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평세 트루스포럼 연구위원 “홍콩을 장작 삼아 공산주의를 불살라라”
조평세 트루스포럼 연구위원 “홍콩을 장작 삼아 공산주의를 불살라라”
  • 조평세 트루스포럼 연구위원
  • 승인 2019.10.1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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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019년 새해가 시작할 때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주간지를 포함한 많은 서구 언론은 중국 공산당에게 매우 난처한 한 해를 예상했다. 중국의 3·1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5·4운동의 100주년, 중화인민공화국(공산중국) 정권수립(10·1)의 70주년 그리고 중국공산당의 대표적인 민주화운동 진압인 천안문사태(6·4) 30주년이기 때문이다.

100년 전 주권을 찾아 나섰던 중국인들은 70년 전 노예의 길을 선택하고 30년 전에 이를 통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숫자에 예민하고 의미 부여를 잘하는 중국인들에게는 올해가 그냥 지나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짐작 - 혹은 희망 - 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은 홍콩에서 터졌다. 지난 4월 홍콩 당국이 중국 본토나 타국에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표한 후 조금씩 시민들의 동요가 감지되더니, 6월 9일부터 본격적인 거대규모 시위가 10월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기폭제는 ‘범죄인 인도 법안’이었지만, 사실 홍콩인들의 중국에 대한 분노와 자유의 의지는 폭발할 계기만을 노리고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캐리 람(Carrie Lam) 행정장관이 해당 법안의 심의를 보류하고 “법안은 죽었다”면서 대폭 물러서기도 했지만, 오히려 아예 추가 요구를 내놓으며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는 시위 규모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9월 29일 타이베이 도심에서도 대만 시민들이 ‘중국 반대, 홍콩 지지, 전체주의 반대 행진’ 집회를 하여 자유홍콩시민을 응원했다. / 연합
9월 29일 타이베이 도심에서도 대만 시민들이 ‘중국 반대, 홍콩 지지, 전체주의 반대 행진’ 집회를 하여 자유홍콩시민을 응원했다. / 연합

예견되었던 자유인과 노예상의 충돌

홍콩인들의 중국에 대한 불만은 1997년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면서 향후 최소 50년을 약속한 홍콩의 ‘고도의 자치’(기본법 2조)가 중국 당국에 의해 점점 침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영국과 중국이 합의하고 서명한 공동선언과 홍콩 기본법은 ‘사회주의 체제와 정책이 (기한 명시 없이) 홍콩특별행정구에 이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정해져 있다.

오히려 주기적인 선거와 ‘1인 1표제’를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1997년 반환 당시 대부분의 홍콩인들은 이제 사회주의로 들어간다는 생각이 아니라 오히려 이제 영국의 총독이 아닌 그들의 지도자를 직접 뽑게 된다고 생각했다. 당시 영국과 이 기본법을 논의한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50년이 지나면 중국이 거의 자본주의화 되어 홍콩과 합칠 수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을 수도 있다.

결과는 영국과 홍콩인들이 공산당에게 완전히 사기를 당한 꼴이었다. 중국의 개혁개방 실험은 시장경제에 국한되었을 뿐, 시민의 자유와는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구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공산당의 세력 강화와 체제 고집은 더 심해졌다. 특히 시진핑 집권 이후로 중국공산당의 홍콩에 대한 내정간섭과 위협은 심해졌다. 홍콩반환 20년 후인 2017년에는 행정장관의 직선도 약속되어 있었지만, 시진핑 집권 1년 후인 2014년에 당국이 발표한 홍콩 직선 제안은 사실상 행정장관 후보를 2~3명의 친중(親中) 인사로 제한하는 것이었다.

이때 일어난 것이 ‘우산혁명’이다. 당시 홍콩 당국이 직선제안을 강행하면서 우산혁명은 두 달 반 만에 패배로 끝난 듯했지만, 이때 1997년 반환 이후 처음으로 수십만 명이 결집하면서 홍콩의 반중(反中) 자유화운동 조짐과 가능성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홍콩인들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실질적 위협도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중국을 비판하는 홍콩인들의 납치와 감금이다. 특히 중국공산당의 비리 등을 다루는 본토의 금서들을 출판하고 판매하는 홍콩 코즈웨이베이(Causeway Bay) 서점의 주주와 직원들이, 2015년 <시진핑의 여섯 여인들>이라는 제목의 책 출간을 예고하고 줄줄이 실종된 사건이었다.

