인이라는 광화문 연세필 정신건강의학과 성유미 원장은 최근 들어 인간관계 문제로 병원을 찾는 이들이 많다며 책 출간 이유를 밝혔다. “인간관계에 대한 책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를 출간한 것도 그런 진료와 상담의 연장선상에 있어요.” 궁금하다. 정신과 병원 문턱이 아무리 낮아졌다 해도 도대체 어떤 인간관계 문제로 병원을 찾는 것일까. 

지인 씨는 매번 늦는 친구 때문에 힘들다고 토로했다. 10번을 만나면 8번은 늦었다. 문제는 기다리는 시간보다 친구의 태도였다. 지인 씨의 친구는 전혀 미안해하지 않았다. 그러다 딱 한 번, 지인 씨가 30분 지각한 일이 있었다. 이때 친구는 “네가 날 기다리게 했으니 오늘은 풀코스로 쏘라.”며 지인 씨에게 화를 냈다. 4년 내내 본인이 늦었음에도 커피 한 잔 사지 않던 친구는 마치 자기는 기다려서는 안 되는 사람인 양 지인 씨를 몰아세웠다. 

‘누구나 이런 친구 하나씩 있지 않나?’ 생각이 들 만큼 흔한 사례다. 그런데 4년 내내 같은 일이 반복되다 보니 지인 씨 가슴에는 불쾌함, 의아함, 억울함이 차곡차곡 쌓였고, 기어이 병이 되고 말았다. 성유미 저자는 지인 씨 사례가 전형적인 관계의 불균형, 손해와 이익의 관계라고 말한다. “손해 보는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주 꺼내는 주제 중 하나가 의외로 ‘약속 시각’입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약속 시각만큼 두 사람 사이를 분명하게 정의하는 기준도 없거든요. 이유는 종속효과 때문이에요.” 기다리는 사람은 ‘가치가 덜한 존재’가 되는 반면, 늦게 오는 사람은 상대의 시간을 좌지우지할 만큼의 영향력을 쥔 사람이 된단 얘기다. 그런데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지인 씨가 4년 내내 일방적으로 이 관계를 수용해왔다는 사실이다. 

4년 내내 참기만 한 지인 씨는 착한 사람일까? 제삼자가 보기에 “네가 호구냐?” 따져 묻고 싶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초자아가 강한 사람의 특징이다. 지인 씨 같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괜찮지만 상대가 기다리는 건 싫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죽기보다 싫다. 차라리 내가 기다리자.’ 정신분석에서는 이런 생각을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순간 초자아의 처벌에 시달린다.’라고 표현한다. 늘 기다리는 사람, 매번 손해 보는 사람 중에는 이렇게 ‘초자아의 처벌’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진짜 착한 것이 아니다. 마음이 불편함에도 스스로 초자아의 처벌을 내리느라 참는 것이다. 

지인 씨 같은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보통 자신을 탓하고 만다. ‘내가 소심해서 생긴 문제야. 내가 자존감이 낮아서 그럴지도.’ 언제나 그래왔듯 자신을 탓하고 마는 것이 그 순간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인과 결과를 분명히 알지 않으면 같은 일은 반복되고, 관계는 진전되지 않는다. 급기야는 마음의 병이 몸의 병으로 전환된다. 

“요즘요? 별일 없었는데요. 그런데 최근에 두통이 생겼어요. 원인을 모르겠네요.” 
“온갖 검사를 다했는데 이상이 없대요. 그런데 왜 소화가 안 되는 걸까요?” 

‘거짓자기’ 증상의 하나다. 마땅히 느껴야 할 정서나 기분을 느끼지 못하다가 신체 이상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뒤늦게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된다. 분노에는 양성 분노, 음성 분노가 있다. 음성 분노는 화병처럼 감정 형태가 아니라 신체 이상으로 표현된다. 몸이 곯아 들어가는 것이다. 인간관계로 인한 불편함, 스트레스, 분노를 쉬이 넘기지 말고 예민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신체 이상으로까지 왔다는 것은 팽팽하게 이어진 끈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끊어졌다는 뜻이니 말아다. 

명훈 씨는 1년 휴직을 신청했다. 그가 정규직이 되도록 힘써준 팀장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탓이다. 팀장은 짜증날 때마다 만만한 명훈 씨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그러고 나서 마음이 풀린 후에는 세상에 다시 없을 사이처럼 감언이설과 애정을 쏟아내어 명훈 씨를 꼼짝못하게 만들었다. 

