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전쟁 말고 커피...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커피 한 잔에 대한 이야기
[신간] 전쟁 말고 커피...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커피 한 잔에 대한 이야기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6.25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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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빈민가의 예멘 이민자 청년이 ‘세계 3대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 블루보틀의 파트너가 되기까지의 모험담을 베스트셀러 작가 데이브 에거스가 소설처럼 흡입력 있게 그려낸 책 『전쟁 말고 커피』가 출간되었다. 예멘 커피의 잃어버렸던 명예와 진가를 되살려낸 청춘의 성공담과 함께 커피의 역사, 커피 산업의 이면 등 흥미진진한 읽을거리가 영화처럼 펼쳐진다. 

가난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빈민가 뒷골목을 누비며 성장해온 목타르 알칸샬리는 어느 날 우연히 예멘이 ‘원조’ 커피 수출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목타르는 예멘산 커피 수입상이 되어 예멘에도 ‘테러와 드론’만 있는 게 아님을 알리고, 예멘의 커피 농부들에게도 정당한 이윤을 돌려주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는다.

그러나 예멘 커피는 들쑥날쑥한 품질과 불안정한 정치상황으로 커피 세계에서 존재감을 잃은 지 오래다. 블루보틀에서 커피의 맛과 향에 대해, 미국 최고 커피 전문가에게 ‘커피의 세번째 물결’에 대해 배운 목타르는 그냥 ‘예멘 커피’를 파는 게 아니라 ‘예멘의 명품 커피’를 팔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내전이 한창인 예멘으로 떠난다.

커피에는 로부스타와 아라비카라는 두 가지 품종이 있다. 그중 맛이 훨씬 뛰어난 것으로 간주되는 품종은 아라비카이며 이 커피가 아라비카라고 불리는 이유는 바로 원산지가 아라비아, 구체적으로는 로마 사람들이 ‘아라비아 펠릭스’, 즉 ‘행복한 아라비아’라고 부르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곳이 바로 예멘이었다. 

최초로 커피를 재배하고,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형태로 우려내고, 또 수출한 곳이 바로 예멘이다. 2대 커피 품종 중 하나인 ‘아라비카’나, 커피 음료나 디저트 이름에 자주 붙는 ‘모카’라는 표현의 기원 또한 예멘이다. ‘아라비카’는 옛날 예멘 땅을 칭하던 표현인 ‘아라비아 펠릭스’에서, ‘모카’란 예멘 커피가 가공되고 수출되던 항구도시인 모카에서 유래했다.

특유의 초콜릿향이 일품인 예멘 모카커피 때문에 초콜릿이 가미된 커피를 ‘모카’라 부르게 되었다. 예멘의 모카항을 통해 수출된 커피를 맛본 서구 열강들이 앞다퉈 커피콩을 훔쳐다 자신들의 식민지에 심었고, 이로 인해 커피가 전 세계에 퍼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예멘은 잦은 내전과 불안정한 외교 상황으로 커피 종주국의 위상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700억 규모의 커피 시장에서 예멘 커피의 존재감은 미미해져 있었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도 이제는 예멘산 커피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전 세계적으로 '불황을 모른다'고 알려진 커피산업에서 예멘은 제외였다.

그러던 예멘 커피가 어느새 서서히 그 명성을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예멘 커피는 '모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예멘 모카커피는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라는 명성에 걸맞는 품질을 되찾는 동시에, 블루보틀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커피가 되었다. 

커피는, 어떤 커피가 되었든 농장에서 커피잔에 이르기까지 사람 손을 무수히 여러 번 거치게 된다. 누군가는 커피를 심고 돌보고 비료를 주었을 테고, 누군가는 줄지어 늘어선 커피나무에서 적절히 익은 열매만을 골라 수확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커피 열매의 껍질 여러 겹을 정성들여 제거한 뒤에 커피콩만을 골라 건조했을 것이다. 그렇게 건조된 커피콩 중에서 결함이 있는 콩을 골라내는 누군가도 있을 것이고, 커피콩을 자루에 옮겨 담고 트럭에 운반하는 누군가도 있을 것이다. 온 정성을 쏟아 커피를 로스팅하고 내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온 커피 한 잔의 가격이 2달러나 3달러, 혹은 4달러.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커피 산업에 종사하고, 한 잔의 커피 속에 녹아든 원두 하나하나에 쏟았을 정성과 노력을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다. 그 말은 그 커피 한 잔이 나오기까지 관여된 누군가가 충분한 임금을 받지 못하며 수탈당하고 착취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였다. 

1900년대 초, 커피 산업은 첫번째 물결을 맞게 된다. 진공포장 기술과 인스턴트커피 제조 공법의 발달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커피는 ‘카페인을 전달해주는’ 상품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첫번째 물결 커피는 값이 저렴했으나 어쩔 수 없이 설탕, 우유, 수많은 첨가물을 넣어야 할 만큼 맛이 형편없었다. 그래서 두번째 물결이 일어났다. 두번째 물결 커피는 커피의 산지와 고유의 풍미를 살리는 로스팅법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스타벅스 같은 기업들이 두번째 물결 로스터에 속했다. 그들은 커피의 원산지를 강조하며 그곳 농부들에게 더 많은 급료를 주기 위해 애썼다. 또한 카페를 일종의 사회적 공간으로, 커피를 문화적 현상으로 인식하게 했다. 

세번째 물결 로스터는 대기업 체인점이 아니라 독립적인 가게 형태를 띈다. 이들은 커피의 원산지를 국가나 지역뿐 아니라 생산 농장에 따라, 농부 이름에 따라 강조한다. 또한 그 커피가 자라는 데 영향을 미친 햇빛, 토양, 고도, 그늘을 강조한다. 이들 로스터는 커피를 주로 공정무역 혹은 직접무역 방식으로 사와서 가게에서 직접 로스팅하고 곧바로 내렸다. 고객들은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커피를, 단 하나밖에 없는 특별함을 누릴 수 있었다. 블루보틀이 바로 세번째 물결에 속한 로스터였다. 

『전쟁 말고 커피』의 주인공이자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 모카항 커피회사의 대표 목타르 알칸샬리는 첫번째 혹은 두번째 물결에 머물러 있던 예멘의 커피 농부들을 세번째 물결로 이끌었다.

이들에게 커피 재배와 수확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를 전파하고, 그렇게 탄생한 ‘명품 커피’에 걸맞는 값을 지불함으로써 가난에 허덕이는 커피 농부들에게 자긍심과 존엄성을 심어주었다. 
목타르의 예멘 모카커피는 [커피 리뷰] 역사상 최고 점수를 받았고 블루보틀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으로부터 “천사가 노래하는 듯한 맛”이라는 평을, 블루보틀 바이어 찰리 해비거로부터 “이 한 잔에 담긴 이야기와 같은 맛”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커피는 뛰어난 풍미의 명품 커피이자, 예멘과 세계의 다른 국가들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촉매제로, 예멘의 문화는 물론 커피의 역사와 문화를 온전히 담아낸 문화상품으로 기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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