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중화민족을 배신한 자는 누구인가?
[신간] 중화민족을 배신한 자는 누구인가?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8.2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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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을 동방에 떠오르는 태양이라 칭송한 붉은 가극 〈동팡홍(東方紅)〉, 동풍, 즉 중국의 기세가 서구를 압도한다는 의미로 명명한 중국의 대륙간탄도탄 ‘동펑(東風)’, 모택동의 팔로군이 일본군과 제대로 싸운 기록은 ‘평형관전투’와 ‘백단대전’ 밖에 없는데도 국민당군에 패주한 기록을 ‘대장정(The Great March)’이라는 단어를 통한 상징 조작에 그 동안 서구 세계는 물론이고, 한국인들도 중국공산당의 프로파간다에 세뇌되어 왔다.

중국의 공산혁명사와 관련해서 많은 이들의 인식은 에드가 스노우(Edgar Snow)의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이 절대적이다. 에드가 스노우는 1936년 옌안으로 들어가 모택동을 접견, 수시로 대화를 하고 1937년까지 1년여 동안 머문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의 붉은 별>을 집필했다. 그는 책에서 모택동과 동지들은 농촌 소비에트를 근거지로 내전 중지와 항일 투쟁을 모토로 한 탁월한 전략으로 역사의 승리를 거뒀으며, 홍군 지도자들은 스스로 검약하는 높은 도덕성으로 민심을 얻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에드가 스노우는 모택동이 고립무원의 신세가 되어 징강산(井岡山)으로 들어갔을 때 자신을 받아주고 절대적 도움까지 준 산채의 두목들을 숙청하고 자신을 따르지 않는 무리를 몰살했다든지, 국공내전 말기에 창춘을 포위해서 최대 60만에 이르는 무고한 인민들을 아사시킨 만행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에드가 스노우는 홍군 지도자들과의 대담과 그들이 어떻게 중국 전역을 장악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꼼꼼하게 취재했지만, 역사의 공정한 평가라는 측면에서는 모택동에게 철저히 이용당한 셈이다.
 

사흘 만에 매진된 초판 1쇄 1만 5000부의 힘

엔도 박사의 <모택동 인민의 배신자-모택동은 왜 일본군의 진공에 감사했나>는 에드가 스노우나 아그네스 스메들리 같은 중공 친화적인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모택동이 항일투쟁 대신 오히려 일본군과 공모해 중화민족과 인민을 배반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실증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 동안 모택동이 일본군과 공모했다는 사실에 대한 대중적 인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를 학술적으로 대중화시킨 엔도 박사의 집념과 노고는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엔도 박사가 미국의 소리(VOA)와 한 인터뷰에 따르면 이 책이 일본에서 출간된 직후 학술적으로 마오의 친일 스탠스를 정리해 줘서 고맙다는 독자들의 찬사가 쇄도했으며, 2015년 초판 1쇄 1만 5000부가 단 사흘 만에 매진되는 등 폭발적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엔도 박사는 ‘반일’ 프로파간다라는 애국주의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있는 중국공산당의 대일 외교 정책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일본군과 공모하고 일본 정부와 협잡한 모택동의 본질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양식 있는 시민 독자들이 저자인 엔도 박사의 열의와 호소에 기꺼이 호응했다. 그 힘은 현재 일본의 집권세력으로 하여금 대중국 외교를 펼쳐 나가는 데 있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평화와 정의로 가장한 일본의 좌익 지식인과 시민단체, 그리고 일본민주당을 비롯한 수구적 급진 정당들이 시민들로부터 배척되고, 감히 일본이란 국가체제와 시스템에 도전하지 못하게 하는 본질적인 힘이기도 하다. 중국 시장에서 한국이며 미국, EU의 기업들이 미련을 못 버리고 미적거릴 때, 가장 먼저 철수를 단행한 게 일본의 기업들이란 사실이 바로 그 증거다.

모택동의 진심, 親日과 장쩌민의 가공된 反日

중국공산당 현대사에서 친일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도 이 책의 핵심이다. 모택동은 일본의 중국 점령과 관련해서 ‘침략(侵略)’의 ‘침(侵)’자를 극구 피해 ‘진공(進攻)’이란 단어를 사용했고, 전후 오카무라 야스지(岡村寧次) 전 지나(支那. 중국) 주재 일본군 총사령관을 중공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집요하게 매달렸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모택동의 속도 모르고 기회만 있으면 ‘중국에 사죄한다’고 말한 일본의 좌익 정치인들에게 손사래를 치며 “일본군의 진공이 없었으면 자신은 여전히 산에서 내려오지 못했을 테고, 베이징에서의 경극 관람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란 고백까지 했다. “그런데 어떻게 일본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택동의 말이다.

중국공산당의 반일은 톈안먼 사태와 소련 동구권의 몰락으로 인해 사회주의 사상의 공백이 생긴 데 따른 위기감을 돌파하기 위해 장쩌민이 소위 애국주의 사상을 집중적으로 보급하면서 시작됐다. 장쩌민은 중국공산당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항일신화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대통령 옐친의 초대로 모스크바를 방문해 2차 세계대전과 반파시스트전쟁 승리기념 열병식을 치르는 것을 보고 이를 중국에 도입한 것이다.

여기에는 장쩌민 개인사의 배경도 있었다. 장쩌민의 부친이 ‘친일’ 왕자오밍 괴뢰정부에서 부역했고, 집안이 부르주아 출신이라는 점을 분식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장쩌민이 서양식 댄스에 능하고 국가주석으로서 공산주의자답지 않게 세계 무대에서 사교에 능했던 배경에는 그런 가정사적 배경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엔도 박사가 밝힌 모택동의 배신자로서의 본질과 현대 중공의 가공 조작된 반일감정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 김일성은 자신의 항일 경력을 조작해 북조선정권을 수립했으면서도 대한민국을 향해 ‘친일 부역배들이 이승만과 합작해 세운 미제의 괴뢰정부라면서 민족사적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고 선전했다. 모택동이 국공내전 시기에 일본군과 공모했고 전후에는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일본 정치인들에게 구애했던 것과 김일성이 내각에 친일파를 다수 중용한 사실을 과연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는지 엔도 박사의 모택동 고발을 통해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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