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반일 종족주의가 말하지 않은 것,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
[논단] 반일 종족주의가 말하지 않은 것,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
  • 박명수 미래한국 편집위원·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 승인 2019.09.23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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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한국 사회에서 가장 공격적인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빨갱이”와 “친일파”일 것이다. 빨갱이는 해방 이후 반공국가 건설과 함께 한국 사회 제 일의 적이 되었다. 5·16군사혁명은 “반공을 국시의 제 일로 삼고”라는 혁명공약을 발표했다.

하지만 70년대 민주화운동이 시작되면서 반공은 독재 이데올로기로 매도되었고, 이제는 친일파가 빨갱이 못지않게 한국 사회의 제 일의 적이 되었다. 소위 민주화운동세력은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어 대한민국이 얼마나 친일파가 득세한 나라인가를 보여주려고 했다.
 

일본은 조선인들에게도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사진은 일제 강점기 남산 조선신궁의 모습
일본은 조선인들에게도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사진은 일제 강점기 남산 조선신궁의 모습

빨갱이와 친일파, 잘못된 신화 깨뜨리기

지금까지 일부 좌익 학자들은 빨갱이는 우익 독재세력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하며 “빨갱이의 탄생”은 국가 권력의 조작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면 친일파는 어떠한가? 필자는 친일파에는 진짜 친일파도 있지만 동시에 좌익들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친일파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빨갱이의 탄생도 친일파의 비판도 다 이념적인 색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소련의 한반도정책의 최우선순위는 한반도에서 일본세력을 추방하는 것이었다. 소련은 동유럽에서 독일이 자신의 가장 큰 위협세력이라고 본 것과 같이 극동에서는 일본을 가장 큰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20세기 초 러일전쟁에서 일본에 패한 소련은 자신의 안보를 위해서는 한반도를 일본의 영향에서 해방시켜 친소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덧붙여진 것이 바로 공산주의 이론의 변형이다. 공산주의 혁명은 근본적으로 부르주아와의 투쟁인데, 한반도에서는 아직 부르주아가 형성되지 않았고,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에 대한 반감도 강하지 않기 때문에 부르주아 대신에 친일파를 투쟁 대상으로 삼았다고 본다.

사실 공산주의자들에게는 부르주아와 친일파가 둘이 아니다. 잘 사는 사람들은 다 일본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므로 부르주아가 바로 친일파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과 반대되는 세력을 친일파로 간주했고, 그 결과 평생 일본과 싸운 조만식도 친일파로 공격했다. 일종의 친일파 만들기인 셈이다.

역사가의 임무 가운데 하나는 이런 잘못된 신화를 파괴하는 것이다. 사실 철학적으로 역사주의는 기존에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의 실체를 드러내 그것을 상대화해 주기 때문에 상대주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따라서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위험한 것이며, 때로는 혁명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이영훈 교수의 저서 <반일 종족주의>가 의미 있다고 본다. 그는 한국인=피해자, 일본인=가해자라는 반일 종족주의의 명제를 하나씩, 하나씩 공격하며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한다. 필자는 아직 이영훈 교수가 주장하는 내용이 역사적으로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할 만큼 이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필자가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과거의 신화화한 역사를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해서 새롭게 규명하려는 그의 시도는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권력이 억지로 빨갱이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인 것처럼, 맹목적인 민족주의가 사실과 다른 반일감정을 조장한다면 그것 역시 잘못인 것이다.
 

황순원의 소설, <별과 같이 살다>에 나타난 한국인 노무자

이영훈 교수의 <반일 종족주의>를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은 황순원의 소설이 생각났다. 황순원은 1947년 해방 직후에 쓴 소설 <별과 같이 살다>에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 간 조선인들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대구 주변의 한 시골 마을에 3년 계약으로 탄광부를 모집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만일 탄광부로 뽑히기만 하면 월급은 물론이고, 오버 타임에 대한 수당과 연말 상여금, 그리고 특별 상여금까지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골 사람들에게 일본 탄광에 가는 것은 이영훈 교수의 말처럼 일종의 로망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주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행을 감행했다. 탄광으로 가기 위해서는 신체검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떨어진 사람은 크게 실망했다. 신체검사에 합격한 사람은 신발 한 켤레와 5원을 받았다.

