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 VS 80의 사회.... 불평등 강화에 일조하는 중상류층의 이중적인 태도를 해부한다
[리뷰] 20 VS 80의 사회.... 불평등 강화에 일조하는 중상류층의 이중적인 태도를 해부한다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9.05 0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자  리처드 리브스는 세계적인 싱크 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 경제학 분야 선임 연구원. 1969년 영국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워릭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0~2012년 영국 부총리 산하 전략국장을 역임했고 런던에 있는 정치 싱크 탱크 데모스(Demos)와 공공 정책 연구소(IPPR)에서 활동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2016년에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2017년 이 책에서 펼친 연구를 비롯해 계층과 불평등 연구로 《폴리티코》에서 선정한 ‘미국의 사상가 50인’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미래 중산층 협의체 소장 및 아동 가족 센터 부소장을 맡고 있다.
 

이 책은 불평등에 실제 책임이 있는 상위 20퍼센트가 어떻게 사회를 망치고 있는지 조목조목 비판한다. 저자 리처드 리브스는 최상위 1퍼센트와 나머지 99퍼센트의 대결 구도를 고수하는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상위 20퍼센트, 즉 중상류층(upper middle class)을 중심으로 불평등 구조를 분석한다. 중상류층의 위선적인 태도와 불공정한 행위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불평등 논의의 큰 흐름을 바꾼 화제의 책이다.

“상위 20퍼센트인 중상류층의 규모와 그들이 집합적으로 가진 권력은 도시의 형태를 바꾸고 교육 제도를 장악하고 노동 시장을 변형시킬 수 있다. 또 중상류층은 공공 담론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자, 싱크 탱크 연구자, TV 프로듀서, 교수, 논객이 대부분 중상류층이기 때문이다.”

『20 VS 80의 사회』에서 저자는 중산층이라는 개념이 ‘편리한 허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현재의 불평등 구조를 유의미하게 분석하려면 ‘중상류층’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표들은 상위 20퍼센트와 나머지 80퍼센트 사이의 큰 격차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러한 상위 20퍼센트와 나머지 사이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평등의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20 VS 80’이라는 불평등의 구조를 인지하고, 논의의 초점을 상위 20퍼센트인 중상류층에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책에서 주로 설명하는 미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보아도 결코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중산층이 세계적 경제 침체 속에서 점차 해체되고 있다면, 이 책에서 포착하는 중상류층의 행태는 현재 한국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체감하는 현실과 유사하다. 자녀의 양육과 교육을 통해 인적 자본을 키우고, 이를 통해 고소득 전문직 일자리를 물려주려는 중상류층의 모습은 매우 익숙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격차는 확대되고 사회적 지위는 대물림된다. 이른바 수저론 등으로 표현되는 한국 사회의 현상은 이와 같은 맥락의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주장과 같이 한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도 상위 20퍼센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분명한 수치와 논거들을 통해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들 또한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 VS 80의 사회』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기회 사재기(opportunity hoarding)’다. 능력과 실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달리 성공의 기회는 평등하기는커녕 상위 20퍼센트가 사재기하고 있는 것이다. 중상류층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교육, 대입, 인턴과 고소득 일자리 등 성공의 기회를 독차지하며 자신의 자녀에게 사회적 지위를 물려주려 한다. 그들의 이러한 시도는 그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법과 제도에 의해 현실이 된다.

이렇듯 불공정하게 대물림된 소득과 부, 사회적 지위는 점차 불평등의 격차를 확대한다.  중상류층은 기회를 사재기하며 ‘유리 바닥’을 만든다. 유리 바닥은 자녀 세대가 하위 계층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보호 수단을 일컫고자 저자가 제시한 용어로, 저자는 경직된 하향 이동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녀를 위해 유리 바닥을 깔아 주는 중상류층 부모들의 불공정한 행위가 불평등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원인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기회 사재기와 이러한 사재기로 인해 만들어진 유리 바닥은 세대를 거쳐 계급 간의 분리를 영속시키고 불평등 문제를 악화시킨다.

고학력을 갖추고, 고소득 전문직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상류층은 표면적으로는 불평등을 맹렬하게 비판한다. 1퍼센트와 99퍼센트의 대결 구도를 만들고 최상위층인 슈퍼 리치에 대한 비판을 이끌었던 것 역시 중상류층 지식인들이었다. 그러나 ‘언행일치’의 차원에서 보면 이들의 태도는 이중적이며 위선적이기까지 하다. 자신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 배타적인 부동산 정책을 지지하며 자녀들에게 좋은 학벌과 고소득 일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한다. 인맥과 연줄을 통해 자녀에게 인턴 기회를 마련해 주고, 학비를 지원할 여력이 있으면서 장학금 혜택까지 차지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오피니언 리더를 자처하는 지식인과 사회 지도층이 앞다투어 재벌과 상위 1퍼센트의 부자들을 비판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입으로 뱉는 말과는 달리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자녀들에게 특권을 물려주려는 위선적인 모습 또한 자주 목격된다. 정치인과 학자 들의 부동산 투기나 위장 전입 이력이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20 VS 80의 사회』의 사례들이 기시감을 일으키는 이유이다.

한편 이 책에서 계급 사회를 벗어나기 위해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고 밝히는 저자의 솔직한 태도가 눈에 띈다. 저자는 스스로가 상위 20퍼센트, 중상류층에 속한다고 고백하며 ‘우리(상위 20퍼센트)’의 반성을 촉구한다. 당사자로서 스스로의 책임을 쏙 빼고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과는 사뭇 다르다. 저자는 중상류층의 양심과 도덕적인 책무를 강조하며 책에서 제안하는 여러 정책과 조치가 실현되려면 중상류층 스스로의 반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관념적이고 도덕적인 주장에 머물지 않고 하위 80퍼센트에게 가해지는 불평등의 실상을 생생하게 드러낸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차별점이 미국 출간 당시 언론에서 크게 주목받은(《이코노미스트》 올해의 책) 이유이며, 또한 이 책의 출간 이후 저자가 미국의 중요한 지식인으로 인정받은(《폴리티코》 선정 미국의 사상가 50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총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책에서 펼치는 핵심적인 주장을 요약해서 전달한다. 2장부터 6장까지는 교육, 양육 격차, 계층 이동성, 취업 기회, 대입과 인턴 제도 등 불평등의 실태와 이것이 유지되는 메커니즘을 차례로 다룬다. 7장과 8장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현실적인 정책을 제안하고 변화를 위한 인식의 변화와 노력을 당부한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