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반일(反日),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의 시계(時計)
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반일(反日),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의 시계(時計)
  •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 승인 2019.05.28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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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정 어디를 봐도 21세기를 선도하는 미래지향 아젠다를 찾아보기 힘들다. 지구촌 경제를 이끄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대한민국의 시계만 거꾸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 정부가 과거 지향적인 ‘친일청산’과 ‘북한과 관계 개선’이라는 ‘민족 아젠다’에만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라서 그런 것 같다.

예를 들어 1945년 일제로부터 광복되었으니 광복 74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번에야말로 친일청산을 제대로 해보겠다고 하고 있다. 친일청산은 과거 정부가 못다 이룬 과제이므로 남아 있는 오래된 폐단으로 적폐(積弊)가 되고 하루빨리 청산되어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의 항일투쟁이 새롭게 강조되고 있는 등 마치 나라를 빼앗겨 떠도는 망명정부처럼, 또는 일제로부터 막 해방된 정부처럼 행동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친일청산을 위해서는 일본제국주의의 잔재들을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외교적으로도 일본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과거보다 더 깊은 ‘진심으로의 사죄’와 해결책을 받아내야 한다. 이러한 ‘반일(反日)민족주의’가 ‘관’(官)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역사의 정치화’와 ‘관제 반일 민족주의’는 몇 가지 문제점을 초래한다.

과도한 반일 민족주의 정서와 그에 따른 정치는 한국을 국제 외교무대에서 고립시킬 수 있다.
과도한 반일 민족주의 정서와 그에 따른 정치는 한국을 국제 외교무대에서 고립시킬 수 있다.

반일민족주의가 초래하는 외교적 고립

지금의 시대를 한마디로 세계화(globalization)시대라고 할 수 있음에도 과거 정부는 정치적 필요에 따라 반일민족주의를 의도적으로 부각시켰었다. 정권에 호의적 여론몰이와 정권 지지율의 상승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반일민족주의가 만들어져 이용된 측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그리고 박근혜 정부에서 ‘관제 반일 민족주의’는 쉽게 찾을 수 있다.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말 낮은 국정 지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헌정 사상 최초로 독도를 방문했다. 하지만 의도했던 국정 지지도는 오르지 않았다. 대신 일본과의 외교관계만 나빠지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혐한 서적들이 유명 일본 서점들에 깔리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취임 초기부터 ‘과거사 문제’로 일본의 더 강도 높은 사과를 요구하며 2년이나 일본과의 외교 관계 진행을 멈췄다.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안보상 필요 때문에 일본과의 협력이 필수적임에도 박근혜 정부는 출범 후 2년 동안이나 일본에 ‘과거사에 대한 재사과’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외교적으로 중국으로 경도되었다.

많은 학자들과 외교 전문가들이 과거사 문제로 일본과의 관계가 멈춰지는 것이 외교적으로 적절하지 않고 또 중국으로 외교적으로 경도된다는 것이 외교·안보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음을 지적했음에도 박근혜 정부는 2년간이나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정상화시키지 않았다. 그 이후 중국으로부터 돌아온 결과는 외교적으로 유치한 ‘사드 보복’이었다. 중국으로부터 사드 보복이 왔을 때 한미동맹 강화와 일본과의 경제협력 확대로 극복해야 했었지만 과거사 문제라는 앙금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러한 박근혜 정부의 초기 대일외교 실패는 민족주의 감성을 국익(國益) 위에 존치시킨 때문이다. 관제 반일 민족주의가 결과한 외교적 실패가 국가의 안위(安危)를 위협했던 시기였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와서는 반일민족주의가 ‘빨갱이’ 색깔론, 그리고 보수 적폐론과 결합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최근 3·1절 경축사에서 친일잔재 청산과 보수세력의 행태를 연계시켰다.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 잔재’로 빨갱이라는 용어를 들었다. 빨갱이라는 용어는 일제가 “독립군을 ‘비적(匪賊)’으로, 독립운동가를 ‘사상범(思想犯)’으로 몰아 탄압”하며 이 과정에서 “‘빨갱이’라는 말도 생겨” 났으며, 그 빨갱이라는 용어를 보수세력이 이용했으니 친일세력과 보수세력 모두 청산되어야 마땅하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대해 김동길 교수는 일제시대에는 빨갱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다고 사실 관계를 부인하며 6·25 전쟁 시에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그 역사적 부정확성을 지적했다. 또 최장집 교수는 “(이는) 관제 민족주의의 전형적 모습”으로 “친일 잔재와 보수세력을 결부시켜 갈등을 불러”오고 있으며 “지극히 갈등적인 문화 투쟁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광동 원장은 현 정부의 일본 적대시 정책은 ‘대중의 분노를 동원하는 정치’로 소득주도성장으로 초래한 경제적 실패와 북핵외교 실패라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를 흐리게 하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3·1절 경축사의 논리에 따르면 친일파와 보수세력은 하나로 연계되고, 결국 친일파 청산과 보수세력은 동시에 함께 청산되어야만 하는 대상이 된다. 반일민족주의로 친일 청산과 보수 청산이 한꺼번에 되는 정치적 효과를 가져 오게 된 것이다. 역사가 정치화되는 순간이었다.
 

