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무의 모험.... 인간과 나무가 걸어온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정
[리뷰] 나무의 모험.... 인간과 나무가 걸어온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정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7.05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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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애덤스는 세계 곳곳의 유적지를 누비고 다닌 영국의 고고학자다. 마치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한 장면처럼, 애덤스의 손과 발이 닿으면 전설로 내려오던 오래된 성당이 실체를 드러내고 흙투성이 나무 파편에서 원시인의 예술혼이 되살아난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더럼주에 위치한 16만 제곱미터 크기의 삼림지를 사들이고 숲속 생활을 시작했다. 숲에서 나무들을 관찰하고 숯을 굽고 온갖 물건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내면서, 나무야말로 인간에게 물질적 풍요와 지혜를 선사한 원천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절감한다. 『나무의 모험』은 수년간 그가 숲사람으로 살면서 보고 느끼고 겪은 것을 생생하게 담은 수기이자, 고고학자의 눈으로 밝혀낸 인간과 나무가 함께 쓴 발전과 진보의 기록이다. 

고고학자와 나무라니! 고고학자가 인간의 과거를 복원하는 사람이라는 걸 떠올리면 나무와의 만남은 필연에 가깝다. 나무를 알고, 재료로 다룰 줄 알게 된 것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갖춘 최초의 지식이었기 때문이다. 태초의 인간들은 개암나무 열매로 허기를 달랬고, 물푸레나무로 서까래를 친 집에서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 막대를 비벼대다 불이라는 위대한 발견을 이끌어냈고, 숯을 활용해 쇠를 제련하고 화약을 만들면서 농경과 정복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그러다 수명을 다하면 목관에 누워 영원한 안식을 누렸다. 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인간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나무와 모든 것을 함께해왔다. 그 오래된 여정을 복원한 이 책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머나먼 과거로 향하는 흥미진진한 시간여행이 되어줄 것이다. 

나무는 기적에 가까운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다. 햇빛과 물, 이산화탄소만으로 산소와 영양분을 만들어내고, 이를 뿌리에서 잎사귀까지 자유자재로 이동시킨다. 꽃가루의 구조는 짝짓기에 최적화되어 있고, 곤충이나 동물을 동원해 씨앗의 발아 확률을 높인다. 가시를 돋우고 나무껍질을 벗겨내어 천적에 대항하기도 한다. 참나무와 아카시아나무는 뿌리에 공생하는 균을 통해 동료 나무들에게 비상경보를 울리기도 한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나무의 모험』은 나무 세계를 관통하는 생물학적·공학적 기법을 활용해 어떻게 인간이 기술 혁신을 일궜는지 밝힌다. 압력을 가해 물질을 아래에서 끌어 올리는 펌프부터, 용수철 원리에 바탕을 둔 투석기, 배의 균형을 맞추는 돛대와 밸러스트, 그리고 무거운 짐을 옮기기 위한 회전축과 바퀴까지. 겉으로는 원시적인 장비로 보일지 몰라도, 현대 첨단 기계의 작동 원리가 전부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저자는 한 그루의 나무에서 시작된 위대한 도약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며,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까지도 나무가 혁신의 보고로서 유효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책은 세계 곳곳의 역사와 문화에서 길어 올린 나무 이야기로 가득하다. 성경에는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는 바람에 추방되는 일화가 나온다. 주로 신을 거스른 인간의 원죄에 관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인류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자유 선언인 셈이다. 자유를 향한 열망이 나무에 투영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로마시대에는 기독교 순교자들의 목을 말뚝에 꽂아둔 것을 보고 과일 나무에 비유했다. 그로부터 1900여 년이 흐른 뒤 백인들의 린치로 나무에 매달린 흑인 노예의 목을 ‘이상한 열매(strange fruit)’라고 빗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1765년에는 미국의 급진주의자들이 보스턴 항구의 느릅나무에 영국 정부 대표를 상징하는 인형을 매달아 교수형을 연출했다. 훗날 이 느릅나무는 ‘자유의 나무’로 불리며, 미국 독립혁명의 상징으로 회자되었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인간의 노력과 시도에는 언제나 나무라는 상징이 뒤따랐다. 

그 밖에도 각각의 나무에 얽힌 기상천외한 일화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1845년에는 영국의 한 남자가 자신의 정부를 죽인 혐의로 체포됐다. 남자가 결백을 주장하며 피해자의 사인(死因)으로 제시한 것은 다름 아닌 사과였다. 사과의 씨앗에는 청산가리 계열의 독이 들어 있는데, 피해자가 사과를 통째로 너무 많이 먹은 나머지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남자가 피해자에게 독극물을 먹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야 사과씨는 살인 도구의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각 장 말미에 달린 「나무 이야기」에서는 나무들의 생태학적인 특징을 비롯해 각종 문헌과 전설로 내려오는 풍습과 금기가 소개된다. 여기에서 다뤄지는 12종의 나무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수종인 데다 아름다운 세밀화가 곁들여져 나무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나무에 관한 다채롭고 풍성한 서술이 돋보이는 『나무의 모험』은 호기심 넘치는 독자들의 지적 욕구를 한껏 충족시켜준다. 

이 책에는 저자가 숲에서 보낸 수년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본문에 삽입된 「숲속의 사색」에서는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숲의 정경을 한 편의 수채화처럼 그려낸다. 숲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묘사한 부분도 이색적이다. 가지치기를 하고 갈이틀로 목재를 이리저리 다듬다 보면 마음을 짓누르던 잡념과 고민이 먼지처럼 날아간다. 시간과 공을 들인 끝에 숯이 완성되면 기쁨이 벅차오른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장작불을 응시하는 순간이다. 일렁이는 불길을 바라보다 보면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사색에 젖어들게 된다. 청량한 나무 내음으로 가득한 저자의 숲속 수기는, 시간에 쫓겨 분주하게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마음에 작지만 강력한 파문을 남긴다. 

저자가 숲과 나무를 아끼고 사랑하는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톱에 잘려나간 나무토막을 보고 감상에 젖어 안타까워하기보다, 그 자원을 어떻게 쓸모 있게 활용할 수 있을지 궁리하는 것이다. 종이나 성냥, 가구처럼 나무를 가공해 만든 물품들도 마찬가지다. 나무의 쓸모가 사라지는 순간, 숲을 가꾸고 관리하는 인간의 노력도 줄어든다. “책 한 권을 더 사는 것이 숲을 구하는 길”이라는 저자의 진심 어린 제안은, 나무와 인간이 함께하는 지속 가능한 삶의 구체적인 실마리를 제시한다. 

『나무의 모험』은 영국 아마존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나무에 관한 매혹적이고 기발한 묘사”(《인디펜던트》), “나무의 쓰임에 관한 저자의 인식은 더 나은 세상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타임스》), “나무 애호가들에게 권하는 아름답고 유익한 책”(아마존 독자 서평) 등, 여러 매체와 독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이 책은 기나긴 시간 동안 무성해진 지식의 숲을 탐험하는 쾌감을 독자들에게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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