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 칼럼 - 조국에 놀라고, 한완상에 다시 한번 놀라
박정자 칼럼 - 조국에 놀라고, 한완상에 다시 한번 놀라
  •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 승인 2019.10.1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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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완상 전 총리가 “누가 조국 가(家)에 부끄럼 없이 돌 던질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70년대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민중과 지식인’론을 설파함으로써 단숨에 엘리트 지식인으로 등극했던 사람이다. 사회적 의식이 없는 지식인은 지식인이 아니라 그저 지식 기사(技士)일 뿐이라는 참신한 개념으로 그는 당시 젊은 대학생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원조 강남 좌파였다.

그러나 그는 민중과 지식인이라는 문제틀이 그대로 사르트르의 것이고, 지식 기사라는 용어도 사르트르의 지식 기사(technicien du savoir pratique)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라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물 안 개구리들이었던 당시 대학생들은 그저 한 교수의 참신한 개념을 감탄하고 칭송하기에 바빴다.

지식 기술자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지배자의 목표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것에 도전할 때, 비로소 지식인이 된다는 것이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의 개념이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이란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한 중간에 위치해 있는 계층이라고 말했다. 그의 지식인론의 기본 패턴은 1951년에 쓴 희곡 <악마와 선신(善神)>에 잘 나와 있다. 극중 인물인 한 은행가는 이렇게 말한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도서출판 기파랑 주간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도서출판 기파랑 주간

“나는 인간을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눈다. 돈을 아주 많이 가진 사람, 전혀 갖지 못한 사람, 그리고 약간 가지고 있는 사람. 돈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것을 보존하고 싶어 한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한편 돈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갖기를 원한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현재의 질서를 파괴하고 그들에게 유리한 새로운 질서를 하나 세우는 것이다.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은 현실주의자들이다. 그런데 세 번째 종류의 사람들, 즉 돈을 약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약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사회 질서를 보존하기를 원하며, 동시에 그들이 갖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사회 질서를 뒤엎으려 한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들이 관념상 파괴하는 것을 사실상 보존하고 있고, 자기들이 보존하는 체하는 것을 사실상 파괴하고 있다. 이들은 다름 아닌 이상주의자들이다.”

이 이상주의자들이 바로 지식인이라는 게 사르트르의 생각이다. 그러니까 지식인은 권력 엘리트 혹은 대재벌 등 지배계층과 하층민 사이에서 양쪽의 이해를 조금씩 나눠 가진 중간적 인물이다.

직업에 따라 그들이 하는 일은 각기 다르지만 여하튼 그들이 하는 일의 목표는 지배계층이 세우고, 실현은 하층민에 의해 수행된다. 중간의 지식인에게 남겨진 것이라고는 일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의 검토뿐이다.

목표를 평가할 권리도, 그 목표를 실현시킬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지식인은 그러므로 남이 세운 목표에 따라간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자기의 목표를 빼앗겼다는 점에서 하층민과 입장을 같이 한다. 어떤 전문 지식인이, 지배계층에 의해 세워진 자신의 목표를 재검토해 보려는 생각도 없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단지 자기에게 맡겨진 한계 내에서만 충실히 일할 때, 이런 사람을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게 사르트르의 생각이다. 이들은 그냥 전문 기술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술자가, 자기에게 금지된 행위, 다시 말해 자기가 알지 못하는 목표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것에 도전할 때, 그는 비로소 지식인이 된다고 했다.

사르트르는 원자탄 제조 기술을 발견한 과학자들을 예로 든다. 이 과학자들은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없고 다만 학자 혹은 전문 기술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는 그 가공할 만한 파괴력에 놀라 그 원자탄 사용을 금지하라는 선언서에 서명할 때, 바로 이 순간에 이 전문 기술자는 지식인으로 변모한다는 것이다.

1940~50년대 프랑스 사회를 풍미했던 앙가주망(engagement, 지식인의 현실 참여)은 바로 여기서 나온 말이다. 앙가주망 논쟁을 포함해 사르트르의 현상학적 실존주의는 프랑스에서는 1960년대 구조주의의 대두와 함께 급속히 몰락했고, 서구에 비해 20~30년간 지체되었던 한국 사회에서는 70~80년대 기승을 부렸었다.

조국이 앙가주망을 말할 때 그 시대 착오성에 한 번 놀랐고, 그 내용의 왜곡에 또 한 번 놀랐다. 앙가주망은 권력에 대항하는 지식인의 투쟁을 말하는 것이지, 권력에 빌붙어, 돈 많은 재벌에게서 돈을 받아 유학이나 다녀오고, 그러다가 권력 자체가 되어 민중을 억압하는 ‘지식 기사’가 할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석학의 개념을 슬쩍 가져와 마치 자기 것인 양 젊은이들 앞에서 뽐내던 교만한 노 ‘지식기사’가 조국을 두둔하고 나서는 그 후안무치에 나는 또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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