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코네수엘라 (Korea-Venezuela)’를 막아라
[심층분석] ‘코네수엘라 (Korea-Venezuela)’를 막아라
  • 강영환 전 국무총리실 공보비서관
  • 승인 2019.10.1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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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한국 고재영

코네수엘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최근 SNS로 한국을 베네수엘라로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웃픈 현실 속, 최근 베네수엘라 논쟁이 뜨겁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성장 없는 분배는 망국으로 가는 길로, 지금 우리는 베네수엘라처럼 그 길을 가고 있다. 그것도 급행열차를 탔다”고 정부정책을 강력 비판했다.

이에 정부와 한국은행 등 경제 관련 기관은 한국은 베네수엘라 경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대응했다. 국민총생산이나 경제성장률 등 경제지표가 완연히 다르고 석유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 산업 대비 우리는 산업구조나 대외거래구조 등 경제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고 기반이 튼튼하다는 비판이다.

경제를 중심으로 한 두 나라간 토양의 차이, 그리고 이를 항변하는 정부 측 의견을 부정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문제가 생겨나고, 점차 의구심이 커져감에 국민의 걱정이 늘고 있음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베네수엘라적 통치 양상, 그 징후가 싹이 트고 하나 둘씩 이 나라에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모습과 오버랩 되는 베네수엘라의 개혁정책

1999년 정권을 장악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하 차베스)은 집권 14년간 다양한 개혁으로 국가시스템을 바꾸고 국민을 장악해 나간다.

유가 상승 영향으로 벌어들인 약 8000억 달러로 추정되는 수익을 빈곤 계층을 비롯한 지지층을 위한 복지에 쏟아 붓는다.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등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미션(Mission)정책으로 채택하고, 토지와 주택의 공개념을 골자로 한 부동산정책을 추진한다.

이런 복지중심정책은 차베스 이후 유가가 하락하여 재정수입이 급속하게 감소되는 상황에 맞닥뜨려서도 지속 추진함에 따라 결국 재정파탄을 불러오고, 복지의 효과 또한 소멸되어 빈곤층이 2014년 48.4%에서 2017년 87%로 증가되는 결과를 낳는다. 최근 지나친 복지지출 확대가 국가의 성장 동력 둔화와 맞물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대목이다.

차베스는 사법부를 장악해 나간다. 대법관수를 20명에서 32명으로 늘리고 권력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채운다. 집권 기간 4700여 명의 판사와 직원들 중 절반가량을 부패 혐의 등으로 조사한다. 정권에 유리한 판결로 반대자들을 형장의 이슬로 보내거나 탄압한다. 그리고 권력에 대한 견제가 아니라 헌법 개정 등 국민투표의 합헌결정, 언론장악사례 합헌결정, 노조에의 정부개입 인정 등 정권의 어젠다를 지지하는 판결에 충실한 사법부를 만든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의 사법부 코드인사, 그리고 최근 검찰개혁으로 이슈가 변화하고 있는 조국사태가 오버랩 된다.

야당지도자 시절인 1998년 총선에서 차베스는 야당이 승리하자 국민투표를 통해 제헌의회를 소집하고 기존 의회를 해산한다. 그리고 입법권을 완전히 장악한 채 신헌법을 만들고 장기집권의 발판을 만든다. 그리고 2005년엔 연동형비례제, 2009년엔 병립형비례제 등 유·불리를 고려한 선거법 개정으로 의회를 장악한다.

향후 2,30년 장기집권의 목표를 설정한 더불어민주당이 군소야당들과 함께 선거법을 통과시킨 패스트트랙, 그리고 다가올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둘러싼 선거법정국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차베스는 국민들과 소통한다는 명분으로 직접민주주의제도를 운영하며, 그 일환으로 국민청원제도를 강화한다. 일정 숫자 이상이 나오면 의회를 압박하고 이에 반대하는 의원은 국민 뜻을 따르지 않는 적폐세력으로 매도한다. 우리의 대의민주주의도 권력과 국민으로부터 이미 무시의 대상이 되었다. 국민은 청와대 청원게시판과 광장을 향한다. 언론도 여의도보다 이 모습을 앞 다퉈 취재한다.

차베스 지지 세력은 더 강력하게 뭉친다. 차베스는 이를 지역단위로 묶어 3~400가구당 1개 단위의 주민자치위원회(Communal Council)로 결속한다. 국가는 이들에게 예산을 지원한다. 이 지원금은 한때 지방교부금의 30%에 달했다. 이 주민조직은 협동조합·사회경제적 기업·소액금융과 연결되어 막강한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의 지자체도 점차 닮아간다. 지방자치단체에 공동체지원국이 자리 잡고, 주민자치를 지원하는 동자치지원관제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주민참여예산, 민주시민교육 등의 운영프로그램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베네수엘라 경제가 파탄이 났어도 광적인 차베스, 마두로 지지자들은 여전히 광장에서 선동 집회를 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경제가 파탄이 났어도 광적인 차베스, 마두로 지지자들은 여전히 광장에서 선동 집회를 하고 있다.

