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베네수엘라 경제 파탄, 이렇게 시작됐다
[심층진단] 베네수엘라 경제 파탄, 이렇게 시작됐다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9.10.1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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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는 석유 매장량이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진 자원부국이다. 그런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왜 몰락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나. 이 문제에 대해 지난 해 발간 된 한국경제연구원의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에서 배우는 4가지 교훈>이라는 제하의 보고서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4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첫째, 석유자원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위기를 불렀다.

베네수엘라는 석유가 국가 전체 수출의 96%를 차지하고, 재정수입의 50%와 GDP의 약 30%를 석유에 의존하고 있어, 유가 하락 시 경제 전체가 악화될 우려가 있었다. 실제로 2010년 이후 국제유가 하락에 따라 베네수엘라 경제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보고서는 ‘그럼에도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부족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제조업 등 산업 육성은 미진했고, 오히려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는 과정에서 경쟁력이 저하되었다는 것. 석유관련 산업조차 국유화에 따라 생산성이 감소했다. 과거 하루에 300만 배럴에 육박하던 생산량이 2018년에는 140만 배럴 수준으로 떨어졌다. 산업 다각화를 통한 위험분산이 어렵다면, 위기발생 시 환율방어를 위한 국부펀드 운영 등 대책이 필요한데 이마저도 부족했다.
 

복지 포퓰리즘으로 베네수엘라 국가 재정은 파탄 수준에 이르렀다.
복지 포퓰리즘으로 베네수엘라 국가 재정은 파탄 수준에 이르렀다.

둘째, 복지로 늘어난 국가재정을 되돌릴 수 없었다.

보고서는 ‘석유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만으로 베네수엘라의 위기를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2016년 이후 유가가 일정부분 회복하면서 대부분의 산유국이 어려움에서 벗어난 것과 달리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급격하게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복지정책에 따라 확대된 국가재정이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았다. 차베스 집권 후 ‘무상교육’, ‘의료지원’, ‘저소득층 보조금 지급’ 등 복지 확대로 인해 실업률과 빈곤률이 감소하고 문맹률이 떨어지는 등 일정한 효과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도한 복지지출로 인해 베네수엘라는 자원부국임에도 재정이 취약해졌다. 베네수엘라 GDP 대비 정부지출은 2000년 28% 수준에서 2018년 41%까지 증가했고, 재정수지는 2007년 마이너스를 기록한 후 적자 폭이 확대되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늘어난 재정부담을 메우기 위해 미래의 석유수익금을 담보로 정부 차입을 확대했다. 유가가 상승세에 있는 동안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유가상승세가 꺾이자 재정 부담이 급격히 가중되었다. 이를 메우기 위해 화폐를 기록적인 수준으로 증발하게 된 것이 베네수엘라에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셋째, 규제위주의 경제정책이 시장을 왜곡하여 경제활력을 감소시켰다.

주력산업의 국유화, 각종 가격통제 및 외환통제 등 베네수엘라 정부가 규제 위주의 경제정책을 강화한 것도 베네수엘라 경제 활력 저하의 원인이 되었다. 2000년 이후 석유를 포함, 통신·철강·전력·시멘트 등 주요 산업이 국유화되면서 해당 산업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정권의 측근 인사들이 국유화된 기업에 임명되었고, 이들의 경영실패는 생산성 감소로 이어졌다. 가격통제 역시 기업의 채산성을 약화시켰다. 국영화된 전력기업의 경우 2005년 이후 전기료가 동결되면서 2012년에 들어서는 총수익이 인건비의 70% 수준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경제 파탄으로 도시 곳곳에 식수 공급이 중단된 베네수엘라 / 연합
경제 파탄으로 도시 곳곳에 식수 공급이 중단된 베네수엘라 / 연합

그 결과 베네수엘라의 산업이 약해졌다. 2006년에 15만 대에 달하던 자동차 조립생산 대수는 2016년 3000대 수준으로 하락했고, 2017년 조강생산량도 2008년 대비 10% 수준으로 급감했다. 수출도 2015년 이후로 급감하여 2008년 대비 1/3 수준이다.

