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전 KBS 이사장의 격정 토로...."위협받는 표현의 자유, 이대로 좋은가?"
이인호 전 KBS 이사장의 격정 토로...."위협받는 표현의 자유, 이대로 좋은가?"
  •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5.2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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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에 이어 KBS의 최근 뉴스 시청률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국민이 외면하는 공영방송사들의 참담한 현실에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조직적인 억압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에 지난 4월 20일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주최한 표현의 자유 토론회에서 KBS 이사장을 역임했던 이인호 교수가 작심하고 토로한 제도권 방송 언론의 현실과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권의 홍위병들에 대한 비판을 소개한다.(편집자 주)

잠시나마 방송계에 몸담아 있던 사람으로서, 아니 그 보다도 평생 지식인이라는 신분으로 살아온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위협받는 표현의 자유’에 관해 실질적인 경험을 토대로 내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밝히면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단지 ‘표현의 자유’를 법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는가의 수준에서 그것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가 사회적으로 표출되는 가장 대표적인 통로라고 볼 수 있는 언론과 정치의 영역에서 그것이 송두리째 짓밟히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언론의 자유뿐 아니라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가 소극적으로 제한당하는 차원에서 그 피해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고의적인 거짓 선전이 뉴스로 공급되는 가운데 우리 대한민국은 이제 인간이 양심과 양식이 있는 도덕적, 이성적 존재로서 살아남기가 점점 더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헌법적 토대나 제도적 장치로 볼 때 우리 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엄연히 보장되어 있는 나라이다. 현재의 집권세력이 된 사람들이 가장 강조했던 가치 가운데 하나가 언론 매체의 독립성과 공정성이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신문의 날에도 “이제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정치권력은 없고 정권을 두려워하는 언론은 없다”고 단언했다.

치적 홍위병에 장악된 언론환경에서 자유언론의 통로는 대부분 막혔다.
치적 홍위병에 장악된 언론환경에서 자유언론의 통로는 대부분 막혔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언론의 공정성과 진실성을 강조한다는 정부는 ‘거짓’ 뉴스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가운데 대학생들의 대자보에서 공직자 비리에 대한 내부고발에 이르기까지 정부에 대한 모든 비판행위나 발언들 특히 비판적 인터넷 방송매체들을 단속하고 봉쇄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 현재의 집권세력이 말하는 ‘공정성’이란 그들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 함을 의미할 뿐이고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데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에 관계된 핵심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현 집권세력이 말하는 ‘진실’이란 동서고금 남녀노소가 공히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 의미의 진리나 진실이 아니고 자기들이 정략적 편의에 따라 그때 그때 조작해 내는 역사적 ‘진실’이나 정치적 구호일 뿐이며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나 가치평가의 기준은 이미 우리 대한민국 국민 전반, 그리고 더 나아가 지구촌 공통으로 지켜 내려고 노력하는 그런 것과는 동떨어진 위협받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야기이다.

방송법을 포함한 지금까지의 모든 여론 관계법들은 다소의 미흡함이 느껴지기는 할 망정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독립성, 공정성을 보장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도록 내용이 구성되어 있지만 말로는 그것을 존중하면서도 행동으로는 송두리째 무시하려는 정치권력의 공세 앞에서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우리의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그리고 그것과 안팎을 이룬다고 볼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앞날이 매우 걱정스러운 것은 자유에 대한 그러한 위협을 감지하고 그에 맞서 싸울 만한 힘이 언론계 내부에서는 물론 국민들 전반에서도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이전, 특히 이른바 ‘군사정권’ 체제 아래서도 언론을 탄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려는 국가권력 측의 횡포는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래도 언론에 대한 정치권력의 압박이나 금권세력의 과도한 영향력에 대해 저항하려는 의식과 힘이 언론계 내부에는 물론 지식인 세계 전반에 널리 퍼져 있었으며 1990년대 정치민주화 이후로는 어느 정권도 언론을 자의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은 없었다.
 

정권 홍위병들을 통한 언론 장악

독재 치하에서는 건전한 도덕적, 정치적 비판의식이 권력구조의 틈새나 지하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점에서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이른바 촛불혁명으로 권력을 장악한 문재인 정부는 민노총 산하기구인 전국 언론노조가 실질적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양대 지상파 방송 KBS와 MBC는 물론 거의 모든 종편의 적극적 지원을 받아 탄생한 정권이다.

따라서 거대 방송이나 언론 매체들은 집행부와 노조 양쪽이 모두 친정권적 성향의 세력에게 장악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언론 세력은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개개인으로서도 비판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를 거의 봉쇄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공적인 언론매체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일반 시민들은 보도가 충실한가, 불편부당한가 아닌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고 설사 보도나 논평이 부당하다 함을 피부로 느낀다 해도 정권의 막강한 선동 선전력과 강압에 맞서 다른 소리를 낼 수 있는 실질적 힘이나 용기가 없다.