담론과 감정 결합의 국민선동으로 그들만의 국가를 만들다

정치, 경제, 사법, 지자체, 그리고 국민참여제도 등 각 영역에서 이미 자라거나 점차 싹을 키우고 있는 몇 가지 양상에서 베네수엘라의 기운을 느낀다. 그런데 그 기운보다 더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광경이 있다. 우리는 이를 거의 매일같이 접한다. 양 극단으로 나뉜 광장을 보며, 어느 한쪽에 ‘베네수엘라 행 급행열차의 엔진이 탑재하는 것이 아닐까?’를 생각해보면 등골이 싸해진다.

비록 나뉘어 있다 하더라도 베네수엘라행 급행열차의 엔진이 탑재되면 안 된다. 베네수엘라로 가든, 이를 막아내든 이를 결정하는 가장 결정적 힘은 결국 국민의 뜻과 언론이다. 그 엔진은 포퓰리즘과 선동정치로 쉽게 달궈질 수 있기에 걱정이 커진다. 이는 차베스의 대중장악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오랜 동안의 소수특권층 독식에 대한 거부와 정의에 대한 대중의 갈망을 공략하여 혁명에 성공한 차베스는 <차베스가 국민이다>라는 선동 구호로 국민을 장악했다. ‘우리는 수백만이고, 당신도 차베스다’라는 수사(修辭)로 국민을 편 가르기 하고, 썩은 정치와 새로운 정치의 프레임을 구사, 자신과 베네수엘라 서민을 일체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는 ‘우리가 정의이고, 평등이고, 자주’라고 외쳤다. 그리고 ‘정치적 반대 세력은 부정하며, 부를 독점하며, 친미(사대주의)’라고 적대시했다.

차베스는 매주 일요일 오전에 ‘Alo Presidente(안녕, 대통령!)’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들과 직접 소통했다. 그는 현장에서 장관을 불러내 군중의 질문에 답을 하게 하거나 집무실에서, 공장에서, 길에서, 마을에서 국민들과 끊임없이 스킨십을 나누는 모습을 TV로 방영해 국민들과의 친밀도를 높여 나갔다. 아울러 강력한 국가 담론형 메시지로 지지자들의 사상을 투철하게 무장시키고 차베스식 국민선동의 감정일체 화법으로 지지강도를 끌어올렸다.

‘차베스가 국민이다’와 아울러 <볼리바르 혁명>을 구호로 남아메리카의 독립 영웅 볼리바르를 통해 ‘애국심’과 기존의 사회 체제를 엎기 위한 ‘혁명정신’을 강조했다. 국가의 공식 명칭도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이라 개명하고, 볼리바르가 서민성 등 차베스의 정치 지향과는 다름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감정 결속을 위해 위대한 지도자를 정치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했다.

차베스는 <반미, 반제국주의> 전선을 명확히 했다. 2006년 유엔 연설에서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악마’와 ‘당나귀’라 부르는 등 반미감정을 자극함은 물론, 국제적 관심을 유발했다. 남아메리카 국가들의 지지를 위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맞서 남미통합(ALBA : Alternativa Bolivariana de las Americas) 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2005년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에게 자국산 석유를 싼 값에 공급하겠다는 페트로카리브계획(Petrocaribe plan)을 제안하는 등 거대담론을 주도함으로써 큰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했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주민들이 정부가 배급하는 식량을 받기 위해 줄 서 있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주민들이 정부가 배급하는 식량을 받기 위해 줄 서 있다.

또한 베네수엘라를 사회주의 국가로 새롭게 건설하려는 이상 하에 <21세기 사회주의>를 모토로 2007년부터 1차 사회주의 경제발전계획을 추진하고, 특히 지역자치위원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등 사회주의를 향한 엔진을 가동했다. 또한 쿠바 카스트로와의 교분을 통해 의료분야 지원을 확대하고 교육과 주거분야에서 대대적인 복지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과 강력한 적폐청산을 내세워 집권에 성공했다. 촛불과 적폐는 과거 정부를 감성적으로 지속 공격하는 명분으로 활용되었다. 이는 반대세력을 전쟁세력, 적폐세력, 친일·토착왜구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강력한 도구로, 또 한편으론 평화경제론의 담론 하에 종북주의를 만연시키고, 한·미·일 안보 동맹을 흔드는 위험국면을 초래하였다. 그리고 복지와 노동,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 원자력 등 사회 문제, 안보와 통일에 대한 비판 역시 촛불과 적폐의 논리로 그 예봉(銳鋒)을 꺾어왔다.

차베스는 언론에의 트라우마를 지닌 듯, 4개의 민영방송을 ‘지옥의 4기수(4 Horsemen of the Apocalypse)’라 불렀다. 그는 2002년 보수야당의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자 ‘이 쿠데타는 뉴스매체, 특히 TV의 도움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 말하며, 쿠데타를 보수언론의 반동행위로 규정하고 본격적으로 언론을 장악해 나갔다. 2004년 ‘라디오와 TV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법률(RESORTE)’제정으로 언론장악을 위한 법적 틀을 구비했다.

