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 韓日 후쿠시마 수산물 분쟁이 남긴 것
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 韓日 후쿠시마 수산물 분쟁이 남긴 것
  • 이기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승인 2019.06.1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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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1일 일본을 강타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에 위치한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이 누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 이후 한국 정부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후쿠시마 주변 8개 현(縣)의 50개 수산물에 대하여 수입금지 조치 등을 취했다.
 

1심에서 진 한국, 어떻게 했나

한국과 일본 간 분쟁의 쟁점은 주로 한국의 조치가 ‘WTO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의 적용에 관한 협정’(Agreement on the Application of Sanitary and Phytosanitary Measures, 이하 ‘SPS 협정’)에 부합하는지 여부였다. 2018년 2월 22일 회람된 패널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 등은 필요한 정도 이상의 무역제한조치에 해당하는 등 SPS 협정 내 관련 규정 위반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특히 한국이 2011년과 2012년에 단행한 조치조차 2015년 패널 설치 당시를 기준으로 SPS 협정 내 관련 규정 위반이라는 결론이 내려졌을 정도로 한국에게는 참패에 가까운 결과가 도출되었다.

이에 한국은 최종심에 해당하는 WTO 상소기구(Appellate Body)에 패널 보고서에 포함된 법적 쟁점 및 패널이 제시한 법적 해석에 대하여 상소를 했고, 2019년 4월 11월 WTO 상소기구는 패널과는 거의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며 사실상 한국의 승소를 선언했다.

이와 같은 한국의 승소는 일본에게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베 총리는 자신이 후쿠시마산 식품을 매일 먹고 있다고 언급하는 등 연일 한국의 승소를 희석시킬 의도를 가진 발언을 거침없이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한국이 취한 조치의 국제법적 합법성을 확인한 한국의 승소를 더 부각시킬 뿐이다.

한국이 WTO 상소기구에서 승소함으로써 한국은 지난 2013년 단행한 임시특별조치, 즉 후쿠시마 주변 8개 현의 모든 수산물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후쿠시마 주변 8개 현 이외 지역의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추가 방사성핵종 검사증명서를 요구할 수 있는 조치도 유지된다.

현재 한일관계는 1965년 한국과 일본 양국 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일관계 악화의 끝이 불투명한 가운데 위안부, 강제징용 등의 이슈와 달리 한국 정부는 표정관리를 하며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 등에 관한 한 일본 정부를 향하여 여유 있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한국 정부의 여유로움은 어디로부터 기인하는 것일까? 이는 바로 어떤 문제에 대하여 국제법적 합법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는지 여부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반대로 한국을 향하여 표출되는 일본의 억지 또는 불안감은 국제법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번 WTO 상소기구 보고서가 한국의 승소를 선언한 것은 기본적으로 한국 정부가 법률심 준비를 잘 했기 때문이다. 이는 상소기구 단계에서 한국 정부의 대응이 조직적이고 정교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패널 단계에서 적정보호수준에 대한 한국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과 관련하여서는 향후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은 한국 자신의 적정보호수준을 주장하기 위해 (한국 자신의 연구 결과가 아닌) CODEX 규격 등을 근거로 제시했는데, 이는 오히려 한국의 적정보호수준은 1 mSv/year라는 일본의 주장만 정당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즉, 한국이 좀 더 체계적인 연구에 기초해 적정보호수준을 결정하고 주장했다면 패널 단계에서 결과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WTO 상소기구 단계에서 한국의 승소를 이끈 정부 관계자도 패널 단계에서 한국의 과학적 연구 성과 제출이 부족했음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이기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이기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분쟁해결 절차 대비한 연구투자 늘려야

한국이 관리할 수 있는 방사성핵종의 수와 검사기술을 확보된 방사성핵종의 수가 다소 적다는 지적도 있다. 이 지적은 한국이 패널 단계에서 (자신의 연구 결과에 따른 기준이 아닌) CODEX 규격 등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동시에 1 mSv/year라는 양적 기준 하나에 의해서만 적정보호수준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한국의 주장이 패널 단계에서 쉽게 인정받지 못했던 이유를 알려준다. 따라서 식품의 방사성핵종 관리 항목 중 아직 한국이 관련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항목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또는 대규모 투자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이 국제법적 합법성을 확보한 상황은 추후 일본이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 등과 관련하여 협상을 요청하더라도 일본에 대하여 상당한 레버리지를 확보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 당황한 일본은 다각적인 차원에서 전면적 수입금지 조치 등을 해제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으나 한국의 국제법적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러한 노력은 정치적 소망의 발현에 그칠 뿐이다. 특히 국제법을 잘 준수하는 국가를 표방하는 일본에게 국제법적 합법성을 확보한 결론은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다만 승소를 통해 일본에 대하여 레버리지를 확보했다 하더라도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한국 정부는 다음 번에 발생할 수 있는 유사한 WTO 절차 대응을 위해서라도 한국에게 불리한 패널 보고서의 결론조차 비판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재검토 절차와 같이 이미 취해진 조치에 대하여 추가적인 국내적 절차를 진행하는 것과 깊이 있는 과학적 연구 성과를 도출해야 하는 것은 SPS 관련 분쟁에 있어서는 기본에 가까운 일이다.

그리고 이번 한국과 일본 양국 간 WTO 절차를 마무리하면서 한국 정부는 더 정교하게 분쟁해결절차에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한국이 제1심에 해당하는 패널 절차에서 불리한 내용의 패널 보고서를 받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분쟁해결절차에 대한 대비가 잘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패널 절차에 대응하는 특정 부처 또는 팀이 준비를 소홀히 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범정부 차원에서 재검토 절차 등을 취하지 않고 있었고 사전에 과학적 연구 성과를 도출해 놓지 않았던 것 등은 종합적으로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제2심에 해당하는 상소기구 단계에서는 국제법에 근거한 준비가 철저히 이뤄졌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강제징용 관련 문제가 국제관계 등의 변화로 인해 일본과의 합의를 전제로 중재재판소 또는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판단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은 현재 치열하게 해양경계획정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이슈들은 정치적 또는 국내법적 논리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제법적 준비가 철저히 그리고 정교하게 되어 있을 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문제이다. 주변국과의 이슈가 언제든지 국제법적 판단 하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한국 정부가 이슈 검토 및 대응 시 국제법적 검토를 함께 수행하기를 기대한다.

※ 본 기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 등에 대한 WTO 절차 한국 승소의 함의’ 논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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