유튜브 방송이 현재로는 완전히 열려 있는 유일한 통로이지만 지상파 방송에 비해 확산력이 비교할 수 없이 떨어질 뿐더러 그 나마도 거짓뉴스를 단속하겠다는 명분으로 완전히 봉쇄하겠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의도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권의 언론 탄압과 장악은 예전 그 어떤 정권이 동원했던 수단이나 방법과는 다른 식으로 보다 근원적으로 추진되었다. 우선 언론기관들의 집행부를 장악하는 데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고 정권의 홍위병을 자처한 좌파 노조를 고무해 전 정권이 임명한 사람들을 도덕적 법적 적폐세력으로 몰아 여론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효과가 없을 때에는 2017-8년 KBS, MBC 사태에서 들어났듯이 방송통신위원회는 물론 감사원, 검찰 등 정부기구까지 도구로 이용하는 일을 불사했다.

현재의 대한민국 집권세력은 국가를 공익을 위해 가동되는 국민적 합의기구, 대표기구가 아니라 지배계급의 도구로 인식하는 반국가적 계급 투쟁주의적 의식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며 자기들이 그 도구를 장악한 이상 그것을 자기들의 소수집단의 이익계산에 맞게 이용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방송매체의 장악과 동시에 사법부와 행정부, 입법부 등 모든 정부나 그 산하기구의 책임자들이 법으로 보장된 임기에도 불구하고 모두 강제 퇴출 당했지만 언론은 침묵으로 동조했으며 정권의 시녀로 전락한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나 그 정부에서 요직을 지낸 인사들에 대해 이른바 ‘블랙리스트’ 비판 여론몰이를 하며 적폐청산을 외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내로남불’이라는 지적이 나왔어도 주춤하는 기색조차 없으며 국민의 여론조사 결과, 심지어는 여권 내부에서 조차 강한 비판이 제기되는 고위직 인사를 강행해도 비판은 커녕 적극 변호에 여념이 없다.

문재인 정부가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말살하는 또 한가지 방법은 지속적인 연구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역사적 사건들을 입법행위를 통해 박제화하고 성역화 함으로써 사건에 대한 의견 표출 행위 자체를 범법행위로 규정짓는 것이다. 불행한 사건에서 무고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에게 국가가 보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가를 지금까지 형성되어 왔던 학계나 일반 국민들 간의 이해를 뒤엎고 대통령의 이름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스탈린식 전체주의 독재체제를 제외하고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심각한 권력의 횡포이고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의 종언이다.

현 정권은 소극적인 의미에서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할 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허위 날조하며 관제 민족주의를 제도화함으로써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며 양심의 자유에 대해 적극적인 공격을 가하며 말살시키려 하는 것이다.

자기의 조국 대한민국이 1948년 민주공화국으로 새롭게 태어났음을 기리고 축하하지도 못하게 하고 역사에 무지한 대통령의 자의적 해석에 따라 독립운동체들이 연합해 민주국가로 독립하겠다는 의지를 세계에 공포한 사건인 임시정부 선포를 독립기념일로 기려야 한다고 고집하다가 북한의 반대에 부닥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추태도 만약에 언론이 제 기능을 했다면 있을 수 없는 국가적 수치였다.
 

민노총 산하기구인 전국 언론노조는 문재인 정권하에서 지상파 방송에 대한 실질적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민노총 산하기구인 전국 언론노조는 문재인 정권하에서 지상파 방송에 대한 실질적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유언론의 통로 대부분 막혀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큰 비극이었던 6·25 남침 전쟁의 수괴 중 한 사람이었던 김원봉에게 훈장을 추서하자는 일에 적극 나서고 있는 공영방송은 6·25 전몰장병들과 그 유족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물어야 한다.

거대 공영방송들이 정치권력이 흰 것을 검다 해도 저항하지 못하고 따라가거나 앞장서서 선동하는 수준에 머문다면 머지않아 우리 국민은 눈도 귀도 입도 막힌 존재가 되어 세계 시민으로서 지구촌 전체와 공감대를 형성하며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동참할 기회조차 차단 당하고 추락 일로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유롭게 보고 듣고 자기의 뜻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 곧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살아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누려야 하는 천부의 권리이며 사람으로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한 기본권의 사회적 표현인 언론의 자유가 봉쇄되면 그런 사회는 사회공동체로서 건전한 삶을 지속할 수 없으며 발전하는 대신 망하는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인간을 위한다는 문재인 정부는 바로 그러한 인간의 기본 권리를 짓밟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이념적 노선은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 새로 발족한 반공 자유민주공화국이며 우리 민족의 힘이 부족하며 아프게 감수할 수 밖에 없었던 남북 분단과 대립의 고난 속에서도 자랑스러운 발전의 역사를 이룩해 온 나라가 아니라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부끄러운 정치체제로서 하루 빨리 북한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맹목적 민족지상주의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애국국민 절대다수가 지닌 국가관과는 충돌 할 수 밖에 없다. 자유언론의 봉쇄에 정부가 앞장설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한없이 열려 있는 세계에 살고 있으며 전 세계의 발전 추세에 역행하는 언론 탄압적 정치체제가 그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게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대가 없이 수호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우리는 이미 언론인들, 문화인들의 억울한 구속 사건들에서 보고 알고 있다.

