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진단] 다가오는 국제금융 대혼란..... 한미일 관계 악화로 위험 가중
[전문가진단] 다가오는 국제금융 대혼란..... 한미일 관계 악화로 위험 가중
  •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경제학 교수
  • 승인 2019.10.0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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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금융시장에서는 지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트리플 마이너스’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유럽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0.50% 낮추는 등 일본, 스위스, 덴마크 등 많은 나라들이 마이너스 금리 체제로 들어서고 있다. 일본에 이어 독일의 국채금리도 마이너스로 내려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을 따라 미국 연준(FRB)이 기준금리를 제로나 그보다 더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이너스 물가, 즉 디플레이션 현상을 보이는 나라도 많아지고 있다. 한국도 3분기 연속 GDP디플레이터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와 함께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나라들도 늘어나고 있다. 영국, 독일, 홍콩 등이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고 미국, 중국, 유럽, 인도 등 주요국들의 성장률이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에는 ‘경기침체(R)의 공포’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기침체의 신호로 여겨지는 장단기금리 역전 현상도 이미 나타났다.

이렇게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칠 때마다 외환위기가 종종 벌어진다. 실물경제는 둔화되더라도 전 세계에 풀려 있는 부동자금이 많기 때문이다. 부동자금은 보다 높은 수익률을 찾아 전 세계를 찾아다닌다. 또 이 흐름을 활용해서 취약한 국가들의 환율과 주가 등을 흔들어 큰 수익을 내려는 각종 움직임이 벌어진다.

특히 파생금융상품이 국제금융시장의 대세가 되면서 ‘윈-루즈(win-lose)’ 금융, 즉 상대방을 나쁘게 만들면 내가 돈을 버는 일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취약한 국가에 대한 공격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흥국은 불안정성이 더 높아진다. 통화헤게모니를 가진 국가들은 자국 통화를 찍어내 자금이탈을 막을 수 있는 반면, 신흥국들은 힘들여 벌어놓은 달러 등 경화(硬貨, hard currency)를 활용해 환율불안에 대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흥국이 갖고 있는 외화보유액은 아무리 많아도 투기세력이 동원할 수 있는 규모에 비해서는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하루 외환거래량만 5조 달러가 넘는다. 무역거래와 연결된 외환거래는 전체 거래량의 1% 가량 밖에 되지 않는다. 세계 최대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던 중국은 지난 1년 동안 위안화를 방어하다가 1조 달러를 날린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경제는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해질 때 위기가 상대적으로 쉽게 벌어지는 단층(斷層, fault line)에 놓여 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이미 단층구조에 있다. 임진왜란도 대륙세력과 해상세력이 각축할 때에 조선이 단층에 놓였던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20세기에 들어서도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열강의 각축장이고 6·25전쟁이라는 큰 비극을 겪은 바 있다. 지금도 국제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릴 때면 정상 이자에 ‘분단 프리미엄’을 얹어 지불해야 한다.

이에 더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대폭적으로 자본시장을 자유화 하면서 한국은 ‘동아시아의 현금인출기’가 되어 있다. 기획재정부가 공식문서에서 “원화는 유동성이 풍부하고 자본거래가 자유로운 통화로 평가되어 신흥통화 중 거래가 가장 활성화” 되어 있다고 밝히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위기가 발생할 때에 신흥국 중 돈을 빼내기 가장 쉬운 나라라는 것이다. 실제로 2008/9년 세계금융위기 때에 한국은 ‘현금인출기’가 된 바 있다.
 

외환위기에 강력한 방패는 금융동맹

최근 들어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악화되면서 한국 경제는 금융위기에 추가로 취약해지고 있다. 한국 경제는 무역에서는 중국에 가장 크게 의존하고 금융과 안보에서는 미국에 가장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미중 갈등의 악영향을 가장 크게 받을 수 밖에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 정부는 경제가 단층에 놓여 있다는 구조적 약점을 무시하거나 경시하고 있다. 위기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지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갖고 있던 위기 방어 능력마저 스스로 와해시키고 있다. 위기가 벌어질 때에 공격할 수 있는 능력도 많이 해체되어 있다.

