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무리한 자사고 폐지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무리한 자사고 폐지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 이용환 한반도선진화재단 사무총장
  • 승인 2019.07.0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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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형사립고(이하 ‘자사고’)의 재지정 평가 논쟁이 뜨겁다. 자사고는 초ㆍ중등교육법(시행령 제91조의 3,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에 의거 설립된 학교이다. 기존의 ‘자립형 사립고’보다 학교의 자율성을 더 확대, 발전시킴으로써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넓히고 교과과정도 다양화 했다. 자사고는 원래 김대중 정부가 평준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2001년 자립형 사립고를 도입하면서부터 시작됐다.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자립형 사립고를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하면서 교육과정, 교원 인사, 학생 선발 등 학사 운영의 자율성을 넓혔다. 자사고는 정부 지원 없이 등록금과 재단 전입금으로 운영되며 등록금은 일반고의 3배 수준까지 받을 수 있다. 자사고의 지정은 교육감이 5년마다 재지정 평가를 하고 교육부 장관과 협의해 결정한다.
 

평가기준의 공정성 결여

5년마다 하는 자사고 재지정 평가는 교육부가 만든 표준지표(88점 만점)와 교육청 재량지표(12점 만점)에 의거해 평가를 받는다. 평가를 하는 이유는 자사고 설립 취지에 맞게 학교를 운영하느냐 여부이지 폐지가 아니다. 그렇지만 평가 결과에 따라 폐지될 수 있고 폐지되면 일반고로 전환된다.

이번 자사고 평가에서 논란이 야기된 것은 평가지표와 기준 점수 등이 갑자기 강화됐기 때문이다. 우선 지정 취소 점수가 2015년 100점 만점 기준 60점 미만에서 70점 미만으로 크게 높아졌다. 다른 지역은 모두 70점인데 전북만 80점이다. 지표와 배점도 수정됐다. 예년에는 감사 지적사항은 최대 5점까지 감점했는데 올해는 최대 12점으로 대폭 확대했다. ‘학생 전출 및 중도 이탈비율’ 지표의 만점 기준을 비롯한 다른 세부항목도 변경됐다.

자사고와 학부모들은 교육당국의 평가지표 강화가 자사고 폐지가 아닌가를 우려한다. 왜냐하면 지난 2014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자사고 6곳의 폐지를 추진하면서 3년 넘게 법적 다툼을 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직권취소하면서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조희연 교육감이 재선되면서 다시 불거졌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후보 당시 자사고와 외고 폐지 공약도 작용했다. 교육부는 2017년 12월 자사고의 입학전형 시기를 일반고와 같은 후기선발(동시선발)로 조정하고, 자사고와 일반고를 동시에 지원할 수 없도록 시행령을 개정했다. 이에 반발한 일부 자사고와 학부모들이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다.

이 문제는 헌법재판소가 자사고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준 판결(2019.4.11)로 일단락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중복지원 금지는 전원일치의 위헌결정을 했고 동시선발은 합헌으로 판결했다. 동시선발 합헌 주장이 4표, 위헌 주장이 5표로 위헌 주장이 한 표 많았으나 9명의 재판관 중에 2/3인 6명에서 한 표가 모자라 합헌으로 판결된 것이다.

이번 판결로 자사고ㆍ외고 정책은 추진동력이 약화됐다. 하지만 자사고나 학부모들은 앞으로 12개 자사고와 외고·국제고 36곳이 평가를 받을 때 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감을 갖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북 전주 상산고의 자사고 지정취소 문제가 발생됐다. 전북도교육청은 자사고 재지정 평가기준을 다른 지역보다 10점이나 높은 80점으로 정했다. 상산고가 받은 점수는 79.61이다. 다른 지역의 경우라면 당연히 재지정 받을 수 있는 점수이다. 상산고의 평가점수를 보면 31개 평가지표 중 15개는 만점을 받았다.