관제 반일 민족주의와 우리민족끼리

왜 통일이냐고 물으면 ‘우리는 한민족이므로 함께 살아야 한다’라는 대답이 일반적이다. 하나의 민족은 한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는 허상을 만들어 낸 것이 민족주의다. ‘민족’과 ‘민족주의’ 자체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민족을 강조하면 통일을 위해 개인과 사회는 모든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게르만 민족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생활권’(Lebensraum)이 필요하다는 정책은 동부 우랄산맥까지 도이치란트의 영토를 팽창시키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히틀러(Adolf Hitler)는 우랄산맥 서부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을 우랄 동부로 추방을 하려 했다. 결국 독일 게르만 민족주의는 팽창주의와 침략주의와 식민주의 옹호로 변화하게 된다.

우리의 관제 민족주의는 통일에 대한 지나친 감성적 접근과 통일지상주의에 빠지게 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우리 정부의 관제 민족주의에 북한은 우리민족끼리라는 북한식 민족주의로 대응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반일민족주의와 북한의 우리민족끼리라는 관제 반미(反美) 민족주의가 만나 ‘(한민족) 경제 공동체를 전제로 한 연방제’로 귀결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어보인다. 북핵 폐기를 위한 북한 경제제재의 상황에서 관제 민족주의와 우리민족끼리의 귀결점이 반미연합이 될 것을 우려한다.

이렇게 우리의 관제 민족주의가 북한의 우리민족끼리에 화답하고 깊숙이 연대하는 모습은 진정 두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연대의 모습을 2019년 3·1절 기념사에서 이미 명확히 언급했다.

“우리 마음에 그어진 ‘38선’은 우리 안을 갈라놓은 이념의 적대를 지울 때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차이를 인정하며... 호혜적 관계를 만들면 그것이 바로 통일입니다. ‘신한반도체제’로... 통일을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신한반도체제’는 이념과 진영의 시대를 끝낸, 새로운 경제협력공동체입니다.”

3·1절 기념사의 핵심은 북한을 빨갱이라는 이념의 관점에서 보지 말고 민족공동체로 하나가 되어 경제적 번영을 이루자는 것이었다. ‘남’과 ‘북’이 이념을 넘어 경제적 호혜관계로 하나 되는 통일을 이루자는 선언을 이미 했던 것이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문재인 대통령의 ‘체제를 달리하는 연방제 통일론’의 구체적 설명으로 보인다. 기저에 깔린 논리는 ‘한반도 평화경제론’으로 결국 한반도 평화경제론은 ‘체제를 달리하는 연방제 통일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성숙한 시민의식 필요할 때

민족주의 이론가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민족’(nation)을 고대로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실재적 집단이 아니라 근대의 발전 과정에서 형성된 ‘사회적 산물’(a socially constructed community, imagined by the people who perceive themselves as part of that group)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민족주의(nationa lism)를 ‘상상(想像)의 정치 공동체 의식(意識)’이라고 했다. 앤더슨 주장의 핵심은 민족의식이라는 것이 실체가 없는 상상(想像) 속의 의식이며, 철학적 빈곤함(philosophical poverty)과 모순성(incoherence)을 그 특징으로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한반도에서 그 상상의 공동체 의식이 정치적 목적 때문에 상상 속에서가 아니라 현실 속에 재현되어, ‘국민 의식’과 섞여 살아 숨 쉬며 작동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결과는 민족주의가 공동체를 대내적으로 단결시키기 위해 만든 ‘올림픽 게임’과 같은 이벤트가 빈번히 자행된다는 것이다. 인류 화합의 축제가 민족의 축제로 변질되었음은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의 김여정이라는 특사를 문재인 대통령이 만나게 된 사실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민족주의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때, 즉 ‘민족’의 과잉이 개인의 자유와 인권 침해를 가져올 가능성을 우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 일본의 야마토(大和) 관제 민족주의가 일본 군부를 태평양 전쟁으로 이끌었으며, 그 우익민족주의가 일본의 민주주의 발전을 방해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 다른 관제 민족주의의 극단은 앞서 설명한 과잉 독일 게르만 민족주의였다. 그 게르만 민족주의의 과잉이 히틀러의 등장과 유태인 학살을 초래했으며 결국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이어졌음 역사는 알려주고 있다.