일본 탄광에 간 사람들은 조선에서 듣는 것과는 달랐지만 그래도 매달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월급은 자신의 생산량에 따라 지급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탄광에서 다치기도 하고, 죽기도 했는데 죽은 사람에게는 위로금이라고 해서 30원을 보내왔다. 30원은 당시 남자 은행원의 월급으로 시골 농부로서는 만져 보기 힘든 것이었다.

황순원은 이것을 일본인들이 탄광부를 모집하기 위한 일종의 선심성 제스처라고 설명한다. 이 소설의 내용은 상당 부분 이영훈 교수의 주장과 일치하고 있다. 여기에 보면 강제 징용이라고 볼 수 있는 내용은 나오고 있지 않으며, 조선인들도 상당한 월급을 받은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또한 한국인들이 위험한 곳에서 일한 것은 사실이며, 갱도가 무너져 사망한 경우도 나온다. 해방 직후 쓰인 이 소설은 일제 말 일본에 간 노무자에 대한 어느 정도의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박명수 미래한국 편집위원·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박명수 미래한국 편집위원·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반일 종족주의의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에 있다

필자는 일제하의 한일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위안부나 노무자 못지않게 지적해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신사참배 문제이다. 일본은 처음부터 한국을 서구식 식민지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나라를 합방해 한 나라를 만들려고 했고, 한국인을 일본인으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즉, 교육을 통해, 문화를 통해 조선을 일본의 한 지방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신사참배였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체제를 정비했다. 일본은 한국을 강제로 합병하면서 한국인들에게 천황제의 종교인 신도(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일본은 신도를 일반 종교와 분리해 국가종교로 만들고, 이것을 한국의 모든 종교에 강요했다.

일본의 이런 신사참배 강요에 가장 강력하게 맞선 종교는 개신교였다. 유일신 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는 기독교는 하나님과 일본의 신들을 같이 섬길 수 없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신사참배를 강요한 것은 1937년 중일전쟁 이후였다. 일본은 대동아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내선일체를 강조하고, 황민화작업을 강화했다.

이것을 위해 기독교학교와 병원에 신사참배를 강요했고, 교회에도 국기 게양대를 만들고, 예배 전에 동방요배, 국가봉창, 황국신민의 서사를 제창하게 했다. 더 나아가 성경과 찬송가 가운데 자신들의 뜻에 안 맞는 것은 삭제하고, 경찰이 와서 설교와 기도를 감시했다. 일제는 기독교인의 신앙의 자유를 완전히 유린당했다.

필자는 소위 반일 종족주의의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이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한민족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를 일본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다. 이름을 빼앗고, 언어를 빼앗고, 신앙을 빼앗았다. 이것은 일본이 한반도에 약간의 근대화를 가져다줬다고 해서 묵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이런 점에서 이영훈 교수가 배타적 민족주의자들의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비판과 함께 식민지 시절 일본의 황국신민화정책도 비판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장에 공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두 얼굴과 한국인의 지혜

미국은 태평양전쟁 이후 이런 일본을 개조하려고 했다. 그리해서 비록 천황제는 인정하지만 그의 종교적인 성격과 정치적인 권한을 삭제하고, 단지 상징으로 만들었다. 미국이 원했던 것은 일본이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것이었다. 해방 후 한반도에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 이런 근거에서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은 같은 민주진영을 형성하게 되었고, 소련과 중국, 그리고 북한의 공산주의와 맞서 싸웠다.

하지만 현재 일본 극우주의자들은 과거 대동아전쟁 당시의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은 단지 일본의 재무장만이 아니라, 일본의 신도(神道)를 다시 국가신도로 만들어서 이것을 중심으로 일본을 재건하려고 한다. 만일 이것이 잘못 발전되어 나가면 일본은 다시 옛날과 같이 군국주의 국가가 된다.

이렇게 된다면 한국은 중국과 북한의 위협만이 아니라 일본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일본이 그렇게 나가지 않도록 일본의 건전한 시민세력과 협력해야 한다. 일본에는 아직도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전 주일대사를 지낸 일본 전문가 나종일 박사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일운동이 자칫하면 일본의 극우세력에게 그들을 재무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의 민주시민 세력은 서로 협력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고, 일본의 군국주의의 부상을 저지할 지혜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협력해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과 북한을 견제하고 아시아의 평화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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