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9·19 남북군사합의, 보완되지 않으면 폐기되어야 한다
[논단] 9·19 남북군사합의, 보완되지 않으면 폐기되어야 한다
  • 송종환 편집고문·경남대 석좌교수
  • 승인 2019.10.11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은 9·19 군사합의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미사일과 방사포 시험 발사를 계속했다. 사진은 8월 25일 북한 중앙통신이 공개한 초대형 방사포 발사 장면.
북한은 9·19 군사합의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미사일과 방사포 시험 발사를 계속했다. 사진은 8월 25일 북한 중앙통신이 공개한 초대형 방사포 발사 장면.

청와대와 정부는 ‘9·19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 1주년에 “체감할 수 있는 평화가 실현됐다”는 의미를 적극 부여하면서 기념학술회의 등을 가졌으나, 북한 측은 1주년 기념행사 제의에 응하지 않고 특이한 동향을 보이지 않았다.

군사합의에는 (1)지상, 해상, 공중에서의 평화지대 설정과 상호 적대행위 전면 중지 (2)비무장지대(DMZ)를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실질적 군사대책 강구(비무장지대 내 감시 초소(GP) 철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와 자유왕래, 공동 유해 발굴) (3)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의 평화수역 및 공동어로구역 설정 (4)한강하구 공동 이용 등 남북 교류 협력과 접촉 왕래 활성화에 필요한 군사적 보장대책 강구 (5)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 및 운영 등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다양한 조치 강구가 명시되어 있다.

합의사항들이 거의 이행되지 않고 있다. 목숨 바쳐 지켜온 서해 북방한계선을 명백히 하지 않고 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 철수와 지상, 해상, 공중에서의 평화지대 설정과 상호 적대 행위 전면 중지 합의로 그동안 우위에 있던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공중 감시·정찰, 해상 훈련과 초기 남침 억지전력 활동을 크게 약화시켰다.

특히 서해 5도 NLL 일대에서 불리하게 평화수역을 설정(NLL을 중심으로 북한은 50km, 한국은 85km)해 포사격 및 해상 기동훈련 중지를 합의함으로써 백령도·연평도 일대의 해병대와 해군 함정, 공군 3군 합동 전력의 한 축인 함정 전력이 무력화됐고 해병대 전력도 약해졌다. 서북 도서 백령도와 연평도에 배치된 해병대 부대는 K-9 자주포를 중대 단위(통상 6문)로 육지로 반출해 사격훈련을 한 후 다시 반입하는 순환식 훈련을 하고 평소에는 실제 포탄을 발사하지 않는 비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잘못된 군사합의로 한국은 경비와 노력을 훨씬 더 부담하고 있다.

국방부는 9월 18일 ‘9·19 군사합의 1주년 이행 현황 및 성과’ 자료를 통해, 또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4일(뉴욕 현지 시간)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9·19 남북군사합의 이후 지난 1년 간 북한이 합의를 위반한 행위는 단 1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부의 발표는 국민이 느끼는 안보 불안과 거리가 멀다. 북한이 지난 5월 이후 9월 10일까지 동해안으로 시험 발사한 10차례의 신형 단거리 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가 방향을 남쪽으로 돌리면 한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고 비행 궤적이 평탄해져서 기존의 탄도미사일 방어체계로 막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체한다.

게다가 합동참모본부가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보고한 바에 의하면 9·19 군사합의 전에는 군단급 무인기가 북한의 장사정포 등 713개 표적을 식별했지만 지금은 399개만 본다는 것이다. 군단급 무인기의 탐지 거리가 15~20km인데 군사합의에서 무인기 비행금지구역을 군사분계선(MDL) 기준으로 10~15km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탐지거리가 5~7km인 사단급 무인기는 무용지물이 됐다. 유인기도 비행금지구역을 20~40km로 확대했기 때문에 북한 목표물 식별률이 떨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74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인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비판하지 않는 대신 “북한은 작년 9·19 군사 합의 이후 단 한 건도 위반이 없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74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인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비판하지 않는 대신 “북한은 작년 9·19 군사 합의 이후 단 한 건도 위반이 없었다”고 말했다.

불리한 문서 합의보다 남북간 신뢰구축이 우선

무력이 행사되지 않는 평화라는 가치는 누구라도 거부할 수 없으며 바라는 바이다. 남북한은 서로 중무장한 상태에서 총구를 겨누고 있다. 상당 기간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과정도 없다. 북한은 약속한 핵 폐기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려면 한 장의 문서를 합의하기 이전에 남과 북 사이에 서로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오랜 기간 동안에 먼저 구축되어야 한다.

남북한이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고 서로 안전을 보장하고 공동번영을 하기 위해서는 1975년 이래 발전해온 유럽안보협력회의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Organization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의 포괄적 안보협력(Comprehensive Security) 체제를 벤치마킹하여 대규모 군사훈련의 사전 통보와 참관단 교환 등으로 상호 신뢰를 구축한 후 군축 순으로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체제를 단계적으로 추진하여야 한다.

