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기로에 선 중국....‘竹의 장막’인가‘글로벌 스탠더드’인가
[심층분석] 기로에 선 중국....‘竹의 장막’인가‘글로벌 스탠더드’인가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9.06.0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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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의 국격(國格) 고양을 위한 정치국 집단학습에서 중국이 갖춰야 할 ‘네가지 강대국 이미지’를 제시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문명대국 이미지(文明大國形象),’ ‘동방대국 이미지(東方大國形象),’ ‘책임지는 대국 이미지(負責任大國形象),’ 그리고 ‘사회주의 대국 이미지(社會主義大國形象)’ 가 그것이다.

‘문명대국’은 중국의 깊고 풍부한 문화, 민족의 다원일체, 다양하며 조화로운 문화를 주로 강조한 개념이다.

‘동방대국’은 중국의 청명한 정치, 발전된 경제, 번영하는 문화, 안정된 사회, 단결된 인민, 아름다운 산하를 강조한 개념이다. ‘책임지는 대국’이란 중국이 평화발전을 견지하고, 공동발전을 촉진하며, 국제사회의 공평정의를 수호하고, 인류를 위해 공헌함을 강조한 것이다.

ⓒ 미래한국 고재영

마지막으로 ‘사회주의 대국’은 중국이 대외적으로 더 개방하고, 더 친화력을 갖추며, 희망이 충만하고, 에너지가 충만한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대국(大國)적 이미지는 중화민족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와 결합되어 예상 밖의 사건들을 일으키고는 한다.

최근 중국에서는 영화와 SNS, 인터넷을 상대로 광범위한 검열과 삭제, 통제가 벌어지고 있다. 올해 6월 4일은 천안문 30주년이어서 홍콩에서는 벌써 5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집회를 열고 천안문 사건을 기념하지만, 중국내에서는 일체 검색도 되지 않고 뉴스에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여기에 최근 텐센트를 통해 방영되던 미국의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 최종회가 갑자기 상영 중단되기도 했다. 중국 수많은 애청자들이 항의를 했지만, 텐센트 측은 ‘기술적 문제’라는 희한한 답을 내놓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 어떤 이용자는 “마지막 편이 내용 문제 때문에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 같다. 정치제도에 관한 대사가 확실히 우리나라 사정과 맞지 않는다”고 추측했다. 디즈니 영화사의 애니메이션 ‘곰돌이 푸’는 주인공이 시진핑과 닮았다는 이유로 상영이 허가되지 않았다.

2010년 전 세계 영화팬들로부터 사랑받은 헐리웃 영화 ‘아바타’는 주민들의 항거가 홍콩 상황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극장에서 80%가 걷어내지고 중국 정부가 투자해 국민 선전용으로 만든 ‘공자’ 영화가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홍콩에서는 영화 ‘아바타’는 대박이 났다. 중국공산당은 최근 중공군이 참전한 6·25 전쟁영화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중국은 ‘문명대국’, ‘책임강대국’ 등을 내세우지만 변한 것은 없어 보인다.
 

시진핑의 ‘책임 대국’을 박살낸 미중 무역전쟁

지난 5월 13일 미 국무부는 ‘2018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발표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 1977년부터 매년 200여 개국의 인권 상황을 평가한 보고서를 발표한다.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를 상대로 외교, 경제 등의 정책을 수립할 때 근거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 베네수엘라와 이란, 북한, 남수단, 니카라과, 중국 등의 인권 문제가 지적됐다. 보고서는 특히 중국에 대해 지난 1930년 이래 최악의 인권 침해가 자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인권 침해에 있어 ‘중국은 그들만의 리그에 있다’면서 ‘독보적인 국가’라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중국 당국이 종교와 민족적 정체성을 없애기 위해 고안된 ‘수용소’에 80만 명에서 최대 200만 명에 이르는 위구르족과 다른 이슬람교도들을 임의로 구금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이에 중국 정부는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직업훈련소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고서는 세계 언론과 인권단체, 과거에 구금됐던 사람들은 수용소 안에서 학대와 고문, 살해가 자행됐다고 증언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보고서는 중국 정부가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일반 시민들을 압박, 구금, 체포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진핑 주석은 취임과 동시에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국가의 비전으로 공식 채택하고 그 실현을 위한 두 개의 100년을 제시했다. 또한 취임한 지 약 100일째 되는 시기에 개최된 평화포럼에서 왕이 외교부장을 통해 중국 특색의 강대국 외교를 정식 제시했다.

즉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한 두 개의 100년 로드맵이 전개되는 가운데 중국은 자신의 특색이 가미된 새로운 형태의 강대국 외교를 전개해 나갈 것임을 국내외에 공식 천명했다.

이는 2050년까지 세계 최강대국의 반열에 안착하겠다는 목표 속에서 미국 등 다른 강대국에 대한 자국의 외교를 가다듬고, 아울러 강대국으로서 자신의 대외적 입장 및 정책을 전개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서정경 성균관대 교수와 원동욱 동아대 교수의 공저 논문 <시진핑 시기 중국의 ‘강대국 외교(大國外交)’와 미중 무역분쟁>은 이 문제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논문에서 저자들은 흥미로운 점을 지적하는데, 이 경우 ‘대국’에 서구의 역사와 이론, 실천과는 구별되는 중국만의 특색을 지닌 강대국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투영된다는 것이다.

