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인가 여론조작인가......“만들어진 여론으로 밀어붙이려 한다는 느낌”
여론조사인가 여론조작인가......“만들어진 여론으로 밀어붙이려 한다는 느낌”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5.2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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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독립성 전제된 대표성 확보가 중요”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이전에도 종종 논란이 불거졌지만 본격적인 논쟁은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 시절 자격 여부를 놓고 두 번 실시한 조사 결과에서 전혀 상반된 결과를 발표한 리얼미터가 촉발했다. 리얼미터는 이 후보자 관련 4월 15일과 18일 두 차례 사뭇 다른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2일 CBS 의뢰로 전국 성인 504명 대상으로 실시한 첫 번째 조사에서는 이 후보자가 헌법재판관으로서 부적격하다는 응답이 54.6%, 적격하다는 응답이 28.8%로 ‘부적격’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15일 tbs(교통방송) 의뢰로 전국 성인 501명 대상으로 실시한 두 번째 조사에서는 이미선 후보자 임명에 찬성하는 의견이 43.3%, 반대하는 의견이 44.2%로 찬반 여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리얼미터는 “닷새 전에 실시한 이미선 후보자의 적격성 조사 결과에 비해 긍정 여론이 큰 폭으로 증가한 반면, 부정 여론은 크게 감소한 것”이라며 “여론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것은 이 후보자 측의 적극 해명 등에 따른 기류 변화가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같은 조사 결과 등을 근거로 “이 후보자 임명과 관련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임명 찬성 여론으로 호전됐다”고 주장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이 후보자 임명을 강행했다.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가 활용된 셈이다.

리얼미터 첫 번째 여론조사 이후 두 번째 조사가 실시된 사이에 여론을 주도한 것은 이미선 후보자 남편인 오충진 변호사였다. 오 변호사는 SNS에 글을 올리며 아내 대신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최근 4대강 보 해체와 관련해 대한하천학회와 환경운동연합이 실시한 ‘4대강 보 해체 방안 발표에 따른 국민 여론조사’도 여론조작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최근 4대강 보 해체와 관련해 대한하천학회와 환경운동연합이 실시한 ‘4대강 보 해체 방안 발표에 따른 국민 여론조사’도 여론조작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유도질문으로 비난받은 ‘리얼미터’

하지만 “돌이켜보면 강남에 괜찮은 아파트나 한 채 사서 35억짜리 하나 갖고 있었으면 이렇게 욕먹을 일이 아니었을 텐데 후회막심” 등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연일 여론의 도마에 오르며 논란을 오히려 부추겼다. 당사자인 이 후보자 역시 ‘남편이 해서 나는 모른다’ 등의 발언과 제기된 주식매매 관련 불법 의혹에 대해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못한 상태는 여전했다. 이 때문에 리얼미터가 ‘닷새 전 긍정적인 여론의 반전이 있었다’는 발표에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렇다면 사흘 간 여론이 급격하게 변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비밀은 리얼미터 질문 문항에 있었다. 첫 번째 여론조사에서는 “최근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미선 후보자의 헌법재판관으로서의 자격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했고, 두 번째 여론조사에서는 “여야 정치권이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임명을 두고 대립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이 후보자에 대한 청문 보고서를 국회에 다시 요청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선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는 데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했다.

첫 번째 여론조사의 질문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제기된 여러 평가를 바탕으로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찬반을 물은 반면, 두 번째 여론조사 설문항은 문 대통령을 두 번이나 언급하고, 여야 대립이란 부연 설명을 넣었다. 이 같은 설문은 이미선 후보자에 대한 찬반을 사실상 문 대통령에 대한 찬반 문제, 여야 대립의 문제로 바꿨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첫 번째 조사의 질문은 이 후보자에 대한 긍정ㆍ부정 판단이 기준이다. 두 번째 조사는 문 대통령의 판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물은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잘했느냐, 못 했느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두 번째 조사 결과가 문 대통령 지지율과 비슷하게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얼미터는 여론조작 논란이 일자 보도자료를 내고 “엄격하게 보면 서로 다른 조사의 결과로 여론의 흐름을 분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정치권과 언론의 정국 대립 지점이 바뀌었다면 정치·사회·쟁점 현안에 대한 민심을 분석하는 여론조사기관은 당연히 바뀐 대립지점으로 조사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해명했다.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감은 여론조사기관의 편향된 조사방법에서 비롯된다.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감은 여론조사기관의 편향된 조사방법에서 비롯된다.

