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탈출을 꿈꾸며....늘어나는 이민, 그리고 불안
[논단] 탈출을 꿈꾸며....늘어나는 이민, 그리고 불안
  • 김문 미래한국 편집위원·텐크로스 대표
  • 승인 2019.09.18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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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난 불안하다. TV 뉴스나 인터넷을 보면 온통 불안한 이야기들뿐이다. 점점 악화 되어 가는 경제 상황, 상황이 이러한데도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마구 퍼주는 정부, 여전히 두 패로 나뉘어 정신없이 싸워대는 정치판, 발전적인 결정은 없고 중학생 패싸움 하듯 서로 소리를 질러댄다. 교육 문제도 힘들어 죽겠다. 사교육비에 치이고 기득권을 위해 잘 세팅되어있는 입시에 치이고 학교폭력과 깨져버린 학교교육에 아이를 방치해야 하는 이 현실에 치이고…

그것뿐인가! 더 심각한 것은 안보 문제인 것 같다. 듣자 하니 전방부대들을 하나하나 없애고 있다고 한다. 내가 현역으로 복무했던 2사단도 해체한다고 들었다.

그뿐 아니라 DMZ 지뢰 제거, 미군 철수, 또 북한 핵폐기가 아니라 핵동결.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저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북한이 전쟁하기 좋게 길을 열어 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러다가 정말 전쟁이 나면 어쩌지 하는 아찔한 생각이 든다. 물론 전쟁은 나지 말아야 하겠지만.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저녁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나라 이야기가 나왔다.

한 친구가 나라가 망해 간다고 주장했다. 더 이상 이 나라에 살 수 없어 이민을 가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다들 의아해 했다. 그 친구는 나름 사회적으로도 성공했고 부유한 삶을 누리고 있는데도 그런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그 친구 생각에는 결국 우리나라가 베네수엘라나 그리스의 전처를 밟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는 노선이 똑같다는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자기가 열심히 노력해 쌓아놓은 피 같은 재산을 송두리째 날려버리거나 빼앗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지킬 재산도 없는 나로서는 그리 공감이 가진 않았지만 자꾸 그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라 집에 돌아와 심심풀이로 이민에 대해 검색해 봤다. 관심이 없어 한 번도 검색해보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이민에 대한 엄청난 양의 정보들이 있었다. 이민정보회사가 수도 없이 많고 이민전문 블로거 심지어 이민생활 유튜버까지 이민에 대한 각종 콘텐츠와 사업들이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민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 이민이 궁금해서 검색해보다가 우리나라의 미주 이민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게 되었다. 한국인 최초의 미국 이민은 1902년 하와이 설탕재배자협회의 비숍 회장이 한국에 와서 조선과 이민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 중개자로 알렌 선교사가 있었다.(알렌은 참 한국에 와서 많은 일을 한 것 같다.)

하와이는 나무에도 돈이 열린다는 소문이 조선에 퍼지게 되었고 이민 지원자들이 대거 몰려 들었다. 기독교인이 중심이 된 첫 이민단 102명이 1903년 1월 13일 미국 상선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 설탕재배협회의 노동자로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이들은 대부분 남자들이었고 미혼이 많았다.

이후 1905년까지 약 7200명의 한국 사람들이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밭의 노동자로 일하기 위해 이민했다고 한다. 이 노동자들은 사실 정착하기 위해 미국에 간 것은 아니었다는데 살다보니 미국 생활에 적응하게 되었고 점점 하와이에 정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가정을 꾸리기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사진 신부’이다. 서로 사진만 보고 결혼을 결정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양복을 빌려 입고 멋지게 사진을 찍어 한국에 보내 한국의 여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그 사진 한 장으로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사진만 보고 결혼을 결정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여자들은 사진과 너무 다른(?) 남자들을 보고 실망하지만 이미 미국으로 건너간 이상 돌아갈 경비도 없고 체면을 중시했던 한국 사회에서 결혼 생활을 실패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집안 망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미국에 남아 살아야만 했다고 한다.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다던 중매인들의 이야기와는 달리 언어도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노예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매우 고통스러워했지만 생활력 강한 한국인들은 미국 서부로 이주하면서 한인 이민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이민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1924년 미국에 ‘동양인 배척법’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쨌든 1965년 ‘개정 이민법’이 미 의회에서 통과되면서 미국의 이민은 다시 시작되었다.
 

국내 일자리 부족의 영향으로 각종 해외 취업 이민 박람회 개최가 늘고 있다.
국내 일자리 부족의 영향으로 각종 해외 취업 이민 박람회 개최가 늘고 있다.

늘어나는 이민, 그리고 불안

얼핏 1960년에서 1970년경 독일로 떠났던 광부들과 간호사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찾아보니 우리 한국 근대사의 슬픈 역사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로부터 차관을 얻어오려 했지만 독일은 한국 정부에 차관에 대한 보증을 요구했다. 즉 지급보증, 담보를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는 담보할 만한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나라 땅을 담보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원을 담보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심 끝에 1963년 광부 5000명, 간호사 3000명의 임금을 담보로 독일로부터 차관을 얻게 되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광부들 중 30퍼센트는 대졸자였다. 그들에게는 처절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30퍼센트에 육박했다고 한다.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가 없어 취업을 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 독일 탄광으로 가면 한 달에 160달러 정도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무언가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국 이민의 역사는 처절한 한국의 현실이었다.
 

김문 미래한국 편집위원·텐크로스 대표
김문 미래한국 편집위원·텐크로스 대표

이날 이후 어느 유튜버의 영상을 본 일이 있다. 그 유튜버는 자신이 의사라면 한국에 사망선고를 내리겠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은 우리나라가 왜 망할지에 대해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나라가 잘 돌아가고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5시간짜리 영상을 만들어 보여줘도 설득할 자신이 없다고 말하면서 안 망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입 아프게 설명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 필리핀 이민을 권유하면서 필리핀 이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영상을 통해 이야기해줬다.

첫째, 현재 우리나라는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군사적, 이 모든 차원에서 총체적 난국으로 심각한 문제를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둘째, 국민연금을 일시금으로 환급받기 위함이다. 셋째, 필리핀 영주권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받기에 가장 가성비가 좋은 영주권이다. 넷째, 법이 언제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까지 이렇게 가성비 좋은 영주권을 우리나라에서 해외영주권으로 인정해 줄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으면서 위와 같이 자신이 필리핀 영주권을 받은 이유를 설명해 줬다.

문득 이민을 결정했던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는…

이민은 나라가 약하고 어려울 때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마지막 보루인데 지금 이민을 생각 하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내가 생각하는 만큼 부유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살수 없는 세상이 온다면 마치 생존을 위해 미국 하와이로 이주했던 사람들처럼 나라가 돈을 빌리기 위해 담보가 돼 줬던 우리 광부들과 간호사들처럼 다시 우리도 이 나라를 떠나야 할지 모른다. 떠나게 되면 다시 돌아오지 못 할지 모른다.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고 전 세계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았는데 그것을 ‘디아스포라’라고 말한다. 혹시 우리도 나라를 잃고 ‘디아스포라’처럼 살아가야 되는 것은 아닐까?

아! 정말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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