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길] 공수처와 리바이어던의 최후
[미래길] 공수처와 리바이어던의 최후
  • 김범수 미래한국 편집인
  • 승인 2019.05.0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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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홉스는 역작 ‘리바이어던(Leviathan)’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막기 위해 성서 속의 괴물 리바이어던을 국가의 모델로 제시했다. 그런 리바이어던의 권력을 위임받은 자가 독재의 유혹에 빠지면 공의를 빙자해 정적을 처벌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특수 사법기관’을 창출하려 든다. 나치의 게슈타포(Gestapo) 가 그랬고, 스탈린의 엔카베데(NKVD: 내무인민위원회), 동독의 슈타지(STASI), 일제의 특별고등경찰, 루마니아의 세쿠리타테(Securitate), 그리고 북한의 보위부가 그렇다.

김범수 미래한국 편집인
김범수 미래한국 편집인

지금 문재인 정부와 여당, 그리고 이들과 한통속이 되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만 골몰해 있는 소수정당들은 통제받지 않는 괴물을 공수처라는 이름으로 탄생시키려 하고 있다. 공직자들을 감찰하고 이들의 비위사실을 적발해내는 기능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부패방지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이명박 정부시절에는 ‘특별감찰관’이라는 이름으로도 있었지만 그런 기구들은 결국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웠고 그 결과 유명무실해졌다.

한편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공수처는 과거의 실패(?) 때문인지 이를 아예 대통령직속으로 귀속시켰다. 법무부도 국회도 견제할 수 없고 오로지 대통령의 인사권만으로 운용되는 기상천외한 형태로서 나치의 게슈타포를 연상케 한다.

그런 공수처가 정작 대통령의 친인척과 청와대 고위관계자, 그리고 국회의원은 제외하고 판사와 검사, 경찰 고위자만을 대상으로 수사와 기소를 한다는 것은 이 공수처의 의도가 공직자 비리를 척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사법권을 장악하겠다는 것에 다름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정의구현과 인권보호가 사명인 검찰과 경찰이 정권의 시녀가 될 것이고 이 기구들의 정의와 인권실현을 마지막으로 담보해야 할 법원이 대통령과 청와대 눈치를 보게 될 것은 분명하다.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올 것이다. 오로지 대통령에게만 충성을 요구받을 공수처는 대통령을 리바이어던의 정점, 절대권력으로 만들고 그런 대통령은 자신의 정적들을 굴복시키는 데 공수처를 활용할 것이다.

공수처는 사법부 공직자들을 내사한다는 핑계로 기업인들을 수시로 사찰하고 정치인들을 감찰할 것이다. 대통령의 근위대가 된 공수처는 결국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을 이용해 민간인들에게도 사찰의 범위를 확대할 것은 분명하다. 그런 기구가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 그렇게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북한이라는 나라의 보위부다.

자유와 민주를 법치의 근간으로 삼는 나라들에서는 한국의 공수처와 같이 사법권을 행정권에 종속시키려는 조직을 만들지 않는다.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부정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특별감찰기구나 수사기구를 두는 경우 반드시 의회로부터 감시와 견제를 받게 하거나 법무부와 같은 조직에서 책임을 지고 감독한다. 그런 법무부는 다시 의회에 책임을 짐으로써 민주주의 원리라는 삼권분립이 작동하는 것이다.

성경 속의 괴물 리바이어던을 국가의 모델로 등장시켰고 수많은 역사의 독재자들이 리바이어던의 정점에 서고자 했지만 성경은 그 말로를 이렇게 기록한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바이어던을 벌하고 죽이시리라”(이사야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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