대답을 미리 정한 4대강 여론조사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2차 조사의 질문은 불필요하게 장황하다는 것만으로 질문으로서는 결격인 데다 바로 그 불필요하게 장황한 부분에서 문 대통령을 두 차례 등장시켜 문 대통령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하고 있다”며 “특정한 한 시점에서의 이 후보자에 대한 여론이 아니라 두 시점에서의 여론 추세를 비교해볼 작정이었다면 질문을 통일시켰어야 한다.

여론조사 회사가 질문을 바꾸고도 논란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어리석은 것이고, 논란을 예상하고도 질문을 바꾼 것이라면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리얼미터는 지난 2017년 4월 대선정국에서도 안철수 후보와 관련해 질문 문항 왜곡 여부를 두고 국민의당 측과 공방을 벌인 바 있다.

최근 4대강 보 해체와 관련해 대한하천학회와 환경운동연합이 실시한 ‘4대강 보 해체 방안 발표에 따른 국민 여론조사’도 여론조작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전체 응답자의 81.8%가 금강과 영산강의 5개 보 가운데 3개를 해체하고, 2개를 상시 개방한다는 정부의 보 처리 안에 동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같은 발표에 이재오 4대강국민연합 공동대표는 “설문지가 대부분 사실과 다른 왜곡된 환경부 주장만 전제조건을 달고 조사,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환경운동연합이 발표한 ‘4대강 보 해체 방안 발표에 따른 국민 여론조사’는 지난달 17∼22일 지역·성·연령별 인구비례 할당에 따라 무작위로 선발된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메일을 통한 설문조사였다. 응답자가 모든 문항에 답변해야 제출될 수 있도록 설문이 설계됐고, ‘모름’ 등 유보 응답은 질문 항목에 포함되지 않았다. 조사기관은 ‘마크로밀 엠브레인’으로, 신뢰수준은 95%, 표본오차는 ±3.1%포인트다. (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4대강국민연합이 특히 여론조사에 문제 삼은 것은 환경운동연합이 “국민의 대다수가 정부의 보 처리안을 지지하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은 4번 문항이다.

“지난 2월 환경부에서는 보 가운데 3개를 해체하고, 2개의 보를 상시 개방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그 근거로 보의 효용성이 부족하고 보가 없어도 물이용에 어려움이 크지 않으며 수질 생태계가 개선되고 유지 관리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는 내용을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귀하께서는 이 처리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사 결과 ‘동의한다’는 응답이 81.8%,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18.2%로 나타났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를 근거로 “정부에서 발표한 금강, 영산강의 보 처리방안에 대한 의견을 살펴 본 결과 보 처리 방안을 지지하는 응답자가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4대강 보 철거반대 측은 4대강 보 해체를 주장하는 환경부의 논리만을 근거로 설계된 항목으로 여론조사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공정하게 객관적인 설문 문항이 되려면 ‘4대강 16개 보 해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로 물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만약 4대강국민연합이 이런 전제조건을 달고 여론조사를 한다면 답은 어떻게 나올까?”라며 “‘보해체는 4대강 지역주민이 대부분 반대한다. 보해체는 단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정치적 목적이 있다. 보해체에 수천억의 혈세가 낭비된다. 보설치 이후 4대강 수질이 상당히 개선됐다.

4대강 보는 가뭄과 홍수조절에 매우 효율적이고 수자원 확보에도 꼭 필요하다. 4대강 물은 농민들의 생명수다. 당신은 보해체를 찬성하십니까?’ 이런 전제 조건을 달고 조사하면 아마도 90% 이상이 보해체는 반대한다는 답이 나올 것”이라고 꼬집었다.