언론의 사회 책임론을 법률에 적시하고 정부의 미디어 검열지시 조항을 뒀다. 즉 언론사 스스로 지체 없이 메시지 보급을 제한하는 메커니즘을 수립하도록 언론사에 자정 활동을 요구하며, 이를 위반하는 경우 벌금을 부과하거나 서비스를 정지하는 조항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정부에 대한 비판은 국가에의 음모’라는 등 법을 모호하게 정의하고, 언론을 통한 표현 내용에 대해 광범위한 규제의 칼을 들이댔다. 또한 공영방송이나 민영방송에 무료로 10분가량을 정부 홍보할 수 있도록 의무화 했다. 이 법은 2011년,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까지도 포함하도록 확대했다.

언론 탄압은 입법에만 그치지 않고 2007년 베네수엘라 최고 권위의 방송인 RCTV(라디오카라카스TV)의 방송면허기간 갱신을 불허하고 폐쇄하는 초유의 사태로까지 이어진다. 과거 2002년 쿠데타 보도와 관련하여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 재허가 거부 사유가 되었다. 이러한 언론탄압은 2009년 ‘기술적 및 행정적 이유’로 34개 라디오 방송국 폐쇄로 이어지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라디오와 TV 방송국, 신문, 웹 사이트에 대한 통제를 확대해 나간다.

기존 언론을 장악한 차베스는 언론 주체들을 새롭게 변화시켜 나갔다. 국가(State)미디어를 확대시켜 국영TV를 VTV(베네수엘라TV) 1개에서 4개로, 국영라디오를 2개에서 7개로 늘렸다. 시민 참여를 모토로 내건 국영채널 비베 TV, 정부지원을 받는 공동체 채널 카티아TV, 그리고 2005년엔 남미의 ‘알 자지라’ 라 불리는 중남미 위성채널인 텔레수르(2005개국)를 개국시킨다.

한편 차베스는 수도 카라카스에 3개의 공동체TV를 포함해 700여 개의 공동체 미디어를 만들고 이들 중 약 170개 미디어를 정보통신부 산하기관인 ‘코나텔(CONATEL)’의 허가로 예산을 지원한다. 국영방송인 비베티브와 연계하여 이를 통해 매일 하루 1시간씩 공동체방송을 송출하도록 한다. 공동체미디어는 조직(지역자치위원회), 자금(정부예산지원) 등이 결합하여 공동체미디어운동(MAC)을 전개하고 볼리바르혁명의 선봉역할을 수행한다.

차베스 사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통제와 회유는 더 강화된다. 친정부 언론에 대해선 최대 12배나 많은 정부 광고를 배정하여 언론사 길들이기를 강화하고 신문제작을 위한 수입 신문용지 가격을 통제하여 메이저신문의 발행부수를 통제하고 숨통을 옥죄는 치졸한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강영환 전 국무총리실 공보비서관
강영환 전 국무총리실 공보비서관

당근과 채찍 앞에 무너진 언론의 지유, 대중도 길들여지다

문재인 정부 들어 MBC, KBS 등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는 편향된 좌파인사 중심으로 장악되었다는 평가다. YTN, 서울신문 등 준공영언론도 코드인사로 점철되고 민주노총의 언론노조는 사내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사실보도나 권력에의 직필보다는 진영 논리 차원에서 다소 왜곡된 여론을 형성시킨다는 지적이 높다. 최근 검찰은 ‘TV조선 주식 부당거래 의혹’으로 조선일보 수사에 착수했다.

조선일보와 TV조선에 대한 폐쇄 등의 국민청원과 조직적인 반대운동이 가해지는 상황에서 향후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상대적으로 보수진영에서 많이 활용된다고 평가되는 유튜브도 관심거리다. 유튜브세(稅)도입, 가짜뉴스 등을 쟁점으로 한 통신장악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수·적폐·친일의 논리의 국민적 여론전몰이로 보수언론에 대한 탄압과 길들이기는 지속 전개될 전망이다.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한 말이다. 그런데 취임 후 2년 반이 다가오는 지금, 우리의 대통령이 말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혹시 베네수엘라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면 그것은 기우일까?

미주기구(OAS)는 베네수엘라를 탈출한 국민이 460만 명이라고 밝혔다. 공식 인구는 2850만 명이다. 인구의 15% 이상이 살 길을 찾아 해외로 떠나도 그들은 이미 ‘우리 편’이 아니기에 ‘갈 사람은 가라’식이다. 경제의 실패를 넘어 국가의 실패임에도 이 나라 집권세력은 끄떡없고, 지지층은 여전히 환호한다. 과거 정권의 실정(失政)에 대한 적개심으로 무장하여 우리 편과 반대편의 ‘이분법’적 통치구조와 우리 편만의 ‘공동체정신’의 통치철학으로 똘똘 뭉친 나라가 베네수엘라다.

포퓰리즘의 종착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나라를 쪼갠다. 국민을 나눈다. 재정을 거덜낸다. 그리고 결국 국가는 무너진다. 베네수엘라가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 그 나라가 코네스엘라가 되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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