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평화경제론이라는 허구와 남북경협
[이슈분석] 평화경제론이라는 허구와 남북경협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9.06.1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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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남북경협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친북성향으로 말 많고 탈 많았던 신임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최근 “올해는 지난해에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남북 경제협력에서 구체적인 결실을 맺어야 한다”고 운을 뗀 이후 남북철도 개설과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재개를 놓고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살피며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 여기에 민주당이 ‘남북철도가 한반도의 신경제를 창출한다’며 장밋빛 그림을 그려주고 있다.

국회 정무위 소속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최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의하면 남북경협으로 앞으로 30년간 약 170조 원의 부가가치 창출효과가 있는 만큼, 한반도 평화 정착과 함께 우리나라 경제를 성장시킬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고 한 토론회에서 주장했다.

이에 따라 관변 단체들과 공기업들도 부창부수식의 ‘남북경협 대박론’을 펼친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일까.일단 남북경협이 엄청난 부를 안겨 줄 것이며 동시에 평화를 가져다 준다는 주장을 한번 제대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16세기의 사상가인 에라스무스는 필요하다면 ‘돈으로 평화를 사라(if necessary, buy peace!)’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고 외친 로마의 베제티우스나 마키아벨리의 견해와 충돌한다. 역대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에라스무스의 주장을 받아들여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천문학적 대북경협과 지원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핵·미사일이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여기에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이념 바탕인 ‘평화경제론’이 잘못된 사이비 정치경제론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9일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방북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3월 9일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방북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평화경제론은 사이비 정치경제론

개성공단의 문제점은 그 태동부터 잘못된 경제정책론에 입각해 있었다. 소위 ‘평화경제론’이라는 의사(擬似)경제이론(pseudo-economics)이 그 논거의 바탕이었다. 이러한 의사 경제론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경제원리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의 탈을 쓴 목적론적인 정치이론에 가깝다는 비판이 주류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어 왔다.

개성공단의 이론적 배경으로 가장 많이 논의되었던 것은 서독의 동방정책이었다.

1969년 브란트 서독 총리는 아데나워가 주창한 대동독 ‘우위의 정치’ 즉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독일내 2국가 인정, 핵확산 금지, 양독간 경제문화 교류 등을 골자로 한 동방정책을 전개했다. 동방정책의 성과로 1973년 동독과 서독은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고 양독간에 폭넓은 경제, 문화교류 실현, 1990년 10월 동독의 서독 편입으로 양독간 통일 달성을 하게 된다.

이러한 서독의 동방정책은 처음부터 통일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현상 유지를 통해 동독과 긴장 완화를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아울러 서독은 동유럽 공산체제를 인정함으로써 동독과 동구권의 점진적 변화를 유도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러한 동독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서독은 동독과 경제교류와 협력을 핵심전략으로 추진했다.

이에 비해 평화경제론은 2004년 노무현 정부 시절 대두되어 2006년 통일연구원의 개원 15주년 세미나에서 정식화된 의사 경제이론(pseudo-economics)이다. 평화경제론은 남북간에 공고한 경제적 유대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경제공동체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논거의 틀로서 평화경제론은 서독의 동독에 대한 동방정책과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성공적 모델로 벤치마킹하여 한반도에 남북경제공동체를 구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평화경제론의 바탕은 뱁스트(D. Babst)와 오웬(J. Owen)의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싸우지 않는다는 명제의 검증 결과와 더불어 가츠크(E.Gartzke)의 ‘자본주의 평화’, 즉 자유경제국가끼리는 싸우지 않는다는 명제를 결합시킨 것이다. 이러한 평화경제론은 남한이 북한 경제를 지원하여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을 평화비용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
 

자본주의 평화론과 민주평화론은 자유민주주의를 전제

이러한 평화경제론이 원용하는 민주평화론이나 자본주의 평화론은 기본적으로 자유주의 경제원리를 수용할 의지가 있는 체제간에 가능하다. 구소련의 해체와 자본주의 경제로의 이행은 미국이나 서구의 경제협력의 결과가 아니라 미·소 체제간에 군비경쟁의 결과였던 것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그런 점을 고려해 볼 때 북한의 경우 자유주의 시장경제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과거 정권의 평화경제론은 대가 없는 퍼주기를 합리화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단적인 예로 과거 10년간의 대북경협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남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사회주의 혁명완수를 명하는 노동당규약을 단 한 글자도 고친 바 없다.

이러한 비합리적 유사경제론에 의해 추진된 개성공단은 체계적 오류와 비체계적 오류를 동시에 갖고 있다. 체계적 오류란 개성공단의 사업 모델 그 자체가 북한의 통제와 자의성에 의해 자유주의 시장경제원리에 반함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비체계적 오류란 개성공단의 추진 논거였던 한반도 경제공동체건설과 평화경제 이념이 북한의 정치체제를 근본적인 수준에서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체계적 오류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문제점은 일반적인 경제원리의 기본인 ‘자유거래를 통한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개성공단 사업에 2008년 기준으로 총 2760억 원을 지원했으며 일반 은행에서 자금 조달이 불가능한 업체들에게 남북경협자금을 지원해 왔다. 한계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자원의 왜곡분배를 초래하고 궁극적으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무엇보다 개성공단 기업들이 남북간의 정치적 불안으로 인한 그들의 경제적 손실에 대해 국가 차원의 보상을 요구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는 점도 지금과 같은 시스템의 개성공단 존치에 회의감을 주고 있다.

개성공단은 입주기업들에 대한 북한의 자산몰수, 전쟁, 강제추방 등이 아닌 자진철수로는 경협보험을 수령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손실을 국민의 세금으로 떠넘기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현재까지 그 금액은 약 5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민간사업인 개성공단에 정부 자금지원이 없었다면 과연 처음부터 개성공단을 경쟁력 있다고 판단했을 전문가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국민의 세금으로 평화를 내세워 한계기업들을 먹여 살리는 남북경협이 무슨 도덕성과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까. 그러한 손실은 과거에 이미 있었고 개성공단을 재개한다면 미래에도 계속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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