국내 정치공학에만 매몰되어 경제, 안보, 외교를 총체적으로 포기하고 있다는 우려마저 든다. 이에 따라 한국의 환율불안정성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원화는 연초 대비 6.2% 절하되었다. 금융위기로 IMF프로그램에 들어간 파키스탄의 루피아화를 제외하고 아시아에서 가장 크게 약세를 보이고 있다.

외환위기 가능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방패는 금융동맹이다. 동맹이 튼튼하면 적이 함부로 공격하지 못한다. 한국은 세계금융위기 때 미국, 일본, 중국과 통화 스왑 계약을 체결하면서 달러당 1500원까지 육박했던 환율 불안을 빠르게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를 둘러봐도 우군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의 통화 스왑이 해지된 후 통화 스왑을 복원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다. 일본과의 통화 스왑은 연장 논의가 진행되던 중 위안부 문제 등 정치적 갈등이 벌어지면서 논의가 무기한 중단됐다.

금융동맹이 복원될 가능성은 별로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정부는 현재 동맹을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 미국과의 신뢰 관계는 한미동맹이 체결된 뒤 가장 낮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고위 정책당국자들의 입에서 한국 정부에 대한 공개적 비판 발언이 나온다.

일본과의 관계도 위안부 및 징용 등 과거사 문제를 둘러싸고 무역 보복, 지소미아 연장 중단 등의 조치가 벌어지면서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가장 악화되어 있는 상태이다. 통화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미국과 일본은 외환위기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한국만이 외환위기 가능성을 안고 있다. 금융동맹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갖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지 일본이나 미국이 아니다. 유사시 도움을 받아야 할 동맹국들과의 관계 악화는 한국 경제의 단층구조를 더 위험하게 만들 뿐이다.

작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는 한국의 위기 대응 능력을 추가로 약화시켰다. 첫 해는 6개월마다 공개했지만 2019년 9월말부터는 3개월마다 시장 개입 현황을 공개해야 한다. 투기세력이 돈을 어떻게 동원하는지, 어디에 화력을 집중하는지 등은 모두 베일에 가려 있다. 반면 한국의 외환당국은 개입 내역을 백일하에 공개해야 한다. 외환시장 개입 공개로 투기세력과 외환당국 간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힘의 불균형은 더 심화됐다. 개입 내역을 발표할 때에 허점이 드러나면서 투기세력의 공격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실물부문에서 한국 경제가 복원력의 상실하고 있는 것도 불안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과거에는 위기를 당하더라도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복원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1) 그동안 너무 오래 또 과도하게 반기업정책이 시행되고 ‘노동귀족’만을 위한 친노조정책이 시행되면서 기업가정신과 근로정신이 동시에 파괴되고 있다. (2) 금융위기가 벌어질 때마다 한국 경제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재정 건전성도 최근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3) 가계부채도 올 6월말 1770조 원에 달하는 등 대책 없이 늘어나고 있다.

장기 불황을 겪었던 일본에는 없었던 문제이다. (4) 올들어 수출입이 동시에 줄어들고 무역흑자도 급감하는 불황형 수출입구조도 나타나고 있다. (5) 인구구조가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올해를 기점으로 생산연령인구 감소가 시작됐고 2067년에는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일본의 경우보다 훨씬 더 빨리 인구구조가 악화되고 있다.

지금 정부의 각종 정책을 보면 한국 경제가 단층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지진이 나기 전에 어떤 대비를 해야 하는지를 과연 생각하는지, 지진이 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과연 고민하는지, 그렇게 생각하고 대비하려는 의지가 과연 있는지 조차를 근본적으로 의심할 정도로 안이한 상태인 것 같다. 가용한 위기 대응수단마저 버리고 실물경제를 악화시키면서 지진이 발생하지 않을 요행수만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이 기사는 2019년 9월 26일 국회 세미나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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