자유언론의 주요 통로가 정책적으로 모두 봉쇄되는 사이에 우리 국민 전체가 입을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며 그 피해를 회복하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국민적 역량이 소모될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이 발전도정에서 무참하게 추락한 그리스나 베네수엘라의 길로 이미 접어들었다는 경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나 한국이 중국의 문화혁명이나 6·25 전쟁 보다 더 심각한 유혈사태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들이 외국으로부터 들어오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나 정부 발 언론통제 정책에 포로가 되어 있는 국민만이 그러한 위험에 대해 무대책으로 남아 있다면 그런 이야기들이 단지 기우가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는 확률은 그 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에 대한 철저한 통제와 대한민국의 이른바 기득권 세력을 전복시키기 위한 날조된 역사관의 주입이 문재인 정부의 목표라 함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득권 세력’을 전복시키는 것은 서민층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계층간 격차가 점진적 개혁으로 해소되지 않고 기득권층이 한꺼번에 전복되면 곧 그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만에 하나 대한민국이 전복되어 북한이 통일한국의 주도권을 잡게 되는 날이 온다면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타도의 대상이 되는 기득권이라 함은 우리가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되는 진실이다. 현재 ‘적폐청산’이니 ‘반민족 친일 청산’이니 하는 명분 아래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바로 반공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로서의 대한민국 자체이며 그에 저항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통로를 차단당하고 있다.

반민족행위자로 말할 것 같으면 전쟁을 원치 않던 스탈린까지 두 차례씩이나 찾아가 설득시킨 후 기습침략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유발시킨 김일성보다 더 큰 죄인이 어디 있는가.

북한에서는 고사하고 우리 대한민국에서 이제는 전혀 지적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 끔찍한 역사적 사실이며 대한민국 건국에 주역을 한 이승만 대통령이 민족반역자인 듯 매도 당하고 있다. 김동길 교수가 90이 넘은 연세에 인터넷 방송을 시작한 것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통로가 모두 봉쇄되어 있기 때문임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 측의 언론통제정책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폭거이지만 그것을 규탄하며 반기를 드는 마당에서 우리 언론계, 그리고 지식인 사회 전반이 스스로 반성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싸워 퇴치해야 할 적은 문재인 정권의 언론탄압 정책만이 아니라 그러한 무지에 기초한 아집과 허위로 가득한 정치세력이 기식할 수 있는 우리의 정신풍토와 사고 방식 자체이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 지식인 사회의 오해와 대중 사회의 과잉기대가 민주주의를 말로만 큰 소리로 외쳐대는 세력이 여론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무방비 사태를 초래한 것이 아닌가 언론인들이 앞장서서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민주주의에서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그것은 선거권을 행사하는 개개인이 독자적 사고능력과 판단력을 갖고 있으며 자기의 말과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 있음을 전제로 하는 제도이다. 표현이나 언론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핵심이 되는 것도 바로 주체적 사고능력을 가진 국민의 존재가 민주주의 체제의 성공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국가로 발족한 역사가 겨우 70년에 불과한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위협할 정도로 고도로 발달된 기술 문명 속에서 살고 있으며 몇 년간의 대중소요나 드루킹의 댓글조작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여론을 조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무한대로 열려 있다. 정치에서 뿐 아니라 경제나 문화면에서도 소비자의 기호까지를 조종, 조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절제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실질적 언론 자유 위해 투쟁할 때