베네수엘라 헌법은 사회공공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재산수용을 허용하고, 국가에 대한 범죄, 부패, 마약거래 등에 연루된 재산몰수를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가격인상을 근거로 기업의 자산을 몰수할 수 있는 법률까지 시행 중이다. 이를 근거로 광범위한 수용 및 몰수가 시행되었다. 국제재산권연대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재산권 보호 순위는 2017년에 127개국 중 126위다.

넷째, 공직자의 부정부패가 경제적 약자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기존 정치권의 부정부패를 비판하면서 정권을 잡았던 차베스 정부였음에도 부정부패는 고쳐지지 않았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에서 베네수엘라는 1998년 당시 조사대상 85개국 중 77위를 기록했지만, 차베스가 사망하던 2013년에는 175개국 중 160위였다. 2017년에도 180개국 중 169위로서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차베스 집권 이후 지금까지 그의 고향인 바리나스주 주지사 자리는 차베스의 아버지(1998~2008), 형(2008~2017), 동생(2017~현재)이 이어서 차지하고 있다. 동생인 아르헤나스 차베스는 직무 중 세 번이나 부정부패 혐의로 고발되었으나 차베스주의자가 장악한 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했다.

부정부패는 결국 경제적 약자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2015년 총선에서 패배한 마두로 대통령은 ‘볼리비안 혁명의 부흥’을 목적으로 2016년 5월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군이 공공질서 유지와 식량분배 및 판매 권한을 가지도록 했다. 그 결과 군부가 식량을 암시장을 통해 유통시켜 부정축재를 하는 등 부작용을 가져왔다.

외환을 통제하는 외환통제위원회(Cadivi)도 원유수입대금을 공식 환율로 계산하고 암시장에 달러를 유통하는 등 부패를 저질렀다. 이러한 불법 외환거래에 들어간 총액은 2012년에만 590억 달러에 이르러 당시 국내총생산(약 331억 달러)보다 많은 금액이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은 “자원부국인 베네수엘라도 복지제도 확대에 따른 재정부담은 감당하기 어려웠다”며, “미래세대에 부담이 될 재정확대는 신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베네수엘라는 정부의 규제위주의 경제정책이 초래할 시장왜곡의 결과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서, 규제보다는 기업이 활력을 가지고 투자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베네수엘라 주요 경제 지표
베네수엘라 주요 경제 지표

베네수엘라 정부의 경제 개입 사례

■최대 통신회사인 Cantv, 철강회사인 Sidor, 모든 민간전력회사, 베네수엘라 은행 (Banco de Venezuela) 외 5개 은행, 시멘트 회사, 60여개의 유전서비스 및 외국계 석유회사, 식품 생산 및 유통회사 등이 국유화됨

■2005년 탄화수소법을 제정해 기존 외국회사는 국영석유회사(PDVSA)와 합작투자 방식으로 전환하게 하고 PDVSA가 지분을 최소 51% 보유토록 함

■2003년 실시된 외환통제정책에 따라 모든 외환송금은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함으로써 베네수엘라에 투자한 외국기업들의 본국송금 애로 발생.
 

베네수엘라 정부의 기업재산 침해 사례

■2010년 차베스 대통령은 가격조작 등 국내 실정법 위반을 이유로 프랑스 회사가 소유한 슈퍼마켓체인점인 ‘엑시토’의 자산을 몰수

■2016년 P&G, 클로락스, 킴벌리 클라크 등 생활용품업체가 공장 가동을 멈추자 ‘의도적으로 생산을 중단했다’며 공장을 몰수, 국영기업으로 전환

■2017년 베네수엘라 전체 자동차 생산의 55%를 차지하던 GM공장을 몰수하고 완성차 및 일부 시설을 외부 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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