모든 국가들은 자신의 역사와 경험, 가치관에 따라 자신만의 발전의 길을 가는 법인데 중국이 가는 길은 동양의 전통 가치와 중국공산당의 핵심가치를 반영한 길로서 이는 서구의 역사에서 드러나는 패권주의나 강권정치, 신간섭주의 등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중국식 사회주의’처럼 ‘중국식 강대국’ 논리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중국의 유력한 정치철학자인 칭화대학의 옌쉐통은 중국의 전통문화에 뿌리를 둔 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여 글로벌화 시대의 특수성까지 결합시킨다면 중국이 새로운 보편적 가치관을 창조하고 새로운 국제질서와 국제규범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구의 자유, 평등, 민주와 같은 개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그 대신 중국 전통의 인(仁), 예(禮), 의(義)와 같은 가치로 중국을 진정한 대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전략은 미국이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과 기술 탈취 등을 이유로 시작한 무역분쟁으로 제동이 걸렸다. 서정경, 원동욱 교수는 이렇게 주장한다.

“시 주석 정부는 ‘일대일로’, ‘친·선·혜·용’, ‘인류운명공동체’, ‘중국방안(China Solution)’ 등의 담론을 쏟아내고 공공외교를 추진하며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글로벌 이미지를 제고시키는 작업에 상당히 주력해왔다. 특히 세계적인 경기 침체기를 맞아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의 개혁을 강조하면서 중국이 글로벌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리더임을 부각시키려 했다.

중국이 국제사회가 처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시대적 사명을 감수하려는 의로운 강대국임을 인정받고 싶어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미국과의 무역분쟁 과정에서 중국은 도리어 ‘지식재산권 약탈국가’라는 국제적 불명예를 수여 받는 것과 동시에, 중국을 견제하는 국제사회 특히 서구사회 반중진영이 얼마나 공고한지를 날카롭게 인식하게 되었다.”<시진핑 시기 중국의 ‘강대국 외교(大國外交)’와 미중 무역분쟁 中>
 

위기를 맞고 있는 중국몽의 상징 '일대일로'
위기를 맞고 있는 중국몽의 상징 '일대일로'

100년 중국몽, 일대일로의 위기

이러한 가운데 시진핑 주석의 야심한 ‘일대일로’ 역시 중국의 100년 꿈을 위태롭게 만든다. 일대일로는 고대 중국과 유라시아대륙을 연결했던 ‘비단길’을 현대에 재현하는 사업이다.

주요 사업으로는 중국 신장 카슈가르와 파키스탄 과다르항을 잇는 중-파키스탄 경제회랑, 중국 저장성 이우에서 영국 런던까지 연결하는 1만 2000㎞ 길이 철도, 그리고 중앙아시아를 가로질러 카스피해까지 가는 가스관과 송유관 사업 등이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은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꿈꾼다는 이른바 ‘중국몽’을 상징하는 것 중 하나이고, 여기에 중국은 ‘책임강대국’을 내세워 사업 대상국과 ‘공동운명체’론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일대일로 사업은 결국 사업대상국의 금융과 인프라를 중국에 복속시키게 되는 보이지 않는 위험을 드러냈다.

많은 전문가는 중국이 일대일로를 지정학적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수단으로 삼았다고 비판한다. 일대일로가 중국이 세계 패권 확보를 위한 전략 수단이라는 것. 이에 근거해 미국 정부는 동맹국들이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대미 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일대일로 사업이 중국 기업들만 혜택을 보는 것으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지난 2018년 2월 당시 렉스 틸러슨 미 국무부 장관은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지원받은 나라들이 중국에 점점 의존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중국이 일대일로 참여국에 도로와 철도, 항구, 석유·가스관 등 사회기반 시설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는 대신 이들 나라를 부채의 늪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몰디브, 스리랑카 등은 일대일로 사업 탓에 부채가 크게 늘자 중국에 재협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또 일대일로 관련 건설 사업이 대부분 중국 회사가 중국 자본으로 중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탓에 현지 고용 창출과 산업파생 효과를 창출하지 못한다는 비판마저 제기됐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변화를 선택할 것인가

중국이 과거와 다른 운명의 분기점에 들어섰다는 주장들은 중국 경제가 과거와 같은 성장세를 더 이상 구현할 수 없다는 점에 바탕한다. 실제로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과거 두 자릿수에서 반토막이 난 상태다. 시진핑 주석은 이 상황을 ‘신창타이(新狀態)’라고 호칭했다.

중요한 것은 중국이 자신만의 ‘중국특색강대국’ 논리를 관철하기 위해 미국과 서구가 요구하는 금융개혁과 시장개혁에 완강한 저항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럴만도 한 것이 중국공산당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서구식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파악하고 중국은 이와는 다른 모델을 통해 글로벌 세계에 공헌하겠다고 호언해 왔다.

실제로 중국은 2008년 국제금융위기의 타격을 받지 않았다. 금융시장이 그만큼 개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 따라서 이제 와서 미국과 유럽의 요구로 자본시장을 개방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한다는 것은 중국식 사회주의, 중국식 강대국의 노선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를 거부할 경우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계속해야 하고 유럽과도 협력을 모색하기 어렵다.

이 문제로 중국공산당 내부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매년 양회전에 열렸던 당중앙위원회가 올해 열리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어야 했다. 미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시 주석과 경제 개혁의 이해관계가 얽인 공산당 엘리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권력 갈등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결국 중국은 자신의 중국몽 실현을 위해 30년 전 천안문 민주화의 가치를 수용해야 할 것인지, 그리고 군벌 타도를 내걸었던 5·4운동 100년의 가치를 수용해야 할 것인지 기로에 선 것이다. 물론 이 모두는 미국의 견제로부터 시작됐다. 두 개의 100년이라는 중화민족의 꿈이 미국의 공정성 요구에 발목 잡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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