명훈 씨도 마음의 상처로 인해 몸이 망가진 사례인데 조금 더 특이하다.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애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짜 친절’이다. 팀장은 명훈 씨를 분노받이로 사용했다가 그다음에는 격한 애정을 표현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화를 낸 것이 미안해서 베푸는 진짜 친절이 아니라는 데 있다. 거기다 앞선상황을 잊게 할 만큼 ‘기대 이상’으로 잘해준다. 이런 과한 친절과 베풂을 받으면 자신도 모르는 새 다음 생각에 빠진다. ‘원래 좋은 사람인데 내가 뭔가 잘못했나 보다.’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데 말이야.’ 이렇게 합리화 아닌 합리화를 하며 당하는 본인 역시 ‘가짜 평화’로 진입하는 것이다. 이러니 명훈 씨도 자신이 괜찮은 줄 알았다고 한다. 휴직에 이를 정도로 마음과 몸이 망가지고 나서야 실체를 깨달았다는 얘기다. 

성유미 저자는 관계의 왜곡에 대해 지적한다. “당한 편에서 원인을 알아채고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날 때까지는, 이런 병적인 관계가 지속될 수밖에 없어요. 그들은 교묘하게 ‘채찍과 당근’을 함께 휘두르기 때문에 알아채는 것도, 그리고 빠져나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점을 바꿔야 합니다. 가짜 친절에 초점을 두지 마세요. 가짜 친절을 100번 받는 것보다 한 번이라도 분노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게 중요해요. 초점을 여기에 맞춰야 합니다.” 

진료실을 찾은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신의 문제를 어렴풋이나마 알아채고 해법을 찾기 위해 나섰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다수가 자신의 문제를 모른다. 심지어 아픈지도 모른다. 자신이 친구인지 호구인지 헷갈린다. 농담처럼 “탈탈 털렸어요.”라고 말하지만 무엇을 (시간이든 돈이든 공감이든 애정이든) 착취당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질문 하나를 스스로에게 던져보길 바란다. “내 마음이 불편한가, 그렇지 않은가? 나는 이 관계가 좋은가, 싫은가?” 여기에 대해 ‘아니오’라는 답이 떠오른다면 일단 그 대답을 붙잡아라. 왜 그런지, 어떻게 된 건지 당장 몰라도 된다. 내 마음이 No를 말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후 다음의 자문자답이 이어져야 한다. “이 관계는 공정한가? 그리고 쌍방향인가?” 

저자는 관계의 핵심은 ‘공정함’과 ‘쌍방향’이라고 말한다. 관계의 균형을 얘기하려면 두 사람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엇비슷해야 하는데 꼭 반반이 아니어도 60 대 40, 최소 70 대 30 정도는 되어야 쌍방향 관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용’이나 ‘착취’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자체가 거부감이 들지 모르나 공정한 관계가 무너진 상태라면 이용과 착취, 그것이 내 얘기가 아닌지 냉정하게 거리 두기를 하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더 중요한 얘기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주고받는 것이 꼭 순수한 마음만이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보통은 ‘마음’을 주고받지만요. 동시에 ‘필요’를 주고받을 수 있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는 순수해야 해, 우리는 관계의 순수성에 대한 강박이 있는데요. 하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요. 상대가 필요로 할 때 나를 내어주고, 내가 필요로 할 때 그를 이용하는 ‘주고받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건 일방이 아닌 쌍방향, 그리고 엇비슷한 균형인 거죠. 그렇게 ‘마음과 필요’를 모두 나누는 관계가 가장 현실적인 관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이용하고 이용당하고, 어느 누가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어쩌면 상대를 비난하는 우리 마음에 다른 속내가 있을지 모른다. 나는 친구에게 ‘공감과 시간’을 내어주고, 대신 ‘인스타에 올리기 좋은 잘나가는 친구’를 얻었는지 모른다. 나는 선배에게 ‘인맥’을 내어주고 얻어낸 ‘착하고 귀여운 후배’라는 평판을 즐겼는지도 모른다. 동료의 경조사에 10만 원을 내는 속내는 어쩌면 ‘이 동료에게 잘 보이고 싶어’라는 미래의 이용가치일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은 타인을 필요로 한다. 중요한 건, ‘상대를 이용하려는’ 자신의 속성을 수면 위로 떠올리고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반대로 ‘누군가가 나를 이용했을 때’ 그 즉시 상대를 단죄하지 않고, 제대로 관계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 

“사람에 대한 혐오, 관계에 대한 좌절이 지나쳐 ‘단절’로 귀결되어선 안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 수가 없으니까요. 너무 아픈 사람은 다음을 기약해야겠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좋은 사람을 곁에 두고 함께 가야만 행복해집니다. 관계의 정리, 관계의 단절이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저자는 오래된 관계에서 오는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린 ‘관계의 주체성’을 찾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관계를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겠지만, 실은 오래된 관계를 겪어오면서 이모저모로 ‘당한’ 사람들의 상처에 더욱 주목했다. 그리고 그 너머의 치유 과정, 새로운 인간관계를 향한 도전을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격려한다. 진료실을 찾지 못하는 더 많은 이들이 사람에 대한 ‘혐오와 좌절’에 빠지지 않고 ‘더 좋은 관계’를 찾아가는 데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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