수개월 후 이들 중 일부가 다시 나타났지만 아무런 해명을 안하고 있다가 그중 한 명이 “홍콩에서 납치돼 중국으로 끌려가 감금되고 고문을 당하며 허위자백을 강요받았다”고 폭로한 것이다. 이것은 50년 동안 영국 치하에서 법치와 자유를 누리던 홍콩인들이 그들에게 빠르게 다가오는 중국 공산주의 폭정을 체감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홍콩시위대에 총 겨누는 경찰. 이미 실탄 발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송환반대 시위는 이제 ‘NO CHINA’시위로 확대되고 있다.
홍콩시위대에 총 겨누는 경찰. 이미 실탄 발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송환반대 시위는 이제 ‘NO CHINA’시위로 확대되고 있다.

1789가 아닌 1776의 자유를 추구하는 홍콩 자유인

게다가 이번 홍콩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경험한 중국 공산주의의 무자비한 탄압은 홍콩인들에게 더 큰 공포와 위기 의식으로 증폭됐다.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 ‘삼합회(triad)’ 폭력배들을 동원한 시위대 폭행, 중국 인민군의 개입 위협, 지난 2일의 실탄 발포로 인한 청소년 총상, 지난 4일 계엄령에 달하는 복면금지 조치 등을 통해서 홍콩인들은 이제 공산전체주의의 실체를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인들의 두려움은 생과 사의 문제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여건이 되는 모든 사람들은 해외로 이주를 준비할 것이고 (실제로 해외비자 신청을 위해 필요한 서류를 요청하는 건이 8월 기준 작년보다 50% 이상 증가했다) 남은 사람들은 공산체제에 저항하거나 순응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러나 자유를, 그것도 세계 최고 수준의 자유를 누렸던 홍콩인들이 과연 그 자유를 포기할 수 있을까?

이제 홍콩 시위대의 요구는 1)범죄인인도법안 완전 철회 2)캐리 람 행정장관 하야 3)경찰의 부당한 진압 진상조사 4)구속된 시위자 석방 5)더 많은 민주적 자유 등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이제는 시위대 사이에서 사실상 중국으로부터 홍콩의 ‘독립’까지 거론되고 있다.

지난 6일에는 급기야 일부 시위대에서 미국의 1776년 독립선언문의 문맥을 차용한 ‘임시정부 수립선언’까지 공표되었다. 이 선언문은 홍콩 의회의 해산과 정부의 퇴진 그리고 자체 민주선거 등의 로드맵까지 구상하고 있다. 이미 지난 9월부터 이번 시위 과정에서 작곡, 작사, 전파된 ‘홍콩에 영광을(Glory to Hong Kong)’이라는 웅장한 노래가 ‘홍콩 국가’로 여겨지며 널리 불리고 있다. 이 곡을 작곡한 ‘Thomas dgx yhl’(가명)은 영국 국가와 미국 국가 등을 참고해 작곡을 했다고 하니 독립국을 건국하고자 하는 홍콩인들의 본심은 이제 현실성을 떠나 분명한 셈이다.

물론 모든 대중운동이 그렇듯이 홍콩 시위도 다수의 폭정으로 진화할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혁명의 과정에는 자연법을 존중하는 헌정공화주의로 귀결할 ‘1776의 자유’와, 선동가과 군중에 의한 중우정치로 귀결할 ‘1789의 자유’가 언제나 공존하는 것이다.

홍콩의 시위도 처음에는 1789년 프랑스혁명의 노래였던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 불리거나 심지어 한국 운동권의 ‘민주화’ 운동 주제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도 일부 시위 현장에서 부르게 하려고 하는 등의 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점점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시위대의 과격한 폭력이 산발하고 또 이는 시위를 불법으로 프레임 하려는 세력들에 의해 조명되기도 하고 있다.

하지만 시위가 근본적으로 홍콩인들의 반(反)중국공산주의 정서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한국 민주화가 그랬던 것처럼 반독재 투쟁이 사회주의 추구로 비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홍콩 시위는 영어로나 중국어로도 pro-democracy, 民主 운동이지만, 한국어로는 ‘민주화’ 대신 ‘자유화’로 굳이 고쳐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사실 이 홍콩 시위들을 주도한 학생들을 보면 홍콩 자유화 운동이 애초부터 명백한 반중, 반공 그리고 ‘1776의 자유’를 향한 독립운동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96년생(!) 조슈아 웡(Joshua Wong)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모의 영향을 받았고 첫 대중활동은 14세인 2010년 홍콩.중국 간 고속철도 건설에 대한 반대 시위 참가였다.
 

조평세 트루스포럼 연구위원
조평세 트루스포럼 연구위원

1년 후인 2011년에는 중학생 운동조직인 학민사조(學民思潮)를 설립해 공산당에 대한 충성을 세뇌시키는 홍콩 정부의 ‘국민교육’ 반대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2014년 우산혁명의 대표적인 주동자로 알려져 타임 주간지 표지를 장식하기도 하고 노벨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 그는 올해 홍콩 시위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 여러 차례 체포되었고 석방 직후 또 다른 학생운동가 알렉스 차우(Alex Chow)와 함께 쓴 8월 31일 뉴욕타임스 기고문에 이렇게 호소한다.