그러나 ‘사회통합전형자 선발’에서 4점 만점에 1.6점을, 학생 1인당 교육비의 적정성에서도 2점 만점에 0.4점을 받았다. 이 두 지표에서 재지정 여부가 결정됐다. 평가지표 중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10% 선발’이다. 권장 내용이었지만 10%를 선발해야 만점을 받을 수 있게 2019년 1월에 강화했다.

평가기준은 공정해야 한다. 같은 지표 다른 평가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전북 상산고를 비롯해서 울산 현대청운고, 경북 포항제철고, 전남 광양제철고, 강원 민족사관고는 2003년 함께 자립형 사립고로 출발해 자사고로 전환된 학교다. 아직 재지정 평가를 받지 않은 민족사관고를 제외한 3학교는 재지정 평가를 받았다. 상산고만 탈락 위기에 있다. 그런데 사회통합전형 평가방식에서 상산고를 제외한 학교들은 ‘정성평가’를 받았고 상산고만 이 지표를 ‘지키지 않으면 감점’을 받는 ‘정량평가’를 받았다. 상산고의 평가방식이 다른 학교들과 다르다. 여기에 재지정 평가기준 점수도 10점이나 높다.

수학의 정석 저자 홍성대 상산학원 이사장. 상산고에 대한 자사고 취소 결정의 부당함을 설명하고 있다.
수학의 정석 저자 홍성대 상산학원 이사장. 상산고에 대한 자사고 취소 결정의 부당함을 설명하고 있다.

교육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재 양성이 목표

자사고 폐지 문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사고가 ‘귀족 학교’라면서 고교 서열화와 입학 경쟁을 심화시키고 이는 교육평준화정책을 흔들리게 하며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 자사고 유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수월성 교육의 필요성과 함께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을 높이고 나아가 교육 경쟁력을 높인다고 하면서 자사고가 폐지될 경우에는 다양성이 사라짐은 물론 교육의 하향평준화를 우려한다.

헌법이나 교육법에서는 교육의 기회균등은 보장하지만 능력의 평등까지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능력을 개발하고 발휘하는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서열화’라는 이유로 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교육 본연의 기능인 능력 개발을 하지 말자는 주장과 같다. 입학 경쟁 역시 마찬가지이다. 입시에서 경쟁은 당연한 것이다.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한 욕심은 누구나 같다. 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자기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이다.

공교육 정상화 논리 역시 같다. 전체 고교의 3%도 안 되는 자사고가 폐지된다고 해서 공교육 정상화가 이뤄지겠는가? 자사고 폐지로 고교 교육의 정상화가 이뤄질 것이라면 이는 벌써 됐을 것이다. 자사고가 공교육의 정상화의 걸림돌이 될 수 없다. 과거에는 우선선발권 덕에 우수 학생을 모집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우선선발권제도도 폐지됐다. 선발도 내신을 가미한 추첨제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비싼 등록금 내면서까지 이런 학교에 자식을 보내고자 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학생도 만족하고 학부모도 만족하기 때문이다. 등록금 문제도 일반고교 다니면서 드는 과외비를 비교분석해 부담할 수 있다는 나름의 판단이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교의 자율성을 높여주기 위해 만든 제도를 교육감이 반대하고 나아가 교육 수혜자가 만족한다는데 교육감이 이 제도를 폐지한다고 한다. 교육감은 학생들의 교육을 도와주는 것이지 훼방꾼이 아니다. 공교육 정상화를 명분으로 자사고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능력을 발휘하는 이런 학교를 많이 만들어 4차 산업혁명시대에 부응하는 인재 양성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아가 사회의 다양화에 부응한 능력과 적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공교육 정상화라는 명분으로 능력의 하향화를 초래하는 교육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할 수 있는 수월성 교육에 초점을 맞춰 이를 실현할 청사진을 만들고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교육정책을 강구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는 정부가 관리하는 교육정책에서 벗어나 교육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자사고 폐지 논란을 계기로 평등을 강조하는 이념 중심의 교육정책은 폐지되어야 한다. 차제에 학생은 학교 선택권을, 학교는 학생 선발권을 갖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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