그런 속에서 인간이 감성에만 크게 호소하는 여론 조작의 희생물이 되지 않고 이성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며 정확한 언어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그 판단을 실천에 옮길 용기를 갖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독교 유교 등 모든 위대한 사상체계나 종교에서 다 같이 강조되는 역지사지, 곧 서로의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을 배양하고 불교에서 말하는 탐진치(탐욕, 분노, 무지)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노력과 수련을 쌓지 않고서는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에 대한 형식적 보장은 그 자체로서는 별 의미를 갖지 못함을 깨달아야 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언론계나 국민은 문재인 세력이 집권하기 훨씬 전, 언론에 대한 권력의 통제가 가장 느슨해졌던 시점에서부터 이성보다는 감정에 휘말리는 경향이 심했고 국민적 이익을 총체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자기가 몸담고 있는 집단의 이익이나 명분에만 치우쳐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에 수반되는 책임은 등한시하지 않았던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언론은 오랜 시일 동안 권력의 탄압에 맞서서 싸우는 사이 중립적 비판세력으로서의 자기의 사명에 충실하기보다는 민노총 등과 결탁하며 스스로가 정치세력화 하는 경향을 보였고 국민은 국민대로 선동적 언론에 놀아나 상식과 양심을 저버림으로써 스스로가 선동적 언론의 포로로 전락했던 면이 없지 않다.

광우병 사태는 결국은 근거 없는, 부분적으로는 조작된 소문에 놀아난 난동이었음이 드러났지만 나라 전체가 몇 달 간이나 그 소동에 휩싸여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엄청난 시간과 자원을 낭비했고 언론계는 심각한 내분의 후유증을 앓게 되었지만 그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은 반성하기는 고사하고 막강한 MBC의 사장으로 복귀해 시청자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건은 많은 수의 인명, 그 중에서도 어린 중학생들이 100명 넘게 희생된 비통한 국가적 재난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선주 측 부실 운영이 주요 원인이었던 교통사고였지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은 아니었다. 언론의 사명은 신속하고 정확한 보도를 통해 희생을 최소화하고 유가족들과 국민 모두가 가능한 한 빨리 아픔을 뒤로하고 정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그 재난의 폐해를 최소화 하는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 언론은 그 사건을 선정적으로 취급해 정치적 목적에 이용함으로써 국가적 재난의 폐해를 최소화하는 대신 실제 피해보다 몇 배가 크게 심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국가적 손실을 극대화 시키는 데 기여했다. 몇 몇 해 동안이나 언론이 세월호 사건에 매몰되어 있는 사이 불의의 다른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닌데 그들의 인권은 어디로 간 것인지 언론은 대답을 했어야 한다. 무제한의 자유를 누리는 언론이 낳아 놓은 폐해도 만만치 않으며 더구나 언론의 행태에 대한 평가 척도가 일관되지 않다는 데 대해서는 언론계 스스로의 각성이 요구된다.
 

언론인들 스스로 자유에 대해 각성해야

무책임하고 선동적인 언론 보도 행태로 국민 전체가 오도 당하고 한 두 달 전까지도 세계인의 선망의 대상이던 대한민국의 여성 대통령을 악마에게 정신을 빼앗긴 사람인 듯 몰아감으로써 법적 증거가 확실하게 나오기도 전에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불행한 선례를 남겼을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라의 위상을 크게 실추시킨 데 대해서도 언론계는 변명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런 일들은 언론이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형식적 보장과는 크게 상관없는 언론인 개개인이나 집단의 도덕적 지적 성숙성과 관계되는 이야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언론의 위기는 이제 표현이나 언론의 자유라는 좁은 테두리 안에서 다뤄질 수 있는 정도가 넘었다고 생각한다. 진실 되고 정확하고 신속한 보도와 사려 깊은 논평이 제도적으로 봉쇄될 뿐 아니라 거대한 공영매체들이 편파적 보도와 무책임한 논평으로 시청자-국민을 적극적으로 오도하고 정권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는 유튜브를 통해서 조차도 나오지 못하도록 겁박하며 봉쇄하려는 시도는 이른바 군사독재 시절에도 볼 수 없던 수준의 언론 탄압이고 국민 개개인의 알 권리 말할 권리에 대한 침해이다.

더구나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가를 법으로 규정해 위반자들을 처벌하겠다는 생각은 양심의 자유, 곧 인간의 존재 이유 자체에 대한 침해와 거부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전대미문의 상황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도적 보장이 무너지고 있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북한이나 구 소련에서처럼 모든 언로가 실질적으로 봉쇄되고 국민은 사석에서 조차도 마음 놓고 이야기를 못하며 가족들 간에도 낮은 목소리로 쉬쉬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 된다면 이 나라는 이미 사람이 사람답게 살수는 없는 전체주의적 폐쇄사회로 전락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한 나라 정부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의 반영이며 언론과 국민의 관계도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이야기로 귀착될 수 있다. 언론인들은 자기들이 양심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인간으로서, 직능인으로서 살아남으며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을 완전히 봉쇄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전문인으로서의 지혜를 모으고 일반 시청자-국민들은 아직도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는 좁은 공간으로 남아 있는 유튜브 방송에라도 적극적 지지를 보냄으로써 온 국민이 다 함께 사회적으로 질식사하는 비극은 방지하는 데 온 힘을 모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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