관제 민족주의가 초래하는 부작용으로 가장 큰 것은 함께 평화롭게 지내야 할 이웃을 ‘악마화(demonization)’하는 것이다. 자신의 민족을 순진한 피해자로 만들기 위해 타민족을 악마화하고 그 행위의 잔인함을 과장하고 과대해서 부각시키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개봉된 많은 반일 민족주의 영화들이 이러한 ‘이웃 민족 악마화’을 부추기고 있다. 우파가 북한을 악마화하고 있다고 비난했던 논자들이 이제는 일부 국사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을 동원해 일본을 악마화하고 있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어린 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 적지 않은 인지 갈등을 초래한다. 일본제국주의가 우리에게 가한 아픈 과거를 잊어서도 안 되지만 그러한 아픔을 초래한 조선 국왕의 무능과 당시 지도자들의 부패와 무능도 함께 기억하고 반성해야 균형 잡힌 역사관 형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극일(克日)은 일본보다 더 부강하고 더 민주적이고 더 성숙한 국가를 만들 때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성이 아니라 과거 일제의 부정적 측면만을 화면 가득히 줌업(zoom-up)함으로써 민족 감성에 호소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관제 민족주의에 의한 이웃 악마화의 극복은 성숙한 시민 의식으로만 가능하다. 이미 일반 시민들은 스스로 자연스럽게 관제 반일 민족주의를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언론은 2018년 한 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이 753만 명이나 된다고 보도하고 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은 중국인의 일본 방문자 숫자가 838만 명으로 1위이고 2위가 한국인 방문객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현실에서 보면 일본 돈가스 집, 라멘 집, 이자카야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된 듯해 보인다. 더구나 일본 라멘 집과 이자카야는 소녀상 동상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놓고 일본말로 간판을 달고 있다. 그래야 장사가 될 것임을 알고 상인들은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현실에서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관제 반일 민족주의와 우리 국민의 속마음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고 그 간극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물론 경제적으로 양국이 서로에게 3대 교역국가라는 사실도 지난 수년 내내 변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고 있는 편협한 관제 반일 민족주의가 젊은 층의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극복되고 ‘열린 민족주의’로 나아가고 있지만 거꾸로 학교 교육, 언론의 보도, 영화와 방송에서만 부자연스럽게 ‘닫힌 민족주의’가 유지, 강화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 나아가 이웃을 악마화하면서 우리는 부모세대의 일제의 만행을 현재의 일본 젊은이들에게까지 책임을 묻고 또 그 질곡을 짊어지고 가게 해야 하는지 윤리적으로 고민할 때가 되었다. 그 해답은 국민 스스로가 찾아야 하는 것이지만 이미 한 해 753만 명이 넘는 우리 국민이 일본을 방문하는 것을 보면 국민 감성은 이미 반일을 넘어 일본에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 이미 ‘그만하면 됐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열린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해볼 만큼 해봤으면 이젠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는 정상적인 이웃 국가로 대접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만 과거 아젠다에 빠져 미래를 보지 못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를 주한미군의 일본 이전을 대비해서라도 일본과의 외교, 군사, 경제에서의 전략적 공조를 복원할 시점이다.

대한민국의 외교와 안보라는 국익(national interest)에 바람직하지 않고 이웃 국가와의 친선에도 바람직하지 않다면 우리의 관제 반일 민족주의는 이쯤에서 정치적 이용을 멈춰야 할 것이다. 한국도 일본도 모두 미래를 위해 ‘역사의 정치화’를 그만둘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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