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미래는 오지 않는다... 과학기술은 어떻게 미래를 독점하는가?
[신간] 미래는 오지 않는다... 과학기술은 어떻게 미래를 독점하는가?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8.28 05: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래 예측은 왜 항상 어긋나는 걸까? 

필립 테틀록이라는 심리학자가 1987년부터 2003년까지 284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미래의 정치, 경제 등에 관해 묻는 실험을 했다. 이때 침팬지에게 다트 던지기를 시켜서 같은 질문에 똑같이 답하게 했는데, 그 결과 전문가들의 예측 능력이 침팬지가 찍은 것보다 훨씬 떨어졌다는 게 밝혀졌다.

경제 상황이나 인구 변동 같은 사회 현상만이 아니라 미래의 기술 역시 예측하기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과학기술의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의 성공과 실패는 예상치 못했던 경로와 방식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예컨대 전 세계를 잇는 단일 통신망을 구축하고자 한 ‘이리듐 프로젝트’는 거의 3조 5천억 원을 투자하여, 지구 위에 66개의 위성을 띄웠지만 결국 실패했다. 기술적으로는 대성공이었지만, 같은 시기에 휴대폰의 해외로밍 서비스 비용이 저렴해지고 이용도 간편해지면서 수요가 사라진 것이다. 1인용 전기 이동수단인 ‘세그웨이’는 2001년 처음 나왔을 때, 도시 출퇴근 문제를 해결할 혁명적 기술이라며 주목을 받았지만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경영자나 발명가 본인조차 기술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다이슨이 종이봉투 없는 청소기를 개발해 후버사에 특허권을 판매하고자 했지만 종이봉투 판매 수익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후버사는 단번에 거절했고, 결국 후버사는 다이슨에게 청소기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고 말았다. 벨과 그레이는 같은 날 전화 특허를 신청했는데, 그레이는 “장난감을 놓고 특허를 다투는 것은 어리석다”며 특허 신청을 취하했다. 그리하여 수백 조 규모의 산업으로 커진 전화는 벨의 몫으로 돌아갔다. 

새로 등장한 기술은 성공으로 가기까지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개발과 사업화 사이에 존재하는 ‘죽음의 계곡’을 넘어야 하며, 사업화가 된 뒤에도 다른 제품들과의 생존경쟁이라는 ‘다윈의 바다’를 건너야 한다. 수십 가지 방법론과 각종 데이터로 무장하고 있더라도 기술의 앞날은 물론 미래사회를 예측하기 힘든 이유다. 따라서 이 책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미래를 예언하는 것보다, 과학기술과 사회의 우연성과 역동성을 고려하면서 변화에 대응하려는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고 설파한다. 

미래 예측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기술-미래 예언의 논리는 자기계발서와 비슷한 모습을 띠는 경우가 많다. 특이점과 같은 급격한 기술-미래의 지점이 반드시 도래한다는 전망, 그것은 필연적인 변화이며 막거나 피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진단, 그렇다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현명하게 그때를 대비하고 적응하는 것뿐이라는 조언이 서로 연결되어 제시된다.

기술-미래에 대한 예언은 곧 생존을 위한 준비를 하라는 명령으로 변환된다. 만약 이 책에서 좀더 정확한 미래 예측을 하는 법을 기대하거나, 불안한 미래 속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고자 한다면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미래는 오지 않는다”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이 책은 미래의 불확실성과 주관성을 강조하면서 각종 미래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독해할 것을 주문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기술-미래 예언을 비판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이 예언들이 어떤 내러티브를 통해서 대중에게 전달되고 있는지, 어떤 가치관과 이념을 담고 있는지, 어떤 사회적 관점을 배제하고 있는지 물으면서 읽는다는 뜻이다. 

『미래는 오지 않는다』의 저자 전치형, 홍성욱 교수는 평소 로봇과 인공지능은 물론 미세먼지, 가습기 살균제 문제, 세월호 참사 등 굵직한 사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과학기술학자이다. 따라서 인간의 삶과 공동체, 윤리적 문제 등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책 곳곳에서 묻어 나온다.

저자들은 미래 담론 혹은 미래학의 가치를 전면 부정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 편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복무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미래학”을 상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래 예측에 홀리는 대신” 우리가 걸어온 역사에 대한 고민과 성찰에 근거해 “우리가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토론과 합의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결국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발명하는 것이다.

책에는 과학기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장면들과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어, 누구나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동시에 이 책은 미래 과학기술에 관한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을 넘어 보다 넓고 깊게 생각해보도록 이끈다.

이 책은 총 8개의 강의로 구성되어 있다. 1강과 2강에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나온 미래 예측들을 분석하면서 예측이란 무엇인가, 기술은 예측 가능한가 등에 관한 답을 찾아나간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입증하게 해준 에딩턴의 개기일식 관찰, 로버트 오언의 유토피아 공동체, 테크노크라시 운동과 하이테크 유토피아 등 여러 가지 사례가 시선을 끈다. 

3강과 4강은 생동감 넘치는 여러 일화를 토대로, 기술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5강에서는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와 같은 널리 알려진 혁신가를 비롯해 나노기술의 발달을 전망한 에릭 드렉슬러, 로봇기술의 발달과 인류의 미래를 그린 한스 모라벡, 특이점이 온다고 주장한 레이 커즈와일 등 여러 기술 예언자들의 사례를 설명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해본다. 

6강에서는 과학기술과 미래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과학기술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약속을 제시하게 된 첨단과학 분야의 특성을 지적하고, 과학기술에 대한 기대, 약속, 희망을 공적 영역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7강에서는 과학기술을 통해 미래를 논하고 다루는 방식이 현재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조건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복고적으로 보이는 북한의 미래 예측, 전형적인 성역할이 고착된 로봇,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를 묵살하는 ‘의혹 장사꾼’ 등의 사례를 통해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본다.

8강에서는 미래 예측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짚어본다. 네이트 실버의 미국 대선 예측 사례나 테틀록이 제시한 ‘고슴도치 대 여우’ 모델 등을 토대로, 우리가 미래 예측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결국 우리에게 의미 있는 미래 예측은 ‘인간의 얼굴을 한 미래학’임을 결론으로 제시한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