“홍콩의 청년들은 그들에게 쏜 최루가스를 마시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많은 청소년들은 직접 모은 푼돈으로 마스크를 사며 신념이 강해진다. 어른들은 경찰들에게 권총과 몽둥이를 내려놓으라고 호통치며 직장인들은 운동을 위해 후원을 한다.

홍콩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일은 바깥 세상의 임무이기도 하다. 이것은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에 대항할 의지에 달려 있다. 세계 지도자들은 지금 중국 공산독재의 현실을, 중국이 평화롭게 부상(하고 언젠가는 민주화)할 것이라는 그들의 거짓 희망으로 덮어버리는 실수를 계속해서는 안 된다. 베이징 공산독재의 생명줄을 연장시키는 모든 행위와 정책은 그 독재가 핍박하고 억압하는 - 티베트와신장과 홍콩과 중국 본토의 -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다.”

조슈아 웡은 이후 독일 베를린에 방문해서는 홍콩이 냉전 당시 베를린과 같다고 하기도 했다. 자유와 번영의 상징으로서 중국에게는 두려움이고 자유세계에는 반드시 수호해야 할 희망이라는 것이다.

“Fire is catching…”

조슈아 웡과 함께 2014년 우산혁명에 함께 했다가 보다 과격한 행동을 추구하며 갈라섰던 90년생 앤디 챈(Andy Chan)도 있다. 그는 활동 초기부터 홍콩의 독립을 주장하며 국민당(National Party)를 창당했다가 홍콩 기본법 위반 혐의로 해산되기도 했다.

지난 9월 앤디는 미국보수연합(American Conservative Union)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미국과 국제사회에 다음의 세 가지 행동을 촉구했다. 첫째, 중국이 나치독일과 같은 전체주의 정권 - ‘차이나치(Chi-Nazi)’ - 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널리 알리며 둘째, 곧 경찰의 폭력이 심해져 병원이나 의료진이 부족한 상황이 올 것이니 인도주의적 의료지원팀을 보낼 준비를 할 것 그리고 세번째로, 1992년 발의된 미국의 ‘홍콩정책법’에 따른 홍콩에 대한 ‘특별대우’를 철회하고 강력한 제재를 가하라는 것이었다.

홍콩은 중국의 ‘뒷문’이나 마찬가지로 중국에 들어가는 해외직접투자의 50% 이상이 홍콩을 통해 유입된다. 중국공산당에 진짜 타격을 가하려면 홍콩을 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선조들에 의해 정리되지 않은 짐이 지금 우리들의 어깨에 짊어져 있습니다. 이제는 공산주의를 완전히 끝낼 때가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그 혁명에 참여할 때입니다. 독재가 현실이 될 때 혁명은 의무가 됩니다…. 홍콩은 이미 불타고 있습니다. 우리는 중국이 우리와 함께 불타 버리길 원합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닙니다. 자유와 존엄을 위해서는 언제나 대가가 따릅니다. 중국과 함께 우리가 불타버린다면 그것은 우리의 영광입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홍콩을 제재하십시오.”

제퍼슨이 말한 것으로 알려진 “폭정이 법이 될 때 저항은 의무가 된다(When tyranny becomes law, resistance becomes duty),” 그리고 패트릭 헨리가 외쳤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등은 1776년 13개 미국 식민 주(州)들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할 당시 미국인들이 외쳤던 구호다.

이들 학생들이 어떤 역사를 추구하고 어떤 정치철학을 모델로 삼고 있는지 분명히 나타난다. 물론 홍콩의 젊은 시위대에게는 영화 ‘헝거게임’의 주인공이 전체주의 폭군에게 던지는 대사가 연상될 것이다. “You can torture us, bomb us and burn our districts to the ground. But fire is catching, and if we burn, you burn with us! (우리를 고문하고, 폭탄을 던져 우리 구역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겠지만 잘 봐, 불이 번지고 있어. 우리가 불타면 당신도 우리와 불탈거야.)”

이 청년들의 비장한 호소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홍콩인들, 적어도 홍콩 인구의 7분의 1정도 되는 홍콩 시위자들에게 이제 물러설 곳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결코 공산주의 중국 치하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온 세상에 분명히 외치고 있다.

그리고 자유독립을 원하고 있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가능성이나 현실성을 따질 여유가 없다. 이미 자유가 아니면 죽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 한국의 자유인들도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 외에는 선택이 없다. 북한전체주의와 ‘일국양제’ 연방제통일을 꿈꾸는 문재인 치하에서, 우리도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그들과 똑같은 입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평세

트루스포럼 연구위원
킹스칼리지런던 종교학과 졸업
킬스칼리지런던 분쟁안보개발학 석사
고려대 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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