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북한 개발의 허와 실 ‘북한 개발의 주체는 남한이 아니라 북한’
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북한 개발의 허와 실 ‘북한 개발의 주체는 남한이 아니라 북한’
  • 장형수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 승인 2019.09.0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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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북 핵실무 협상이 다시 궤도에 오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경제협력을 통해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찾겠다고 발표했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도 있지만, 북핵 위기가 최고조에 이를 때 북한에 대한 투자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 눈길을 끈다. 최근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펴낸 보고서에서 장형수 한양대 교수는 지금이 북한 투자에 대한 올바른 플랜을 세워야 할 적기라고 주장한다. 다만, 남한이 주도한다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는 것. 잘못된 접근이 화를 부를 수 있다는 주장을 <미래한국>이 정리해 소개한다.

낙후된 북한 철도.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올 경우 가장 먼저 철도 항만 같은 인프라 구축부터 시작해야한다. / 위키피디아
낙후된 북한 철도.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올 경우 가장 먼저 철도 항만 같은 인프라 구축부터 시작해야한다. / 위키피디아

2017년 10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김정은과 트럼프의 격한 대응으로 한반도에 소위 ‘전쟁위기’가 한참 고조되고 있을 때 필자는 하나금융포커스에 논단을 기고한 적이 있다. 필자는 당시 언론을 뒤덮었던 전쟁위기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고조될수록 대화와 협상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지게 되며, 일시적으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때가 중장기적으로 확실한 금융투자 기회라고 주장했다.

2019년 6월 30일 ‘남북미 판문점 3자 회동’으로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에 따른 북미간 대치 국면이 실무 협상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북한과 미국과의 협상은 앞으로 넘어야할 ‘언덕’이 제법 있겠지만 조만간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체제 안전 보장을 상호 교환하는 과정에 돌입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북한 개발’ 이슈는 상수가 될 것이다. 필자는 북한 개발에 대한 일각의 고정관념과는 사뭇 다른 몇 가지 팩트를 제시하고자 한다.
 

북한 개발 섣부른 접근은 금물

북한 개발은 사실 오래된 이슈이다. 1990년대 초 구 소련의 해체로 북한이 경제위기에 빠졌을 때는 남북통일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통일 이후의 북한 개발이 그리고 남북관계가 급진전했던 2000년대는 적극적인 남북경협을 통한 북한 개발이 이슈였다. 두 경우 모두 일반인의 묵시적 인식은 북한 개발의 주체가 북한이 아닌 남한이라는 접근방식이었다. 그러나 북미간 협상 타결 이후 전개될 북한 개발의 주체는 북한 당국이며, 우리와 국제사회는 협력자이다. 북한 개발의 방향과 방식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북한 당국이라는 말이다.

남북한이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남북간 경제협력이 다른 국가들과의 경제협력보다 우선적인 혜택을 받을 것인지도 북한 당국이 결정한다. 북한은 대부분의 세계인들에게는 쿠바보다도 덜 알려진 땅이다. 북한 개발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현재 북한 상황에 대한 인식이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북한 경제에 대한 통계가 미약하기는 하지만 현재의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소득이 낮은 국가들(최빈국) 중 하나이면서 아직 시장경제체제로 바뀌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북한의 1인당 소득은 에티오피아보다 낮으며 경제 규모는 라오스보다 작을 것이다.

북한은 에티오피아, 라오스보다 외국인직접투자(FDI) 환경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하다. 아직 북한은 IMF와 세계은행에 가입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최빈국이면서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 개혁·개방했던 국가 중 가장 모범 사례는 베트남이다. 베트남의 1986년 도이머이(개혁·개방) 이후 본격적인 FDI가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20년이나 지난 2006년이었다. 이는 최빈국 베트남에 대한 선진국의 공적개발원조(ODA)가 본격적으로 유입된 미국과의 수교(1995년) 기준으로도 10년이나 지난 후였다.

경제 규모가 크지 않은 최빈국이 국제민간투자를 본격적으로 수용할 정도로 여건이 개발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동안 상당수 일반인들은 북한 개발을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 ‘북한 특수’, ‘블루오션’ 등과 동일시해 왔다. 이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최소한 단기간에 현실화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북한이 경제협력을 통해 한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경제 규모가 라오스가 아니라 최소한 베트남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북한은 베트남의 8%에 못 미친다. 참고로 한국이 미국 경제 규모의 8% 정도이다. 현재 북한이 지금의 베트남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개혁·개방 후 고도성장을 해도 적어도 10~15년은 지나야 한다.
 

북한 개발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필자는 북한 개발이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에 커다란 기회가 될 것이며 북한 경제는 일정한 전제조건들이 성립된다면 단기간에 고도성장 궤도에 진입할 것으로 본다. 우선 북한은 시장경제체제로의 개혁·개방을 가속화해야 한다. 그런데 북한 김정은 정권의 개혁·개방 속도는 1980~1990년대의 중국이나 베트남, 라오스 등과 비교하면 너무 느리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가속화하지 않고도 단지 현재의 경제제재 해제·완화만을 통해 조만간 고도성장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는 일각의 믿음은 현실화되기 어렵다.

경제 규모가 크지 않은 최빈국이 고도성장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개혁·개방 초기 단계에서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와 선진국의 ODA 공여기관이 주도하는 국제 공적 부문의 대북 개발지원(협력)이 신속하고도 대규모로 이뤄져야 한다. 개발지원은 철도, 도로, 전력, 항만, 상하수도, 농어촌 개발, 교육, 보건의료 등 북한의 기초 인프라를 구축한다. 이러한 기초 인프라 구축 없이는 최빈국 북한에 본격적인 민간투자가 이뤄지기 힘들다. 북한 시장 선점을 노리는 ‘위험자본’은 어디든지 뛰어들겠지만 그 성공 확률은 매우 낮다.

북한 개발 초기 단계에서도 민간 부문이 참여할 수 있는 일반적인 방식은 국제 공적 부문의 대북 개발 지원 사업을 국제 입찰을 통해 수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는 개성공단 같은 기초 인프라가 확충되어 있는 산업단지가 개발되면 그곳에 입주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물론 민간투자 결정은 기업의 상업성 판단에 따라 이뤄지므로 제3자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최소한 5~10년이 걸리는 최빈국의 개혁·개방 초기 단계에서 공적 부문이 북한의 기초 인프라 구축에 전력투구하는 대신 특정 위험자본을 지원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앞으로 우리 경제의 미래 성장동력이 되어야 하는 북한 개발을 위해서는 국내외 공적 부문은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한다. 비록 단기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초기 단계에서는 철도, 도로, 전력, 항만, 상하수도, 교육, 보건의료 등 북한의 기초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모든 최빈국이 다 밟아간 과정이다. 우리 내부의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 규범과 국제 관례를 따르는 것이 문명사회의 기본이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북한 체제안전보장도 시간이 좀 걸리는 하나의 과정이듯이 북한 개발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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