유럽안보협력회의의 주요 내용은 1975년 합의한 헬싱키 최종선언, 1986년 스톡홀름협약과 1990년 비엔나 협약이 있다.

1975년 헬싱키 최종선언은 국가 간 주권의 평등과 존중, 무력행위 억제, 국경불가침, 분쟁의 평화적 해결, 기본적 자유와 인권의 존중 등 국가관계의 10대 원칙, 병력 2만 5000명 이상이 참가하는 대규모 군사연습 경우 21일 전 통보와 참관단 초청, 대규모 군사이동 사전 통보, 군축 등 신뢰구축(Confidence Building Measures), 경제·과학·기술·환경 분야의 협력, 인적 교류·문화·교육·스포츠 교류 증대를 통해 55개 회원국들의 공동인식을 제고하여 안정적인 안보환경을 조성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1986년 신뢰안보구축조치(Confidence and Security Building Measures)로 발전한 스톡홀름협약은 지상군 1만 3000명 또는 300대 이상 전차의 훈련과 이동, 3000명 이상의 상륙활동과 낙하산 공격 훈련, 200회 이상의 공군 출격의 경우 42일 전에 통보하고 지상군 1만 7000명과 5000명 이상의 상륙활동과 낙하산 공격 훈련이나 이동 시 주최국은 매년 3차례의 현장 사찰단을 초청하도록 의무화하였다. 7만 명 이상의 병력이 참여하는 대규모 훈련은 2년 전에 통보하지 않으면 중지해야 하며 4만 명 이상의 훈련은 1년 전에 통보할 것을 의무화했다.

1990년 비엔나 협약에서는 한 단계 더 진전된 신뢰구축 조치로 4만 명 이상 또는 900대 이상의 전차가 참가하는 훈련도 2년 전에 통보하지 않을 경우 훈련 자체를 실시하지 못하게 했으며 훈련 횟수도 2년에 1회로 제한하는 합의를 했다. 이러한 다자간의 신뢰구축의 결과로 유럽에서는 탈냉전이 도래하였다. 탈냉전 이후 유럽안보협력회의는 1995년에 유럽안보협력기구로 발전했으며 유럽에서 성공한 각종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다른 지역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지난 반세기 간에 남북한은 공개된 회담만 하더라도 2018년 12월 14일 현재 679회의 회담을 하고 268개의 합의서와 공동보도문을 생산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남북대화는 일방적인 한국의 대북한 경제협력, 지원 및 교류, 2-3일 간의 이산가족 상봉, 일시적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운영을 제외하고는 초보적인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조치가 이행되지 않음으로써 같은 민족 간의 공존과 공영을 위한 진정한 의미의 화해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한 정상회담에서 1년 내 ‘완전한 핵 폐기’를 약속하고 6월 12일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 이를 확인한 뒤에도 당연히 이행해야 할 핵무기와 시설 리스트도 제출하지 않고 미국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송종욱 편집고문·경남대 석좌교수
송종환 편집고문·경남대 석좌교수

남북한이 긴 협상을 통해 합의한 후 이를 이행하지 않는 ‘관행’은 고쳐져야 한다. 남북한 간의 군사합의 사항들은 조속히 ‘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 추후 협상을 통하여 위에 지적한 사항들을 보완하되 여의치 않으면 폐기되어야 한다. 그러나 김정은이 자주(주한미군철수)와 민주(국가보안법 철폐)로 남한체제를 전복시켜 연방제 통일을 하겠다는 자·민·통(自·民·統) 기조의 대남 전략과 공산화 통일 정책을 변경할 가능성이 적고 북한만 바라보면 작아지는 현 한국 정부를 생각하면 남북한 군사합의의 보완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진한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북한 핵무기와 한국 전체를 사정권에 두는 미사일의 실전배치라는 엄혹한 안보 위기 현실에서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직접 당사자로서 북한이 핵을 폐기토록 계속 적극 설득하는 한편 북한보다 50배가 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갖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사용을 억지할 근본 대책을 세우면서 정신 무장을 하여 대처해야 한다.

남베트남 붕괴 하루 전 1975년 4월 29일 박정희 대통령이 엄혹한 안보 위기를 맞아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을 앞두고 장병들에게 한 훈시 ‘필사즉생(必死卽生)’과 ‘필생즉사(必生卽死)’, 즉 ‘우리가 죽기를 각오하고 전부 힘을 뭉쳐서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우리 모두가 살지만, 그렇지 못하고 모두 제각기 살기만 원하고 힘을 합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기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할 것이다’라고 국민들에게 당부한 대로 정신무장을 반드시 해야 할 시점이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