4번 문항에 앞서 3번 문항에서 보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4대강사업을 통해 16개의 보가 건설되어 있습니다. 귀하께서는 이들 보의 필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4대강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유역을 정비한 사업으로, 당시 16개의 보(하천에서 관개용수를 수로에 끌어들이려고 둑을 쌓아 만든 저수시설)를 설치했습니다.”

이 역시 4대강 보 해체 자체에 대한 질문이라기보다 이명박 정부가 정비한 사업이라는 설명을 부연해 정치적 판단을 하게끔 설계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프레시안 등 좌파언론은 이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국민 82%가 정부의 4대강 보 처리 방안에 동의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며 여론 확산에 나섰다.

문제는 여론조사기관의 객관성이 의문시되는 설문 문항 설계로 여론조사기관 및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가 날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특히 정부나 언론이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한 정책적 판단이나 여론 환기에 빈번하게 활용하면서 여론조사기관에 대한 불신도 팽배해지고 있다.

객관성 떨어지는 여론조사 사례들

오마이뉴스는 지난 3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100주년 기념사를 놓고 정치권과 언론계에서 논란이 일자,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505명을 상대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Q.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은 100주년 3·1절 기념사에서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 경찰 출신이 독립운동가를 빨갱이로 몰아 고문하기도 했다”면서 색깔론을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잔재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와 같은 문 대통령의 인식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5.1%가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5주기에도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503명(총 9766명 접촉, 응답률 5.2%,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4.4%p)을 대상으로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설치에 대해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질문 문항은 아래와 같다.

Q. 최근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수사가 국가 권력의 방해와 은폐로 인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실패했으므로, 특별수사단의 설치와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설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택지 1~4번 순·역순 배열)

1번. 매우 찬성한다 / 2번. 찬성하는 편이다 / 3번. 반대하는 편이다 / 4번. 매우 반대한다 / 5번. 잘 모르겠다

이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다수인 57.6%가 특별수사단 설치에 찬성한다고 답해, 37.3%에 그친 반대 응답을 20%p 이상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는 최근 여론조사기관의 조사 결과를 놓고 불공정 문제가 자주 제기되는 것에 대해 “여론조사는 찬반을 물어보는 것이므로 양쪽의 균형 잡힌 질문을 만들어야하는 게 기본적인 방법론인데 아마도 (여론조사기관이) 의뢰자에 감정이 많이 이입돼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했다.

홍 기자는 “여론조사기관은 나름 전문회사로서 연구원들이 설문지를 의뢰인들과 협의해 만들 텐데 진보보수, 좌파우파를 떠나 의뢰인들이 목적을 갖고 의뢰를 해도 그런 것들(편파성)을 걸러 객관화시켜주는 게 임무”라며 “저도 이 분야에서 오래 일했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그게 안 되고 있는 것이 의아하다”고 했다.

그는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이나, 세월호 특별위원회 관련 여론조사 등 여러 설문을 보면 굳이 왜 그렇게까지 설문에 조금씩 트릭을 넣고 손질할까, 그냥 쿨하게 만들어도 유리한 결론이 나올 것 같은데 생각이 드는 여론조사들이 있다”며 “아마도 여론에 자신이 없으니까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바닥 민심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것, 실력이 아니라 만들어진 여론이나 통계로 자신감을 갖고 밀어붙이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어떤 여론조사의 경우는 설문지에 온갖 내용을 덕지덕지 붙여서 주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것에 대해 노(no)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저도 그런 문제로 갈등을 많이 빚곤 했는데, 아닌 건 아니”라며 “아이한테 ‘아저씨가 네게 100만원 준다고 하는데 아저씨가 좋은 사람이니, 나쁜 사람이니?’ 라고 묻는 질문문항은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배 소장은 또한 “여론조사기관이 특정 정치세력과 연결돼 있다거나, 조사기관이 정부조사를 맡고 있다든지 하는 점에서 벗어나 정치적 독립이 전제된 대표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또 질문의 형평성이 확보된 객관성이 유지되지 못한다면 사회적 거울, 여론의 수렴도구로서의 여론조사기관의 지위는 상실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여론조사 논란과 관련해서 여론조사기관들이 자기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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